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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음부턴 긴 글은 쓰지 말자고... 흑. 그래봤자 작심사흘.
몽땅 때려치우고 12토막 살인 사건 이야기나 쓰고 싶어요~!
어쨌거나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하지만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억센 힘이 딘의 머리를 움직이지 못 하게끔 꽉 밟았다.
『아읏!』
슬리퍼를 신은 발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냉큼 밟았다는 식이어선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눈물이 쏙 우러나오게끔 아프다는 걸 잊을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나아가 무거운 닻과 밧줄로 선착장에 단단히 고정된 보트인양 꼼짝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의가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딘은 헐떡임 비슷한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버팀대로 사용해서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부터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간 싸가지 없는 구둣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딘의 머리를 무슨 더러운 깔개로 여기는 듯했다.
참을성이 바닥났다. 옆으로 버둥거리며 딘은 악을 써댔다.
『발 치워! 치우라고!』
『진정하게. 이래선 대화를 시도할 수가 없잖아.』
남자의 목소리는 대단히 반듯했고, 선생님이 말썽쟁이 어린애를 타이를 때처럼 또박또박 음절을 끊어 말했다. 그 얘기인 즉, 누군가에게 조정을 당하고 건 아니라는 거였다. 약물에 취한 좀비처럼 굴던 예의 뱀파이어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찬 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딘은 헤엄치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대화?』
『그렇네.』
눈을 치켜올리고 속으로「이게 대화를 하자는 자세냐?!」반문부터 하고 보았다. 자고로 대화라는 걸 하려면 편안한 자세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커피라도 권해야 예의다. 그보단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익숙한 목소리라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상대의 머리통을 밟고서 대화 어쩌고 운운하는 건 넌센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 예의라고 했나.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나는 분명히 노크를 했다고.』
남자가 할아버지 설교조로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낼름 창문으로 도망부터 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린가. 응?』
화가 난 모양이다. 머리를 꾹꾹 밟아대는 힘이 곱절로 세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대답을 했었어야지! 원, 기가 막혀서. 밖에서 한참 서성이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나만 바보가 되었...』

순간 기습적으로 접근해온 샘이 무서운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각도가 맞지 않은 관계상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딘은 두껍게 썰은 바비큐용 고기를 3층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내찌르기만 해선 저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팔꿈치로부터 강렬하고 재빠르게 내뻗어야 한다. 우리 동생이 제대로 해치웠구나! 딘은 흐믓했다.
하지만 위력 충분한 곰의 앞발 공격은 이번의 경우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기세만 등등했을 뿐, 남자의 팔이 재빨이 샘의 주먹을 잡아챘고 손바닥이 주먹을 보자기처럼 감싸버렸다. 샘은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를 보았고,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그 아래로 거미줄처럼 깔힌 파란 힘줄을 보았다. 고개를 들자 석탄처럼 활활 타는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쏘아보았다. 남자의 가지런한 입술 위로 오만함이 물에 풀어진 기름처럼 둥실 떠올랐다.
『이런, 이런. 침착하게. 두 사람 모두 충동적이군. 그다지 칭찬할만한 성격은 아닌데.』
붙잡은 주먹을 옆으로 뿌리치며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섬뜩해진 표정을 한 샘이 크게 두 발짝 후퇴했다. 그러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렸는지 꼴사납게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참 잘 했다, 샘 윈체스터. 동생을 한 입에 잡아먹고 싶어하는 딘의 미친 뱃가죽이 꾸룩거렸다.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었다면 주먹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었어. 뼈마디 몇 개 부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거든. 그건 그쪽도 잘 알고 있지?』
대답 대신 마른 침이 넘어가는 꿀꺽 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나의 아량이 바다처럼 넓다는 점에 감사하도록 하게. 그건 그렇고... 슬슬 원래의 용건으로 돌아가볼까.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생각보다 별 거 아닐세.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주었음 하는데. 어떤가. 아주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다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아 샘은 짧게 아, 소리를 냈다.
뭐?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내라고?
『전화를 걸어 아들인 딘 윈체스터가 위험한 뱀파이어에게 붙잡혀 갔다고 말하게. 강조하여 대.단.히. 위험한 뱀파이어라고 해도 괜찮네.』

이게 무슨 철 지난 농담인가 싶어 샘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존을 불러내려면 강신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라스베가스의 라바 할멈 같은 능력자 말이다. 하지만 존의 죽음이 정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만큼 보통의 강신술로는 존을 이승의 테이블로 초대하긴 꽤나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악마와 계약한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않는다 - 바늘 구멍과도 같은 저승의 문을 힘겹게 열어도 그가 찾는 영혼은 결코 그곳에 있지 않다.
설령 지옥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존 윈체스터야 빨리 나오너라 호령을 했다 쳐도...
불현듯 냉소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전화를 하라고?』
『바로 그걸세. 설마, 피붙이가 위험에 빠졌다는데 나 몰라라 하진 않겠지.』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샘의 표정이 냉장고에서 식어버린 버터처럼 되었다.
생전에도 존은 사냥 중에 실수로 몸을 다친 아들이 죽어간다는 비보를 듣고도 나 몰라라 했던 인간이다. 손상된 심장으론 앞으로 일주일도 못 산다고 의사들이 선언했음에도, 샘이 애가 타서 우는 소리를 했음에도, 존은 귀를 막았다.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픈 아들을 보러 한 걸음에 달려오지도 않았다.
《아빠, 저예요. 샘이예요. 그러니까... 형이 아파요. 의사들도 어쩔 수 없대요.》
그 메시지를 듣고 존이 무어라 대답을 했던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침묵했었다.
《우리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큰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11월의 하늘은 회색인 것처럼, 한 겨울에는 으레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전화기를 붙잡은 샘은 존이 연락을 취해오지 않을 거라는 걸 막연히 짐작했다.
《저는 그냥... 아빠가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그걸 당연시 여겼던 건 절대 아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죽어간다는데도 꿈쩍을 안 할 수가 있지?!
평소에도 미워하던 마음이 고삐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나갔다. 감정은 원망을 넘어서 증오를 닮아갔다.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웅크린 딘을 부축하면서 샘은 자신의 결심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딘이 여기서 죽으면 그 길로 난 당신의 등짝으로 칼을 박으러 갈 거야. 그것도 모르고 겉멋만 잔뜩 든 형은 조용히 죽게 좀 내버려두라고 투덜댔다. 의사를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기껏 추천하는게 신앙 치료술사냐며 짜증을 부렸다. 잔뜩 지쳐서 좋아하는 메탈리카 음악도 들으려 하지 않았음에도,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신발만 쳐다보았음에도, 자신을 보러오지 않는 아빠에 대해선 말을 삼갔다.

샘은 그가 울지는 않을까 겁이 났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어쩌나 무서웠다. 하지만 딘은 어른이었다. 샘이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곤 했다. 허세를 부리며「멀건 꿀꿀이죽 말고 스테이크 먹고 싶어」라고 불평했다.
망할 대갈통, 망할 아버지, 망할 윈체스터의 피.
엄지손톱의 절반을 물어뜯고 난 뒤에야 샘은 가까스로「콜레스테롤은 심장에 좋지 않아」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수 있었다. 딘은 바보처럼 헤헤헤 웃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맞고 속상하던지 샘은 더러운 변기에 대고 피 섞인 위액과 같이해서「몽땅 다 죽어버렷!」욕설을 한웅큼씩 뱉어내곤 했다.
『존에게... 전화를 하라고?』
샘은 등을 돌린 채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분을 느꼈다.

백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조용히 채근했다.
『자네 동료의 머리가 눈앞에서 박살나는 광경을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장담하는데 결코 유쾌한 장면은 아닐 걸세.』
아무래도 저 남자는 존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딘과 샘이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것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한쪽에 걸린 추가 내려갔다 도로 올라왔다.「우리가 좀 심하게 안 닮긴 했지」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남자가 머리를 밟은 다리로 힘을 주었던지 딘이 크윽 하고 신음 소리를 흘렸다.
샘은 더욱 조심해가며 핸드폰을 꺼냈고, 남자에게로 눈을 고정시킨 채 단축키를 눌렀다.
아빠의 핸드폰을 아직 정지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호음이 두 번 갔고, 너무 들어 통째로 외워버린 익숙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존 윈체스터입니다. 지금은 부재 중이니 응급상황 시에는 제 아들 딘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딘이 어깨를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러든 말든 샘은 침착하게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저예요, 존. 샘 버커비츠이고 여긴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 부근이예요. 간단히 안부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라서 유감이군요. 딘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어요. 그러니까... 뱀파이어에게요. 존, 이 메시지를 듣는대로 빨리 와주셨으면 해요.』

샘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이제 되었지?」식의 몸짓을 해보였다.
땅바닥에 엎드린 딘이 어이구 하며 다시금 신음했다. 기가 막혀서 그러는 거라는 걸 샘은 눈치챘지만 뱀파이어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그러나? 그렇다면 진작에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하라 일렀어야지.』
남자는 만족스럽게 후후후 웃으며 자신이 밟은 인간을 짐짓 내려다 보았다.
『처음부터 존이 루더를 죽이지만 않았으면 이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나도 편하게 암스테르담에서 와인이나 홀짝거리며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겠지. 그치만 피 흘림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 일에 대해 댓가를 치러야 할 걸세.』

딘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루더의 가족인가.』
『설마. 나는 생판 남일세.』
『그런데 왜...?』
남자는 한숨을 섞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그게 좀 복잡하다네. 내가 하는 일은 일종의 교통 정리야. 비유하자면 축구 경기의 심판 같은 거랄까. 호루라기를 불면서「하프 코트 바이얼레이션~!!」을 외치는 거랑 비슷해.』
『이봐? 그건 축구가 아니라 농구라고.』
남자는 천둥이 하늘을 메웠다는 식으로 흠칫 몸을 사렸다.
『어? 농구였어? 미안, 미안. 하지만 농구면 어떻고 골프면 또 어떤가. 마찬가질세. 누군가를 죽이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각오를 다져야 하지. 죽음은 죽음으로, 복수는 복수로 계승되는 걸세.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피를 저울에 달아 그 값을 매기지. 그게 내 일이라네.』

저울에 올라가는게 양파나 토마토라고 해도 관심 없었다. 샘은 차갑게 응수했다.
『알게 뭐야. 하라는 대로 했으니 이제 그만 딘을 놓아줘.』
남자가 언뜻 자극적인 웃음 소리를 냈다.
『놓아달라고?』
『그래.』
『흐음. 존에게 전화를 걸면 자네 동료를 놔주겠다는 약속을 내가 했던가.』
크게 부릅 뜬 샘의 눈에서 검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이 자식!』
『워워! 화내지 말게.』
그는 팔짱을 낀 자세로 도전하듯이 턱을 들어올렸다.
『기억을 더듬어보게. 부탁을 들어주면 이 자를 풀어주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존 윈체스터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만 했다고.』
『같잖은 말장난은 그만 둬. 그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장난 아니야! 당장 풀어줘! 지금 당장!』
『미안해.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 덩치 큰 친구.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계속해서 붙잡아 둘 필요성이 있거든. 혹시라도 존 윈체스터가 나타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뭐라고?!』
『그러지 말고 작별 인사나 하지 그래. 살아서 만나는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누가 알겠나.』

Posted by 미야

2007/08/13 20:39 2007/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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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07/08/14 17:54 # M/D Reply Permalink

    쫌 안닮긴 했죠..ㅡ_ㅡ;;;그래도 형제인걸......
    동생을 한입에 잡아먹고 싶어하는 딘 심정 이해가 갑니다...드라마 상에도 저런장면 꼭 있죠!! ㅋㅋㅋ 잘 나가다가 꼭 잡혀서는....;;; 새뮤얼 콜드 총알 세발 남은것도 결국 새미가 잡혀서는 두발을 샘때문에 허비해 버렸잖아요...한발은 샘이 뱀파이어에게 잡혀서 존이 쏴버리고 한발은 악마에게 홀린 사람에세 샘이 죽게 맞고 있을때 딘이 쏴버리고...;;(응?? 근데 여기서 왜 이 야그가?? ㅡ_ㅡ;;;그냥 생각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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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스탠드를 끄고 서둘러 장비 가방부터 챙겼다. 예상치 못한 묵직함에 이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내용물의 전부가 쇠붙이다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자꾸만 옆으로 미끌어져 흘러내리려는 걸 끙끙대며 어깨에 둘러멨다. 덕분에 체중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보행기가 필요할 것 같음 빨리 말해라, 아가. 엄마가 마트 가서 사올게.』
『제 걱정은 말고 형님 몫의 젖병부터 챙기세요.』
동생의 툴툴거림은 한쪽 귀로 흘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걸쇠를 단번에 잡아 올렸다. 다른 투숙객들이 베개를 집어던지며 시끄럽다 난리를 치든 말든, 배려라는 걸 모르는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미친놈 육갑한다 욕설을 중얼거린 딘은 한쪽 다리를 열려진 창틀 위로 올려놓았다. 탄력을 이용해 체중을 앞으로 이동시키자 작은 머리가 밖으로 쏙 빠져나갔다. 이제 엉덩이만 들면 흙밭, 청춘사업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친구 부모님을 따돌리려는 것도 아닌데 신세가 무지하게 처량맞다.

『딘, 잠깐만!』
『왜!』
『지금은 새벽 3시야.』
『누가 뭐랬냐. 내가 아까 말한 거잖아. 정확히 3시 8분이다.』
『그래! 새벽 3시라고. 이런 시각에 문을 두드리는게 정상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한데 뭐하러「수상한 사람들이 왔소이다」티를 내겠느냐고.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잘못 판단했어, 딘. 정답은「정문으로 나가야 한다」야. 그것들은 일부러 문을 노크하는 걸로 주의를 돌리고는 십중팔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딘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그러니까... 샘, 네 말은 문밖에서 씩씩거리는 엄마는 속임수고, 여자친구의 아빠는 사다리 아래서 저놈 시키 다리 몽둥이를 확 분지르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을 거라는 얘기니?』
『무슨 비유가 그 따위야. 하여간 다시 들어와!』
라고 해도... 이미 몸통의 2/3 가량이 빠져나온 상태다. 딘은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으려다 발목이 철창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 하게 된 멍청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고, 눈치가 빠른 샘은 그를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형이 그동안 파이를 얼마나 먹어치웠으면 엉덩이가 코끼리 하마가 되어버렸어 - 과잉 영양소와 잉여 지방이 만들어낸 재앙에 탄식하며 물고기로 가득찬 그물과 씨름중인 어부처럼 딘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안으로 해서 힘껏 당기자 셔츠의 박음질된 부분이 찌익 - 수상쩍은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잡힌게 물고기가 아니라 바위인 모양이다.

『이잇! 당분간 애플파이는 구경도 못할 줄 알아! 맥주도 금지! 피자도 금지! 중국음식도 금지! 앞으로 맨날 야채만 먹는 거다!』
『생뚱맞게 갑자기 뭔 소리야.』
『살쪘어! 무겁다고!』
『이게 지금 누구더러 돼지라는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너는 반대로 안으로 끌어당기려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당장 손 놔. 너,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찢어먹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니?』
『No! 내 말 들어, 딘. 그리로 나가면 안돼. 매복하고 있을 거라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딘은 다급한 마음에 옷자락을 붙잡은 샘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시끄러. 저기서 문짝을 흔들어대고 있을 애들은 뱀파이어가 아니라든?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매한가지라면 제일 짧은 거리를 택하는게 현명한 거야. 우아하게 카페트 깔린 현관으로 걸어나오고 싶음 맘대로 해. 하지만 난 지름길로 갈란다. 우린 임팔라를 세워둔 곳까지 어떻게든 가야만 한다고.』
그리곤 위아래 방향으로 눈을 흘겼다.
『어쩔겨. 형의 말은 무시하고 네 맘대로 해볼텨?』

끙 소리를 내뱉은 샘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딘에게로 훌쩍 던졌다. 이렇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서두르느라 창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설마, 자기 머리를 깨뜨릴 작정인가 - 아파하는 샘을 본 딘은 늘 그렇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꽉 다문 입술 끝을 1cm가량 아래로 내렸다. 재빨리 양팔을 뻗어 누구보다 긴 다리를 가진 동생이 혹시라도 껑충걸음을 하다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리고는「야채를 먹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다. 왜 이렇게 무거워?!」라고 쏘아붙였다.

『어두워...』
입구를 장식하고 있던 색색이 전구가 꺼져 있었다. 샘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전기요금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관리하는 직원이 일부러 전원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흉물스런 분위기를 감추고자 대낮에도 불을 환히 켜놓는 업소가 많다라는 걸 염두에 두자면 그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차갑게 식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샘은 근심에 젖어「모즈볼리 모텔」이라 적힌 간판을 올려다 보았고, 거짓말 같은 타이밍으로 순간 전기가 팟 하고 떨어졌다.
두개골에 박힌 조임쇠의 나사가 한도 이상으로 돌아갔다. 샘은 압력에 의한 두통을 느꼈다.
새카맣다. 샘은 모텔의 구부러진 지붕창으로 비명이 깃발처럼 걸리는 걸 보았다. 세계는 검은 마법에 걸려 이미 오염되었다. 발등을 타고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 했다. 질겁을 해대며 바지를 털었지만 그것은 암처럼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검정... 목탄을 스케치북에 겹겹이 문질러댄 검정의 얼룩이다. 아니, 이것은 초자연적 어둠이다.
그는 늘 어둠이 두려웠다. 세계의 절반은 죽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끊임없이 주장하는 어둠이 싫었다. 어둠은 엄마를 데려갔고, 평온한 삶을 망쳤고, 아빠를 나쁘게 변화시켰고, 형을 위험에 빠뜨렸다.
존 윈체스터는 용감하게 맞서 싸우라며 권총을 선물했다. 무기를 들어 결코 흐트러질 일 없는 절대적 어둠을 조준하라고 명령했다.
「그치만 아빠!」
윙윙 소리를 내는 바람이 다듬어지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들었다 도로 놓았다.
한참이나 먼 옛날에 시들어버린 풀의 내음이 토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더 이상「생명」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빛바랜 호흡을 내뱉었다. 샘은 그놈의 빌어먹을 숨결이 피부에 닿는 감촉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와 젖은 하수구의 냄새를 평생 맡는게 나았다.
「아버지, 권총으론 부족해요. 턱도 없다고요. 아홉 살, 나는 아홉 살이예요. 어둠은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아요. 그리고 그것들은 사방에 있어요. 나의 오른쪽, 왼쪽, 그리고 앞과 뒤, 어디에든 있어요.」

『진정해, 새미. 전기가 나간 것뿐이야.』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딘은 상황의 심각함을 애써 축소시켰다.
『단순히 합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샘은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며 딘을 돌아다 보았다. 동생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눈물이 고인 것일 수도 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우연이라는게 존재하기에 세상은 요지경인 거야. 까마귀가 날면 배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누군가 그랬어. 그런데 그게 누구냐고 꼬치꼬치 따져묻지는 마.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런게 어딨느냐며 샘이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라면 배를 키우는 과수원 주인이 독약을 풀어 까마귀를 모조리 잡아죽이려 하지 않겠느냐 한 마디 할 기세다. 딘은 귀찮아지기 전에 동생의 등을 훌쩍 미는 것으로 선수를 쳤다. 어차피 떠오르는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댄 말인데 이 마당에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우스웠다.

『차 있는 곳으로 빨리 가기나 해!』
샘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자 딘은 산탄총을 꺼내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몹쓸 것들이 나무 뒤로 숨었을 수도 있다. 아님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헌터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기척을 읽으려 노력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다행이다. 긴장을 하면 할수록 냉정해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사물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딘은 만약 그것이 아름다운 천사의 형상이나 엉덩이로 무지개를 쏘아대는 유니콘을 닮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참살해야 할 거라고 각오를 굳혔다. 어둠을 주시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힘을 주었다. 동생을 지켜라. 딘은 반드시 그러겠다는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할 수 있다, 에이스. 총구를 옆으로 휙 하고 비틀어 접근해오는 모녀를 위협했다.
입술을 바짝 타들어가는 감각이다. 여자. 그것도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였다. 헐렁한 사이즈의 녹색의 원피스는 어둠 탓에 상복처럼 검게 보였다. 나이는 서른 정도쯤, 대단히 말랐고, 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경고하는데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줘.』
원피스 차림새의 여자는 야단을 잔뜩 맞은 초등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지갑이나 핸드백도 없이 맨손이다. 대신 여섯 살짜리 딸을 무슨 트렁크 짐짝인양 꽉 붙들고 있었다.
『헤이!』
크게 불렀음에도 여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실수로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찾고자 땅바닥만 쳐다보며 30리 길을 걸어왔다는 식이다. 그만큼 지쳐보였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설마, 잠이 든 채로 걷고 있는 건가. 어쩐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속이 텅 빈 쭉정이의 느낌이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그대로 바스라져 사라질 것 같았다. 벌레에 물려 등이 가려워 미치겠다는 식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는 아이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찰칵 소리가 나게끔 총을 장전했다. 딘은 차분하게 엄마에게서 다시 딸로 시선을 옮겼다. 딱 이거다 하고 꼬집어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를 되바라지게 쳐다보는 아이의 눈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러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것과 같이하여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았다.

『형!』
저편에서 샘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눈동자에서 순수에 가까운 악의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왼쪽 손목으로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날카로운 침이 근육을 뚫고 뼈까지 곧장 닫는 것 같았다.
「망할 것이 내 손을 물어뜯었어!」
살살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오른손에 쥔 산탄총을 휘둘러 아이의 머리통을 세게 때렸다.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꽉 맞물린 어금니는 강철의 덫인양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총을 힘껏 뒤로 당겼다가 반동을 사용하여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관자놀이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아이는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옆으로 고꾸라졌다.
신발이 벗겨지면서 어린애의 하얀 양말이 어둠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걸 보자 숨이 턱 막혀왔다. 딘은 자신이 흉악한 강간마라도 된 듯한 끔찍한 감각에 몸부림쳤다.
『애까지 이용하다니! 죽일 놈!』

짐승이 목을 울려대는 것 같은 쇳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아이 엄마가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얼굴 전체가 뾰족거리는 뱀파이어의 이빨로 보였다.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딘은 여자의 얼굴 정 중앙, 정확하게는 코 부분을 노리고 한 방 쏘았다. 커다랗고 시뻘건 구멍이 뚫렸음에도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손목을 갈고리처럼 휘둘렀다.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제3의 존재가 불쑥 딘을 덮쳐왔다.
「젠장, 여자는 미끼였군. 온 가족의 협공 작전인가. 그렇담 이번엔 아빠 차례겠군.」
당했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거한의 남자가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딘을 쓰러뜨렸다.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딘은 자갈에 닿은 등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그보단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의 몸무게가 신경이 씌여 견딜 수가 없었다. 100kg은 확실이 넘을 것 같고... 순식간에 머리로 피가 몰려 어지러웠다. 그래도 딘은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을 노리는 손가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굵은 엄지손가락이 신속하고도 깊숙하게 목을 파고들었다. 이 마당에 정신을 놓으면 저승길 행차는 상식이다.

《존 윈체스터...? 네놈이 존 윈체스터인가.》
이 바부탱이가! 아버진 이미 돌아가셨다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총구를 남자의 배로 돌렸다. 탕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몸이 크게 튕겼다. 목을 조르던 손가락 힘이 살짝 느슨해지자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다.
『똑바로 들어! 나는 존 윈체스터의 아들, 딘 윈체스터다!』
허벅지를 세우고 남자를 걷어찼다. 재빨리 몸을 뒤집고 왼편으로 미끌어졌다. 남자가 다시 붙잡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Posted by 미야

2007/08/09 23:32 2007/08/0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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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07/08/10 19:29 # M/D Reply Permalink

    헉!!!딘이 뱀파이어에게 당한 건가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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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리가 편안한 스니커즈를 찾아신고 외출할 기색을 보이자 딘도 눈치껏 셔츠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다음에 던질 공은 타자 왼편으로 바짝 붙여서 직구」를 은밀히 신호하는 포수처럼 굴었고, 마운드에 서서 글러브에 낀 공을 하릴없이 만지작거리던 딘은「10-4 (알았다, 오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딘이 리를 따라나서면 샘은 혼자가 된다. 고도로 훈련된 특수기동대 대원을 맨손으로 제압한 적도 있는 녀석이지만 딘은 그런 것으론 충분치 않다고 여겼다. 그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알게 뭐람. 샘은 의외로 허점이 많다. 겨드랑이를 간지르면 깔깔거리고 웃다가 이내 호흡곤란을 일으키곤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 그깟 간지럼 하나만으로 털썩 쓰러지는 약골을 뭘 믿고 내버려둘 수 있느냔 말이다. 딘은 소중한 동생이 맛있게 먹기만 하면 그만인, 차려놓은 밥상이 되는 걸 결코 원치 않았다.

그래도 의리라는게 있다. 딘은 겉옷을 여전히 손에 움켜쥔 채 가만히 제안을 해봤다.
『셋이서 같이 움직이면?』
『man. 나는 지금 24시간 할인 마트로 느긋하게 쇼핑을 하러 가는게 아니거든.』
카메라와 깃발을 든 단체 관광객도 아니면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촌스러 - 문 손잡이를 움켜쥔 리는 거절의 의미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갑작스런 돌풍이 유리창을 흔들어댔다. 어쩌면 소낙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음산한 밤이었다.
문단속 겸 배웅을 나서면서 딘은 일부러 목소리를 작게 했다.
『에그 맥머핀 샌드위치와 콜라가 먹고 싶어.』
리는 화를 냈다.
『내가 식당 웨이츄리스로 보이냐! 어디다 대고 주문이야! 항문에 체온계 꽂아버린다.』
그 엄청난 협박을 짐짓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그러니까 죽은 자의 피가 필요해서 나가는 거지? 그렇담 병원 영안실보단 차라리 장례식장을 노리는게 나아. 방부처리를 하면서 시신에서 뽑아낸 혈액은 하수구로 그냥 버리지 않고 따로 생물학적 오염 폐기물로 분류해서 모아두거든. 어디에 보관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바로 자물쇠를 따고 갖고 나오기만 하면 돼.』
예기치 못한 훈수에 리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눈을 흘겼고, 딘은 그 제스츄어를「너는 지금 나를 한참 아래의 바보로 취급했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긴, 이런 식의 참견은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참치 뱃살의 훌륭한 풍미와 생선회를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해 일식 요리사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쓸데없었다.
『집이나 잘 보고 있어. 누가 와서「엄마 계시니?」하고 물으면 모른다고 해. 알았지?』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참붕어와 금붕어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알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덤비는게 좋겠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잠그렴.』
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에 달린 쇠사슬 고리를 채웠다.

이런 것이 가장 싫다. 동이 틀 무렵까지 딱히 할 일이라곤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고, 칼날을 닦고, 커튼 너머의 어둠을 노려본 뒤, 다시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는 것밖엔 없다.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밤, 그를 에워싼 공기는 유통기한을 넘긴 오래된 곤약처럼 묵직한 무게감을 가졌다.
딘은 탄창을 뺀 권총의 방아쇠를 시험삼아 찰칵 소리내어 당겨보았다. 등이 근질거렸다. 버릇대로 텔레비전을 켜고 싶었다. 그러나 소음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지는 건 위험했다. 이런 때일수록 작은 기척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인내심이 그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 아니라는게 그저 슬플 뿐이다. 한숨을 쉬며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까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리려는 충동을 제어하면서 먼젓번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고, 칼날을 닦고... 또 일어나 잠에 취한 수험생처럼 방안을 어정어정 맴돌았다.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에 아무래도 침착하게 있기 힘들었다. 오른손에 낀 반지를 무의식중에 빙글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끼워넣었다. 그러고도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자 고개를 들고 망할 인디언이 언제 나팔을 불어가며 습격해오나를 걱정하는 서부시대 개척자처럼 바깥을 살피려 했다.

『형.』
그 부산한 행동을 부드럽게 나무라며 샘이 부르자 딘은 얼른 허리를 숙이고 쓰레기통 속에 들어간 피자 배달 영수증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지만 샘은 그런 단순한 연극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제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침대에 누워 조금이라도 쉬는게 어때.』
싫어 - 딘은 입을 앙 다물고 샘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원래 소리내어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 그들이다. 고갯짓이나 약간의 움직임, 이를테면 속눈썹의 미세한 떨림만 갖고도「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책의 줄거리를 설명할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는 시늉만 해도 마시고 싶은게 그냥 물인지, 뜨거운 커피인지, 아니면 차갑게 식힌 맥주인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샘은 그것이 일종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할 적마다 쌓이는 미묘한 엇갈림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딘... 불안해?』
『아니.』
『긴장한 것처럼 보여.』
『설마.』
『멍든 곳은 어때.』
『이제 다 나았어, 새미. 하나도 안 아파.』
『그러지 말고 약 바르자. 아까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잖아.』
『오해야. 싱크대 위를 기어가는 무지하게 큰 바퀴벌레를 봐서 그런 거라고.』
어째서 우리 형은 머리로 생각하는 거랑 소리내어 말하는게 완전히 딴판인 걸까. 척 봐도 아니라는 걸 알겠는데 고집스럽게 거짓말만 줄줄 늘어놓는다. 샘은 기분이 언짢아지는 걸 느꼈다.
『딘! 형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나야. 하나뿐인 피붙이라고. 앨런 아줌마나 바비 아저씨가 아니야. 그냥... 뭐랄까, 있는 그대로 솔직해질 순 없어?!』
딘은 눈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동생의 원망 섞인 시선을 성공적으로 되받아쳤다.
『얌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곰이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기분이 되잖냐.』
『틀려. 그 이야기에 나오는 건 곰이 아니라 늑대야.』
곰이 아니었던 건가. 내심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평점심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나도 알아, 샘. 하지만 늑대만 양을 잡아먹는게 아니야. 곰도 양을 잡아먹는다고.』
『누가 뭐랬어? 형의 말대로 안전한 우리에서 침묵하고 있는 얌전한 양들을 습격하는 건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한니발 렉터 박사지.』
차라리 입을 다무는게 낫겠다. 샘은 체념했고 대화는 어색하게 다시 끊겼다.

하지만 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딘이 솔직한 태도로「맞아, 난 지금 불안해 미치겠어」라고 대답했다면 자신은 그 사실을 결코 못 견뎌했을 거라는 걸 말이다.
딘은 병에 걸려도 아파해선 안 되었다. 겁에 질렸어도 무섭다고 내색해선 안 되었다. 그는 형이었고, 어른이었고, 샘의 보호자였으며, 정신적 지주였다. 샘은 거대한 지진이 발생해서 로스엔젤레스가 둘로 쪼개어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지언정 자신을 꽉 붙잡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줄 든든한 존재를 원했다. 기둥을 희망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딘이 해주길 바랬다.
어둠이 결코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치는 딘은 괜찮았다.
하지만 좁은 어깨를 덜덜 떨어대는 딘은 절대로 괜찮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형은 형 답지 않아.」
「형 답다는 건 그럼 뭐지.」
「깨진 무릎에서 피가 나도 절대로 울지 않는게 우리 형이지.」
결과적으로 딘이 체질적으로 허세를 부리게 된 건 다 샘 때문이었다.

강렬한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샘은 진심으로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 딘. 정말 미안해... 다 내가 잘못했어.』
그걸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한 딘이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 역시 날 속였군. 양떼를 습격한 건 곰이 맞았던 거야. 늑대가 아니고!』
아무도 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은 밤마다 창틀과 문틀에 뿌려져야만 했던 소금보다 못난 존재였다. 존은 큰 아들에게「거짓말쟁이 소년은 마을에서 쫓겨났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교훈적인 이야기의 결말을 말해준 적이 없다. 대신「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 샘을 잘 지키고 있거라. 어둠을 주시해라」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것이 존의 굿나잇 인사였다. 동화책은 없었다.
곰이란다. 샘은 그 흔한 동화책의 내용조차 제대로 꿰고 있지 못한 형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측은했고 애처로웠다. 가슴 아팠다. 동시에 배가 뒤틀리게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다. 세상에... 딘은「재크와 콩나무」에서 황금알을 낳은게 거위라는 걸 알고 있을까? 오리나 닭이라 착각하고 있을 거라는데 한 표. 타이틀이 콩나무 이야기라면서 나무 이야긴 속 빼고 어떤 새가 알을 낳았는지를 왜 따져야 하는 거냐 불평을 퍼부을 거라는데 다시 한 표. 내용을 적당히 각색하여 올빼미가 황금알을 낳았다고 둘러대도 딘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적당히 기회를 보아 은밀히 물어올 것이다.「새미, 우리 둘이서 그 미친 올빼미를 잡아 죽이자. 네 생각은 어때. 은탄환을 쓰면 될까?」샘은 형이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야! 웃던가 찡그리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라. 갑자기 그러니까 무서워진다.』
스냅용 짚백을 던지면서 딘이 다시 야유를 보냈다.
샘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역한 냄새를 풍기는 기름걸레를 마구 흔들어댔다.
『딘은 진짜지 멍청이야.』
『그러는 너는 계집애고.』
딘은 쌍심지를 곤두세우며 양쪽 발목으로 단도를 숨겼다. 그리고 같은 크기의 칼을 동생을 향해 훌쩍 던졌다. 샘은 익숙한 모습으로 무기를 받아들었고, 잘 손질된 칼은 좁은 소매 속으로 순식간에 쏙 들어갔다. 움직임엔 불편함이 없는지 시험삼아 주먹쥔 팔을 안으로 구부렸다 도로 폈다. 생각만큼 편안하지 않았던지 부스럭대며 밸트의 길이를 매만졌다.

『아무튼 그 양치기 소년이라는 아이도 그래. 곰이 나타났으면 얼른 산탄총을 쐈어야지.』
저게 실 없는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려지는 거다.
『디-인. 그 발언은 문제가 커. 어린애가 제대로 총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랑스러워하며 - 정말로 자랑스러워하며 딘은 코를 높게 으쓱였다.
『할 수 있고 말고. 난 열 두 살에 아빠가 보는 앞에서 빈 맥주 깡통을 전부 명중시켰어.』
『그야 형은 특별하니까.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샘은 단어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특별하다는 말에 딘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려 석 달이나 앞당겨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점수로 치자면 10점에 9.8점이다. 흥분한 나머지 나무 꼭대기까지 단숨에 기어올라간 고양이처럼 입술을 당겨 씨익 웃었다. 벼락이 마을회관을 장식한 시계를 정면에서 때렸고, 맛이 간 시곗바늘이 연기를 뿜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칭찬하려던게 아니다. 원래는「열 두 살에 맥주 깡통에 총질하는 건 정상이 아니잖아」라는 의미로 말을 꺼냈던 것뿐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였다. 그걸 바보처럼 오해한 딘은 부끄럽다며 시선을 내리깔았고, 헛기침을 했다. 처음으로 무도회장에 나온 소녀처럼 볼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이래선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정정할 수도 없다. 덩달아 샘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실수로 구멍난 양말을 신었을 때처럼 화끈거리는 열기가 몸을 수직으로 꿰뚫었다. 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살았다.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민망해서 죽었을 것이다. 도어 미러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샘은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을 느꼈다.

『샘.』
도망치듯이 문가로 향하던 동생을 딘이 재빨리 붙잡았다.
설마, 이 마당에 감격의 포옹이 필요하다는 건 아니겠지... 딘이 몸을 확 잡아채며 안쪽으로 끌어당기자 샘은 숨을 멈췄다. 놀라기도 했거니와 몸을 가까이 밀착시키는 이런 식의 접촉은 낯설었다. 코로 향긋한 비누 냄새가 올라왔다. 그것이 참으로 달다고 느껴져 샘은 당황했다.
『형?』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게 봄날의 풋풋한 설레임을 닮았다는 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왜 그래.』
딘은 눈을 부릅뜨고 머리뚜껑 열고 정신을 탈출시킨 바보를 야단쳤다.
『이 멍청이! 지금은 새벽 3시야. 이런 야밤한 시각에 노크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 밖을 향해「거기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려던 건 아니겠지. 아예 날 죽여주세요 노래라도 부르지 그러냐. 불 꺼! 그리고 짐 챙겨! 우린 지금 여기서 당장 나가야 해!』

Posted by 미야

2007/08/04 20:48 2007/08/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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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07/08/04 21:30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글 속 딘과 샘은 항상 틱틱 거리는게 정말 귀엽습니다...ㅋㅋ더우신데...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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