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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좀비 (젠장!)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아앗, 진짜지 애쉬까지 죽게 만들면 어쩌라는 거야~!! ※


이 경우엔 총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선 강력한 그 무엇이 이미 머리를 지배하고 있음이다. 짐승의 배를 갈라 방금 끄집어낸 내장을 코앞에서 흔들어봤자 겁을 먹을 리 없다. 눈이 뒤집힌 상황에선 그런 건 수퍼마켓에서 파는 훈제 소시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흥분한 나머지 피 냄새를 맡기는커녕 그게 무슨 색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손톱을 세우고 덤벼들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딘이 오히려 안전권 뒤로 물러서야 했다.
눈이 붉게 충혈된 여자는 엉뚱하게도 그걸「덤벼라!」신호로 오해했다.
 『어쩔 수 없었어! 아이를 보호해야 했어!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날 보호했던 것처럼!』
『말도 안 돼. 이게 보호하는 거라고?』
『네놈들이 뭘 알아! 내 자식이 괴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어! 우리 엄마가, 아빠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괴물?』
『그래! 괴물! 사악한 짐승이 되어 제 어미를 피 흘리고 죽게 만들 괴물! 괴물이야!』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렇다고 해도 딘은 핸드폰을 꾸셔넣은 바지 주머니를 내려다볼 짬이 없었다. 제기랄이었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으로 바비 아저씨가 안부 전화를 걸어올 리는 없을 것이고...
재니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딘은 전화벨이 그냥 울리게 냅둔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핸드폰을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이번에는 집안에 있는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더하여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창틀이 흔들렸다.
재앙을 담은 대접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지 않은 집으로 호곡소리가 울려퍼질 시간이 되었다. 이제 곧 장자들은 모조리 죽어나갈 것이다. 아니, 성읍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들이 다 엎어져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늘로 재앙의 별이 떠올랐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공포의 대왕이다. 소돔과 고모라로 재를 태우는 유황불이 내려올 것이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재니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제발 그만하라 외쳤다.
『조용히 해! 시끄럽단 말이다! 닥쳐! 새미, 그만둬!』
새파랗던 샘의 얼굴색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이제 그는 스머프의 사촌이 되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아이의 이름이 새미였다.
딘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다. 덩달아 아명이 똑같은 그의 동생은 총 맞은 비둘기처럼 굴었다.
그걸 재니스가 놓칠 리가 없었다. 40kg의 여자가 자신보다 두 배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를 두 팔로 밀쳐 쓰러뜨렸다. 결과로만 보자면 요코즈나 등급의 스모 선수의 괴력이었다.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던 샘은 트럭에 치었다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평소라면 그 꼴사나움을 마음껏 비웃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이 절반은 증발해버린 듯한 샘의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다. 지금의 그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광대에게 손을 붙잡힌 다섯 살짜리 어린애였다. 강제로 싫어하는 놀이기구에 앉혀져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게 생겼다. 울먹거리던 동생이 팔꿈치를 세워 일어나려 애쓰며 짧은 단어를 입안으로 굴렸다. 그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차린 딘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동생 곁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왼발을 드는 순간 새카맣게 생긴 덩어리가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딘은 순전히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간발의 차이로 네모난 물건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가정용 유선 전화기였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딘은 장총을 들고 있다. 샘은 바닥에 넘어져 있다. 재니스는 그들 형제를 위협하며 마룻바닥에 네 발로 서있다.
그럼 전화기는 누가 던졌나? 집안엔 그들 세명 외엔 아무도 없다.

딘의 뺨에서 핏기가 가셨다. 코드가 뽑혀진 채 전화기가 정상 작동했다. 탱크가 밟고 지나갔음에도 통화가 가능했다는 유명 제조사의 전화기보다 훨씬 굉장하다. 최대치로 하여 벨소리가 때릉때릉 울렸다. 뿐만 아니다. 징그러운 플라스틱 덩어리는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생명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달각 소리를 내고 녹음된 음성 메시지를 자동으로 토해냈다.
《여보? 나요. 캐빈이오. 오늘은 늦을 것 같소. 저녁은 먹고 들어갈 터이니...》
삐익 신호음과 같이하여 전부 재생되지 않은 메시지가 일괄 삭제되었다.
《엄마... 엄마... 엄마...》
본체에서 흘러내린 수화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것과 거의 동시였다.

『망할!』
온몸을 칭칭 감은 투명한 밧줄을 떨어낸 건 세 사람 중 딘이 맨 처음이었다.
어디를 봐도 비정상적인 것이 분명한 전화기를 발로 걷어찬 뒤, 그는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있는 동생에게 단호한 투로 명령했다.
『샘! 이 멍청한 자식아! 자빠져 있지만 말고 움직여!』
『으, 으응...』
『움직여!』
품속에 넣어둔 소금통을 꺼내들었다. 그것이 과연 도움이 될련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빈손인 것보단 나았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 이 집에 놓인 전화기가 모두 몇 개인련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 전화기는 두 대 이상이다. 친구들과의 잡담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내는 말썽쟁이 청소년 자녀가 있는 경우엔 다섯 대도 가능하다 - 샘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형! 위험해!』
샘이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재니스가 원숭이처럼 펄쩍 뛰어올라 딘의 등으로 달라붙었다. 동시에 살이 씹히는 고통이 등줄기를 꿰뚫었다. 엄마야, 생으로 물어뜯긴다. 당혹감과 아픔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제정신이 아닌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그래봤자 생살이 고스란히 씹히는 와드득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바깥으로 번개가 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야가 번쩍 빛났다. 이러단 살가죽이 뿌리채 떨어져 나가겠다.
「재앙이구먼. 십중팔구 병원에서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 거야. 그치만 이빨 자국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걸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하는 거지?」
목덜미가 타는 듯이 아파왔다. 견딜 수 없어 붙박이 책장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재니스의 몸이 야구와 축구에 관한 서적들과 정면 충돌하면서 산더미 같은 책들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의 목을 감싼 팔의 힘이 느슨해졌다. 이때다 싶었다. 쐐기를 박기 위해 쿵 소리가 나도록 책장으로 몸을 다시 한 번 더 찍었다. 그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선반 부분이 정확하게 재니스의 옆구리를 치면서 그녀를 일시적인 호흡곤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신음을 토해낸 재니스는 집안의 각종 열쇠 꾸러미를 넣어둔 사각 접시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몸을 둥굴게 웅크린 채 기절이라도 한 모양이다. 누운 그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열쇠.
목덜미로 뜨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도 잊고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아이를 가둬둔 방의 열쇠가 그중에 섞여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일단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어딘가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해, 샘!』
『맙소사...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남편이 돌아온 것 같아.』
『아무래도 좋아! 들어오고 싶으면 맘대로 들어오라고 그래! 우린 이걸 마무리 짓는다.』
성큼 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입사귀가 누렇게 뜬 스파티필름 화분이 놓여진 화탁을 지나쳐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왼편으로는 주방 겸 식당이 펼쳐졌다. 오른편으로는 데스크탑 컴퓨터가 놓여진 남편의 서재, 부부의 드레스룸, 그리고 화장실로 짐작되는 문이 나란히 있었다.
이중에서 지하의 비밀 방으로 연결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초록색 눈이 사방을 훑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다. 욕실은 일착으로 제외해도 무방할 것이고... 신문과 잡지, 플라스틱 책꽂이가 놓여진 무미건조한 방도 빼버렸다. 남편은 일벌레다. 그리고 평범했다. 아내 재니스의 비밀을 같이 공유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설사 안다고 해도 자신과는 관계 없다고 무시할 타입이다.

서재를 지나쳐 드레스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영화를 보면 비밀의 통로를 이쯤에다 만들어 두던데. 어디 보자...』
계절에 맞지 않아 치워둔 남편의 양복더미를 옆으로 밀고 손전등을 높게 들었다. 옷가지들을 넣어둔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남는 공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딘은 이곳저곳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가며 확인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일까? 아니다. 울림이 둔탁하다. 그렇다면 반대편은? 원피스와 여성용 여름 재킷이 걸린 옷걸이 틈새로 주먹을 넣고 벽을 두드려댔다. 조사에 방해가 된다 싶자 자선 단체에서도 기부 받기를 거절할 것 같은 낡은 옷가지 몇을 끄집어선 공처럼 둘둘 말아 뒤로 던졌다.
물어뜯긴 목덜미가 욱씬거리고 아파왔다. 마르지 않은 피가 셔츠 깃을 적시고 있다는 걸 느끼며 작업을 계속했다.

『형! 남편이 왔다니까!』
『신경 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신경을 안 쓰게 생겼어?! 부인은 기절해 거실에 누워있고, 사방으로 물건이 어지럽혀 있는데! 남편이 경찰을 부를 거야.』
『어쩌면.』
『틀려. 이 경우엔「어쩌면」이 아니라「확실히」라고.』
『쟁알거리지 말고 손전등으로 여길 비춰봐.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찾아낸 것 같다.』
『뭐?』
『여기 이 부분! 나무로 마감한 벽면이 헐거워. 충분히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 경우엔 옆으로 미는 건가. 기다려. 작은 구멍이 있어. 이거, 잘 만들었는데. 음, 열쇠 구멍인가. 좋아, 좋아... 열려라, 열려라. 착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이즈가 맞을 것 같은 열쇠들을 하나하나 꽂아보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열쇠를 꽂았다 돌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단번에 맞는 열쇠를 찾아 문을 여는 행운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나 성가시다. 짜증이 치솟아 막판엔 열쇠 구멍으로 쇠붙이를 들쑤시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최악의 경우엔 가지고 있는 모든 열쇠가 맞지 않는다는... 아! 돌아간다!

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드륵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하여 성인 어른이 허리를 굽히고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여닫이 문 저편으로 드러난 수상쩍은 어둠을 쏘아보던 딘은「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굴러대는 토끼도 없는데 굴속에 들어가게 생겼어」라고 푸념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안은 위험할 거야.』
암염탄을 챙기면서 딘이 경고했다.
『내 뒤로 바짝 붙어 따라와.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 샘.』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쓸데없는 잔소리 하나를 덧붙였다.
『저 아줌마가 말하는「새미」는 네가 아니야. 넌 나.의.「새미」이고, 손이 무진장 많이 가는 말썽쟁이 동생이지. 넌 그 점을 헷갈려서도, 잊어서도 안 돼.』
『......』

너는 괴물이 아니고, 괴물도 되지 않을 거야.
네가 뭘 생각하는지 다 안다며 딘이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그 사실을 결코 잊지 마. 새미.』
얼굴을 잔뜩 찌푸린 샘이 무어라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입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단어들은 적절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한참을 노력해봤으나 피곤함만 곱절이 되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대답이 이거였다.
『형... 있잖아. 나, 어제 저녁에 머리 안 감았어.』
애정을 가득 담아 샘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딘의 입술이 일직선으로 굳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5/12 22:22 2007/05/1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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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딴짓을 좀 하느라 예정보다 늦었습니다.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글의 배경이 2007년 3월이예요. 도중에 덥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 자체가 치명적 실수... (창백)
저도 다른 분들처럼 가슴이 화아~ 해지고, 심장이 찌릿찌릿해지는 멋진 글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단순한 부분에서조차 감당이 되질 않으니 영 글렀어요. ※


뜬금없이 여기서 어린아이가 왜 나와.
『갑자기 왜 그래. 저 집에 어린애가 있다니. 쉐퍼드 부부에겐 자식이 없다는 건 형도 잘 알잖아. 재니스의 의료 기록엔 출산 이야긴 없어. 딘! 제발 나랑 말 좀 해. 얘기를 하자니까. 응?』
샘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형을 통제할 수 없음에 - 마찬가지로 딘 또한 자신의 동생을 통제할 수 없음을 늘 불평하니까 피장파장이지만 -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긴급시 단추 하나만 눌러「동작 그만」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장치를 발명하는 사람이 나오면 필히 노벨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뭐, 철인 28호는 싫다며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할지언정 샘은 사비를 몽땅 털어 감사한 마음으로 돈을 챙겨줄 의향이 있었다.

소매춤을 붙잡기도 전에 딘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갔다.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마지막 모히칸족 인디언 전사처럼 오른손엔 무시무시한 장총을, 왼손엔 손도끼를 들었다. 완전히 막무가내다. 그 뒷 모습에서 명백한 살인의 뉘앙스를 읽어들인 샘은 딘의 머리가 살짝 잘못되었다는 한 가지 가능성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녁으로 먹은 햄 치즈 샌드위치가 상했다. 마트에서 괜히 20% 할인을 한게 아니다. 추측하자면 유통기한이 1년은 넘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그놈의 몹쓸 대장균은 사람의 아랫배가 아닌 머리를 공격하는 것인지? 샘은 카누를 타고 강 하류를 따라 내려가다 나이아가라 폭포라도 만났다는 식으로 두 팔을 머리 위로 높게 올렸다.
『으아~ 이해가 안 가! 식중독에 걸리면 머리가 아니라 배가 아파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여기서 외마디 고함을 질러대면 이웃들 중 누군가는 누가 부부싸움이라도 시작했나 싶어 호기심에 창문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러면 도끼를 든 수상한 사람을 눈으로 목격할 것이고, 한바탕 숨을 훅 들이마신 뒤에,《여보! 텍사스 도끼 살인마가 우리 동네에 나타났어!》호들갑을 떨다가, 결국은 숨 넘어가는 태도로 전화기를 찾을 것이다.
경찰과는 아무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이상 샘은 딘의 뒤통수를 향해「멈춰!」라고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엉거주춤한 것도 잠시, 산탄총을 품에 안고 성큼 걸음으로 형의 뒤를 따라갔다.

드라이아이스로 문지른 듯한 감각이다. 허리로 냉기가 자르르 타고 흘렀다.
햇빛 쨍쨍한 낮과는 완전히 달라 3월의 밤공기는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더하여 고개를 뒤로 돌리고 동생이 잘 따라왔는지를 확인한 딘의 표정도 엄청 쌀쌀맞았다.

『샘? 이리 와서 여기 손잡이를 부수어라.』
『에엑?!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안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뭐. 여기서 정중하게 초대장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자고?』
『초대장까진 바라지 않아. 그치만 좀 더 은밀하게 행동했으면 좋겠어. 우린 지금 너무 눈에 띄어!』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부술 거야, 안 부술 거야.』
『으이그!』

산탄총을 거꾸로 들고 문의 손잡이를 세게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쇠붙이로 만들어진 걸쇠가 불투명한 울림을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찌그러진 경첩이 성대가 망가진 고양이처럼 울어댔다. 동시에 딘이 오른 발을 들어 문짝을 세게 걷어찼다.
『샘! 넌 재빨리 거실로 가서 카펫을 치워!』
진입과 동시에 특공 대장이 호각을 불며 명령했다.
『맙소사. 집안에 있을 재니스는 어쩌고!』
『어쩌긴. 총으로 위협해야지. 그 일은 나에게 맡겨.』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인줄 알아?!』
악당으로 오해 받는 것과 정말로 악당이 되는 건 천지차이다.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부어대면서 - 당연히 겉으로는 그 두 배로 악담을 퍼부어대면서 딘을 지나쳐 거실 쪽으로 몸을 날렸다. 카펫을 치우라고? 말이 쉽지. 그 이전에 소파며 커피 테이블 같은 부피 듬직한 가구들을 모조리 끌어내야 한다. 덧붙여 정리가 되지 않은 잡지와 신문이라는 소품이라는 것도 있다. 평소 집안 정리를 게을리한 가정주부가 있어 유리 주전자와 마시다 만 커피잔까지 올라와 있었다. 샘은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깨지는 물건부터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철컥 소리가 나도록 총알을 장전하면서 딘이 악을 썼다.
『계집애 같은 자식! 네놈 엉덩이를 뻥 차주랴? 네가 무슨 출장 가정부냐! 조신하게 주전자까지 나르고 지랄이야!』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두꺼운 팔뚝 근육은 두었다 어디다 써먹을겨. 내가 허락할테니 한 번에 밀어붙여!』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2층 침실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어깨로 푸른색 숄을 두른 재니스가 2층에서 총총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조준하는게 상당히 뒷맛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는 단호한 자세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큰 소리에 놀라 침실 밖으로 뛰쳐나온 재니스는 날벼락을 맞았다는 걸 미처 감추지도 못 했다. 가뜩이나 새하얀 얼굴이 약품으로 표백한 종이처럼 변했다. 그녀는 짤막한 비명을 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혀가 굳었고. 손으로 입을 가렸으며, 자신의 머리를 정확히 겨누고 있는 총구에 경악했다.
샘은 그녀가 견기지 못하고 기절할 거라 생각했다. 정신을 놓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다리가 풀려 주저앉겠구나 여겼다. 하지만 그건 XX라는 염색체를 가진 생물이 의외로 강하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샘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행동했다.

『꺄아악! 이 뻔뻔한 도둑놈!』
그녀는 당돌하게도 벽에 걸려진 액자를 잡아뜯고 그것이 마치 성스러운 엑스컬리버라도 되는 양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가죽 소파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는 곰 덩치를 향해 힘껏 던졌다.
날아오는 흉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샘은「무기를 들고 침입한 괴한에게 결코 격렬하게 저항하지 마십시오」라는 경찰의 홍보 팜플렛이 다 까닭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이 세금 낭비의 결정판이라고 욕하던 나를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괴한이 쏜 총에 맞을 수 있다는 걸 새카맣게 잊었거나, 아니면 총알이 부드러운 밀가루로 만들어졌을 거라 굳게 믿는 눈치다. 그녀는 용감했다. 아니, 무모했다. 두 번째 엑스컬리버가 비수와도 같은 흉폭함을 띄고 날아왔다.
이제 치워야 할 의자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샘은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보호하고자 두 팔을 들었다. 재수가 없어 모서리로 맞으면 피가 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악에 받친 사람은 평소보다 힘이 곱절로 세지는 법이다. 재니스의 눈동자로 수상쩍은 광채가 돌았다. 샘은 바로 그 점이 두려웠다.

『제발 진정해요!』
명백한 항복의 제스츄어에도 용서는 없었다. 쨍그렁 소리가 나면서 유리가 깨졌다.
『경찰을 부를테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
기세가 한풀 꺾여 몸동작이 둔해진 동생을 대신하여 딘이 이에 응수했다.
『그거 좋지. 불러! 당장 경찰을 부르라고.』
그는 재니스가 무기를 든 자신이 아닌, 가구를 치우려는 샘을 공격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곧 자신의 추측이 상당한 확률로 적중했음을 암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분명히 딘이 가지고 있는 장총이 아닌, 샘이 옮겨대는 거실 가구들로부터 만만치 않은 위협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 번째 엑스컬리버를 바위에서 뽑아낸 아더는 - 뭔 놈의 벽에 액자를 그리도 많이 걸어두었는지 그 소동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손에 쥐고 써먹을 수 있는 총알은 여전히 충분했다. -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왕의 상징을 높게 들어올리는 대신 몸을 둥글게 움추렸다.
백성들이여, 마법사 멀린이여. 아더는 지금 번뇌하고 있소이다.
좌우를 힐끔거리는 눈매는 그녀가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어쩐지 비열한 느낌을 주는 세로 모양의 잔주름이 그녀의 표정을 한층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
머뭇거리며 아더는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았다. 바위에서 뽑아낸 칼은 엘프의 피를 이은 음류시인이 노래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한낱 이끼보다 더 초라했다. 틀렸다. 이것은 전설의 무기 같은 종류가 아니다. 마법은 풀렸고 전설의 영웅은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 자리한 건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될 발가벗은 임금님이었다.

『뭐해요, 아줌마. 어서 경찰을 부르라고!』
딘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재니스는 전화기를 잡지 않았다.
침입자, 경찰, 그리고 숨겨둔 비밀.
세 명은 동시에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알았다.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경찰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총을 어깨 높이로 들고 있는 딘이 이때다 하고 턱을 움직였다.
소리 없는 종용에 샘은 다시 가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재니스는 숨 죽여 우는 소리를 내며 계단 난간을 움켜잡았다. 금방에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은 좀약 냄새 지독한 오래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을 찾은 노처녀처럼 흉칙했다.
애원하며 팔을 벌렸다. 불쌍히 여겨달라며 호소했다. 그래봤자 가슴에 꽃을 꽂은 젊은 청년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유골단지를 피해 뿔뿔이 달아나느라 바빴다. 이를 본 바이올린 연주자가「당나귀 왈츠」를 신나게 켜는 것으로 그녀를 두 번, 세 번 조롱했다.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핥으며 탄식했다.
『제발 그만둬요! 당신네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아요?!』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딘은 드디어 조각 러그를 치우고 카펫을 싹 걷어내기 시작한 샘을 곁눈질로 보았다.
정확하게는 그가 보고 있는 건 동생이 아니라 화장이 말끔하게 지워진 맨 바닥이었다.
미모의 이집트 공주를 보쌈하는 식으로 카펫을 돌돌 말다 말고 샘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의견을 구하려는 걸까, 그가 턱을 들었다.
나도 봤다며 딘이 눈짓했다.

이곳 바닥에도 무늬가 있다.
또다. 헥사그램이다.

재앙이 선포되어 두꺼비의 비가 대지로 내렸다. 차가운 파충류의 뒷다리로 얼굴을 얻어맞은 것도 아니건만 재니스가 의미가 불분명한 비명을 질러댔다.
『안 돼, 안 돼~!! 아직은 때가 다 차지 않았어! 만지면 안 돼~!!』
그걸 무시하고 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중에 세척제에 적신 솔로 마루를 박박 문질러 그 흔적을 지웠죠. 그건 무척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오로지 혼자서, 그것도 남들 모르게 닦아내야 했어요. 덕분에 둥글게 원 모양으로 나무가 상했죠. 그치만 위로 카펫을 새로 깔면 모든게 감쪽같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요, 당신은 이 모든게 성공적으로 은폐되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수 년동안 안심했어요...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얼굴을 찌푸렸다.
『흔적을 지운다고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죠. 화상 자국처럼 머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어요. 곰팡이 냄새, 지하실의 탁한 공기, 불러도 오지 않는 엄마, 절대로 볼 수 없는 태양... 그러니까 당신은 그게 옳지 않은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감옥 같은 곳에서 무려 7년 동안이나!』
비난의 빛을 띄고 딘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려 7년 동안이나! 바로 그 점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도대체 왜 그랬던 거죠?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 집 지하에 갇혀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었잖아요.』
동시에 화가 나서 외쳤다.
『그게 어떤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도 당신은 당신 부모님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똑같은 일을 했어요! 바로 이곳! 여기에서! 당신의 집에서!』
발을 굴러 헥사그램 문장을 짓밟았다.
『대답해! 어린 아이에게 뭔 짓을 저질렀느냔 말이다! 이 망할 잡년아!』

Posted by 미야

2007/05/09 21:54 2007/05/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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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맨날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급조했습니다. 이거, 시즌 피날레가 다가오면서 피 말라 죽겠군요. 스트레스 받아서 일상 생활마저 망치고 있어요. 촬영을 모두 마친 그들이 30분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까닭이라는게 <내용이 이 모양이면 3시즌은 물 건너갔어. 다른 쇼를 알아봐야겠군> 라는 것 때문으로 밝혀지기만 해봐! 쥰쥰은 도시락 폭탄을 들고 크립키 테러하러 미국 갈테다! 크릉! ※


주어진 시간이 겨우 5일 - 거기다 이미 사흘을 소비 - 라는 강박관념이 드넓은 사바나 초원으로 불을 질렀다. 코앞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매캐한 연기 내음이 섞이자 수풀에 숨어있던 하이에나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끼잇끼잇 울었다.
불길이 그들이 있는 곳까지 이르려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차갑게 식어버린 모카라떼를 옆으로 치운 샘은 뻣뻣해진 뒷목덜미를 손으로 문질렀다.
이제 하이에나는 정신 나간 개처럼 짖기 시작했고, 새끼를 품은 짐승들은 서둘러 이동을 결심했다.
징조는 대흉.

일이 그 지경인데도 딘은 강 건너로 화염이 치솟았다며 느긋한 모습이다. 정말로 5일이 지나면 동네를 뜰 작정인지 꾸려놓은 짐을 도로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가방은 자동차 트렁크로 던져졌다. 무섭다며 울부짓는 하이에나만 꼼짝없이 바보가 된 셈이다.
샘은 그런 형의 귓바퀴를 세게 잡아당기며「평소에 생각이라는 걸 하고는 살고 있는 거야?!」라고 마구 호통을 치고 싶었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그런 짓을 하려면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엄마 메리의 손을 간절히 붙잡고「제가 형 할게요. 딘 말고 저를 먼저 낳아주시면 안 될까요.」애원을 해야 한다.
머리를 잡아뜯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공상을 해야 할 정도로 형은 그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임팔라의 뒷자석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해서 EVP를 녹음한 파일을 반복하여 듣고 있는 그는 마치 흘러간 유행가를 감상하는 철부지 청소년처럼 보였다. 언뜻 보니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박자까지 맞추고 있다. 심각함이라던가, 진지함은 빵 부스러기마냥 죄다 어디다 흘리고 왔다. 경찰서에 가서 분실물 신고라도 하고 싶다. 정 안 된다면 마녀의 집을 빠져나온 헨델과 그레텔처럼 숲속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바구니에 주워담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차갑게 쏘아붙이는 소리가 그래서 나왔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어...』
대답도 대충대충.
『뭐야, 그 태도는. 진짜로 레드 제플린 노래를 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딘.』
『스콜피언즈네요.』
약이 바짝 올라 성을 내는 동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추워요... 엄마?》
그래봤자 이미 골백 번은 넘게 들은 파일에서 이거다 싶은 점을 새롭게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유령은 - 또는 유령이라 짐작되는 그 무엇은 전화질은 무지 좋아하는 주제에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혼잣말만 하고 있다. 그것도 춥다, 어둡다. 외롭다. 이 세 가지 전통적 주제에서 뱅글뱅글 돌았다.「내 이름은 라일라이고, 꽃다운 나이 열 다섯에 폐렴으로 죽어 1982년에 그린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식으로 상세한 수다를 떨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정녕 욕심이었다.
진절머리를 내며 고작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하소연에 재차 귀를 기울였다.
《추워요...》
안 되겠다.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새로 놔드려야겠다.

반면 두 번째 샘플은 이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저 나쁜 년의 각을 떠버려...》
딘은 제일 먼저 기계적 조작 없이도 사람의 귀로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엄청난 에너지다. 거기다 상당히 거친 말투다. 화가 단단히 났고, 명령조다. 그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악의가 가득하다. 세상에, 각을 뜨라니. 가엾은 전쟁 포로들의 껍질을 산 채로 벗겨냈던 고대 멕시코로 착각한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다. 아니, 그것보단 엄마를 찾는 어린애에서 곧장 원한에 사무친 원령으로의 승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오래된 보호의 주문.
그리고 증오에 찬 목소리.

음악 감상(?)을 끝낸 딘은 뿔딱지가 난 것이 분명한 샘에게로 돌돌 뭉친 휴지 조각을 던졌다. 휴지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동생의 정수리를 정확히 맞추고 바닥으로 굴러갔다. 그런 것에 맞았다고 아플 리 없건만 샘은 두 눈을 시퍼렇게 치켜뜨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어이, 동생아. 조사는 잘 되어가냐.』
『누구 덕분에 대단히 잘 되어가고 있지.』
그리고는 보복이랍시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 딘을 향해 도로 던졌다.
어깨를 살짝 비틀어 이를 피하고.
『볼.』
딘은 투수의 제구 능력이 형편없음을 마음껏 비웃었다.

『좋아, 마이너리그.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되었니?』
『장난치지 마. 자동차 안이 쓰레기 천지가 되면 곤란해지는 건 바로 형이야.』
샘은 또다시 휴지를 돌돌 말고 있는 딘을 향해 단단히 경고를 주었다. 그제야 후회막급이 된 딘은「어머머! 내가 우리 베이비에게 무슨 짓을?!」이라 혼잣말하며 떨어진 휴지를 부랴부랴 치웠다.
하여간 진짜 못 말린다. 샘은 설명에 앞서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쉬었다. 답답한 자동차 안에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잠복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게 되는 이상 서로 조심하는 수밖엔 없다. 누구는 전혀 조심을 하지 않고 있어서 문제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게에서 얻은 비닐 봉지를 쓰레기통 대신 사용하라 내밀었다.

『아무튼 전통적으로「일곱 해」라는 건 저주가 풀어지는 햇수이자 계약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햇수야. 성경에 나오는 안식년인 셈이지. 레위기 25장에는 6년 동안 밭을 파종하고 포도원에서 열매를 거두어도 7년째가 되면 땅을 쉬게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 저절로 자라난 곡식이나 포도 열매는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게 규칙이었어. 이런 이미지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중세 시대엔 마녀가 마법을 걸어 사람을 돼지로 만들어도 7년째가 되면 사람으로 돌아온다고 믿었어.』
『와우! 돼지를 잡아 푸짐한 저녁 반찬으로 먹기 전에 7년은 꼭 기다려야겠군. 혹시라도 그게 돼지가 아니라 몹쓸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면 곤란하잖아.』
정 그렇게 걱정이 되면 아예 돼지 고기를 먹지 마 - 라고 샘이 빈정거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였던 솔론의 말에 따르면 일곱 살은 최초의 인생 전환기야. 그는 사람의 생애를 7×10 으로 봤거든. 솔론이 생각한 사람의 적정 수명은 70세 - 그 첫 번째 과도기인 일곱 살이 되면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게 되지. 이때부터 인간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니까 어른으로서 노동 일에 가세해야 한다고 보았어. 풀을 베고, 밭일을 돕고, 우유를 짜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길어오고, 세탁을 하는 등의 일들을 해내야 했지.』
『와우! 감옥에서 30년 썩겠다. 그래선 어린애 학대잖아.』
『꼭 그런 것도 아니야, 딘. 옛날 사람들은 아동기를 사춘기, 청년기, 성인과 구분되는 삶의 한 단계라는 걸 생각하질 않았어. 심지어 7살 미만의 아이는 영혼이 없는 동물과 마찬가지라고 여기기도 했으니까. 천 년 전에는 일 하러 밖에 나가기 위해 엄마가 아기를 바구니에 넣어 벽에 하루종일 걸어두기도 했어. 현대인과는 아무래도 감각이 틀리니까 얼굴이 샛노랗게 된 아이들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지.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걸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 뭐래도 사실상 별종이었던 셈이야.』
『거 되게 무섭구먼! 하지만 살짝 이해가 가는 것도 사실이야. 난 네가 일곱 살이었을 적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거든. 앉으라면 서고, 서라고 하면 앉고... 할 수만 있다면 네가 나에게 가까이 오는 걸 금지하고 싶었어.』

샘의 표정이 극단적으로 변했다.
『딘. 거기서 왜 이야기가 그리로 가는 거야?』
『원한이 깊어서 그런다, 아가. 모처럼 새로 세탁해서 갈아입은 셔츠가 동생의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선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될 수밖에 없잖겠냐. 진짜지 넌 구제불능의 울보였어. 그리고 악당이었고. 내 첫 번째 여자 친구였던 에밀리에게 냄새 고약한 썩은 우유를 끼얹고 지랄했던 걸 떠올리면 아직도 손에서 땀이 나.』
『거짓말! 내가 아무렴 썩은 우유를 여자에게 던졌을까! 그런 기억은 없어. 그리고 형이 첫 번째로 키스한 여자 친구의 이름은 에밀리가 아니라 엘리슨이었다고.』
『뭐야. 무슨 머리통이 그래. 그놈의 잘난 대갈통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기억하는 거냐? 아빠랑 내가 에밀리인지 엘리슨인지 뭔지 하는 여자애 엄마에게 손바닥이 닳도록 빌며 용서를 구했다는 건 생각 안 나? 진짜지 그놈의 암모니아 냄새 풀풀 나는 우유는 지독했다고. 거기다 넌 에밀리인지 엘리슨인지 하는 아이에게 똥 냄새 난다고 욕설을 퍼부어서 그 가엾은 아이가 일주일동안 아예 학교를 못 나오게 만들었어. 덧붙여 나 역시 네놈 엉덩이 껍질을 벗겨서 일주일동안 걷지도 못 하게 만들어 주었고. 젠장,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도대체 답지않게 왜 그런 나쁜 짓을 한 거니? 새미.』
『모, 몰라. 기억에 없어...』
『흐응, 어련하실까. 스탠포드 대학에서 너에게 장학금을 준 건 순전히 실수야.』
『어, 어린애였잖아! 제대로 된 판단력을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그려. 그러니까 살짝 이해한다는 거야. 일곱 살 미만의 아이는 영혼이 없는 동물과 마찬가지...』
거기까지 말한 딘은 이마를 주먹으로 치며 입을 다물었다.

『아이고, 이런. 바로 그건가.』
애완동물, 그리고 일곱 살 미만의 아동의 공통점은?
연약한 자아. 의심되는 영혼의 부재.
『빌어먹을!』

일의 돌아가는 가닥을 대략으로 잡은 딘은 상체를 앞으로 바짝 내밀어 눈앞의 2층집을 응시했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남편은 귀가를 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마 무지하게 바쁜 날인가 보다.
그렇다면 재니스는 혼자 거실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아니다. 재니스는 TV더러 바보 상자라 그랬다. 텔레비전이 있어도 순전히 장식품이다. 그럼 다시 정정한다. 스탠드 조명 아래로 석간 신문을 펼쳐놓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뉴스에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여자는 남자들 틈새에서 바지를 입고 애쓸 것이 아니라 눈화장을 완벽하게 한 채 진공 청소기를 말끔하게 돌려야 한다, 이러면서...
『지금은 1950년대가 아니야, 딘. 진공 청소기 돌리면서 마스카라를 왜 발라.』
딘은 동생을 무섭게 쏘아보며 버럭 화를 냈다.
『거, 무지하게 꼬투리 잡고 있다! 그런 거 말고 보다 건설적인 주장을 하면 안 되겠니. 예를 들자면 현관을 깨부수려면 망치보단 도끼가 더 효율적이라던가... 응?』

샘은 심하게 짜증을 내는 형을 근심에 젖어 쳐다보았다. 갑자기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더니 설명도 없이 트렁크를 열고 중장비처럼 생긴 각종 무기류를 챙기고 있음이다.
혹시라도 남들이 볼까 무서웠다. 목소리를 바짝 낮춘 그는 딘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형! 도끼는 왜 들고 그래. 제 자리에 내려놔. 응? 아직 저 사람들은 깨어 있을 거야. 아무리 못 해도 자정까진 기다려야 할 걸. 초기 청도교 이주민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 해도 9시부터 잠자리에 들지는 않아. 제발, 형! 이러다간 경찰이 체포하러 들 거야!』
『물론 그러시겠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당장 구해내야 할 어린애가 저 안에 있단 말이다!』
그렇게 외친 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동생에게 산탄총을 던졌다.

Posted by 미야

2007/05/06 15:43 2007/05/0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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