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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3

※ 거칠거칠한 마음의 황야를 달리는,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회개, 구원, 심판》3부작의 3편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2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먼젓번 글을 읽지 않으면 흐름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


듬직한 체구와는 달리 움직일 때 그다지 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다. 제시카는 그런 샘에게「알라스카 곰이 고양이 흉내를 내며 걷는다」고 놀려대곤 했다. 무거운 전공 도서를 한아름이나 안고 나타났음에도 인기척이 전혀 안 났다며 책을 정리하던 대학 도서관 사서가 자지러지게 놀란 적도 있다. G번 서가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괴담도 있었겠다, 사서는 두꺼운 안경을 떨어뜨리고 반복하여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멀쩡한 사람을 귀신 취급했다.
아마도 그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문을 열고 닫는 동작에도 상대방은 TV에서 머리를 들지 않았다.

『나 왔어. 저어... 형?』
방송으로 지구 온난화네, 남극의 빙산이 죄다 녹고 있네 어쩌고 하면서 심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살짝 숙인 딘은 그 앞에서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다. 얼핏 보면 과연 세계는 끝장났다고 탄식에 빠진 염세주의자처럼 보인다. 절대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형이 엘리뇨와 이상 기후를 염려하고 있다? 그래선 사담 후세인이 부시 대통령과 사돈을 맺었다는 뉴스가 되어버린다. 돌아서서 체인을 단단히 걸어 잠구면서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머리가 아픈 거야?』
최근들어 그의 형은 가벼운 두통을 앓고 있다. 정확하게는 이마를 꿰맨 실밥을 뽑고 난 다음부터 그런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는데, 본인 말로는 머리 한 구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맙소사, 샘. 넌 이게 상상이 가니. 이 형이 여자랑 못 해본지가 벌써 석 달이나 되었다고」
욕구불만이 두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다. 기혼자의 몇 프로가 첫사랑과 결혼했는지를 거금을 들여 조사하는게 오늘날의 미국이라지만, 과연 그런 웃기는 주제로 연구를 한 학자들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샘이 아는 내용이라는 건 딘이 만사에 짜증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그의 형은 대단히 지쳐 있었다.
『딘? 대답 좀 해봐. 괜찮아?』
그러다 샘은 그릉거리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깨달았다. 그의 형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받친 자세 그대로 얉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자위가 너구리처럼 먹색이다.
바스락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해가며 품에 안고 있던 쇼핑 봉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저녁 8시 40분.
바닥을 뒹굴고 있는 벗겨진 햄버거 포장지로 눈을 돌렸다. 맛 없다고 투덜거렸음에도 일단은 먹어주었으니 안심이다. 원래 사람은 심각하게 몸이 아프면 끼니를 거르기 마련이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먹는 걸 등한시하지 않는 이상 큰 탈은 나지 않았다고 보아도 괜찮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포장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샘은 시끄러운 TV 소리를 줄이기 위해 리모컨을 들었다. 이제 그들의 수다꺼리는 카트리나 대참사로 옮겨갔다.「대기 불안정」,「테러와의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온난화와의 전쟁이 문제라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주장...」등등의 내용이 얼핏 귀를 자극했다. 거대한 파도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삼켜버리는 영화속 장면이 참고 자료로 등장했다.
손깍지를 끼고 패널에 앉은 사람들 표정이 40일 금식을 눈앞에 둔 성직자인양 다들 심각했다.
그래도 샘이 보기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별 생각 없이 ▼ 모양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갔다.

『엇, 뭐야. 누구야!』
막대 눈금 하나 크기로 볼륨을 줄였을 뿐인데 그의 형이 소파에서 펄쩍 뛰었다.
『미안. 깼어? 자는 걸 깨우고 싶지 않아 주의했는데.』
『놀랐잖아, 임마. 도둑처럼 살금거리고. 끄응... 몸이 찌푸드한게 기분 나쁘군. 언제 왔어?』
『방금 전에.』
눈을 부비면서 잠에서 깨어난 딘은 어딘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동생을 쏘아보았다.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아서 그런지 눈꺼풀이 평소보다 다섯 배 가량 두꺼웠다.
『늦은 저녁에 쏘다니는 건 나쁜 어린이나 하는 거예요. 그나저나 술은 안 사왔냐, 새미.』
『머리가 아프다면서 술 타령이야? 얼굴은 그만 구기고 이거나 받아. 타이레놀 사왔어.』
진통제 포장지가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딘은 능숙하게 동생이 던진 걸 받아쥐면서 혀를 찼다.
『쳇! 진통제는 사양할란다. 계집애처럼 약이나 먹을 바엔 그냥 앓다 죽지.』
『두통에 여자 남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
『물론 두통엔 남자 여자가 없지. 하지만 모름지기 남자라면 이런 못 생긴 알약을 물과 함께 삼키는 대신,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서 머리 아픈 걸 훌훌 털어내야 하는 법이야.』
샘은 가만히 입술 끝자락을 끌어올렸다.
『맞는 말이야. 형이 옳아. 다들 그렇게 하지. 그리고 40살이 되자마자 출렁거리는 똥배 및 48사이즈의 허리 둘레를 걱정하게 되고. 내 짐작이 맞다면 멀잖아 형도 그렇게 될 거야.』
웃으면서 던지는 동생의 핀잔에 딘은 샛노래진 얼굴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보니 아랫배가 조금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차라리 욕을 해요!』
그래서 딘은 차가운 맥주 생각을 접고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여 진통제를 먹기로 했다.

『겨우 이깟 알약 사러 동네 한 바퀴를 돌았던 건 아닐테고. 뭘 사러 밖에 나갔던 거니?』
이 틈새로 약을 끼운 채 궁금해하는 딘의 질문에 샘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겉옷을 벗었다.
『스케치북, 지우개, 미술용 연필.』
『엑? 헌터는 그만두고 미스터 피카소가 되기로 마음을 돌렸냐?』
『나는 헌터 일은 그만두지 않을 거야. 피카소가 되는 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라스베가스에서의 의뢰에 실패한 이후, 그들 형제는 오쿠림바의 주문을 코앞에서 채어간 - 딘의 표현대로라면 그렇다 - 소녀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시작부터 대략 난감이다. 샘은 당시 유령에게 당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탓에 문제의 여자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적엔 돌연 장소가 바뀌어 낯선 모텔방 킹 사이즈 베드 위였다. 체스터는 어디로 갔는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옆에선 떨떠름한 표정을 한 형이 아버지의 일기장을 넘겨가며「잠자는 야수는 도대체 어떻게 깨워야 하는 건가요, 아버지!」라며 화를 내고 있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잠자는 야수씨는 형의 몸뚱이를 꽉 붙잡고 늘어져 무려 사흘 밤낮을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꼼짝만 못 하게 했게. 귓볼 만져줘~ 머리카락 만져줘~ 이러면서 날 무지 짜증나게 만들었지. 담요에 둘둘 말아 고속도로에 내던지고 싶었다니까.』
보이스카웃 선서 동작까지 해가며 형이 주장했다. 샘의 얼굴이 곧바로 벌개졌다.
『거짓말! 그런 쪽 팔리는 부탁은 제시카에게도 하지 않았다고!』
『그 정도가 쪽 팔리는 부탁이라는 거냐. 이거 눈물 나오게 한심해서... 아이고, 새미. 여자에게 부탁하려면「거길 입으로 물고, 빨고, 핥아줘」정도는 되어야 할 거 아냐. 수준 낮아서 이 형은 말 하기가 싫어진다.』
『그, 그런 걸 어떻게 부탁을 해!』
『왜 못해? 여자 친구인데 뭐가 어때서. 반문하는 네가 이상하다.』
『부끄럽지도 않아?! 형은?!』
『전혀.』
그림물감을 곱게 펴서 피부에 바르기라도 한 것처럼 파랗게 변한 동생에게 윙크를 해보이며 딘은 팔꿈치를 괴였다.
순진한 동생을 골려먹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다.
단, 그 후환이 대단히 두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면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아, 아무튼 난 기억에 없거든? 반면 딘은 그 여자의 얼굴을 직접 봤고, 말도 나눴고, 몸싸움도 했잖아. 비록 형편 없이 깨지긴 했지만... 그것도 열 네 살짜리에게. 내 말이 맞지?』
『뭐... 그렇지.』
봐라, 곧바로 치고 나오는 것을.
좋은 시절은 다 갔음을 깨달은 딘은 슬픈 표정을 짓고 앉은 자세를 바꿨다.
누가 뭐라고 했는감요. 전 열 네 살짜리 계집애에게 뒷통수를 맞은 형편 없는 녀석이랍니다.
이어지는 건 언제나의 취조실 형사 놀이다.

샘은 지난 보름 내내 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복해서 질문하곤 했다.
그 아이의 생김새가 어떻더냐, 눈에 띄는 특징이 뭐였느냐, 혹시라도 자기 이름이 무어라 하진 않았느냐, 머리카락 색은 뭐냐, 눈동자 색은 어떠냐, 입고 있던 옷은 어땠느냐, 신발은 뭘 신고 있었느냐.
샘은 미처 모르는 듯했다. 이것이야말로 딘이 앓고 있는 두통의 원인이다. 그는 살짝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묻지 마! 더 이상은 생각이 안 나, 안 난다고! 정말이라니까!』
같은 질문이 오늘도 어김 없이 반복될 거라는 예감에 딘은 몸서리쳤다. 아울러 외쳤다.
『내가 범인입니다, 형사 나으리! 내가 죽였거든요? 내가 범인 맞아요!』
『딘... 추해.』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입장을 바꿔봐. 너라도 허위 자백을 하고 말거다!』
그런다고 해봐야 샘이 은근슬쩍 봐줄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게 낫다.
몰랐던 사실인데 동생은 은근히 새디스트 기질이 있다. 이쪽에서 괴로워하면 오히려 더 신나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법조계로 나갔어도 아마 크게 성공했을 거다. 싸늘한 표정으로「증인은 지난 목요일 오후 4시엔 직장 회의실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회사 CCTV로 녹화된 장면을 보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란 말입니다!」라며 피의자를 쥐 잡듯 추긍할 거다. 그리곤 스미스소니언 협회에서 좋아라 수집해갈, 땅속에서 파낸 100만년 전의 부싯돌 창끝처럼 변한 사람을 보며 좋아라 할 것이다.
딘은 욱씬거리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자신이 그 부싯돌 창끝처럼 변한 사람이라는 점을 슬퍼했다. 진통제를 한꺼번에 열 다섯 알을 삼키면 괜찮아질까. 약을 먹었음에도 두통이 한층 더 심해졌다.

『그치만 애시당초 열 네 살짜리 헌터라는 점부터 납득이 가질 않잖아.』
『본인이 거짓말을 한 거라면 모를까, 이 형은 들었던 그대로를 너에게 말해준 거란다.』
『그것도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며.』
『아아, 그게 총 쥐는 실력을 봐선 단순히 허풍은 아닌 것 같았어.』
총 잡는 것부터 시작해 그 기백까지. 공포탄을 실탄이라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산전수전 다 겪은 딘은 물론이고 오죽하면 유령도 총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라졌을까. 분명히 진작에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아이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여드름을 걱정하며 손거울을 들여다볼 평범한 여학생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에 무슨 옷을 입고 가면 좋을까를 궁리하며 잡지책을 넘기는 10대라고 하기엔 표정이 영 아니었다.

샘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맙소사. 그런 아이가 오쿠림바의 주문을 가져가게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거야?!』
『미안해, 샘. 기절한 동생을 돌보느라고 내가 좀 바빴거든. 그래서 속옷 사이즈랑 핸드폰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어.』
하여간 망할 주둥이다.
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못하고 제발 그만하라며 손바닥을 휘저었다.

딘은 비굴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싹싹 빌었다.
『그러지 말고 애쉬에게 다시 연락이 오길 기다리자. 형사 놀이는 그만하고. 응?』
『그럴 수 없다는 건 딘도 잘 알잖아. 전화로 자기가 뭘 찾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형에게 말했다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애쉬에게 사전에 알려준 정보 자체가 너무 부실하다고.「열 네 살의, 오른쪽 손가락이 모두 여섯 개인 여자 아이를 찾아줘. 아, 참고가 될지 몰라 알려주는건데 성격이 거지 발싸개 같은 아이야」하는데 나라도 질겁하겠다. 그래서 말인데, 딘...』
이쯤해서 샘은 어렵사리 구해가지고 온 쇼핑 물품을 주섬주섬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에 그 아이의 얼굴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 전문가적인 몽타쥬까진 아니더라도「대략적으로 이런 얼굴입니다」라고 하면 애쉬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손을 움직이다보면 미처 몰랐던 부분이 새롭게 기억날지도 모르잖아?』

제발 참아주세요.
딘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현실 회피 모드로 들어갔다.
미술은 젬병이다. 사과라고 나름대로 열심히 그렸놨더니 망할 놈의 담당 교사는《빨간 동그라미에 점 하나 찍은 거로는 점수를 줄 수 없어요》라고 정색했다. 답지 않게 빈둥거리지 않고 애써서 그린 그림이었는데 졸지에 5초만에 뚝딱 그려낸 낙서 취급을 당했다. 그 이후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딘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크레용을 잡지 않았다.
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반항했다.
『싫어. 나 안 그려. 몽둥이로 때려 죽인다고 해도 안 그릴 거야.』
『그러지말고 이리 와서 앉아. 착하지?』
『싫다고 했잖아, 샘! 그러니까 분홍 바탕에 피카츄가 그려진 어린애용 스케치북은 당장 내다 버렷!』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딘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눈이 동그랗게 변한 건 구석에서 신나게 연필을 깎고 있던 샘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사가지고 온 스케치북은 테이블에 거꾸로 뒤집어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그걸 앞면이 똑바로 보이게끔 원래대로 돌려놓으면서 - 피카츄가 맞았다 - 샘은 어쩐지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형을 보았다. 이건 꼭 마술사가 관객이 무작위로 고른 카드의 숫자가 무엇인지를 초능력으로 때려맞췄다는 식이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직 보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이 그림이 피카츄인지.』
『젠장! 나도 몰라... 그냥 알았어.』
머리가 못 견디게 아파왔다. 딘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진득한 신음 소리를 토했다.

Posted by 미야

2007/02/12 00:08 2007/02/1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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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2007/02/13 03:39 # M/D Reply Permalink

    역시 샘과 딘은 함께 있어야 제대로죠~!

    ㅋㅋ 툭닥거리는 형제는 역시 마음의 오아시스-♡!! 사탄이 말한 와이프의 정체가 슬슬 궁금해져 옵니다...! 다음편 무진 기대하고 있답니다

  2. 미야 2007/02/13 08:51 # M/D Reply Permalink

    저어... 불현듯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사시는 곳이 국내가 아닌 건가요, 아님 방학동안 새벽을 불사르시는 건가요? 새벽 3시 40분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눈에 들어와 조금 놀랐습니다. ^^ (아울러 늘 감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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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2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번 편에선 샘이 나오지 않으니까 글 쓰는 것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역시 두 사람은 같이 있어줘야만 해요. ※


생전 처음 만났음에도 10년지기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길거리 술집은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친 나그네에겐 일종의 오아시스다. 풍요로운 야자나무가 있고, 유목민의 노랫가락이 있고, 발효된 낙타의 젖이 있으며, 흥에 겨운 웃음소리가 있으니 진실로 낙원이다.
그래도 딘은 호주머니로 손을 넣은 채 같이 목을 축이자는 사내의 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죠.』
『에이, 10분도 못 기다려주는 야박한 애인이라면 그냥 차버리라고. 다들 엉터리 같은 축구 본다고 호들갑이라 외로워 죽겠어. 잠시만 와서 우리랑 말 상대를 해줘요.』
『애인에게 전화하려는게 아녜요.』
『어, 그럼 마누라야? 아직 젊어 보이는 사람이 일찍도 장가들었군. 실례했수다. 그럼 당장 전화해야지. 모름지기 남자는 부인에겐 잘 해야 하거든. 동전은 있소? 뭐 하면 내가 빌려줄게요.』
딘은 멎적게 뺨을 긁었다. 누가 마누라냐. 동생이 알았다간 거품을 물고 기절하겠다.

『뭐? 마누라가 아니야?』
딘에게 줄 동전을 찾겠노라 주섬주섬 옷을 뒤지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가뜩이나 쌍커풀 짙은 눈이 앞으로 쏟아질 지경이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외모로 보자면 지중해쪽 출신이다. 체격이나 인상이 르네상스 시대의 매끈한 대리석 조각상을 많이 닮았다. 살짝 구부러진 매부리코가 매력적이다. 그런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한심한 사람이군! 그럼 코가 꿰였다며 전화통만 쳐다보고 있을 까닭이 없잖소. 자, 이리 와서 편안하게 앉아요. 내가 맥주 한 병 쏠테니. 이보쇼, 주인장? 이 친구에게 나랑 똑같은 밀러라이트 주시게. 그리고 형씨는 얼굴 좀 펴요.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으려 한다고 오해하게 생겼잖소. 길게는 안 잡을테니 이리 와서 같이 마셔요. 딱 10분만! 응? 딱 10분만.』
그가 눈웃음을 치며「위하여! 주정뱅이들의 신 바커스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는 일부러 옆 의자의 쿠션을 손바닥으로 치며 어서 이곳에 앉으라 채근했다.
『빨리, 빨리!』
성격도 급하다. 못 말릴 사람이었다. 어린애처럼 박수까지 쳐가며 종용하는데 분위기로 보아 이젠 뒤로 뺄 수도 없게 되었다.

저편에서 한 테이블을 점령하고 앉은 축구광들의 웃음 섞인 함성 소리가 다시금 터져나왔다. 누가 골을 넣기라도 했나 보다. 구석에 앉은 노인이 셔츠를 벗어던지며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게 꼭 코미디 드라마의 가식적인 웃음 효과처럼 보여 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말릴 사람들이다.
그 난리통에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매력적인 여자가 재빠른 몸동작으로 성에가 낀 차가운 맥주를 가지고 달려나왔다. 시녀는 은쟁반에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담아 살로메에게 바쳤다.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 있소. 분봉왕 헤롯이 기뻐하며 외쳤다. 군중은 새롭게 환호했다.

상호가 찍힌 병 뚜껑만 봤음에도 입안으로 쌉쌀한 술 맛이 돌았겠다.., 머뭇거리던 딘은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공짜 맥주의 유혹에 굴복했다.「딱 10분만」이라는 말을 믿기로 하고 사내가 손바닥으로 가리킨 라운지 의자로 가서 살짝 엉덩이를 내렸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앓지도 않은 치질이 걱정되는게 뒷맛이 영 나빴다. 뭐랄까, 해고 예고 통지서를 받으러 사장님 앞에 앉은 평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다.
손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이제 9시 18분이 되었다.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 톱니바퀴가 살짝 어긋났다는 불길한 확신.

『어디서 오셨는가?』
뚜껑을 돌려 따면서 딘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했다.
『뉴올리언즈.』
『진짜로? 뉴올리언즈쪽 말투가 아닌데요.』
『거기서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거든요. 직업상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해요.』
『호오, 그거 억세게 부럽수다. 여행을 자주 해야 하는 그 환상의 직업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형씨.』
『스포츠용품을 통신판매 합니다.』
검정 재킷의 남자가 자신의 콧망울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한쪽 눈썹을 살짝 비틀었다.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좀 그럴 듯한 말로 둘러대슈.』
딘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납니까. 그럼 솔직히 말하죠. 성인용품을 팔아요, 저는.』
훤칠하니 생긴 남자가 푸웃,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가 아프다며 몸을 구부리는데 그게 꼭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가 보인 과장된 헐리우드식 액션 같아서 보는 입장에선 기분이 언짢았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배꼽을 쥐는 건 심했다.
『와하하~! 그건 좀 낫다. 이건 진짜요. 아까보단 나아요. 어차피 둘 다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점수를 주자면 전자는 25점, 후자는 71점. 나 말이지, 형씨가 쬐~끔 좋아졌소.』
이어「코가 비뚫어지게 마셔보자!」구호가 요란스럽게 합창되었다.

딘은 인상을 찡그리며 공짜 맥주를 천천히 기울였다. 어쩐지 상대하기가 싫어지려 했다. 이 남자는 호들갑스럽고, 시끄러웠으며, 천박했다. 면전에 대놓고「당신 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새빨간 거짓말이잖아」이라고 못을 박는 법이 어딨냐. 알면서도 속아주는게 주당들의 미덕이다.
『그럼 내가 뭘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요.』
짜증이 살짝 섞인 딘의 질문에 남자가 눈 크게 뜨고 대답했다.
『난들 아나~ 여하간 댁이 최소한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젠장. 차라리 배불뚝이 아저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파도 타기」를 하는 편을 선택하는게 좋았을지도. 남자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음을 확신한 딘은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일행인 것이 분명한 여자가 쓰고 있던 모자의 챙을 짐짓 올렸다 내리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이해해줘요. 지금 이 남자, 부인에게 버림을 받아서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랍니다. 평소에도 재수 없지만 덕분에 지금은 더 재수가 없어졌네요. 부인이 개인적인 용건이 있다면서 이 사람을 냅두고 혼자 뉴욕으로 떠났거든요. 그래서 짜증이 치솟아 어제부터 계속 이래요.』
여자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남자가 수탉이 홰치는 흉내를 내며 펄펄 뛰었다.
『그 입 다물라! 누가 마누라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거냣!』
『자기 뒤를 따라오면 그 날로 헤어지는 거라고 소중한 그녀가 말했다면서, 네마 나타스.』
『따라가지 않았으니 헤어지지 않은 거고, 버림도 받지 않은 거지. 우리 사이의 애정 전선은 이상 무! 누가 뭐래도 난 그녀를 사랑하고, 허니도 마찬가지로 날 좋아할 거라고 생각... 콜록. 생각은 하지만... 어, 어쩌지. 나 말고 딴 남자가 생긴 거면! 그, 그러면 나, 나는...!!』
『말도 더듬고 잘 한다. 봤죠? 이 남자, 완전히 이거예요.』
혀를 끌끌 차던 섹시한 카우보이 걸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모르겠다. 부인이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불륜을 의심하는 주제에 양편으로 멜론 사이즈의 가슴을 가진 언니 두 명을 양쪽으로 꿰차고 술을 마셔도 되는 거였나. 딘은 어쩐지 이 모든게 광대 놀음이 아닌가 싶어져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아, 상관 없소. 다른 자들에겐 마음을 절대로 주지 않거든.』
딘의 생각을 읽었나 보다. 자기 몫의 술병을 기울이며 네마 나타스가 딱 잘라 선언했다.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쳐다보는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쓸쓸하고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 마음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오. 누가 뭐래도 그녀는 나의 지배자라오.』
듣다가 현기증을 일으키고 쓰러질, 너무나도 뻔뻔해 뺨히 화끈 달아오를 수준의 사랑 고백이다.
그런데 그걸 부인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찔찔 짜면서 하고 있으니 대단히 처량맞다.

도저히 못 참겠다며 카우보이 걸이 으이그 소리를 냈다.
『그만 울어. 계속 그러면 사진 찍어 회람으로 돌려버린다. 그나저나 왜 뉴욕이야? 이런 계절에. 뉴욕은 춥잖아? 휴가를 보내기엔 별로일 것 같구먼.』
『잊어먹었냐. 몇일 지나면 1월 26일이잖아.』
『아... 깜빡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여자는 그게 뭔 소리인지 알아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제3자에겐 땅 짚고 헤엄치는 소리였다.
1월 26일이 친정 어머니 생일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저울질했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목놓아 부르짖는 - 여보, 제발 날 버리지 마 - 남편을 두고 왜 혼자서 떠나겠다고 했을까.
그 첫 번째 가능성, 헤어진 전 남편과의 재산 분할권을 놓고 변호사와 만날 약속을 했다.
두 번째 가능성, 헤어진 전 남편과의 자녀 양육권을 놓고 판사 앞에 서야만 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네마 나타스는 화가 난 표정으로 딘을 쏘아보았다.

호기심이 동했다.
『어떤 여자인가요? 당신의 부인이라는 사람.』
딱히 할 얘기가 없어 꺼낸 딘의 질문에 네마 나타스는 사탕을 선물받은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최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종달새처럼 노래했다.
『마음은 불덩이 같고, 몸은 얼음인 여자. 진짜지, 진짜지 세상에서 둘도 없이 멋진 여자!』
그리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테디 베어 인형을 마구 껴안는 동작을 취했다.

왼편에 선 갈색 머리의 여자가 혀를 차며 네마 나타스의 등을 쥐어박았다.
『사랑에 눈이 멀어 등신이 되었구나. 슬프다, 과거와 미래를 꿰뚫는 왕이여.』
『꿰뚫긴 뭘 꿰뚫어. 과거와 미래를? 그녀의 따뜻하고 촉촉이 젖은 그곳도 제대로 꿰뚫지 못해 고자가 아닌가 의심이 되는 판국에 그딴 걸 잘도 꿰뚫겠다.』
『꺄악!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색광! 비단 도포를 벗은 우리의 왕을 보라. 베옷을 입은 헐벗은 백성이 되었도다. 위엄 가득했던 왕년의 자기를 상상도 못 하겠어. 상대는 그냥 헬레드에 속한 여자인데 어쩜 이렇게 타락했니.』
『그냥 여자?! 혀를 조심해. 여차하면 주둥이를 확 찢어버린다.』
『하! 누가 누구의 입을 찢어?! 어이가 없으려니까... 말을 말아야지. 하여간 아스모다이가 질투에 눈이 멀어 사라레이의 남편 셋을 참살했던 것보다 더 웃기게 되었다니까.* (->토비트서에 나오는 악마 이야깁니다)
『이봐! 날 지금 그놈의 쪼다와 비교하는 거야?!』
『그게 비교가 되겠냐... 쯧쯧. 네쪽이 더 형편없다. 지금의 너를 봐.《이혼수속 밟으면 난 끝장이예요》라고 술주정이나 부리며 울고 있잖아. 최소한 아스모다이는 위엄을 부리며 뒤로 물러서는 법을 알았어. 그런데 넌 뭐니. 시뻘건 풀무불에 던지워졌을 적에도 실실거리고 웃던 자식이《아무래도 우리 허니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어, 난 이제 끝났어. 어쩌지》이러고 징징거리기나 하고. 넌 미쳤어. 단단히 미쳤다고.』
『INSANUM QUI ME DICET, TOTIDEM AUDIET. (날 미쳤다고 하는 너도 같은 소리를 들을 거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 빨갛게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으로 사내의 턱을 가만히 쥐었다. 피어싱을 한 혀를 길게 빼고 낼름거렸다.
『골룸! 골룸! LIBERA ME. (날 살려주라)』

남의 말싸움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취미는 없다. 딘은 기회를 보아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모르는 척하고 동생에게 전화나 걸러 가자.
네마 나타스가 놀라서 딘의 소매춤을 붙잡았다.
『워워, 어딜 도망가우!』
『두 분이 심각한 분위기인 듯하여... 싸움을 중재할 제3자가 필요합니까?』
『안 싸웠어. 그냥 사소하게 의견이 대립했을 뿐이예요. 에이, 그러지 말고... 앉아요. 전화는 그만 신경 끄고! 형씨 동생은 물건을 사러 밖에 나가선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 동네엔 썩 괜찮다 싶은 가게가 없거든요.』

그건 또 뭔 소리? 딘은 인상을 찌푸렸다. 맹세코 이들 앞에서 동생 얘기를 꺼낸 적이 없음이다.

남자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며 버럭 화를 냈다.
『했어! 덧붙여 그 동생 이름이 샘이라는 것도, 그가 스케치북과 미술용 연필을 사러 나갔다는 것도 말해줬다고. 기억 안 나? 당신, 우리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벌써 취했어? 보기와는 달리 술이 약하잖아. 아님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 거야?』
바싹 끌여당겨진 딘은 실례가 아닐 정도로만 해서 그 팔을 뿌리쳤다.
『컨디션이 별로라는 건 맞지만... 이봐요? 동생은 나에게 어떤 종류의 물건을 사러 간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다고. 그런데 내가 뭘 말했다는 거요.』
『오우.』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주춤거리는 동작으로 멜론 가슴이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찔림을 당한 쪽도 헛기침을 터뜨리며 들고 있던 맥주병을 테이블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너무 많이 말했어, 네마 나타스. 이건 분명히 네 실수야.』
남자가 등을 구부리며 손바닥으로 턱을 고였다.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괜찮아. 실수한 건 맞는데 상관은 없을 거야. 이 친구는 자기 동생이 점잖케 생긴 어른용 스케치북을 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해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도 놀라지 않을 걸? 아, 그러니까 말입니다요, 형씨. 댁의 동생 샘은 가게를 다섯군데나 돌아 분홍 바탕에 피카츄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겨우 샀어요.「형이 이것들을 보고 화가 나 날 잡아먹으려 할텐데, 큰일났다」라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죠.』
『피카츄... 입니까.』
『봐, 내 말이 맞지? 하나도 놀라지 않잖아. 사실 이 자는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작부터 눈치 챘다고.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음에도 내색 안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준 거야. 그렇죠? 딘 윈체스터.』

딘은 긍정을 표시하며 자기 손목시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분침과 시침은 움직이는데 초침이 안 움직이고 있었어. 그때부터 알아챘지.』
『겨우 그 정도만 갖고 이 모든게 다 조작된 가짜라는 걸 알았다고?』
남자는 두 팔을 머리로 올리고 끄응 신음했다.
『쳇, 시시한 부분에서 걸렸군. 나름대로 애 많이 썼는데.』
『그래도 맥주 맛은 진짜 같았어요. 네마 나타스.』
『병 주고 약도 줘요. 그런 칭찬은 하나도 안 반갑네.』

네마 나타스. NEMA NATAS. 뒤집으면 SATAN AMEN. 사탄 아멘.

어느새 연보라색 눈동자로 돌아온 사내가 맥이 풀려버렸다며 손가락을 탁 튕겼다. TV소리가 꺼지면서 응원의 파도 타기를 하던 스포츠 팬들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가게 안은 깊은 바다처럼 고요해졌다.

반면 여자는 유혹하듯 손가락을 쪽 빨았다.
『그래? 난 지금부터 흥이 나는데. 소문 그대로잖아? 잘 생겼는데다 머리도 좋아.』
『그래서 뭐. 건드려보고 싶어? 관두는게 좋아. 저 친구, 이쪽에서 조금 부추겼다고 동생의 누드를 꿈꾸는 남자야. 190cm의 거구인, 그것도 남자의 누드.』
딘은 당연히 발끈했다.
『동생인줄 몰랐어! 내가 변태인 줄 알어?! 여자인줄 알았다고!』
그 투덜거림에 멜론 가슴이 두 손바닥을 삼각형으로 모으고 경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자폭성 발언이야, 딘 윈체스터. 그 덩치를 여자로 착각했다면 그건 더 웃기지.』
『그치만 눈 감고 있었는 걸! 기분도 그리 나쁘진 않았고...』
『한술 더 떠서 핵폭탄 수준의 발언까지! 어쩜.』
『웃지 마! 난 문제 없다. 그런 꿈을 꾸게 만든 당신네들이 문제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여자의 눈이 서서히 뱀의 그것으로 변화했다.
『무슨 꿍꿍이냐고? 그야 경고하기 위해서지. 조심해라, 딘 윈체스터. 1cm로 잘게 토막친 그대의 시신이 고속도로에 뿌려지기 전에 알아서 몸을 사리는게 좋을게다.』
여자가 의지를 분명히 하며 혀를 낼름거렸다.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혀다. 길고도 가늘었다.

약이 바짝 오른 딘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거 미치겠네. 영문이나 알자. 도대체 나에게 뭘 경고하겠다는 거냐.』
끽 소리가 나도록 의자를 뒤로 끌며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 마누라에게서 손 떼라는 거다, 이 자식아!』
『왜 소리지르는 건데. 환장하겠군. 당신 부인? 이봐, 난 댁의 마누라 이름이 뭔지도 몰라.』
『흥! 바로 그랬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거야, 딘 윈체스터. 아니었음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걸. 마침 바이킹 촌색시인 동생이 스케치북을 사가지고 돌아온 모양이군. 그러니 오늘은 그냥 보내줌세. VADE IN PACE. 잘 가게.』

순간 시야가 확 하고 변하면서 눈에 익숙한 모텔 벽지가 앞으로 불쑥 쳐들어왔다.

Posted by 미야

2007/02/09 20:16 2007/02/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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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judgment 01

※ 오로지 버닝만이 살 길이다... 목 말라. 켕.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2007년 1월로 배경이 넘어갔습니다.
이건 영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마우스를 움직여 윈도우를 닫아주세요. ※


따스한 물에 잠겨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력으로 인해 무게 감각을 상실한 몸뚱이는 천국의 깃털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물, 그리고 다시 물... 아니, 그는 깨달았다. 온몸을 휘감은 이것의 정체는 사람의 체온이다.
호흡과 같이 하여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떠올랐다. 숙취를 닮은 나른함이 뼛속까지 파고들면서 긴장이 풀린 근육들이 하나둘씩 그 개체성을 잃어갔다. 다리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이 녹아내렸다. 살점이 풀어지고 새하얗게 변질된 피부가 허물인양 벗겨졌다. 퉁 소리를 내며 미처 부패되지 덩어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동시에 저 아래로부터 작은 기포가 무수히 떠올라 물에 젖지 않은 머리카락을 둥글게 감쌌다. 기포는 다시 물방울이 되어 그의 귀와 목덜미를 간질였다.

부지런히 할짝이는 혀의 움직임에 곱게 바스러지려던 정신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아프다... 반복하여 문질러 붉게 부어오른 피부가 쓰라렸다. 자신의 것이 아닌 손이 배를 문지르며 천천히 올라와 가슴을 쥐었다. 여자의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쥐어짠다 - 딘은 불평하며 거부의 뜻으로 몸을 틀었다. 그래봤자 젖꼭지를 비벼대며 요령껏 잡아당기는 손가락은 오래지 않아 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뒤쫓아와 예의 행동을 한치의 오차 없이 반복했다.
우와, 스토킹 기질이 있는 전갈좌의 여자다. 아무래도 잘못 걸렸다. 침대에서 남자를 리드하려는 여자는 딱 질색인데.
납덩이의 무게를 자랑하는 졸음과 싸우며 가슴 돌기를 애무하던 팔을 붙잡았다.
음, 어렵게 잡고 보니 상대의 손목이 대단히 굵다. 손도 크다. 그거 참... 딘은 난감했다.
바이킹의 촌색시, 아마존 숲의 여전사, 야만인들의 여왕 쏘냐.
어쩌다 내가 이런 괴물과?

쉬어빠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피곤하니까 적당히 하자.』
당연히 여왕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머뭇거림 없이 돌려져 눕혀졌다. 손바닥으로 그의 양쪽 눈을 가리곤 뜨거운 호흡을 코앞에서 뿜어댔다. 어쩐지 그 숨결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반복하여 속삭이는 것 같아 별안간 갈비뼈 안쪽이 욱씬거렸다.
『와, 황송하네. 정말로 그렇게 내가 좋은 거야?』
대답 대신 뜨거운 입술이 내려와 그의 코를 가볍게 문질렀다. 쪽쪽 소리를 내는 사랑스런 키스, 혀끝을 세워 살갗을 길게 핥으며 자극해왔다. 이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가볍게 빨아당겼다.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은 교태를 부리고 있다. 당신도 빨리 나를 좋아해주세요 - 여자는 보드라운 젖은 소리를 내며 입술로 눈썹 가장자리를 눌렀다.

그래도 난 깊은 입맞춤은 딱 질색인 걸.
잘 모르는 사람과 타액을 섞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입안 구석구석을 더듬는 혀는 너무 직접적이라 콘돔도 쓰지 않고 삽입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입술을 열어달라고 그렇게나 애원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응해주지 않는 걸 미안해하며 가볍게 뺨에 키스했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차갑게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토닥토닥 머리를 어루만지곤 위로를 담아 상대의 어깨로 팔을 둘렀다.

우와, 딘은 살짝 긴장했다. 손목만 굵은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만져지는 어깨 또한 단단한 근육 투성이다.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보니 탄력이 장난 아니다. 혹시 이 여자, 취미로 25kg짜리 역기를 매일 서른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는게 아닐까.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내려 팔뚝을 어루만졌다. 이쪽도 역시 근육질. 모르긴 몰라도 밥 먹고 아령 운동만 죽기 살기로 한 모양이다.
『끝장의 바이킹 촌색시...』
질려하는 그의 혼잣말에 안쪽 허벅지를 살살 비벼오던 상대방이 동작을 딱 멈췄다.
그리고 부루퉁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지금 누구더러 촌색시라는 거야, 형.』

에. 지금 뭐라고.
순간 팍 하고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면서 전기 콘센트로 불꽃이 튀었다.
『Shit!』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면서 빠앙, 하고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렸다. 운전대를 잡은 채 팔자 좋게 백일몽이라. 단단하게 하나로 뭉쳐진 심장이 반역을 꿈꾸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딘은 두 눈을 부릅뜨고 브레이크부터 밟았다.
하느님 아부지. 지금 제가 운전하면서 쿨쿨 잠들었던 겁니까. 그것도 동생을 상대로 불알 변태짓을 하는 꿈을 꾸면서요?!
결론만 말하자면 양손으로 핸들만 잡고 있었다. 그가 목숨처럼 애지중지하는 쉐비 임팔라는 2차선 도로 갓길에 얌전히 정차되어 있었고, 그것도 눈치로 보자면 엔진을 끄지 않은 채 자리에 멈추어선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니 흙바닥에 난 바퀴 자국이 부드러운 커브를 그리고 있다. 이는 곧 정상적으로 속도를 줄여가며 자동차를 세웠다는 뜻이다. 날리는 흙먼지, 타이어 고무가 타는 냄새, 일직선으로 그어진 스키드 마크, 짜부라져 죽은 개구리 시체 기타등등 일절 없음, 급정거를 했다는 흔적은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었다.

저편으로 낡은 픽업 트럭 한대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다시금 지나갔다.
상향 조정된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시렸다.
『빌어먹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하여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운전대에 달라붙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시험 삼아 명령을 내려봤다. 주인님이 원하신다, 손가락아 움직여라. 틀렸다.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손은 여전히 핸들을 잡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백미러를 올려다보니 창백하게 질린 멍청이가 귀신에게 홀렸다며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어쩐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딘은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야 손목시계만 쳐다보면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상황에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곳이 어디며, 어쩌다 여기까지 튕겨져 나왔느냐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는 건 벌거벗은 동생이 손을 아래로 내려 거길 더듬으며 섹시한 비음 소리를 냈... 다가 아니지! 당황하여 황급히 고개를 가로젓고 ◀모양의 리모컨 버튼을 조작해 보다 앞쪽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돌렸다.

로드 하우스로 전화를 걸어 정보통 애쉬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게 저녁 7시 10분.
사가지고 올 물건이 있다면서 샘이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게 7시 30분.
식어빠진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기며 TV를 틀어 내일의 날씨를 확인했다. 8시 정각.
그리고... 그리고? 젠장, 딘은 손등으로 이를 힘껏 박아넣었다. 머리가 먹통이다. 언제 열쇠를 꺼내 자동차 시동을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텔 밖으로 왜 나왔는지조차 깜깜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TV를 켰을 적에 입고 있던 청바지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이에 옷도 갈아입었다. 환장하겠다. 설마, 몽유병? 아니면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가 도로 풀려났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더도 말고 1시간 가량이 공백이다.
그걸 깨닫자 두근거림이 더 심해졌다. 가까스로 움직이게 된 손을 들어 뻣뻣해진 뺨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자라난 수염 탓에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그 감촉이 묘하게 현실적이라 임팔라 운전석에 덩그마니 앉아 있다는 이 상황 또한 대단치도 않은 꿈의 연속일지 모른다는 나태한 억지 가정이 여지없이 박살났다.
1시간! 도둑 맞은 1시간!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가 올라왔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검정」이 내려앉은 주변은 어쩐지 오싹했다.
가늘고 긴 도로를 양편으로 빈약한 상점가가 자리를 잡았다. 셀프 주유소와 편의점, 그리고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불 꺼진 이층 건물이 여럿 보였다. 딘은 고개를 길게 빼고 혹시라도 알아볼 수 있는 간판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2초만에 절망했다. 주변이 대단히 어둡기도 하거니와 이거다 싶은 걸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이래선 출발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꼼짝을 못 한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내려가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서질 않았다. 동서남북 자체를 모르는 판국이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핸드폰은 나오지도 않고... 한숨쉬며 일단 운전석에서 내렸다.

발밑을 쳐다보니 추위에 노랗게 죽어버린 풀들이 보였다. 바닥으로 종이 포장지며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가 수북했다. 건조한 흙에서 기계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코를 킁킁거리다 말고 엣취 재채기했다. 하얗게 입김이 나오면서 어깨가 부르르 떨려왔다. 평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라고 해도 1월의 밤은 제법 쌀쌀하다. 따뜻한 동생의 품에 안겨 몸을 뒤치락하던 꿈속이 그립... 단단히 미쳤어! 표정을 바꾸고 딱 소리가 나도록 자기 머리를 때렸다.
『꼴 사납게 욕구 불만이냐. 씨잉, 아무데서나 발정하고 말이야.』
실수로 팬티를 더럽히지 않아 다행이다.
쓴 웃음을 지으며 시려오는 손을 비볐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걷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편의점은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셀프 주유소는 진작에 망했는지 사람이 안 보였다. 불경기라는 이름의 핵폭탄에 얻어맞고 멸망당한 거리에서 홀로 불을 밝힌 건 허름한 1층짜리 길거리 술집이 전부, 그 이름도 유치찬란하여「바빌로니아」다.
딘은 초록의 잎사귀를 흉내낸 거짓된 네온싸인 간판을「이건 농담이지?」라는 심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허공에 붕 떠서 어둠을 무찌르고 있는 이놈의 흉악한 형광의 불빛을 보고 메디아에서 시집 온 아리따운 왕녀 아미타스를 위해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만든 공중정원의 초록을 연상하라는 거냐. 정말로 그런 의도였다면 장난치곤 진짜 심하다. 영광스런 고대 왕국의 이름은 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허름한 술집 이름으로는 결단코 어울리지 않았다. 120kg의 몸무게의 여자에게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오드리 햅번」이라는 이름을 붙인 꼬락서니다.

『하아, 이걸 어쩐다.』
내키지 않았다. 딘은 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뒤죽박죽으로 세워둔 낡은 자동차들로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부식이 심각한 구형의 검정 데소트엔 먼지가 어찌나 두껍게 내려앉았던지 세차를 하려면 물을 끼얹는 대신 차라리 칼로 긁어내는게 더 빠를 것만 같았다. 앞 유리창에 부착한「by American (국산품 애용)」스티커에 환멸감이 솟구쳤다. 제발 닦고 살자. 나라 망신이다, 이것들아 - 차는 내버려두고 멕시코로 도주한 2인조 강도를 상상하며 딘은 층층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축구경기 중계방송이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인 크리스토퍼가 못 보던 손님을 또 한 명 보내주셨구먼. 반갑소이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40대의 사내가 절반쯤 마신 진토닉 잔을 들어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리버플과 첼시 중에 어디가 좋나, 자네는?』
그리곤 어처구니없게도 이쪽의 대답을 채 기다리지도 않고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사실 축구는 재미가 없지. 나라도 채널을 당장 돌려버리라고 말할 걸세. 왜 저딴 걸 보고 있느냐고 비난을 퍼부울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닐세. 딱딱한 공을 이리저리 발로 차는게 전부인데 뭐가 신난다는 거야. 리버플? 첼시? 아무나 이겨라... 딸꾹.』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술을 너무 마셔서 뇌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무어라 할 말을 잃은 딘은 입가를 끌어당겨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고는 계속해서 만세를 불러대고 있는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그렇고 말고요. 아무나 이기면 되는 겁니다.

슛~!! 골인이다~!! 허름한 바깥 분위기와는 틀리게 가게 안쪽은 신명났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들은 노래도 불러대고, 춤도 추고, TV도 보면서 저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플로어에는 느린 템포의 컨트리 송이 흘러나왔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은 여자가 남자 친구의 농담에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동시에 와 하는 함성 소리가 TV 앞으로 몰려 있는 한 무더기의 스포츠 팬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래봤자 헛발질이었는지 다들 어이쿠 하면서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안타까워 했다. 휘슬을 제때 불지 않았다며「죽어라, 심판!」이라 욕하는 사람도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욕을 한다고 경기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터인데 다들「맞아, 죽여야 해!」라며 동감을 표현했다. 진짜지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부류 넘버 원이다.

행여라도 끌려가는 일 없도록 주의해가며 - 스포츠 팬들은 그 장소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도 타기를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 딘은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빨리 샘에게 전화를 걸도록 하자. 어쩌면 그 바보 동생은 형이 감쪽 같이 없어졌다며 불안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걱정으로 녀석의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리기 전에「미안해, 샘. 형이 드라이브 나왔다가 시간 가는 걸 깜빡했어. 문단속 잘 하고 먼저 자렴」이라 말해줘야 한다.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샘을 안심시키기 위해선 적당히 사실을 숨겨야 한다.
전화는 왼편 구석으로 숨어 있었다. 딘은 크게 기뻐하며 성큼 걸음으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크리스토퍼에게 감사하라. 여행자들의 성인께서 못 보던 얼굴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음이니.』
어랍쇼. 그 대사는 방금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다 말고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의「아무나 이겨라」아저씨가 아닌, 말쑥한 외모의 동갑내기 사내가 맥주병을 들고 환호했다. 검정의 재킷과 바지가 늘씬한 몸에 잘 어울렸다. 사내의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 빛났다. 그런가 싶더니... 눈빛이 기묘하게 변화했다. 인간의 것이라고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연보라색이었다.
착각인가 싶어 눈자위를 비볐다.
피곤해서 그런가. 다시 쳐다보니 평범한 갈색이다.
『멀뚱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게. 애인에게 걸 전화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헤이~!!』
검은 머리카락의 카사노바 사내가 양쪽으로 여자를 둘씩이나 끼고 딘을 향해 반갑게 손짓했다.

Posted by 미야

2007/02/07 07:24 2007/02/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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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8 22:57 # M/D Reply Permalink

    스스로 The beast가 되는 기분이었답니다. 으헝헝.ㅠㅠ

    역시 실제 드라마에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한 것이 있다니까요!!
    ㅋㅋ 요즘엔 미야님의 소설만 보며 살고있다구요-

  2. 아몬드 2007/02/09 09:24 # M/D Reply Permalink

    이러는거 대단히 싫어하신다는 걸 알지만 난입합니다. 주말에 여행가신다고 하던 걸 봤습니다. 다음편은 내놓고 가요오~ 살아있는 고양이를 만지게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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