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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미싱헌팅 7

말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동작은 달라 엉덩이로 슬그머니 내린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렸다.
옳거니. 다음에 던질 공은 가운데 직구.
행여나 내가 보지를 못 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반복해서 엄지와 중지를 접었다 폈다.
『네, 네. 갑니다, 가요. 재촉 안 하셔도 갑니다.』

신호를 받자마자 나는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마침 근방으로 이거다 싶은 신축 공사장을 미리 봐둔 것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읏샤!」하고 기합을 넣었다. 벽돌을 쌓고 미장일을 하는 인부들 셋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망치를 든 목수 하나가 밧줄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갈 채비를 끝마쳤다. 모래를 뒤엎던 인부는 삽질이 영 힘들었던지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그렇다면 받침 기둥으로 쓰이고 있는 통나무 하나를 쓰러뜨려보자. 큰 소리가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벌어질 소동이 굉장할 거다.

검지손가락을 가만히 들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샥.
밧줄이 끊어졌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요점은 사람만 안 죽으면 된다는 거다.

『뭐지? 뭐지?!』
폭발음에 가까운 굉음에 메로우 형제들이 펄쩍 뛰었다.
『가자!』
동시에 리나와 가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달음박질해 나가기 시작했다.

좋다. 그럼 나도 슬슬 자리를 바꿔보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마을회관 지붕에서 으슥한 골목길 속으로 재빨리 공간 이동했다.
목격자가 없는 걸 앞뒤로 확인하고.
잠시 벽쪽으로 붙어 숨을 죽였다.
장총을 든 메로우 형제들이 버팔로 황소라도 때려잡는다는 기백으로 뛰어갔다.
저 사내들은 그냥 보내시고.
리나와 가우리가 머리털을 휘날리며 뒤따라 달려오는게 보였다.
『헤이!』
그제서야 쭉 빠진 다리를 슬그머니 골목길 밖으로 내밀어 신호했다.

『지금 히치하이킹 하냐. 거기서 못 생긴 다리를 내밀긴 왜 내밀어!』
『혹시라도 못 보시고 그냥 지나칠까 염려되어... 그래도 털도 없는데 한 번 봐주심이...』
『됐어!』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며 대놓고 면박부터 주었다. 그리고는 길게 말하는 것도 짜증난다며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짝 갈겼다.
내 상판에 파리 붙었습니까. 찰싹 후려치다니오, 아픕니다.
『작전대로 간다. 준비는?』
『제르가디스씨를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실수 없도록 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다 네 책임인줄 알아.』
『하여간 무조건 다 내 탓이야... 치잇.』
『잔소리 말고 빨랑 움직엿!』

때맞춰 또다시 쿵 하고 굉음이 들렸다. 소리만 들린 것이 아니라 땅도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리나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걸 가우리가 양 어깨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어디서 고래가 널뛰기를 하는가 싶어 가우리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래는 무슨. 여긴 바다도 아닌데요, 뭐.』
그걸 어물쩍 넘기며 리나의 어깨에 놓인 가우리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원래 기둥이라는 건 하나가 망가지면 그 나머지도 따라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두 명이서 무거운 책장을 들고 가다 한 사람이 얌체처럼 팔을 빼버리면 남은 한 사람의 무릎은 당연히 꺾이는 법이다. 무게의 발란스가 깨지면 한쪽으로 힘이 집중되고, 그 힘이 집중된 부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피로 파괴가 발생한다. 내가 부순 건 기껏해야 기둥 하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받침 기둥에 연속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이른바 도미노 효과다. 그리하여 모든 기둥이 작살나면 몇 분 뒤에는 고정되지 않은 상판부가 아래층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된다.
나는 자신있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였다.

『야! 제로스!』
『어머머? 그렇게 노려보시면 싫어요.』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간 강아지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리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3분이면 제법 긴 시간입니다, 리나님. 라면이 끓는 시간이라고요. 이 얼마나 깁니까. 언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잖아요. 작업 인부들은 모두 무사히 도망칠 겁니다. 리나님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게 인부들이 부랴부랴 도망치고 나면 그 뒤를 우리가 알아서 접수하면 된다.
두 마리의 렛셔 데몬을 왼편과 오른편에 세우고 제르가디스가 등장한다.
손바닥을 마주 부비며 웃었다. 뒤로 오색의 특수효과 장치를 터뜨리지 않아도 이미 완벽한 연출이다. 까마귀의 깃털을 단 검정의 망토와 가시나무 잎사귀까지 들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솟구치는 먼지구름 속으로 둥실 떠오른 그는 아마도 대단히 사악하고 위험한 정령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으윽!』
정정하겠다. 이건 대마왕의 대왕이다. 뿔 달린 대마왕 아버지다. 가뜩이나 파란 피부의 그가 오늘따라 더욱 새파랗게 보였다. 리나와 가우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치며「사람 살려!」를 외쳤다. 덧붙여「레죠다! 레죠가 빙의했다!」라며 울부짖었다.
『우와악! 저 녀석, 웃으면서 진짜로 화내고 있잖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만 성불하시오, 레죠오~!! 성불하라니까아~!!』
그녀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애원했다.

이럴 적엔 말로만 들었던 적법사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리나의 말로는「웃으면서 지.랄.하.던」자가 바로 레죠였단다. 빙긋 웃으면서 화냈다고 하니 그거 참 특이하다. 그것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게 만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미소였다고 한다.

『괜찮아요, 리나님. 그렇게 겁을 집어먹지 않아도 됩니다. 쉽게 덤벼들진 못할테니까.』
『그치만「외눈뜨기 샤랩톤 행성 거주민에게 푸른 별 지구를 20% 떨이로 넘겨주겠노라 약속한 악마님」께선 턱을 한껏 위로 치켜올리고 있는 걸. 저 살기로 봐선 여차하면 다 죽이고도 남겠다, 야.』
『음... 척 봐선 그렇긴 하군요.』

인정은 하고 봤다. 남들이 보면 꽤나 시건방진 포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목에 채워둔 특수 망토 때문에라도 고개를 전혀 숙일 수 없는 상황이다. 뒷덜미를 빳빳하게 잡아당기도록 고안된 망토엔 특수한 풀이 발려져 있다. 일명 순간 접착제라고 하는 놈이다. 머리카락과 망토깃이 철썩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행여나 머리를 좌우로라도 흔들어댔다간 머리카락이 왕창 빠지게 되어 있다. 대머리가 되고 싶다는 욕구에 활활 불타고 있다면야 시도해봐도 괜찮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눈물이 쏙 우러나오는 통증부터 어떻게 해봐야 한다.
『나는 그가 대머리가 되고 싶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팔과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던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투명한 피아노 선을 몇 가닥으로 꼬아 칭칭 묶어두었다. 그는 부끄럼쟁이다. 남의 눈에 띄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과장된 연출엔 질겁을 한다. 하여 여차하면 도망갈 거라는 걸 눈치 챈 나는 제르가디스를 포박해서 렛셔 데몬들 손에 그 줄을 쥐어주었다. 불손한 기미가 보이면 그 즉시 당겨라 - 재수가 없으면 팔이 쑹덩 빠지겠지만 - 라는 명령도 미리 내려두었다.
하여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천 오백 번 외우려던 리나에게 눈짓했다.
『안심하세요.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렇게 안심시킨 뒤, 두 손을 깍지꼈다.

그럼 우리 모두 다 같이 급조된 마왕님께서 무어라 하는지 진지한 태도로 들어보도록 하십시다.
『당장 풀어줘! 풀어달란 말이다! 이 불량 생리대 같은 자식아!』
순간 모두가「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를 낮추고 은탄환을 쏠 준비를 하던 션 메로우가 번개같이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러니까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거 맞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형?』
『글세다.』
디크는 잘 모르겠다며 떨떠름한 얼굴을 가로저었다.

이런 이런. 다 된 밥에 누런 콧물 떨어진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어 교통 정리에 들어갔다.
『번역하겠습니다. 마왕은「너희들 어리석은 인간에게 멸망을 내리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지 않았어? 분명 불량 콘돔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에? 콘돔이 왜 나옵니까. 불량 생리대였습니다.』
『그럼 역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니네. 뭐가 어리석은 인간에게 멸망을 내린다는 거야!』
『모르시는 말씀! 저쪽 세계에선 멸망을 내린다는 표현을「불량 생리대」라고 합니다.』
『확실해?』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션 메로우 씨.』
강력하게 밀고 나가면서 시치미를 잡아뗐다.
『리나님에게 여쭈어 보시지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리나가 외쳤다.
『사실이다!』

이때다 싶었다. 틈을 봐서 호주머니에서 제법 커다란 솜 덩어리를 꺼내 눈치껏 공간이동 시켰다.
자기 대사도 제대로 읊지 못하는 배우는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차라리 그 입 다물라.
『저어, 그거 어디서 나온 솜?』
『이거요? 800년간 바지를 빨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리나의 안색이 변했다.
제르가디스의 안색도 새파래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구토증을 일으키고 있는 제르가디스보다는 메로우 형제들의 작업 도구가 신경쓰인다. 동생인 션은 벌써부터 자세를 낮추고 공격할 태세다. 대단하신 형님도 동생을 따라 상체를 구부렸다. 그러면서 끄집어 낸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와, 손도끼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별별 인간을 다 봤다만 도끼로 마왕을 잡겠다는 인간은 처음이다.

『너는 도끼로 마왕을 잡냐?!』
심상치 않게 디크를 쳐다보는 날 알아차렸다. 리나가 빠르게 끼어들며 대들었다.
『상식 밖이잖아!』
『왜 이래? 베이비. 이건 튼튼하고 좋은 거라고. 자고로 마물을 죽이려면 목을 자르는게 최고지.』
그러면서 디크는 입을 벌리고 선 리나 앞에서 번득이는 흉기를 자랑했다.

Posted by 미야

2006/11/21 16:04 2006/11/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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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미싱헌팅 6

가끔 가우리를 왜 등장시키나 할 때가 있어요. 미안해, 가우리. 나의 편애 모드는 항상 극을 달려.


호기심이란게 뭔지.
가우리는 죽은 개구리를 관찰하는 어린아이인양 나뭇가지를 주워 몸통에서 분리된 데몬의 머리를 콕콕 건드렸다.
그다지 권장하고픈 일이 아니다. 동물이나 인간과 달리 우리들 마족은 부패하여 공중 분해되는 속도가 거의 음속에 가깝다. 죽은지 1년이나 지난 인간의 몸에 살가죽 찌꺼기가 계속해서 남아있는 것과는 틀려도 무지 틀리다. 회색의 돌처럼 변했다가 화로 안의 재처럼 벌겋게 타들어가 마침내 가루가 되어버린다. 렛셔 데몬 정도라면 3분 안에 끝장난다. 이때 행여라도 그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일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들 마족이 죽어서 남긴 재는 그 자체가 맹독이다. 가만히 냅두면 곱게 갈린 가루마저 10여분 내로 증기처럼 사라지지만 그 전까지는 맹렬한 죽음을 품고 있다.

디크 메로우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호록 타들어가기 시작한 데몬의 사체를 나뭇가지로 뒤척이는 가우리를 얼른 뒤로 잡아끌고는 그러지 말라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신호, 미리 준비해둔 것을 가져오게 시켰다.
동생 션이 부랴부랴 손에 들고 온 것은 어른의 팔뚝 길이의 물병이었다.
보기에는 맹물처럼 보였다. 그치만 고스트 헌터들이 생수병에 평범한 약수물을 뜨고 돌아다닐 리가 없다. 정말로 그런다면 그건 심각한 농담이다. 하여 나는 그 내용물이 성수라는 것에 동전 하나를 걸었고, 션은 코를 틀어막은 채 데몬의 사체 위로 병에 든 내용물을 좍좍 끼얹었다. 순간 치익 하고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역시 성수다.

『다친 곳은?』
디크가 시선을 돌려「애기야, 괜찮아?」라고 물어왔다. 리나의 입이 삐죽 나왔다.
『별로.』
시큰둥히 대꾸한 리나는 비밀스럽게 엉덩이 쪽으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펴서 위 아래로 까딱였다. 그것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걸 알아차린 나는 바짝 긴장했다.
아직 두 마리의 렛셔 데몬이 수건을 걸친 채 대기 중입니다. 내보낼까요.
이쪽이 뭘 생각하는지 훤히 보인다며 그녀의 검지 손가락이 다시 한 번 더 까딱였다.
기다리라고요. 네, 네. 시키는대로 합지요.
어깨에서 힘을 빼고 남의 동네 지붕 위에서 쪼그리고 앉았다.
에이, 망할 놈의 비둘기 똥.

『역시 데몬은 상대하기가 벅차지? 큰일날 뻔했어.』
『쓸데없는 참견이야, 디크 메로우. 내버려 두었으면 우리들끼리 알아서 처치할 수 있었어.』
『그래? 내가 보기엔 허겁지겁 도망치느라 정신 없더구먼. 마법도 신통치 않은 주제에 하여간 입만 살아서... 라이팅에 슬리핑. 그 다음은 뭐였더라. 비키니 언더웨어?』
『됐네요! 넘어가시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생의 은인이십니다!』
『이봐. 그렇게 나오면 인사받는게 아니라 꼭 욕 먹는 거 같잖아.』
『그럼 엎드려 절이라도 할까?』
『으이그! 됐으니까 그만해.』
여자와 싸우는 건 딱 질색이라며 그가 진절머리를 냈다.

바로 그때, 데몬의 사체에 성수 뿌리는 일을 마무리 진 동생이 쭈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다른 한 명은?』
주머니에서 꺼낸 새 은탄환을 입에 물고 빈 장총에 끼워 넣으려던 디크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 맞다! 일행 중에 신관복을 입은 자가 더 있었지.』
『지금은 안 보이네.』
『괴물이 잡아갔나.』
『위험에 빠진 건 아냐?』
『그렇다면 큰일이지!』

리나는 불평을 담아 짐짓 씨부렁거렸다.
『제로스 말이지? 위험하긴, 개뿔. 그는 지금 조사차 다른 곳에 있어.』
혀가 두꺼워 이 정도의 거짓말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즉석에서 얘기를 꾸며대면서도 전혀 막힘이 없다. 나한테는「거짓말은 나쁜 거예요」라며 맨날 혼내더니. 정작 본인이 혀에다 메주를 발라대고 있다.

『조사?』
『렛셔 데몬은 보통 자연발생하는 법이 없어. 밭에 씨앗이 떨어져 마침내 완두콩이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 이런게 아니거든. 그보다는 엉뚱한 참나무 가지에 완두콩이 매달리도록 누군가 수작을 부렸습니다 - 에 가깝지.』
『오호라, 그 말은 즉, 렛셔 데몬을 소환한게 누구인지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
『응.』

거기까지 말한 리나는 허리를 굽혀 냉장고에서 꺼내 상온에 2시간동안 놓아둔 아이스크림처럼 변한 가우리의 철검을 집어들었다.
표정이 영 살벌하다.
『빌어먹을 XXX.』
그녀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고철로 변한 칼을 내동댕이쳤다.

『하여간 짐작가는게 있어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사실 짐작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깝지. 이웃 마을에선 간발의 차이로 흔적을 놓쳤지만 우린 그 자가 이 마을로 몰래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어. 그러니까... 혹시 두 사람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쪽 분야에 전문가니까. 파란 피부에 뾰족한 귀. 사요정 믹스, 어둠의 마검사... 어때?』

가우리의 협조를 받아 바닥에 흘린 장사 도구를 챙기던 메로우 가의 두 형제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움찔해서 움직임을 멈췄다.
동작으로만 보자면「물론 잘 알고 있고 말고」다.
하지만 입으로 말하기는 곤란했던 것 같다. 동생 션은 형의 눈치만 살살 살폈다. 아울러 그 동생의「어쩌지?」라는 시선을 깨끗이 무시해버린 형님께선 으음, 하는 것으로 얘기를 간단히 얼버무렸다.
캥기는게 있어 마음이 불편한 동생 션이 가볍게 기침을 터뜨렸다. 그러든 말든 디크 메로우의 표정은 감쪽 같았다.
『미안하게 되었군. 아는게 없어.』

지붕 위에서 턱받침을 하고 머멍~ 하니 앉아있던 내가 벌떡 일어설만한 발언이었다.
뭐가 아는게 없냐! 키메라씨의 옆구리로 은 탄환을 수십 발 날렸으면서 모르긴 뭘 몰라! 신나게 두둘겨 팰 적은 언제고, 지금에 와선 고개를 싹 돌려? 나보다 더 악질이네.
『흐응. 몰라?』
『아쉽게도.』
여기서 리나 인버스의 진면목이 발휘되었다.
「고짓말쟁이!」하고 한쪽 눈썹을 매섭게 치켜올릴 법도 하건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무섭다, 인간. 오십보 백보의 완숙한 거짓말쟁이들이다.

대신 그녀는 관심을 돌려 그들의 사용한 마기(摩器), 렛셔 데몬의 모가지를 몸통에서 파내어버린, 은색의 파이프 같이 생긴 도구로 눈길을 주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리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주워들고 손바닥으로 툭툭 때렸다가 후후 바람을 불기도 했다.
나 역시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다. 표면이 날카롭지 않아 무기로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속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텅 비어 있다. 구멍을 여럿 뚫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는 피리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구멍이 뚫리지 않은 지금은 막대기로밖엔 안 보인다.
파이프의 한쪽으로는 쇠붙이 덮개 같은 것이 달렸고, 열렸다 닫았다 할 수 있었다. 닫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덮개 장치는 헐거워 뭐 하러 이런 걸 달아놓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탁탁 치며 건드리자 목각 인형의 턱처럼 힘 없이 늘어졌다.
이상한 건 그 외에도 많았다. 텅 비어있는 파이프 안쪽엔 용도 불명의 둥그런 고리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 고리가 붙은 위치는 제법 깊어서 손가락을 밀어넣어도 닿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누르면 뭐가 튕겨나오는 건 아닐까. 리나는 내심 기대에 가득차 원숭이가 나무 속 벌레 파먹듯 손가락을 넣었다가, 눈을 가져가 빼꼼 들여다 보다가, 다시금 손가락으로 살살 팠다.
헤에, 반짝이는 파우더 약간이 손에 묻었다.
화장품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리나는 용감무쌍하게도 그 가루를 코로 가져가 킁킁 하고 냄새부터 맡았다.

그걸 본 메로우 형제들은 기겁을 하고 어깨를 곤두세웠다.
『워워~! 용감한 거야, 아님 무식한 거야. 그만둬! 얼굴 절반을 날려먹고 싶냐?!』
『그치만 향긋한 냄새가 나. 위험할 것 같지 않은 걸.』
『로즈메더이 꽃가루 일부가 들어가서 그래. 하지만 그 나머진 성분은 결코 알고 싶지 않을 거다.』
션이 안절부절해 하며 리나의 손아귀에서 파이프를 빼앗으려 했다.
그래도 리나 인버스가 누구냐. 달란다고 줄 여자가 아니다. 일단 손에 들어왔으니 임자가 바뀌었다.
이리 달라고 내밀은 손을 싹 무시하고 이번엔 파이프를 뒤집어 손바닥에 대고 탁탁 털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화장품 냄새가 나는 정체불명의 향긋한 가루는 더 이상 떨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리나는 개구쟁이처럼 파이프를 다시 거꾸로 뒤집어 마구 흔들어댔다.
『신기해. 이런 걸 가지고 렛셔 데몬을 잡다니.』
『위험하다니까!』
『에이. 그렇게 정색하지 말라고. 괜찮아, 괜찮아~』
바에서 칵테일을 흔드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재미난다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뺨이 굳었다.
흔드는 동작을 멈췄다.
경멸과 두려움이 호흡에 섞여 체내로부터 빠져나왔다.
입술이 한 일자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호오. 그녀는 마침내 상상한 것이다.
쥐고 있는 물건이 렛셔 데몬이 아닌, 제르가디스의 목을 몸통에서 깨끗하게 분리시키는 장면을...

『왜그래, 갑자기. 무슨 문제라도...』
『아니.』
션에게 파이프를 건네주며 리나는 다시금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또 거짓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Posted by 미야

2006/11/15 14:12 2006/11/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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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미싱헌팅 5

마을에서 가장 높은 위치는 보통 성당의 종루이거나, 마을 제일 갑부의 거실, 내지는 마을회관의 지붕인 경우가 다수이다.
회장님 거실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번의 경우는 다행히 마을회관 옥탑이었다.
『어여차.』
고소공포증이 없는 입장에서 밧줄 하나 없이 지붕 꼭대기로 기어올라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내 경우는 실족하여 아래로 굴러떨어진다고 해도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도 전혀 없다. 머리통에 구멍이 뚫리겠어, 대퇴골이 절단나길 하겠어. 고양이처럼 사뿐 내려앉아 어디서 낙엽이 굴러갔나 보다 하고 딴청만 피우면 된다.
다만 짜증나는 건 걸레로 닦아낸게 100년은 지난 듯한 더러운 기왓장과, 더하기 강풍이다. 검정색 신관 바지를 기어코 쥐색으로 만들고야 마는 비둘기의 배설물은 그렇다치고 높은 곳으로 부는 바람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치고, 망토 자락은 활짝 편 배트맨의 날개가 되어버린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때로는 커다란 우산을 든 메리 포핀스처럼 몸이 훌쩍 위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데도 높은 곳이 좋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얼간이지.』
높은 곳이 뭐가 좋냐. 눈을 가늘게 뜨고 쳇 소리를 냈다.
오늘의 날씨는「때때로 돌풍이 불 것으로 예상되니 각별히 주의할 것」. 재수 옴 붙었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귤이나 까먹고 뒹굴거렸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정말은 그따위가 소원일 리 없다. 그래도 일종의 입버릇이 되어버린 푸념을 읊어대며 마을회관 옥탑 꼭대기에서 포지션을 잡았다.
자, 그럼 어디... 손가락 마디를 뚝뚝 꺾으면서 크게 호흡해봤다.

내가 소환한 렛셔 데몬은 모두 셋.
그러나 두 마리는 현재 본부(?)에서 머리에 수건 한 장 걸친 채 대기 중이고 본 무대로 올라온 건 한 마리다. 필요 이상으로 소동이 커지는 건 싫다고 리나가 미리 얘기해둔 것도 있겠다, 나 역시 그건 반대다. 하여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카드 전부를 꺼내어놓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일단은 분위기 파악부터.
인적이 드문 장소에 소환의 마법진을 떠오르게 한 뒤에 딱 소리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 오라와 함께 마법진 속에서 척 보기에도 무섭게 생긴 털복숭이 데몬이 떠올랐다. 빠직거리며 사방으로 음전기가 방전되었다. 데몬이 두 팔을 벌리며 어금니를 드러냈다.

마계로부터 온 터미네이터여! 출동, 렛셔 데몬!
『셔터가 내려진 꽃집 앞에서 올 누드로 시위하라!』
말해놓고 보니 영 이상하군.
바람에 날려 눈가를 콕콕 찔러대고 있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가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 핀 하나를 가지고 올 걸 그랬다. 아니면 헤어 밴드라도...
순간 담벼락이 무너지는 쾅 소리가 나면서 비둘기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최초의 난동질은 사람이 없는 가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점포 세 놓습니다」라고 푯말이 붙어있거나「금일 휴업」안내가 붙은 장소여야 했다. 나로선 상당히 재미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전에 리나는 반드시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두 명 정도 사상자가 나는게 모양이 좋지 않겠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더니 그녀는 펄쩍 뛰며「돌았냐!」라고 했다.
그래. 돌았다고 하지, 뭐.

『돌아라.』
내 지시에 따라 주먹을 불끈 쥔 렛셔 데몬이 빙글빙글 돌며 벽을 후려쳤다. 파편이 고속으로 튕겨나갔다. 세 번 돌고, 네 번 돌고, 다섯 번 돌고... 배경 음악은 프린세스 츄츄다.
『빙빙 도는 것도 나쁘진 않아. 끝내주잖아?』
돌 무더기 박살나는 굉음에 놀라 달려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광경을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지켜보며 만족감에 젖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도는 것이다. 가게 유리창을 박살내고, 간판을 갈가리 찢고, 진열된 상품을 후리고, 양념으로 쿠오오~ 하고 크게 울어 사람들의 귀를 터지게 만드는 것이다. 보너스로 철제 금고를 들어 땅에다 패대기 쳐라. 여기서 금고와 연결된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리면 효과는 더욱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드디어 나타났군! 이 괴물!』
3류 연극 무대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대사를 읊으며 자칭 정의의 용사들이 때 맞추어 등장했다.
『얌전히 오라를 받아라!』
암행어사 출두인가? 급조한 티가 팍팍 나서 조금 웃겼다.
『너의 악행을 이 정의의 용사가 용서하지 않겠다!』
에이. 그건 아멜리아 공주의 18번이잖아요.

어쨌거나 그 금발의 검사 옆으로는「그 금고, 부탁이니까 나에게 던져줘~♡」라는 마법사가 찰싹 붙어 있었다.
던지면 뭐요. 그 무거운 걸 등에다 지고 달아날 것도 아니잖습니까.
시큰둥하게 웃으며 렛셔 데몬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멋지게 날려봐라.

『카아악~!!』
렛셔 데몬이 아구를 벌리고 지옥의 불길을 토해 땅을 녹였다. 제법 가까이 접근했던 가우리는 깜짝 놀라 한쪽 다리를 들고 겅중 뛰었다. 그리고는 어디엔가 있을 나를 향해 항의했다.
『이봐! 세게 나오잖아!』
그럼 약하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설렁설렁 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게 들통날 수 있다. 하여 나는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대응하기로 하고 마을회관 지붕 위에서 저주의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순간 렛셔 데몬의 눈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털을 부풀렸다. 감춰진 손톱을 꺼내 칼처럼 휘두르면서 간단하게 은행나무 가로수를 두짝냈다.
모쪼록 잘 피하십시오, 두 분. 전 사정 봐주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아요.

『에그머니나!』
옆으로 굴러오는 통나무를 피해 재주넘기를 해낸 리나는 가쁜 숨을 참아가며 담벼락 쪽으로 잠시 몸을 기댔다. 그걸 놓치지 않고 렛셔 데몬이 긴 손톱을 가로로 휘둘렀다. 간발의 차이로 리나는 목이 잘릴 뻔한 위기를 넘긴 그녀는 손으로 마력을 모은 뒤 허겁지겁 모듬뛰기 했다.
『라이팅!』
화이어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녀가 대단히 가여워지려 했다.
『슬리핑!』
마음 같아선 실제로 던지고 싶었던 건 뒷면으로 강철판을 덧댄 전용「응징의 슬리퍼」가 아니었을까.
『비키니 언더웨어!』
아주 발악이다.

이렇게 마나님이 생 쇼를 벌이는 동안 가우리는 검으로 무장한 채 뒤편에서 분위기만 살폈다. 공격에 가담하지 말라고 미리 언질을 단단히 받은지라 거리를 가까이 좁힐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렛셔 데몬이 그를 있어도 없는 척하는「깍두기」취급을 할 거라고 기대하면 곤란하다. 데몬은 입을 벌렸고 화이어볼에 버금가는 어둠의 에너지를 들입다 토해냈다.

『꺄아아!』
가우리만 놀란게 아니다. 리나도 많이 놀랐던 것 같다.「정말로 우릴 죽이려는 거냐!」라며 악을 쓰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화염은 그녀의 머리를 그슬렸고, 가우리의 싸구려 철검을 2/3 가량 녹였다.
다섯 번 정도 구른 뒤, 리나는 벌떡 일어나 종주먹을 쥐었다.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거냐?!』
모릅니다. 이왕 하려면 철저히 합니다, 이 제로스는.
『이거 미치겠네!』
마구 날뛰라고 한 건 리나님이 먼저잖수. 분부대로 날뛰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 같아선 데모나 크리스탈이라도 날리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
저 뒤에 생략된 의미불명의 외침이「메로우 형제들은 언제나 도착하는 거야~」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으, 썅~!!』
바나나 껍질을 밟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주룩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너진 벽돌이 탄환처럼 날아들었다.
앗! 조금은 위기상황?

『션! 엄호해!』
『알았어, 형!』
렛셔 데몬이 집어던진 벽돌에 맞아 리나의 머리통이 깨지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 희뿌연 먼지 구름 속에서 두 개의 실루엣이 마침내 나타났다.
덩치가 큰 쪽이 장총을 들고 들입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하는 화약 터지는 굉음에 맞추어 디크가 리나의 팔을 세게 끌어당겼다.

『엎드려! 베이비!』
『지금 누구더러 베이비라는 거야! 콜록...』
『그럼 그냥 팔 놓는다.』
『놓지마! 놓지 말라고!』
연약한 척 한게 아니라 정말로 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잘 갈아댄 도끼날 같은 렛셔 데몬의 손톱이 코앞에서 붕붕 소리를 내고 있음이다. 균형을 잃고 상체를 비틀거리는 순간, 썩독~ 하고 앞머리가 한 웅큼이나 잘려나갔다. 동시에 리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아차... 높은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이건 실수다. 내일 아침이면 날 죽여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겠군.

『뒤로 물러서!』
리나를 뒤로 밀치고 디크가 장총을 꺼내들었다.
『거치적거리며 돌아다니며 방해하지 말고.』
헤에~ 저 친구, 쌓인게 있었군. 리나에게 싫은 소리 들었던 걸 고스란히 되돌려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총알을 장전했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다시금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장전과 동시에 발포」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제르가디스의 설명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 허구헌날 밥 먹고 총 쏘는 훈련만 해도 장전까지 10초가 넘어간댄다. 그런데 저 친구는 5초를 약간 넘기고 있다. 자는 시간에도 총 쏘는 연습을 했나 보다. 한 방 갈겼다 싶었는데 눈을 번득거리며 벌써 철컥 소리를 내고 있다.

『칫, 은탄환이 별 효과가 없군. 션! 결계부터 만들어라!』
『이미 하고 있어!』
『그럼 서둘러! 녀석이 불을 대포처럼 토하려 하고 있다!』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도구만으로 데몬을 진압하는 걸 구경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리나는 멀직히 물러서서「오늘 괜찮은 거 본다」식으로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렛셔 데몬을 조정하는 일도 잠시 잊고 그들의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동생 션이 주머니에서 눈부시게 하얀 가루를 그집어냈다. 밀가루는 아니고... 폭약 가루의 색은 검정이니까 화약은 아니다. 소금? 그걸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이쪽 저쪽 몇 군데 분산하여 뿌렸다.
리나나 가우리의 위치에선 저게 뭘 뜻하는 것인지 잘 안 보일 것이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내 입장에선 그게 어떤 것이고 어떤 모양인지가 훤히 보였다.
데몬을 둘러싼 다섯 개의 꼭지점... 펜타클럼 리클러다.
호오, 이거 깜찍하다. 감탄하여 턱을 어루만졌다.
『생각을 잘 하는데. 완전 봉쇄는 불가능해도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 수는 있지.』
탕탕, 하고 은탄환이 다시 날아갔다. 동생이 결계를 만드는 동안 형은 렛셔 데몬이 동생에게 덤벼들지 못하도록 산발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뭐 하냐, 동생! 계속 꾸물거릴 거냐!』
『이제 됐어!』
『오냐!』
기다리던 신호가 떨어지자 디크가 부싯돌을 꺼냈다.
팟- 하고 작은 불똥이 튀었다.
순간 다섯 개의 하얀 가루 더미에도 불이 붙었다.

렛셔 데몬이 주춤거리는 걸 확인하자 디크는 품속에서 40cm 가량의 은색의 길죽한 파이프 같은 걸 꺼내들었다. 순식간에 달음박질, 그걸 데몬의 턱 아래서부터 위 방향으로 힘껏 찔러 올렸다.
『어둠은 어둠으로, 먼지는 먼지로.』
저주의 주문을 읊조리며 손을 놓았다.
퍼엉 하고 눈부신 빛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렛셔 데몬의 머리가 몸통에서부터 깨끗하게 분리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6/11/13 14:35 2006/11/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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