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지도 않나

비쩍 마른 나뭇가지 형상의 여인이 반으로 꺾어졌다.
나는 훅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나를 위해 기도했나요?」
허깨비가 온전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었을 리 없다.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 너머를 노려봤다.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원망하는 투는 아니다. 질책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뭐랄까... 자신을 위해 기도했느냐 묻는 그녀의 목소리엔「오늘 날씨는 제법 쌀쌀하네요」식의 일상생활의 식상함이 담겨 있었다.


레일라.
카운터에서 약값을 계산하는 것도 잊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호오, 그렇군요. 당신은 나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기도하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가냘프게 잦아들었다.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군요. 당신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도 신에게 기도하지 않죠.」

모르겠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기도를 해도 그만. 기도를 하지 않아도 그만.
어차피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맞아요. 사람은 모두 죽어요. 그래서 나도 죽었죠.」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6개월의 시간이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수술은 불가능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부지런히 움직여 정해진 바퀴를 전부 돌고 나면 지상에서의 하루는 온전히 막을 내릴 것이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결말이다. 핏기를 잃은 얼굴 위로 차가운 흙이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일라는 그 믿음을 시험하며 기적을 소원했다. 살고 싶어했다. 병을 고치고 싶어했다. 치유의 은사를 가졌다는 목사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에 응답했던 건 하느님이 아니라 부정한 마법의 힘, 죽음은 그저 농락당했을 뿐으로 나와 내 동생에 의해 마법이 깨어지자 기적이라 포장된 가식적인 구원 또한 송두리채 말살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났을 적에 그녀는 다시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처럼 눈물을 쏟아가며 울지는 않았다.
다만 체념의 빛이라는 것이 커다란 모자처럼 레일라의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 몸이 아프다는 걸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듯했다. 레일라는 희한하게도 이젠 안 아프다고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병이 호전되는 증상이 아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 더 이상 고통은 없다 - 레일라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싸구려 여관방에 걸린 벽시계가 착착 소리를 내며「종료. 끝. 결말」이란 단어를 완성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도 그럭저럭 6개월인가.』
달력을 쳐다보며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은 없다. 지옥으로 떨어지기까지 정확히 몇 달 몇 일이 남았는지 헤아리는 건 내 성격엔 안 맞는다. 오히려 그런 건 동생에게 어울린다. 그러니 샘에게 가서 손바닥을 마주비비며 물어보자. 앞으로 형이 살 날이 얼마 남았니? 그러면 동생은 씩씩거리며 대답할 거다.「문딩이 자식!」그래, 그래. 욕하면서 느낌표 붙이는 걸 보니 반 년 정도 남았구나. 그제야 나는 멀지 않게 들려오는 시계 초침 소리를 깨닫는다. 정해진 바퀴를 부지런히 돌고 있다. 한 바퀴를 도는게 60초, 한 바퀴를 도는게 1분, 한 바퀴를 도는게 1시간...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그렇게 지옥을 향해 착실히 걸음을 내딛고 있다.

후회 없는 한 걸음.
후회 있는 한 걸음.
아아, 샘.
동생의 눈이 증오로 빛난다.

『나더러 그냥 살아가라고?! 나 때문에 형이 지옥에 가게 됐는데?!』
『살아.』
『딘!』
『넌 그렇게 할 수 있어.』
샘이 이를 간다. 증오다. 뿜어져 나오는 건 순결한 증오의 감정이다.
『나는 기억해. 아빠가... 형을 위해... 형을 살리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걸 깨닫고나자 형은 무너졌었어. 그런데 이젠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안 무너져.』
별 거 아니라는 투로 쉽게 대꾸한다.
그리고 나서 깨닫는다.
그렇다.
나는 이 동생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큰 상처를 주지 않았을 터.
내 목숨을 줬고, 내 살을 먹였고, 내 피를 마시게 했어도 사랑하진 않는다.
그러니 너도 날 사랑하지 마.

그 호박색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널 사랑하지 않으니 너도 나를 사랑하지 말아.
그러면 넌 무너지지도 않을 거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어.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더 이상 슬픔은 없다 -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며「이 해열제는 얼마죠」약국 직원을 향해 무뚝뚝하게 질문했다.

Posted by 미야

2009/09/04 12:20 2009/09/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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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미에 2009/09/04 22:07 # M/D Reply Permalink

    ㅠ.ㅠ 레일라.... 흑.
    문딩이 자식! 성내는 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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