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리가 편안한 스니커즈를 찾아신고 외출할 기색을 보이자 딘도 눈치껏 셔츠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다음에 던질 공은 타자 왼편으로 바짝 붙여서 직구」를 은밀히 신호하는 포수처럼 굴었고, 마운드에 서서 글러브에 낀 공을 하릴없이 만지작거리던 딘은「10-4 (알았다, 오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딘이 리를 따라나서면 샘은 혼자가 된다. 고도로 훈련된 특수기동대 대원을 맨손으로 제압한 적도 있는 녀석이지만 딘은 그런 것으론 충분치 않다고 여겼다. 그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알게 뭐람. 샘은 의외로 허점이 많다. 겨드랑이를 간지르면 깔깔거리고 웃다가 이내 호흡곤란을 일으키곤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 그깟 간지럼 하나만으로 털썩 쓰러지는 약골을 뭘 믿고 내버려둘 수 있느냔 말이다. 딘은 소중한 동생이 맛있게 먹기만 하면 그만인, 차려놓은 밥상이 되는 걸 결코 원치 않았다.
그래도 의리라는게 있다. 딘은 겉옷을 여전히 손에 움켜쥔 채 가만히 제안을 해봤다.
『셋이서 같이 움직이면?』
『man. 나는 지금 24시간 할인 마트로 느긋하게 쇼핑을 하러 가는게 아니거든.』
카메라와 깃발을 든 단체 관광객도 아니면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촌스러 - 문 손잡이를 움켜쥔 리는 거절의 의미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갑작스런 돌풍이 유리창을 흔들어댔다. 어쩌면 소낙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음산한 밤이었다.
문단속 겸 배웅을 나서면서 딘은 일부러 목소리를 작게 했다.
『에그 맥머핀 샌드위치와 콜라가 먹고 싶어.』
리는 화를 냈다.
『내가 식당 웨이츄리스로 보이냐! 어디다 대고 주문이야! 항문에 체온계 꽂아버린다.』
그 엄청난 협박을 짐짓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그러니까 죽은 자의 피가 필요해서 나가는 거지? 그렇담 병원 영안실보단 차라리 장례식장을 노리는게 나아. 방부처리를 하면서 시신에서 뽑아낸 혈액은 하수구로 그냥 버리지 않고 따로 생물학적 오염 폐기물로 분류해서 모아두거든. 어디에 보관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바로 자물쇠를 따고 갖고 나오기만 하면 돼.』
예기치 못한 훈수에 리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눈을 흘겼고, 딘은 그 제스츄어를「너는 지금 나를 한참 아래의 바보로 취급했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긴, 이런 식의 참견은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참치 뱃살의 훌륭한 풍미와 생선회를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해 일식 요리사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쓸데없었다.
『집이나 잘 보고 있어. 누가 와서「엄마 계시니?」하고 물으면 모른다고 해. 알았지?』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참붕어와 금붕어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알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덤비는게 좋겠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잠그렴.』
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에 달린 쇠사슬 고리를 채웠다.
이런 것이 가장 싫다. 동이 틀 무렵까지 딱히 할 일이라곤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고, 칼날을 닦고, 커튼 너머의 어둠을 노려본 뒤, 다시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는 것밖엔 없다.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밤, 그를 에워싼 공기는 유통기한을 넘긴 오래된 곤약처럼 묵직한 무게감을 가졌다.
딘은 탄창을 뺀 권총의 방아쇠를 시험삼아 찰칵 소리내어 당겨보았다. 등이 근질거렸다. 버릇대로 텔레비전을 켜고 싶었다. 그러나 소음 때문에 주의가 흐트러지는 건 위험했다. 이런 때일수록 작은 기척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인내심이 그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 아니라는게 그저 슬플 뿐이다. 한숨을 쉬며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까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리려는 충동을 제어하면서 먼젓번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총의 실린더를 청소하고, 칼날을 닦고... 또 일어나 잠에 취한 수험생처럼 방안을 어정어정 맴돌았다.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에 아무래도 침착하게 있기 힘들었다. 오른손에 낀 반지를 무의식중에 빙글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끼워넣었다. 그러고도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자 고개를 들고 망할 인디언이 언제 나팔을 불어가며 습격해오나를 걱정하는 서부시대 개척자처럼 바깥을 살피려 했다.
『형.』
그 부산한 행동을 부드럽게 나무라며 샘이 부르자 딘은 얼른 허리를 숙이고 쓰레기통 속에 들어간 피자 배달 영수증을 쳐다보는 척했다. 하지만 샘은 그런 단순한 연극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제발. 동이 틀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침대에 누워 조금이라도 쉬는게 어때.』
싫어 - 딘은 입을 앙 다물고 샘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원래 소리내어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한 그들이다. 고갯짓이나 약간의 움직임, 이를테면 속눈썹의 미세한 떨림만 갖고도「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책의 줄거리를 설명할 수 있었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는 시늉만 해도 마시고 싶은게 그냥 물인지, 뜨거운 커피인지, 아니면 차갑게 식힌 맥주인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샘은 그것이 일종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할 적마다 쌓이는 미묘한 엇갈림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딘... 불안해?』
『아니.』
『긴장한 것처럼 보여.』
『설마.』
『멍든 곳은 어때.』
『이제 다 나았어, 새미. 하나도 안 아파.』
『그러지 말고 약 바르자. 아까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잖아.』
『오해야. 싱크대 위를 기어가는 무지하게 큰 바퀴벌레를 봐서 그런 거라고.』
어째서 우리 형은 머리로 생각하는 거랑 소리내어 말하는게 완전히 딴판인 걸까. 척 봐도 아니라는 걸 알겠는데 고집스럽게 거짓말만 줄줄 늘어놓는다. 샘은 기분이 언짢아지는 걸 느꼈다.
『딘! 형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나야. 하나뿐인 피붙이라고. 앨런 아줌마나 바비 아저씨가 아니야. 그냥... 뭐랄까, 있는 그대로 솔직해질 순 없어?!』
딘은 눈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동생의 원망 섞인 시선을 성공적으로 되받아쳤다.
『얌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곰이 나타났다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기분이 되잖냐.』
『틀려. 그 이야기에 나오는 건 곰이 아니라 늑대야.』
곰이 아니었던 건가. 내심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평점심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나도 알아, 샘. 하지만 늑대만 양을 잡아먹는게 아니야. 곰도 양을 잡아먹는다고.』
『누가 뭐랬어? 형의 말대로 안전한 우리에서 침묵하고 있는 얌전한 양들을 습격하는 건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한니발 렉터 박사지.』
차라리 입을 다무는게 낫겠다. 샘은 체념했고 대화는 어색하게 다시 끊겼다.
하지만 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딘이 솔직한 태도로「맞아, 난 지금 불안해 미치겠어」라고 대답했다면 자신은 그 사실을 결코 못 견뎌했을 거라는 걸 말이다.
딘은 병에 걸려도 아파해선 안 되었다. 겁에 질렸어도 무섭다고 내색해선 안 되었다. 그는 형이었고, 어른이었고, 샘의 보호자였으며, 정신적 지주였다. 샘은 거대한 지진이 발생해서 로스엔젤레스가 둘로 쪼개어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지언정 자신을 꽉 붙잡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줄 든든한 존재를 원했다. 기둥을 희망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딘이 해주길 바랬다.
어둠이 결코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치는 딘은 괜찮았다.
하지만 좁은 어깨를 덜덜 떨어대는 딘은 절대로 괜찮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형은 형 답지 않아.」
「형 답다는 건 그럼 뭐지.」
「깨진 무릎에서 피가 나도 절대로 울지 않는게 우리 형이지.」
결과적으로 딘이 체질적으로 허세를 부리게 된 건 다 샘 때문이었다.
강렬한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샘은 진심으로 머리를 숙였다.
『미안해, 딘. 정말 미안해... 다 내가 잘못했어.』
그걸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한 딘이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 역시 날 속였군. 양떼를 습격한 건 곰이 맞았던 거야. 늑대가 아니고!』
아무도 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은 밤마다 창틀과 문틀에 뿌려져야만 했던 소금보다 못난 존재였다. 존은 큰 아들에게「거짓말쟁이 소년은 마을에서 쫓겨났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교훈적인 이야기의 결말을 말해준 적이 없다. 대신「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 샘을 잘 지키고 있거라. 어둠을 주시해라」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것이 존의 굿나잇 인사였다. 동화책은 없었다.
곰이란다. 샘은 그 흔한 동화책의 내용조차 제대로 꿰고 있지 못한 형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측은했고 애처로웠다. 가슴 아팠다. 동시에 배가 뒤틀리게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다. 세상에... 딘은「재크와 콩나무」에서 황금알을 낳은게 거위라는 걸 알고 있을까? 오리나 닭이라 착각하고 있을 거라는데 한 표. 타이틀이 콩나무 이야기라면서 나무 이야긴 속 빼고 어떤 새가 알을 낳았는지를 왜 따져야 하는 거냐 불평을 퍼부을 거라는데 다시 한 표. 내용을 적당히 각색하여 올빼미가 황금알을 낳았다고 둘러대도 딘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적당히 기회를 보아 은밀히 물어올 것이다.「새미, 우리 둘이서 그 미친 올빼미를 잡아 죽이자. 네 생각은 어때. 은탄환을 쓰면 될까?」샘은 형이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야! 웃던가 찡그리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라. 갑자기 그러니까 무서워진다.』
스냅용 짚백을 던지면서 딘이 다시 야유를 보냈다.
샘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역한 냄새를 풍기는 기름걸레를 마구 흔들어댔다.
『딘은 진짜지 멍청이야.』
『그러는 너는 계집애고.』
딘은 쌍심지를 곤두세우며 양쪽 발목으로 단도를 숨겼다. 그리고 같은 크기의 칼을 동생을 향해 훌쩍 던졌다. 샘은 익숙한 모습으로 무기를 받아들었고, 잘 손질된 칼은 좁은 소매 속으로 순식간에 쏙 들어갔다. 움직임엔 불편함이 없는지 시험삼아 주먹쥔 팔을 안으로 구부렸다 도로 폈다. 생각만큼 편안하지 않았던지 부스럭대며 밸트의 길이를 매만졌다.
『아무튼 그 양치기 소년이라는 아이도 그래. 곰이 나타났으면 얼른 산탄총을 쐈어야지.』
저게 실 없는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려지는 거다.
『디-인. 그 발언은 문제가 커. 어린애가 제대로 총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랑스러워하며 - 정말로 자랑스러워하며 딘은 코를 높게 으쓱였다.
『할 수 있고 말고. 난 열 두 살에 아빠가 보는 앞에서 빈 맥주 깡통을 전부 명중시켰어.』
『그야 형은 특별하니까. 아! 그러니까 내 말은...』
샘은 단어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특별하다는 말에 딘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려 석 달이나 앞당겨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점수로 치자면 10점에 9.8점이다. 흥분한 나머지 나무 꼭대기까지 단숨에 기어올라간 고양이처럼 입술을 당겨 씨익 웃었다. 벼락이 마을회관을 장식한 시계를 정면에서 때렸고, 맛이 간 시곗바늘이 연기를 뿜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칭찬하려던게 아니다. 원래는「열 두 살에 맥주 깡통에 총질하는 건 정상이 아니잖아」라는 의미로 말을 꺼냈던 것뿐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였다. 그걸 바보처럼 오해한 딘은 부끄럽다며 시선을 내리깔았고, 헛기침을 했다. 처음으로 무도회장에 나온 소녀처럼 볼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이래선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정정할 수도 없다. 덩달아 샘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실수로 구멍난 양말을 신었을 때처럼 화끈거리는 열기가 몸을 수직으로 꿰뚫었다. 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살았다.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민망해서 죽었을 것이다. 도어 미러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샘은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을 느꼈다.
『샘.』
도망치듯이 문가로 향하던 동생을 딘이 재빨리 붙잡았다.
설마, 이 마당에 감격의 포옹이 필요하다는 건 아니겠지... 딘이 몸을 확 잡아채며 안쪽으로 끌어당기자 샘은 숨을 멈췄다. 놀라기도 했거니와 몸을 가까이 밀착시키는 이런 식의 접촉은 낯설었다. 코로 향긋한 비누 냄새가 올라왔다. 그것이 참으로 달다고 느껴져 샘은 당황했다.
『형?』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게 봄날의 풋풋한 설레임을 닮았다는 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왜 그래.』
딘은 눈을 부릅뜨고 머리뚜껑 열고 정신을 탈출시킨 바보를 야단쳤다.
『이 멍청이! 지금은 새벽 3시야. 이런 야밤한 시각에 노크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 밖을 향해「거기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려던 건 아니겠지. 아예 날 죽여주세요 노래라도 부르지 그러냐. 불 꺼! 그리고 짐 챙겨! 우린 지금 여기서 당장 나가야 해!』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