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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뱀파이어는 언제 나오냐고요? 어레? 아직 한 번도 안 나왔습니까? 이, 이럴 리가 없는데... ※


리가 가져다 준, 이름을 무어라 붙이기 대단히 난감한「크림」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겼다는 건 아니다. 척 보기에도 무지 가려워 보이는 어우러기가 돋지도 않았다. 단지...
『어라. 딘이 어디 갔지.』
구제불능의 칠푼이라도 된 기분이다. 외계인이 그의 뇌를 꺼내 초강력 세척액에 넣고 한참을 흔들고는 껍데기만 남은 걸 제자리에 억지로 끼워맞춘 건 아닐까 돌연 의심스러워졌다. 1976년에 초판 인쇄된《악마와 기호학》책을 옆구리에 끼고는 걷는 속도를 한층 더 높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샘의 표정이 굳었다. 좌우를 열심히 두리번거렸음에도 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건물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헷갈린 거 아니냐고? 설마. 이곳은 대형 할인 마트가 아니라 거미줄이 천장에 들러붙어 있어도 하나도 안 어색한 지역 도서관이다. 평일 대낮부터 열람실에 죽치고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팔자 좋은 인간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낡은 건물을 불도저로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차라리 휘트니스 센터를 새로 짓는게 지역 주민에게 이득일 거라고 주장하는 일부 정치가의 발언이 폭 넓은 지지를 얻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평일 낮 무렵의 이곳의 이용률은 진짜지 형편 없었다.

『환장하겠군.』
짧게 다듬은 고슴도치 머리통을 찾아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기웃거렸다.
딘은 샘과 헤어지기에 앞서 지역 신문을 모아두는 코너에 먼저 가 있을테니 용무가 끝나면 그쪽으로 오라 미리 말해두었다. 그러니까 딘은 신문들 틈새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종류별로 묶어둔 신문은 보였어도 예순 살 영감님처럼 그걸 한가롭게 뒤적거리고 있어야 마땅한 인간은 시야에 안 들어왔다는 거다.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러댔다. 평소엔 눈을 감고 있어도 딘이 대략 어디쯤에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흡사 머릿속에 고성능 레이더라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불이 켜지면 - 레이더가 작동하면 잠자코 그리로 가기만 하면 되었다. 딘은 샘을 위해 일부러 손을 높게 들어 흔들거나, 깡충깡충 뛰지 않아도 되었다. 등 돌리고 숨어 손가락으로 은밀히 코를 후비고 있기만 해도 되었다. 거기에 있고, 그저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샘은 자신의 피붙이를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차량 500대를 동시에 세워둘 수 있는 대형 주차장에서 임팔라를 콕 찝어 찾아내는 건 힘들었지만, 그 속에 딘이 앉아만 있으면 헤매지 않고 일직선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냄새 제거제 - 정확하게는 냄새 변화제이지만」를 사용하고부터는 눈에다 가리개를 씌워놓기라도 한 것처럼 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10m 반경으로 들어오기만 해도 고개를 번쩍 들던 시절이 모두 거짓말 같다. 악질의 장난꾸러기 요정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게 확실하다. 머릿속 레이더가 비 맞은 고물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얼씨구? 저 바보가 지금 장난하나.』
잿빛으로 변해선 허둥대며 자신을 두 번이나 지나쳤다. 그런 동생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딘은 팔꿈치를 괴고 이걸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를 궁리했다.
① 샘을 끌고 가까운 안경점을 방문하도록 하자.
② 눈이 침침해졌을 적엔 소의 간을 먹이면 좋다고 들었다. 싫다고 해도 억지로 먹이는 거다.
③ 책은 30cm 이상, TV는 2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봐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자.

이제 동생은 복도쪽을 살피며 손바닥을 바지춤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딘이 화장실에 간 것이 틀림 없다고 애써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들어버린 시금치가 되어선 시계를 한 번 쳐다봤고, 길게 목을 빼고 신문 거치대 쪽을 다시 보았다. 아랫입술을 신경질적으로 깨무는게 금요일 저녁 데이트를 바람맞은 한심스런 여자의 모습이어서 딘은 화를 내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다.

『멍청아.』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샘은 우뚝 멈추어 섰다.
『나는 세바스찬 카인 (*영화 할로우맨의 주인공) 이 아니란다. 어딜 보고 있어.』
샘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잠시 후엔 얼굴을 붉히고 어색한 웃음을 떠올렸다. 딘은 처음부터 그의 바보 짓을 죄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표정만 봐도 알겠다. 벼락이 치기 전의 어두컴컴한 하늘이었다. 어쩌면 피뢰침을 꽃 대신 머리에 꽂아야 할지도. 그랬다간 십중팔구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숯검댕이 되느니 차라리 외모쪽을 포기하는게 낫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탕탕 치면서 딘이 말했다.
『훈련이 필요한 거니, 아님 안경이 필요한 거니.』
『몰라.』
어렸을 적에 딘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동생을 훈련시키기 위해 빛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새카만 방에서「술래잡기」게임을 하곤 했다. 불을 끄고 커튼을 내린다. 그 속에서 딘은 기척을 죽이고 숨는다. 샘은 숨 소리도 내지 않으며 민첩하게 돌아다니는 형을 붙잡기 전까진 방에서 나갈 수도, 잠을 자러 갈 수도 없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런 건 싫다고 울부짖어도 그놈의 망할 게임이 도중에 중지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중에 그만두기는커녕 그의 형은 벌벌 떠느라 바쁜 샘의 등을 아프게 꼬집곤 했다. 소리를 지르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머리카락을 뽑아 달아나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딘에겐 한 없이 장난에 가까웠을지 모르지만 샘에겐 안 그랬다. 지금도 그걸 하자고 하면 당장 100리 밖으로 달아날 거다. 샘은 여전히 어둠이 끔찍이 싫었고, 어둠에 숨은 딘도 싫었다.

『네가 모르면 나는 어쩌면 좋냐. 몸이 둔해진 거야, 아님 눈이 나빠진 거야. 어느 쪽이야.』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흐응... 그러실라우? 참으로 잘 나셨습니다, 한 때 변호사를 희망했던 나으리. 맘대로 하쇼.』
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소매에 앉은 귀찮은 진드기를 짓눌러 죽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는 곧장 시선을 내리깔고 거치대에서 끌어내린 지역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딘의 관심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굴고 있는 샘이 아니라 오늘자 뉴스로 온통 쏠려 있었기 때문에 샘이 안경을 사야 한다고 말을 꺼냈어도 대충 넘어갔을게 뻔했다. 뭔가를 애타게 호소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다니엘 크로포드와 조 와이저. 29세와 30세.』
볼펜 뒷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딘이 말했다.
『누구야, 그게.』
『사흘 전부터 집에 안 돌아왔대. 경찰은 어제 오후에야 한적한 지역 도로에서 조 와이저의 포드 승용차를 발견했고, 그제서야 가족들의 불평처럼 그들이 술에 찌들어 들판 한 가운데로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고약한 상황에 처한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어. 그런데 그게 말이야, 지갑이나 신분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몸싸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는군. 차는 고장난 곳 없이 멀쩡했고, 도중에 기름이 바닥난 것도 아니었대. 도움을 구하러 가까운 주유소까지 덜렁덜렁 걸어갔을 리는 없다는 거지. 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칼리아나」라는 이름의 술집이고, 둘이서 같이 한 검정머리 여자를 두고 집적거렸다는군.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아서 여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다니엘과 조는 그로부터 30분 정도 서로 가볍게「네 탓이네」공방을 했어. 그리고 음주운전이라는 끔찍한 범행을 마지막으로 이 두 사람은 공중으로 휙~ 하고 사라졌어. 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은 이게 전부야. 어때, 네 생각은?』

샘은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하고자 최대한 신중해지기로 했다.
『그야... 그 두 사람의 평소 품행이 어땠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지. 한 여자를 두고 같이 작업에 들어갔다며. 삿대질로 시작했다가 싸움이 거침 없이 커졌을 수도 있어. 게다가 두 사람 다 술에 취했다며. 사소한 시비 끝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총으로 위협해서 차에서 내리라고 윽박지르진 않았을까. 내 생각은 그래.』
『그럼 최소한 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어야지. 하지만 꽤나 가능성은 높은 얘기야.』
시작은 좋았다며 딘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그리고 더 계속해보라는 식으로 볼펜을 까작거렸다. 샘은 용기를 얻어 자신이 생각해낸 그림 퍼즐을 하나 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동차 안에서의 다툼 흔적은 없었다고 그랬잖아? 그럼 밖에서 싸웠겠지. 총이 무서워서 일단 조수석에서 사람이 내렸어. 그치만 대단히 열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엿이나 먹어라 심정으로 자동차 바퀴를 발로 걷어찼어.』
『흐응. 네가 내 임팔라에게 하던 것처럼?』
그 즉시 샘은 기겁하곤 숨을 멈췄다.
그걸 봐, 봤구나!
전기 자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불알이 콩 크기로 오그라들었다.
『나, 나는...』
그래봤자 딘은 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호흡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샘은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붉게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며 호통을 치면 덜 무서웠을 거다. 속에선 용암이 끓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건 나찌의 히틀러가 뒷짐을 지고 베를린 올림픽 대회 개최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늘 높이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다니면 뭐 하누. 폴란드는 머지 않아 쑥대밭이 될 터인데.

『계속해, 새미. 그러니까 자기 차를 걷어차자 격분한 조가 다니엘 크로포드를 따라 운전석에서 내려선 제발 침착합시다 애원하는 친구를 향해 총을 쐈다?』
『저, 저기... 이, 이건 짚고 너, 넘어가자. 혀, 형도 나를 총으로 쏠 거야?』
『어허! 샘! 여기서의 문제. 조 와이저는 다니엘을 총으로 쏘지 않았어. 근방에서 혈흔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거든. 뭐, 허공으로 총알을 발사해서 겁만 줬다고 쳐도 조에겐 총기를 구입한 기록 자체가 없었어. 그렇다면 겁 대가리 없게 불법 무기를 손에 넣을 정도로 조 와이저가 막 나가던 사내였던가? 그건 아니라고 봐. 쬐끔 탈선의 기질이 있던 동네 술주정뱅에 불과했다고. 따라서 총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도 괜찮을 거다. 아쉽지만 네 추측은 처음부터 잘못되었어. 그리고 여기서 신문 기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딘은 겁에 질린게 분명한 동생을 흘끔 쳐다봤다.
『난 너를 총으로 쏴죽이진 않을 거야. 달랑 한 방으로 끝내는 건 결단코 내 스타일이 아니잖냐. 그치?』
『그, 그래.』
샘은 그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만족하며 딘은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좋아. 그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들「술만 먹음 망나니」새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툰 흔적도 없어, 접촉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니야... 그럼 뭘까?』
『글세. 노상강도?』
『지갑이 없어졌으니까? 그래, 네 말대로 강도를 당했다고 치자. 그럼 그 두 사람은?』
『강도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체를 치웠을 수도 있잖아.』
『그 강도는 시간이 남아 돌았다든? 보통은 지갑만 잽싸게 챙겨서 달아나는게 정상이야.』
『그렇다면 형의 생각은 그들이 강도에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딘은 그 즉시 자세를 낮추고 샘과 눈을 맞췄다. 기묘한 긴장감이 그의 얼굴 위로 떠올라 있었다.

사나운 개들이 그들을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그들을 둘러 수족을 찔렀도다.
실제로 으르렁대며 뼈를 씹어대는 개들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샘... 이걸 봐. 이걸 보라고. 드디어 녀석들이 왔어, 이들은 뱀파이어에게 납치당한 거야. 그들이 데려간 거라고. 내 직감으로는 그래. 아빠가 설명하던 걸 떠올려 봐. 뱀파이어는 여덟에서 열 명이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가 몇 갈래로 나눠져 인간을 사냥한다. 그리고 사냥한 인간을 산 채로 소굴로 데려가선 몇 일이나 몇 주에 걸쳐 피를 빨다가 결국 죽게 만든다.』
『나도 그건 잊지 않았어, 딘. 하지만...』
그와는 달리 이게 뱀파이어의 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샘은 상체를 최대한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댔다.
『너무 앞서가진 말자. 알고 봤더니 단순한 사고일 수도 있잖아. 뱀파이어 엄니가 근방에서 나온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멋대로 추측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옳으신 말씀!』
그런 샘의 어깨를 누군가 강하게 찍어 눌렀다.
샘은 화들짝 놀라 얼른 뒤를 돌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붙잡고 있는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센지 목을 돌리는 동작 자체가 쉽지 않았다.
『신께서 욥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독수리는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 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여.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
『리?!』
놀란 건 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소식을 손에 쥔 창백한 유령의 등장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6/17 14:36 2007/06/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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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07/06/17 15:37 # M/D Reply Permalink

    9편이 올라와 있네요~~>,<
    아, 근데 샘은 왜 딘이 뻔히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는데도 찾지를 못한걸까요??
    정말 크림이 부작용?? 아니면 그게 크림의 효능?? ^^;
    9편 잘 읽었습니다...^^a 기분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2. 미야 2007/06/17 22:35 # M/D Reply Permalink

    아무래도 크림의 효능에 더 가깝겠지요? 강아지님은 주인님 체취가 바뀌니까 정신을 못 차리고 계십니다. 와하하! 이즈님도 남은 일요일 밤을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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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3시즌 스포를 접하고는 드라마 시청 자체를 포기하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짜게 식었습니다만, 주살(呪殺)을 희망한 CW 관계자에게 심각한 설사병 저주를 내리는 것으로 충격을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애쓰고 있습니다. ※


목숨이 경각에 걸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사람을 아예 망쳐버린다. 덕분에 야성에 가깝다는 시베리아 벌목꾼들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정도로 대다수의 헌터들은 성격이 아주 거칠다. (존 윈체스터가 그랬다) 순전히 제멋대로라서 남들 배려하는 일엔 꽝이다. (딘이 그렇다) 고집도 무척 강하고, (샘이 그 대표격이다) 폐쇄적인 교우 관계로 주변으로부터 별종 취급을 받기도 한다. (바비의 오두막은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줘도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의 은신처다) 물불 안 가리고 만사를 폭력으로 해결하기도 하고, (뱀파이어 헌터 고든) 특정 무기류 - 이를테면 칼 같은 물건에 눈이 뒤집혀 탐닉하기도 한다. (조)
따라서 딘은 상대가 어떠한 돌출 행동을 보여도「저 사람은 헌터니까」이 한 마디로 모든 걸 납득하곤 했다. 물구나무를 서서 밥을 삼켜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치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충격과 당혹스러움이 밀물이 되어 무릎 높이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바위는 바닷물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아니, 가라앉는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은 대륙 아틀란티스다.

『항상 하던대로 해, 항상 하던대로. 휴가를 즐겨도 괜찮고, 하와이나 알라스카로 헌팅을 나가도 상관 없어. 다만 두 사람이 멀리 떨어져 각자 행동하는 일만 없도록 해. 자동차를 훔쳐도 꼭 둘이서 같이 훔치고, 행여나 일이 잘못되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도 팔짱을 끼고 부부처럼 나란히 입장하는 거다. 내 말이 무슨 소린지 알겠지?』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난 지금부터 따로 조사에 들어갈테니 그리 알아. 뱀파이어 루더의 생존한 가족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볼게. 아울러 그들의 현재 위치도 추적할 거야. 아참, 비용은 하루에 400달러고 오로지 현금만 받는다.』
그건 또 뭔 소리랴. 돈을 받겠다고?! 딘은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어머? 왜 이러시나. 난 흙을 파먹고 살진 않아. 대신 빵과 와인, 그리고 최고급 스테이크를 먹으며 살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설마, 전문가의 도움을 날로 먹자는 건 아니겠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딘이나 샘은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한 적이 결코 없다는 거였다. 존도 그 점에 대해선 마찬가지였고, 옆에서 오랫동안 그런 모습을 지켜봤던 딘은 헌터라면 으레 그렇게 하는 거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뭐? 돈?
샘도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눈치다. 하루에 400달러?! 경악스럽다. 일주일이면 가뿐하게 2,800달러가 된다. 여기서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5,600달러로 껑충 뛴다. 그만한 액수의 현금이 형제들 수중에 있을 리 없다. 여차하면 노트북을 팔아야 한다. 내 노트북! 샘의 안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정 뭐하면 20년 할부로 갚아도 괜찮아. 머리에 모가지가 제대로 붙어만 있으면 돈은 언제든지 갚아나갈 수 있지. 그러니 이참에 적금을 깨야 하나 걱정하진 말아. 하하하!』
속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정신없이 헤아리는 샘을 바보 취급하면서 그녀는 웃었다.
그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어린애처럼 해맑은 미소 덕분에 구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원래 사람들은 마누라의 처진 젖가슴을 두고 우스개 소리를 즐겨도 돈 문제로는 농담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웃자고 말을 꺼내도 우울증에 걸린 왕자 햄릿의 독백이다. 황금은 친어머니마저 원수로 만들고도 남는다. 돈이라는 건 어금니 사이에 물린 위험한 유리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저어, 진짜로 20년... 할부?』
걱정하며 재차 묻는 샘을 향해 리는 다시금 빙긋 웃었다.
맙소사. 비행기를 타고 가다 갑자기 난기류를 만났다.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비행기 속에서 샘은 험난했던 인생을 비관하며 눈을 감았다. 날개가 와지끈 부러지고 엔진이 꺼졌다. 동체가 빨래처럼 뒤틀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쇠붙이 사이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비행기라면 질색인 딘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척 보면 모르냐?! 우리에게 뭔 돈이 있다는 거야아~!! 이건 갈취야, 갈취!》

가난뱅이의 아우성엔 관심 없다며 핸드백을 고쳐취며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가볼게. 연락은 항상 내쪽에서 먼저 할테니 염려는 말아. 지옥에서라도 전화한다. 그러니 내 핸드폰 번호가 뭐냐고 묻지 말도록.』
그런 법이 어딨어. 이제 딘은 발을 밟힌 개처럼 굴었다.
『말도 안 돼! 막대한 위기가 닥쳤을 시 SOS 신호는 어떻게 보내라는 겨. 초능력으로?』
『초능력까진 필요 없지. 간단해. 해변가에서 모닥불을 피워. 저번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니까 외딴 섬에서 조난당한 사자도 그렇게 하더라.』
『우리더러 마다가스카 흉내를 내라고?!』
『뉴욕 동물원 출신 사자가 할 수 있으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뭐가 어렵다고 그렇게 울상이야? 쉬워. 야자 나무를 묶어 글자를 만들어. HELP. 그리고 불을 붙여.』
진짜지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샘은 신음했다.

『으아. 애시당초 애쉬에게 부탁한게 실수였던 거야.』
딘 또한 최악의 경우 임팔라를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운전을 하는 내내 불타는 석탄을 배에 품었다며 저리도 괴로워하는 것이리라.
핸들을 불규칙적으로 똑똑 치다 말고 옆으로 흘끔 시선을 던졌다.
『있잖아, 샘...』
임팔라를 못 팔면 노트북도 못 파는 거다. 샘은 재빨리 허리를 틀어 먹잇감을 노리는 흉폭한 눈빛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런 동생의 발 빠른 행동에 딘은 마음 깊숙이 상처를 입었다.

『이 자식! 내가 무슨 날강도라도 되냐?! 태도가 그게 뭐야.』
『난 잊지 않았어. 형은 예전에 내 전자 사전도 맘대로 팔아치웠잖아.』
『얼씨구? 그걸로 네 한 달치 급식비를 냈다는 건 까먹었냐.』
『차라리 밥을 굶으면 굶었어.』
『이 바보야! 해골처럼 말라서 갈비뼈로 기타를 연주하는 꼴은 난 못 봐. 넌 먹어야 했어.』
『전자 사전을 팔아서?』
『전자 사전이 없었다면 내 몸이라도 팔았어.』
회전하는 선풍기 날개 틈새로 발가락을 들이밀었어도 이보단 덜 아찔했을 거다. 단단한 쇠몽둥이로 뒷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이 샘의 등줄기를 훑었다. 덕분에 말이 더듬더듬 튀어나왔다.
『마, 말도 안돼. 아, 아빠가 아셨으면... 혀, 형을 죽이려 했을 거야.』
딘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응. 실제로도 죽이려 하셨어.』
샘은 움찔해서 그 즉시 입을 다물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집들과 상점들이 뒤로 미끌어져갔다. 고개를 들어 콘베어벨트에 묶여 빠르게 이동하는 건물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엄지손가락 사이로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가식된 표정을 짓기 위해 정말로 노력했다. 그치만 그건 너무나 힘들었고, 샘은 자신이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마지 못해 인정해야만 했다.

혀로 입술을 축인 딘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식아, 얼굴 당장 펴. 그건 농담이었어.』
『응.』
『농담이었대도, 새미.』
『알아.』
『그럼 시커먼 구정물 속에서 헤엄친 사람처럼 굴지 마. 거머리가 거기에 붙었냐?』
『미안...』
『얼씨구? 농담한 건 난데 왜 네가 사과하는 거야.』
조수석에 앉은 샘을 흘끔 쳐다보는 딘의 눈매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닥치고 여기에 뭐가 들었는지 꺼내봐, 줄리엣. 떠나기 전에 리가 나에게 주고 간 거야. 썩은 짐승 가죽을 태우는 것보단 뱀파이어의 코를 속이는데 효과가 있을 거라고 하더구나. 만드는 방법이라던가 재료들을 조목조목 알려줬어. 글씨가 적혀진 종이가 있을테니 찾아봐. 이걸 다 쓰면 다음부턴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할 거래.』
그렇게 말하고 쇼핑용 비닐 백을 동생의 무릎 위로 던졌다.

비닐 백을 열자 휴대용 샴푸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병이 나왔다.
이게 뭔가 싶어 좌우로 힘을 주어 흔들어봤다. 액체가 움직이는 찰랑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바디 로션처럼 보였다. 제법 걸죽한 반 투명한 놈이 절반 정도 담겨져 있다.
뚜껑을 비틀어 열고 그 속에 든 내용물을 한쪽 눈으로 들여다 보았다. 얼핏 보기엔 제시카가 밤마다 얼굴에 바르던 것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화장품인가?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인지라 킁킁거리고 냄새부터 맡아보았다.
『어때? 샘.』
『잘 모르겠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자극적인 악취는 나지 않았다.

동봉되어 있던 메모지를 팔랑거리며 거기에 적힌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올바른 사용법, 세안 후 일정량을 덜어 하루에 한 번 목멀미에 발라줍니다.』
진짜로 화장품인가 보다. 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메모지와 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의사항, 능력치가 높은 뱀파이어는 속지 않습니다. 효능을 맹신하진 마십시오. 이것은 완벽하게 당신을 커버해주진 않을 겁니다.』
그 즉시 비밀스러운 걸 묻기라도 할 것처럼 딘이 조용히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자외선 차단 효과는 됐어. 보습 효과는 어떻다든.』
『그 이야긴 안 적혀져 있어, 형. 대신 이런 문구가 있어. 붉은 반점 및 가려움이 느껴지면 그 즉시 사용을 중지하십시오...』
『어쩜, 친절하기도 하지.』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십시오.』
『맙소사.』
『유아의 손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슬슬 지겨워지려 하고 있다. 오른손 두 손가락을 위로 들어올리며 딱 소리를 냈다.
『오케이, 새미. 다 읽고 신호만 해줘. 언제 웃으면 되는 거지? 지금? 아니면 1분 더 있다가?』
『글세. 내 생각엔 지금 웃어도 될 것 같아.』
『하.하.하. 대단히 재밌구나.』
하지만 입으로 뱉은 말과는 달리 딘은 그렇게 썩 재밌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위장에 가스가 가득 차서 괴롭다는 식으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어쨌든 샘은 용기를 내어 크림 약간을 손가락으로 덜었다. 약간은 미끌거린다. 면도할 적에 쓰는 비누 거품처럼 말이다. 그리고 처음 느낌대로 그렇게 희지도 않았다.
『후우...』
그걸 딘의 목덜미에 대고 - 정확히 맥박 치는 부분에 대고 가만히 문질렀다.
임팔라가 끼익 소리를 내고 옆으로 굴러가 가로수를 들이받으려 했다.
S자 곡예 운전을 마치고 가까스로 제 차선으로 돌아온 딘은 발을 난폭하게 굴러대며 화를 냈다.
『샘! 이 미친 자식!』
『왜 그래. 난 여기에 적혀진 그대로 했을 뿐이야.』
『그럼 내 목이 아니라 네 목에다 발랐어야지! 까무라치는 줄 알았어. 놀랐잖아!』
『그치만 어쩐지 꺼림직스러워서...』

샘은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크림의 제조법과 그 재료에 눈길을 돌리자 식은땀이 나려 했음이다.
꿀과 버터, 말린 장미꽃. 마조람(허브의 일종)의 잎사귀. 회향의 줄기.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서른 두 번째 줄에 적혀진 재료 목록에 이르면 그 누구라도 안색이 돌변할 것이다.
고양이 똥.
여기서 다시 마흔 일곱 번째. 여자의 머리에서 떨어진 비듬.
쐐기를 박는 쉰 여섯 번째. 개구리의 생식기. 괄호하고 수컷.
자신이 그의 목에 무엇을 묻혔는지를 깨닫자 머리가 핑글 돌려고 했다.
깨끗한 손수건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샘은 정신 없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딘? 솔직히 난 이 여자를 못 믿겠어. 그냥 예전처럼 우리끼리 해결할 수도 있잖아. 정 뭐하면 바비 아저씨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어. 난... 그러니까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딘은 대답을 회피하고 핸들을 오른편으로 돌렸다.
『우리 둘이서 할 수 있다고. 우리 둘이서... 응?』
애원하다시피 해가며 눈꼬리를 내렸다.
아무리 그래봤자 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를 틀고 오늘의 날씨를 체크하면서「오후엔 제법 덥겠구나」라고 의미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6/15 10:22 2007/06/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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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07/06/15 11:34 # M/D Reply Permalink

    으하하~~이 형제들 정말 귀엽습니다...ㅋㅋㅋ
    근데 무슨 크림의 재료가 그리 많이 들어간건지...정말 그게 다 들어간걸까요??ㅋㅋ
    그걸 또 형의 목에다 발라보는 샘이라니...으하하...오늘 와서 미야님 덕분에 잘 웃다가 갑니다...재밌어요...^^a
    그러고 보니 감상을 남기는건 처음이군요..ㅡ_ㅡ; 죄송해요..ㅠ_ㅠ;;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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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원작 설정에서 한 100만광년쯤 멀어졌습니다.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메텔과 기념 사진 찰칵. ※


프로 도박꾼이 스페이드 에이를 찾는답시고 돋보기를 들고 한참을 쳐다봐도 속내를 제대로 감출 줄 아는 딘이다. 그가 포커판에서 잔뼈 굵은 꾼들을 상대로 판돈을 거머쥐는 건 다 까닭이 있다. 배회하는 유령마저 가뿐하게 속여넘길 줄 아는 능청스러움은 지금도 제 기능을 다하는 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색색으로 빛나는 요란한 경고등에도 불구하고 태평스런 어조로 눈 하나 꿈쩍 않고 반문했다.
대신 테이블 아래에선 상황이 달라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동생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 즉시 샘은 억지로 꾸며낸 것이 역력한 웃음을 띄고「오늘은 날씨가 참 좋죠? 하.하.하.」식의 엉뚱한 소리를 읊었다. 백설공주가 독을 바른 사과를 일곱 조각으로 잘라 상한 굴요리와 같이 해서 난쟁이들에게 권하는 식이었다. 리가 눈알을 굴려댔다. 어쨌거나 이제 바톤은 딘에게로 넘어왔다.

『헛수작 부릴 생각일랑 말고 내 눈을 똑바로 봐, 딘 윈체스터. 방금 말한 그「콜트」라는 거 말이야. 1835년에 사무엘이라는 작자가 만든 오래된 총을 말하는 거겠지? 은으로 만들어진 총알은 모두 13개. 손잡이에 펜타곤이 음각되어 있고, 기다란 총신에 브라브라 뭐라고 문자가...』
『제법 잘 아네.』
뜨거운 풀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바비큐를 굽느라 고생하는 사람처럼 그녀가 짜증을 부렸다.
『빌어먹을! 농담이 아니야. 콜트가 너희들의 목적이라면 난 여기서 깨끗이 손을 떼겠어.』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처음이다. 그거야 내 수용 범위를 한참 넘기 때문이지! 난 그렇게 엄청난 건 감당할 수 없어. 맨주먹으로 뱀파이어 임금님과 맞장을 뜨는게 차라리 낫겠다. 맙소사, 이걸 봐. 너희들 때문에 소름이 돋았잖아!』

일단은 그녀더러 진정하라 다그쳐야 했다. 보통의 인간은 소름이 돋았다고 하면서 팔뚝을 내미는 법인데 저놈의 여자는 블라우스 자락을 좌우로 벌려 자기 가슴을 드러냈다. 덕분에 식당 안의 남자들 눈이 죄다 앞으로 돌출되어 나왔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고 하면서 입이 아니라 엉뚱한 어깨에다 들이붓기도 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밀어올리고 핸드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이때다 터뜨리는 작자도 있었다.
이가 갈린다. 뜬금 없는 플래쉬가 성가시기도 하거니와 딘은 도대체 이 상식 밖의 여편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울러 어딘가로 굴러가버린 자신의 이성을 찾아 식당 바닥을 열심히 더듬거리고 있는 다수의 손님들 또한 충분히 골칫덩이였다.「마이클」이라는 이름이 적혀진 조각 하나를 주워 원래 주인을 향해 재빨리 던져주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쳤다.

『언니는 스트립 쇼가 취미야? 보는 우리가 부끄러워 죽겠어. 제발 가슴 좀 가렷!』
『뭐가 어때서 그래. 여자 가슴 처음 봐? 두 사람 다 R등급 시청이 가능한 나이잖아.』
『나는 몰라도 내 동생은 아직 아니야! 얜 아직 어리단 말이야. 진짜지 이대로 쫓겨나고 싶어?! 경고하는데 자꾸 이러면 우리가 먹는 밥 값의 전부를 그쪽이 부담하게 될 거야. 아무튼 우리가 콜트를 찾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당신을 부른 건 뱀파이어 때문이지 콜트 때문이 아니라고. 댁은 그 점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
『잠깐만. 콜트로 루더를 죽였다며. 그건 다시 말해 콜트가 너희들 수중에 있다는 얘기잖아.』
『있었다 - 과거형으로 정정해야 옳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으앗! 설마, 그걸 뱀파이어가 낼름 집어갔다는 건 아니겠지?!』
『그렇진 않아. 젠장... 하여간 설명하려면 무지 길어.』

정말로 길다. 딘은 노란 눈의 악마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딱 하나 남은 콜트의 총알을 차례차례 떠올리고는 이마를 접었다. 머릿속에서 잔뜩 녹이 쓸어버린 그네가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귀에 거슬리는 금속의 높은 음이 싫어 그네의 움직임을 멈추고자 줄을 잡았다. 순간 무거운 문이 탕 소리를 내며 닫겼고, 한 남자가 사무적인 어조로「사망 시각은 오전 10시 41분...」이라 선언한다. 참지 못하고 샘이 아빠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에 동조하여 영혼을 갉아대는 쇳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꼭 쥐어오는 샘의 손이 차갑고 축축하다. 아아, 미칠 것만 같다. 머리카락을 모조리 쥐어뜯고 싶다.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시선을 내리깔고 커피잔을 들었다.
이런 격정,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맹세라도 해줘?』
『알았어, 딘 윈체스터. 콜트가 목적은 아니라는 거지?』
상체를 뒤로 젖혀 등받이로 몸을 기대면서 리는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믿을게.』
그녀는 이외로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보다 더 고약할 순 없겠다. 하필이면 콜트로 뱀파이어를 죽이다니.』
『어째서? 콜트는 초자연적 존재를 죽일 수 있는 궁극의 무기잖아.』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먼. 너희들, 그 무기를 만든 사무엘이란 자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지? 그러니까 그렇게 태평스런 소리를 지껄이는게야. 질문 하나 할게. 그가 만든 콜트의 총알이 하필이면 13개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어?』
당연히 그런 적 없다. 딘은 검지손가락으로 턱을 지긋이 눌렀다.
『글세. 딱히 그 문제로 고민해본 적은 없는데... 그가 평생에 걸쳐 죽이고 싶은 대상이 아마도 모두 열 셋이었나 보지. 총알 하나당 유령 한 마리. 어때?』
진지함이라는게 요~만큼도 없는 무성의한 대답에 리의 목소리가 음침해졌다.
『기가 막혀서. 너는 바보냐.』

오늘날의 호텔이나 아파트엔 13층이라는게 없다. 불길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매달 13일에는 비행기나 기차 여행의 예매가 취소되는 일이 빈번하다. 여기다 금요일이라는 특정 요소까지 겹치게 되면 직장인들은 갖은 핑계를 대고 결근을 감행한다. 덕분에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손실액만 수 십억 달러를 가볍게 상회한다.
『독일에는「13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라는 표현이 있어. 당연히 좋지 않다는 의미야. 중국에선 음력 13번째 달을「근심의 지배자」라고 부르지. 이스가리옷의 아들 유다는 예수의 13번째 제자였어. 고대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는 13번째 궁이 까마귀 자리였는데 이는 불행의 상징이었지. 동화책에 나오는 13번째 아이의 대부는 커다란 낫을 든 죽음이고 말이야.』
이쯤해서 샘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헤브라이의 카발라에선 13을 행운의 수로 여깁니다. 아랍어에서 유일자를 의미하는 단어인「아하드」의 키 값은 13이거든요.』
아는체 하는 참견이 결코 반갑지 않은지라 리의 눈초리 쌀쌀맞았다.
『그래서 뭐. 사무엘 콜트가 유일신을 찬양하는 의미로 은총알 13개를 만들었다고?』
『아뇨. 그러니까 제 말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특정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다지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리는 여러가지 의미가 뒤섞인 긴 호흡을 내쉬었다.
『틀린 소리는 아니군. 확실히 그럴지도. 허나 이것 하나만 말해두지. 보통 불을 제압하는 건 물이지. 물을 부으면 불은 꺼지니까. 그런데 사무엘 콜트는 여차하면 맞불을 놓아 불을 끄려고 했던 사람이야. 천재였거나, 아님 이단아지. 산불을 끄려면 폭탄을 빵 터뜨리는게 최고라고 주장하는데 그게 정상이야? 그러니까 나라면 콜트에 손을 대지 않아. 주인을 닮아 상식 밖일게 뻔하니까. 그런 물건은 상자에 넣어두고 그대로 납땜해서 봉인하는게 최선이야. 어차피 뱀파이어는 목을 베면 죽게 되어 있다고. 수상쩍은 콜트로 쏴죽일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 안 그래?』
그 말에 형제들은 그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안 그러냐고.』
재차 묻는 말에도 딘은 대답을 안 했다.

눈치는 멀쩡하다. 리의 눈이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이런. 너희들... 쓰고 싶은 거구나. 그 콜트를.』
그들의 적이 노란 눈의 악마라는 얘기까지는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악마를 죽이려면 반드시 그 콜트가 필요하다는 걸 설명하기도 싫었다. 어차피 지금은 콜트가 문제가 아니었고, 그 점이 형제들을 침묵시켰다.
딘은 샘에게 은밀히 눈짓했고, 샘은 뭔 소리인지 잘 알았다며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공유하는 비밀에 그들의 영혼 만큼의 무게가 실렸다.

리는 한바탕 발광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이것들이 진짜...! 악을 악으로 물리친다고 해도 상관 없어? non timebo mala. 사무엘은 자신의 좌우명대로 어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어둠을 사용하기도 했지. 그치만 어둠은 누가 뭐래도 두려운 존재야. 이용한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이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지만 말고 뭐라고 대답을 해! 사람이 기다리고 있잖아!』
『커피가 식어요.』
『으이그!』
그녀는 포크와 나이프를 거칠게 내던지는 것으로 즐거운 아침 식사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담배를 피울 시간이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신호했다.
뭐, 사람에겐 각자의 사정이라는게 있는 것이고... 오른손 손가락에 담배 한 가치를 끼우면서 그녀는 쓰게 웃었다. 참견할 일도 아니고 참견해서도 안 된다. 타인의 인생에 뭣 모르고 깊게 관여했다가 커다란 댓가를 치룬게 엇그제다. 그 상처가 너무나 지독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들이 콜트를 원한다면 원하도록 내버려 두자. 뭔가를 숨기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라지.
이것은 비즈니스. 재화와 기술을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재배치한다.
입술 사이에 문 담배의 위치를 바꿔보았다.
뭉게구름이 되어 날아가는 허연 연무에 동생 쪽이 콜록거리고 기침을 터뜨렸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몸이 튼실하진 않은 것 같다. 두꺼워 보이는 팔뚝은 근육이 아니라 풍선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그런 동생을 흘끔 쳐다본 딘이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소곤거렸다. 샘은 부랴부랴 고개를 가로저었고, 리는 그 내용이「내가 가서 담배를 꺼달라고 말해볼까?」라는 걸 알아차렸다.
알았다, 이놈들아. 그녀는 재빨리 바람을 등지고 서서 연기가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거다 하고 생각해둔 건 있어?』
『특별한 건 없어. 단지...』
리는 계속해 보라는 시늉으로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근방으로 수상한 무리가 나타나진 않는지 주의깊게 살펴봐야겠지. 행방불명 되었다가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시체로 발견된 사람은 없는지도 확인하고. 그리고 루더의 가족에 대해 조사할 거야.』
『진짜로 특별한 건 없네. 꽤나 스탠다드 하잖아.』

딘은 화를 낼지 말지를 정하려는 듯 약간 뒤로 물러섰다.
『뭐야, 그 재미 없다는 식의 반응은. 우리가 어리석게 굴고 있기라도 하다는 거야?』
『흥분할 것까진 없잖아.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보이. 하지만 너무 정석대로라 의외라고나 할까. 조금은 과격하게 나올 수도 있겠거니 기대했거든. 예를 들자면 말이야, 흡혈귀 한 마리를 잡아 무섭게 고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걸 모두 불게 만든다... 어때?』
『그거야 댁의 방식이지. 어이가 없다, 정말.』
문제는 리가 농담으로 그런 소리를 꺼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라면 정말로 뱀파이어를 생포해 거꾸로 매달아놓고 커다란 바늘로 피부를 쿡쿡 찔러대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이다. 상상하자마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딘은 정색하고 말했다.
『당신, 이거다 하고 결정하면 막 나가는 그런 면은 고든과 비슷하군.』
『그건 욕이야~!!』
고든을 잘 아는지 리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반박했다.

Posted by 미야

2007/06/10 23:24 2007/06/1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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