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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아무래도 늦었습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메모에《철썩, 철썩, 철썩》이라 적어 보내지 말긔. ※


딘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괴물과 싸운 적이 있다.「모습 변환자」라고 불리우는, 하수구 냄새를 뼛속에서부터 풍기는 무지 더러운 녀석이었다. 재주도 좋아 남의 목소리까지 훔쳐간 괴물은 남의 집에서 위험천만하게도 부엌칼을 휘둘러대고, 샘을 흠씬 두둘겨 패고, 더욱이 동생을 깔고 앉아 두손으로 목을 졸라대기까지 했다.
은탄환이 장전된 무기를 들어 녀석을 조준하면서 딘은 기계적으로 딱 한가지 생각만 했다.
- 심장을 노려. 행여라도 빗나가면 안돼.
거울을 마주본 채 총을 쏘고 있다는 떨떠름한 기분은 0.5초도 지속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것은 딘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가 진심이 되어 샘을 죽이려 들 리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엔 그래서 한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겉가죽이 많이 닮은게 그게 뭐가 어때서? 처음부터 녀석은 남의 외모를 등쳐먹고 사는 괴물이었다. 은탄환을 심장에 박아넣으면 죽일 수 있었고, 딘은 녀석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게 전부였다.

그치만 지금은?
모르겠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이제부터의 내 앞날이 지금과는 달라도 한참 다를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어. 소중한 것이 영원히 사라졌고, 드디어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고, 그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루더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아인 이 누나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어. 아니, 대답할 수 없었지. 사무엘 콜트가 만든 총에 맞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겼으니까. 맙소사...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사라졌는데도 난 울 수도 없었어. 눈물이 말랐어.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어. 가족을 전부 잃었어. 나만 남았어. 어머니, 아버지, 동생... 다 떠났어. 카밀은 도망쳤고, 내 혈종들은 침묵했어. 내게 남은 건 오로지 절망뿐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견딜 수 없어 비명이라도 질러볼까 생각했는데 배를 바짝 끌어당겨도 끙끙 소리조차 나오지 않더군. 그저 온종일 거칠게 헐떡거리는게 전부였어. 가슴이 짓이겨지는 것처럼 아팠는데도 목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나왔어.』
그녀의 입술 귀퉁이가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혼자야. 이 세상에 나 혼자! 나만 남았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뱀파이어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 말에 딘은 등줄기로 소름이 얼음 알갱이인양 쭉 뻗쳐올라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어!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뼈와 가죽이 끊기는 우득 소리가 나면서 가슴에 박혔던 칼이 다시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셔츠 앞섶이 시뻘겋게 젖어들었다. 외관상 출혈은 제법 커보였지만 인간이 봤을 적에나 그런 것이고 불사에 가까운 뱀파이어에겐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터, 그녀는 상처가 난 부위를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다가 피투성이로 변한 손을 들어 보란 듯이 길게 혀로 핥았다.
『우습게도 난 아.직. 제정신이다. 차라리 이대로 미쳤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더군.』
녹슨 쇠붙이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똑, 하고 한 방울의 피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피! 딘은 자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원추형 무늬의 자잘한 핏방울이 구두에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겼고, 단숨에 눈을 찌르려 하는 칼날을 피해 옆구리를 세게 비틀었다.

『딘!』
경고하는데 거기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새미.
『디인!』
지금은 아무도 날 불러선 안돼.
『물러서! 물러서라고! 나, 여기서 저 여잘 쏠 거야! 딘! 제발 비켜! 듣고 있어?!』

아니.
네 말은 듣지 않겠다.
여기서 어떻게 물러설 수 있을까.
저 여자의 모습은 미래의 내 모습. 저 여자는 나. 언젠가... 멀잖은 시간 뒤의.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샘, 네 형도 곧 저렇게 될 거란다.
그러니까, 새미.
이 형은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그저 필사적으로 주먹을 쥐어야만 하는 거야.

옆구리의 통증을 묵살한 채 있는 힘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여자는 딘의 눈을 공격하려 했고, 둘 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충돌했다. 피투성이 주먹이 딘의 머리를 잡아챘고 딘은 질세라 이마를 바짝 들이밀었다. 몸과 몸의 좁은 틈새에서 유리 칼날이 어지럽게 칼춤을 추어댔다. 몇 번인가는 옷자락과 같이하여 살갗을 베었다. 딘은 이를 악물었고 게지나는 으르렁대는 개처럼 입술을 위로 말았다. 날카로운 이빨이 송곳처럼 튕겨나왔다. 위험하다. 딘은 온몸이 진땀으로 흠뻑 젖은 것 같았다. 축축해진 속옷이 기분 나쁘게 들러붙었다. 근육을 당겼다가 그대로 찌르면서 주먹으로 여자의 입을 쳤다. 때리고,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때렸다. 그 충격으로 두 서너개의 엄니가 잇몸에서 빠져나왔다. 날카롭고도 하얀 이빨은 흡사 줄이 끊어진 목걸이에서 빠져나온 깨어진 진주처럼 보였다.
『카악!』
그녀는 보복으로 박치기를 시도했다. 망치로 벽을 찧는 퍽 소리와 함께 눈앞이 잠시나마 흐릿해졌다. 광대뼈 위쪽으로 활활 다는 통증이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옆에서 누군가 쇳소리를 질러댔다. 찢기는 듯한 처참한 비명이었다. 딘은 누군지도 모를 그 멍청이에게 시끄러워 죽겠으니 제발 입 좀 닥치라고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 소리가 계속된다면 멋지게 발광해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제발! 그러다 깨달았다. 그놈의 시끄러운 멍청이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뱃속 깊숙이로부터 올라오는 악악대는 비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중이었다.

《겁 내지 말거라.》
마구 날아다니던 칼날이 2cm 깊이로 어깨를 찔렀다. 통증과 쓰라림에 등까지 다 찌릿거렸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다. 딘은 호흡을 멈추고 배 아랫부분으로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칼의 손잡이를 쥔 뱀파이어의 손을 수직으로 들입다 내리찍었다.
《네 동생을 잘 지켜주어라, 딘.》
귀라는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음 좋겠다. 진심으로 딘은 그렇게 생각했다.
뇌라는게 녹아서 흔적도 안 남기고 송두리째 증발했음 좋겠다. 진심으로 딘은 간절히 원했다.
《만약 지킬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스컹크가 방구를 뀌다 배를 뒤집고 죽을 발언이었다.
《샘을 네 손으로 죽이거라.》
저항할 틈을 주지 않고 뱀파이어의 주먹이 딘의 목울대 한 가운데를 강하게 가격했다. 앞이 까맣게 변하려 했다. 딘은 두손을 목으로 가져가곤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 똥 덩어리 같은 아버지!

판단력이고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진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통증, 절망감. 상실감, 왜 나는 이대로 미칠 수 없는 거지, 거울처럼 서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사한 눈동자가 충격적인지라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상대방의 눈을 후벼파려 했다. 저렇게 흉측하게 생긴 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새카맣게 죽어버린 눈빛. 그렇지 않은가. 끔찍해, 정말 끔찍해. 종말과 파괴를 선언하며 위로 치켜올려진 여자의 팔을 간신히 붙잡았다.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매마른 팔이 나무 막대기처럼 딘의 얼굴을 깊숙이 긁으려 했다. 딘도 지지 않고 바둥거렸다. 붙잡은 그녀의 팔을 왼쪽으로 힘껏 비틀면서 강제로 뚝뚝 끊기까지 했다.

『카밀은 날 보자마자 살려달라 애원하며 벌벌 떨더군.』
하지만 손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어지는 것쯤은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 그녀의 눈은 백만볼트의 전기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풀어지지 않는 왼손이 딘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밀어젖혔다. 덕분에 뒷통수가 닿은 시멘트 바닥이 쿵쿵 울렸다.
『그 계집은 자기 남편의 시신을 차가운 길가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도망을 쳤어. 그 멍청한 것은 내 동생의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았다고!』
주먹이 다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이 실린 팔꿈치가 늑골을 찍었다.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년의 목을 물어뜯고 있더군. 뭐, 어차피 그 자리에서 죽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으니까... 대신 나는 카밀에게 멕시코로 가서 어린애를 죽이라고 명령했지. 그래야 남미의 뱀파이어 헌터들이 불을 밝히고 그녀를 사냥해서 잔인하게 죽일테니까. 그 계집은 그렇게 당해도 싸.』
왼쪽 넓적다리에 격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딘은 복날에 더위를 먹은 짐승처럼 끙끙거렸고 다음으로는 어깨뼈가 비정상적으로 구부러지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난 그렇게 해야만 했어.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녀의 오른쪽 주먹이 번개처럼 내뻗었다. 그것이 딘의 코를 정면으로 갈겼고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찌릿찌릿한 고통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갔다. 갑자기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탁한 기침이 터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쿨럭이는 기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대신 걸죽한 느낌의 코피가 목구멍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숨 쉬는 일을 방해했다.
『내가 알게 뭐야~!! 시끄러! 입 닥쳐! 다들 조용히 해! 제발 나에게 묻지 마! 묻지 말라고!』
바닥을 거머쥐고 다리를 들어 발길질을 했다. 두 다리가 정확히 뱀파이어의 가슴을 쳤고 미처 피하지 못한 그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쿵 하고 쓰러졌다. 이때다 싶자 딘은 피가 흐르는 코를 한 손으로 감싸쥔 채 넘어진 뱀파이어를 재차 걷어찼다. 하얀 몸뚱아리가 쓸모없는 물건처럼 앞뒤로 흔들렸다. 핏기를 잃은 창백한 얼굴이 악 소리를 내며 튕겨 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차갑게 쏘아보며 여자의 등을 향해 킥을 날렸다.

뿌리부터 올라오는 짙은 혐오감.
《너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물론 그렇게 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고.》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새미를 죽이고 나서.
새미가 죽고 난 뒤에.

그 역시 인간이고 짐승이고 가리지 않고 전부를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서있는 건지, 아님 누워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헛구역질이 나려 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두통과 피로감이 철사가 되어 몸을 칭칭 감았다. 무릎이 와들와들 떨렸다. 불가항력적으로 딘은 고개를 숙였고 웩 하고 노란 신물을 한웅큼 토해냈다.

살과 피를 먹여 손수 키웠다.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비난하는 눈길.
아버지.
비난하는 눈길.
아버지.

그 소중한 걸 내 손으로 숨통을 끊으라고?
딘은 토악질한 것과 피가 들러붙은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뺨을 쓰다듬어 내렸다.
그게 자기 아들에게 할 말이라고 생각하우?! 이 좇 같은 놈아!

Posted by 미야

2007/09/23 23:55 2007/09/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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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고고 2007/09/25 00:48 # M/D Reply Permalink

    그래도 딘씨는 싸우는군요. 그냥 홀라당 홀릴 줄 알았더니...두근두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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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예배중에 난입하여「이 그지 발싸개 같은 것들아!」라고 소리를 지르면 천벌 받습니다. 머리 꼭대기로 천둥 벼락이 내리꽂혀도 할 말은 없는 거예요.

무장하고 난입한 이쪽이 되려 악당이 된 기분이다. 앞으로 진격하려다 말고 주춤거렸다.
의자에 띄엄띄엄 신자들이 앉아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이 아닐테니 신자라고 할 수 없겠지만 - 여하간 진짜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식으로 다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성경책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콧잔등에서 미끌어진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리고는 목사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자기 코에서 나는 드륵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도「절대로 안 졸았어요」주장하고.
제단 위로 목사로 짐작되는 양복 차림새의 남자가 어깨를 떨구고 서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말만 꺼내면 완벽하다. 좌편으로 덩치가 남산인 흑인 사내가 얼굴을 땅에 박은 채 큰 대자로 뻗어있다는 점만 빼자면 하품이 나와 미칠 것만 같은 수요일 오후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딘은 구석진 자리로 가서 엉덩이를 붙여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고민이었다. 사냥도 좋지만 일단은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가... 그러니까 밥 먹는 개는 안 건드리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딘은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어쩌면 그 표현은 이럴 적에 쓰기엔 안 맞을지도. 아닌게 아니라 리의 눈이 도끼날처럼 변했다.
『무쉰 비유가 그 따위야. 네놈 학교 다니던 시절의 작문 점수가 눈에 훤하다!』
『안 앉았어. 의자에 안 앉았다고. 그냥 고민만 한 거야. 진짜야!』
『그러니까 그딴 고민을 왜 하냐고! 이것들이 지금 하느님께 기도라도 드리고 있을까봐? 진짜로 그랬다간 살로메와 세례자 요한이 어화둥둥 내 사랑 이러고 노래를 불러댔다.』

씩씩한 자세로 붉은 카펫이 깔린 정 중앙으로 다섯 걸음 전진했다. 기척에 반응하여 제단 위에 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죽을 만큼 린치를 당한 탓에 눈동자가 흐릿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의식이 있었다.
『도와... 주세요... 제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앞에서 다섯 번째 줄에 앉은 검정 머리카락의 여자 앞으로 가서 똑바로 섰다. 팽팽한 공기가 샛노란 불꽃을 뿜어냈다. 진검 승부다. 증오심과 적개심, 그리고 기나긴 세월동안 몸을 침식해온 원망이 한덩어리로 뒤엉켰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째찍이 부드럽게 몸을 내리치는 감각이었다. 날카롭게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독이다. 사람을 죽이고, 영생한다는 그 뱀파이어마저도 죽게 만드는 맹독이다. 생명력을 송두리째 고갈시키는 저주 그 자체다. 소중한 걸 영원히 잃어버린 자들이 그 무기력감에 울부짓는다. 외침은 진동이 되어 건물을, 땅을, 하늘을 흔들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건 없다. 사랑하는 이들은 돌아오지 못 한다. 그것이 더욱 슬퍼져 가장 강력한 소리로 자신의 아픔을 탄원한다.
울림은 새카만 암흑으로 치장되어 오염된 비닐 껍데기처럼 대지를 덮는다.
그 소복히 어둠이 내린 곳으로 커다란 낫을 든 죽음이 청동색의 말을 타고 달려나간다.

리는 카메라 플래쉬 앞에서 포즈를 잡는 모델인양 허리로 손을 얹었다.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검정 머리의 여자를 향해 들입다 쏘아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뱀파이어 주제에 기도라도 하겠다는 거냐. 이 변태-♡』
말꼬리로 하트를 붙이는 당신이 훨씬 더 변태 같아요 - 라고 샘은 생각했지만 현명하게도 느낀 바 그대로를 소리내어 말하진 않았다. 여자들이 손톱을 세우고 싸울 적엔 남자들은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샘은 리를 계속해서 주시하며 물결 무늬 스테인드 글래스가 장식된 오른편의 성가대석 쪽으로 바짝 접근했다. 그리고 그런 샘의 움직임에 식겁한 딘은 두 걸음 빨리해서 앞줄로 이동했다.

세어보니 중간 좌석까지 차지하고 앉은 뱀파이어의 숫자는 모두 열 하나.
샘이 형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딘은 너무 빠르다며 일단 멈춤의 의미로 손바닥을 짧게 끊어 가로로 휘둘렀다.

『겨우 세 명뿐인가. 의외네.』
성인 여자라고 하기엔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 톤이 낮았다. 게다가 서랍장에 달린 낡은 경첩이 움직일 적마다 내는 끼꺽이는 소음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이의 몸을 움찔하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었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소름끼치도록 압도적이었고, 그것은 아무런 색이 칠해지지 않은 거대한 바위로만 만들어진 집 - 이를테면 태고적의 피라미드 같은 - 을 연상시켰다. 값비싼 대리석으로 한껏 치장한 꽃병 장식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천장과 높이가 무려 100미터에 이르는 도리아식 기둥의 위엄 앞에선 수영장 딸린 방 열 여덟 개짜리 저택도 한풀 위세가 꺾이는 법이다.

리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안색의 여자를 자세히 뜯어본 다음, 어깨를 으쓱였다.
『왜. 군대라도 출동할 거라 생각했어?』
『군대까진 아니어도... 세 명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드는군.』
『걱정 마, 오리진. 숫자는 적지만 어떻게든 해볼 작정이야.』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네. 상대가 뱀파이어 오리진이라는 걸 알아면서도 그대처럼 동요를 보이지 않는 헌터는 그리 흔치 않지.』
『착각 마셔. 자신감이라고 하긴 뭐하지, 이 경우는. 죽음을 바라는 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건 마치 정해진 운명과도 같아서 피차간에 피해갈 수가 없다고나 할까.』

뱀파이어는「운명」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피식 웃으며 팔과 다리를 쭉 폈다. 근육이 거의 붙지 않아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였다.
『운명이라고?』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난 이런 건 딱 질색이야, 뱀파이어 씨. 누군가에게 멋지게 농락당하는 기분이 되거든. 그치만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게 있더라고.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당신은 여기서 죽는 거고, 나는 당신의 목을 따고.』
보란 듯이 도발했음에도 뱀파이어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지. 내가 당신의 목을 물고, 당신은 여기서 죽고.』
『하아! 서로 다른 두 가지 내용의 결론이라... 흥미롭군.』
『전혀. 사실을 말하자면 어느쪽이든 이미 내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리는 빠른 속도로 오른팔이 뒤쪽으로 휩쓸리는 것을 느꼈다. 어느틈엔가 자리에서 일어난 혈종(血奴)이 리의 상의를 붙들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겨드랑이가 닿을 정도로 끌어당겨지자 리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회전시키면서 칼을 들어 남자를 쳤다. 그런데 서두르다보니 높이가 안 맞았다는게 심히 유감이다. 노리던 목이 아니라 하필이면 이마를 쳤다. 파고 들어가는 기세는 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했어도 칼날은 머리 뚜껑의 1/3 가량까지만 절단한 다음,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리의 눈이 짜증을 담아 가늘어졌다.
『쳇! 이 자식이 갑자기 허리는 왜 굽혀가지고... 초장부터 일진 사납네.』
목뼈까진 어떻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두개골을 두쪽내려면 전동 드릴이 필요하다. 머리는 제일 단단한 뼈다. 이렇게 도중에 박혀버린 상태에선 팔의 힘만으로는 밀고 당겨도 꼼짝도 안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아깝지만 저 칼은 그만 버리는게 좋겠다.

『시끄러운 암캐다. 얘들아.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닥쳐, 할망구! 누가 암캐라는 거냐!』
머뭇거리며 뇌조직이 흘러나온 자기 이마를 만지작대는 바보 혈종따윈 다리로 걷어찼다. 그치만 손을 뻗어 찍어누르려는 손길이 모두 여덟이나 되었다. 한쪽 어깨가 잡혔고, 그것은 무의미한 위협과는 차원이 달랐다. 리는 얼굴을 바닥으로 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뺨이 눌린다 싶자 그들 중 하나가 무릎으로 그녀의 등을 체중을 실어 찍었다.

『리!』
『샘, 딘! 내 걱정은 관두고 저 빌어먹을 년부터 조져!』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동시에 뭔가가 반짝였고 몇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비틀거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거주춤 넘어진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발목으로 빨간색 발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게 실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날카롭게 베어진 자국이라는 건 상처 틈새로 선홍색의 피가 흘러나오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 젠장. 뱀파이어의 피도 인간처럼 붉다는 건 언제 봐도 짜증나.
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이프를 들어 쑤시고, 헤집고, 여기저기 더 찔러댔다.
『망할! 우라질! 이 쓰레기 잡탕들은 나에게 맡기고 저 여잘 잡아!』

그치만 그 잡탕 쓰레기 셋이 이미 샘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샘은 허겁지겁 산탄총을 꺼내들고 위협의 의미로 정면으로 한 발, 오른쪽으로 다시 한 발을 발사했다.
나이 오십 줄의 아줌마가 총열을 잡으면서 위협을 주는 행위는 위협을 당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막막했다. 그들이 아무런 생각이나 확신도 없이 움직인다는게 문제였다. 샘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고 그래서 대응이 쉽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여전히 총을 붙들고 늘어졌다. 남자 하나가 방울뱀처럼 민첩하게 샘의 허리를 잡고 터치 다운을 시도하려 했다. 균형을 잃은 샘은 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손바닥을 짚었다.
그걸 본 딘의 눈에서 불이 튀어나갔다.

『샘에게서 당장 떨어져! 내 콧구멍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녀석에게 무슨 짓거리야!』
헐크가 된 딘이 이얍 소리를 내며 커다란 장식용 화분을 들어 던졌다.
커다란 쾅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사내가 쓰러졌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왜 나를 콧구멍에 넣는 건데? 넘어져 있던 샘은 잠시동안 일어설 생각도 않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야! 얼른 일어나. 뭐야, 그 얼 빠진 표정은. 내 콧구멍이 그렇게 싫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딘! 그 지저분한 콧구멍에 날 넣기만 해봐! 가만 안 둬!』
그럼 어떤 구멍이면 된다는 거야. 동생을 일으켜세운 딘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전진하며 스냅용 나이프를 들어 검은 머리카락의 뱀파이어를 조준했다. 그럼 정확히 심장을 꿰뚫는 거다. 술집에서의 다트 게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인기척을 느끼고 여자가 눈을 들었다.
불현듯 시선이 마주쳤다.
- 내 동생을 죽였어.
죽도록 싫었지만 딘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다는게 매우 까다로운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 너희들이 내 동생을 죽였어!
얼어죽을 다트 게임! 손이 떨렸다. 딘이 던진 나이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슴 한 가운데에 가서 박혔다. 그러나 깊이가 형편 없이 얕았다. 이래선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수상 자리로 오르기 전에 상한 햄버거를 먹고 식중독으로 쓰러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딘은 그의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에 혀를 깨물었다. 헌터 생활 15년이 상표도 없는 햄버거 포장지처럼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존의 성난 목소리가 뇌리에서 되살아났다.「이 형편 없는 녀석!」
그보다 더 직접적인 목소리로 샘이 울부짖었다.『위험해!』

그림자가 위로부터 길게 드리워졌다. 분명 자신보다 키가 작은 여자일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새카만 암흑의 눈동자가 딘을 아래로 해서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는 당장 생각해내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뱀파이어의 시선이 그의 머리를 덮었다는 거였고, 그것도 심장에 칼을 박은 채였다는 거였다.
코로 역한 피냄새가 몰려왔다.
뒤로 물러서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다리는 생각처럼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늘한 호흡이 뺨을 간질였다.
안 좋다, 이런 건.

『그 작은 핏덩이를 처음 안아들었을 적의 감동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녀가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딘이 눈이 옆으로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뱀파이어의 눈동자도 딘을 따라 흔들렸다.
『온통 주름 투성이에 온몸이 새빨갰지. 처음엔 무척이나 못 생겼구나 혀를 끌끌 찼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 작은 아이는 내 품에서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즉시 더할나위없는 사랑을 느꼈어. 내 분신이고, 내 형제이자, 어머니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에게 키스하고 나의 자유 의지로 내 피를 루더에게 주었지.』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심장에 박힌 칼의 손잡이을 쥐고 잡아당겼다. 피투성이 칼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고통은 전혀 다른 곳으로부터 솟구쳤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쉽게 잠들어버리는 아기.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아기.
『내 품에 안고, 내 피를 먹여 키웠단 말이다! 내 동생! 내 동생이란 말이야! 이제 네놈들이 뭔 짓을 저지른 건지 알겠어?! 그러고도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어? 말해봐, 인간. 너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을 거 아니냐!』

더 이상 어디에로도 추락할 수 없는 비통이 머리를 때렸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면서 딘의 손 떨림은 한층 더 심해졌다.

Posted by 미야

2007/09/16 18:33 2007/09/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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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캬초 2007/09/17 00:55 # M/D Reply Permalink

    흑.ㅠㅠ 이밤중에 심장이 너무 떨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어요. 동생. 그 짧은 한단어만큼 딘에게 커다랗게 다가오는 것도 없겠지요.ㅠㅠ 미야님 소설은 재밌는 표현들이 많고, 샘이랑 딘이 투닥대는 것도 즐거운데. 가끔씩 이렇게 가슴을 찔러요. 흑. 담 편 기다릴께요~^^

  2. 고고 2007/09/18 23:52 # M/D Reply Permalink

    캬아.....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시공이 정지하나니...딘 어쩐답니까. 이럴때면 불쌍하고 가엽고 이쁘고...허어..다음편은 재촉하면 안되나요? 건투를 빕니다. 미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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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로만 칼라 덕분에 저는 짐을 신부님으로 착각했습니다. 신부님을 목사님으로 고치려니 예전에 쓴 글까지 모조리 엉겨붙는지라 에라 모르겠다 겔름 누워버렸습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개종하시라 해야겠습니다. /// ※

 
왜 하필이면 교회인 거지.
딘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친 동작으로 임팔라의 열쇠구멍에서 키를 잡아뺐다.
교회는 진짜 싫다. 체질에 안 맞는다. 코흘리개 시절에 부득이하게 동생과 같이 짐 신부님에게 신세를 졌을 때에도 미사에는 절대로 참석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더랬다.
「어린이를 위한 노아의 방주 이야기」내지는「그림으로 보는 산상 설교」같은 책은 읽었다. 그리고 그걸 샘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예수님? 하느님? 천사님? 딘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커다란 마리아님 조각 앞에서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째리며 속삭였다.
- 당신의 힘은 위대하다면서요. 그런데 어째서 우리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나요.

같은 질문을 짐 신부님에게도 해봤다.
- 천사님은 하느님에게 정리 해고라도 당해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걸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짐은 이마를 한껏 찌푸렸다. 어쩐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정리 해고라는 어려운 말은 어디서 들었니, 딘.」
「센터에 갔을 적에 급식을 타러 온 아저씨에게서 들었어요. 왜요?」
때마침 샘이 콜록거리며 기침을 터뜨려서 다행이었다. 짐은 샘을 위해 어린이용 감기약 시럽을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황급히 자리를 떴고, 나중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노숙자 보호 센터로 달려가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는 애매한 사람을 붙잡곤「아이들 앞에서 장기불황, 사장님, 해고 어쩌고 하지 마시오! 그 아이들까지 상처를 받아서야 쓰겠소?!」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들을 나무라는 자신에게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짐은 아이들 앞에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를 꺼렸다.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던지 짐은 사흘간 금식하며 열성으로 기도했다.

그래봤자 딘에겐 상관 없었다. 그에게는 흔들릴 종교적 신념도 없었고 잃어버릴 믿음도 없었다. 오로지 끈적끈적한 콧물을 달고 있는 어린 동생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샘은 아프다며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열이 났으며, 끝장으로 칭얼거렸다. 독감이 유행인 계절이었다.

『불은 환하게 켜졌는데 무척 조용하네. 그치?』
『응?』
짧았던 상념에서 깨어난 딘은 턱을 적당한 각도로 잡아당겨 무릎 아래서 얼쩡거리고 있을 코흘리개 동생을 찾았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비누 냄새를 풍기는 꼬맹이의 정수리에 코를 묻고 뺨을 비비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1989년은 진작에 끝났고, 여섯 살짜리 아기는 어느새 엠파이어스테이츠 빌딩을 한 방에 초토화시키는 멍키 고릴라가 되었다. 네 살 아래의 동생을 쳐다보는데 눈의 높이를 상향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굴욕감 - 동시에 맨손으로 이렇게나 잘 키워냈다는 흐믓함 -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딘은 샘이 건낸 짐 꾸러미를 다치지 않은 손으로 받으려 했다.

『형! 안돼. 그거 무거워.』
『앗차!』
비극을 예감한 샘이 재빨리 주의를 주었지만 늦었다. 권총이니 칼이니 하는 쇠붙이들로 가득찬 가방은 대략 9kg에서 11kg 정도였고, 그 정도의 무게를 오로지 한 손으로 감당하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었다. 물건을 잡기 위해 오무린 손바닥이 민망하게끔 가방은 꽈당 소리를 내며 추락했고, 딘은 모두의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쏟아짐에 큰 부담을 느꼈다.
에... 그러니까 말입니다. 인정해야겠군요. 제가 잠시 딴 생각이라는 걸 했습니다.

『이 멍충아!』
뒷통수를 찰싹 때리며 리가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재수 달아나게 식사 전에 숟가락 떨어뜨리고 막 그럴래?!』
숟가락이라니. 하하하. 귀에 쏙 들어오는 비유이긴 하다만 어쩐지 듣기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딘은 어색하게 웃으며 땅바닥에 떨어뜨린 가방을 다시 잡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동시에 두 손을 사용하는 걸 무의식중에 꺼릴 정도로 다친 곳이 그렇게나 아팠던가 싶어 당혹스러웠다. 안 된다. 아픈 건 억지로 참으면 되는 것이고, 모두를 걱정시켜선 곤란하다. 딘은 일부러 씩씩하게 움직였다.
『형... 손 많이 아파?』
『괜찮아, 샘.』
곧 죽어도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며 샘이 이죽거렸다.
『맞아. 천지가 개벽하려면 앞으로 일만 년 정도는 더 참고 기다려야 하지.』
『뭐야, 그 까칠한 반응은.』
『머리로 회충이 들어가서 그래.』
그렇습니까. 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거기 있는 총이나 이리 다오.』
샘은 가면을 뒤집어 쓰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없었다. 게다가 이어지는 말투도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큼 건조했다. 하지만 샘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일엔 딘보다는 덜 똑똑했고, 그렇기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이 딘에게 어떻게 보일 거라는 걸 미처 모르는 듯했다.
『산탄총은 관둬, 딘. 가급적 반동이 작은 걸로 잡아.』
『어차피 거기서 거기야. 그리고 다친 건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야.』
『진짜 못 말린다! 가끔은 사람 말도 좀 듣고 그래.』
『멍멍.』

샘이 걱정하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걱정하는 건 전적으로 그의 몫.
딘은 땀으로 끈적거리는 손바닥을 바지춤에 재빨리 문질러 닦고는 주변을 살폈다. 교회 주변으로 주차된 승용차가 모두 네 대나 된다. 상주하는 관리인의 차가 한 대, 목사가 운전하고 다니는 승용차가 한 대라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에 의해 나머지 두 대는 불법주차 차량이라는 얘기가 된다. 우와, 도덕과 양심을 강조하는 교회 앞에서 보란 듯이 경범죄를 저질렀다 이거지. 숏건을 든 딘은 감청색의 혼다를 눈여겨 보며 그 앞을 기웃거렸다.
느낌이 안 좋다. 차체는 어중간한 각도로 세워져 있어 마치 도주 중인 강도가 아무렇게나 버리고 달아난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이밀고 차량 내부를 살펴봤다. 못난이들이 스테레오를 강제로 뜯어가진 않았고... 플래쉬로 앞좌석을 흝었다. 구겨진 도넛 포장지와 일회용 종이컵이 굴러다니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핸들에 손가락 모양으로 설탕 얼룩이 남아 있다. 아무래도 혼다의 주인은 그렇게 깔끔한 성격은 아닌 듯하다.

등뒤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걸 봐, 딘. 무전기가 달려있어.』
『나도 봤네요.』
『경찰일까?』
『그건 아닐 걸. 아마 민간 방범대원일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짭새가 안전밸트 미착용으로 딱지 끊는 거 봤니?』
플래쉬가 다시 바닥 한 지점을 비췄고 범칙금 발부 스티커를 본 샘은 짧게 오, 소리를 냈다.
다만 여기서 걱정인 건 민간 방범대원의 신분으론 교통 단속을 피해갈 순 없어도 정식으로 등록된 총은 들고 다닐 거라는 점이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탕탕탕 소리를 떠올린 딘은 이마를 찌푸리며 교회 처마를 쳐다봤다. 날카로운 이빨만 해도 충분히 골치아픈데 그것들이 총까지 탈취했다면 정말 골치아프다.

바로 그때 리가 샘의 어깨를 짧게 쳤다.
『친애하는 예비 범죄자 씨들? 아무리 마음에 들었어도 자동차는 나중에 훔쳐.』
그게 뭔 소리라며 샘이 두 팔을 항의조로 활짝 벌려보였다. 그치만 그녀는 벌써 몸을 돌려 교회 정문으로 연결된 계단을 힘차게 밟고 있었다. 싸한 박하 맛의 공기가 그런 그녀의 주변을 에워쌌다. 딘은 그것이 근육통에 바르는 차가운 맨소래담 연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헤이!』
『왜.』
『안에 얼마나 있는 거지.』
『알고 싶어?』
『뭐야, 그 얼굴은. 저 안에 각다귀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면 뒤돌아 줄행랑을 치고 싶을 거라 말하고 싶은 눈치군.』
『자기가 질문하고 자기가 답하면 재밌어?』
비웃음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교회 문을 열었다.
「주님에게로 향하는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딘이 바짝 붙어 따라갔다.

맨 처음, 딘은 정육점 뒤에 있는 쓰레기통의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코가 거부하는 그런 악취였다. 다음으로 그는 문 위로 적갈색의 - 그리고 끈적거리는 점액질 물질이 사선 모양으로 번져 있는 걸 보았다. 얼룩은 흡사 유치원생 아이가 음악에 춤추며 손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문질러 내린 듯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문 바로 앞으로도 거무스름한 빛깔의 액체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피다 - 상당한 량이다 - 그런데 우습게도 시체는 없다. 그리고 시체를 질질 끌고간 흔적도 없다. 중앙 복도를 따라 방울방울 떨어진 갈색의 얼룩만이 그 자리에서 뭔가가 일을 헤치우고「떠나갔다」라는 걸 알려주었을 뿐이다.
『젠장. 아주 제대로 해놓으셨구먼.』
신성모독의 살인 현장으로 첫 걸음마를 뗀 리는 퉷 소리를 내며 침을 뱉었다. 가까운 곳으로 커피 음료 자판기가 있었고 신자들을 위한 소책자가 진열된 책장이 몇 개 보였다. 낡은 의자도 있었다. 핏자국은 그곳으로까지 마구 이어져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의 멋진 현대적 그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까지 오래되어 부식된 철의 냄새를 풍겼다. 그걸 가만히 코로 맡고 있자니 샘은 속이 메슥거렸다.

왼편으로는 성가대 연습실과 화장실이 있었는데 거기는 불이 꺼져 있었다. 리는 계속 가자는 신호를 하며 연습실을 지나쳤다. 하지만 딘은 그 안에 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스름하게 사람 그림자처럼 생긴 걸 분명 봤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창문을 1cm 가량 열고 기웃거리며 내부를 살폈다. 있다. 누군가 책상에 엎드려 있다. 춘곤증에 못 이겨 잠시 조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저건 시체야. 나라면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아.』
돌아보지도 않고 리가 말했다.
딘은 우거지상을 하고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았다.

예배당 앞에선 두 명의 여자가 똑같은 자세로 문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언뜻 봐선 추위를 피해 모닥불을 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중 하나는 무릎 아래로 다리가 없었다. 딘이 가만히 쳐다보는 사이에 멍하니 벌려진 입술 틈새로 커다란 붉은 거품이 밀려나왔다. 색색 숨소리가 거칠었다.
샘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내는 감각으로 두 여자의 목을 쳤다. 그 즉시 귀로는 들리지 않을 비명이 천장을 후려쳤다. 그것이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샘은 움찔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통통 튀며 머리통이 굴러갔고 딘은 문을 가로막고 선 여자들의 몸뚱이를 치웠다.

『저 안은 확실히 다를 거야.』
손잡이를 잡은 채 리가 말했다.
『안전은 보장하지 못 해. 각오는 된 거지?』
딘과 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고 말고. 당신은 뱀퍼이고 우린 헌터야.』
『좋아, 베이비. 그럼 한바탕 날뛰어 보자고.』
리는 두 팔에 힘을 주고 문을 힘껏 밀었다.

Posted by 미야

2007/09/09 21:01 2007/09/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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