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다시 썼어요... 작업을 중지하라는 신의 계시 같음.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자주 이용하던 공중전화가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시대가 변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이용률은 저조한데다 유지비는 많이 들잖아요.』
공구함을 정리하며 사내가 말했다.
TA&T 회사의 지역 공중전화 유지보수 팀으로 리포트가 올라가면 눈치껏 중간에 가로채거나 한줄 슬그머니 끼워 넣는 식으로 나름 농간을 부리고 있었는데 일이 바쁜 관계로 잠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당해버렸다.「철거예정」글자를 발견하자마자 맨발로 뛰어나왔는데 회사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직원은 그보다 더 빨라 기계를 신속히 뜯어버렸다.
『남겨진 전화 부스도 조만간 정리할 겁니다.』
기다려 - 그걸 가져가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라고 - 누가 보아도 당황한 기색인지라 잘려나간 전선을 정리하던 직원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핸드폰의 보급률이 얼마나 높으면 거의 대다수의 미국인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다. 공중전화 부스가 철거되어 큰 불편함을 느끼는 부류는 쫄쫄이 갈아입을 장소가 필요한 수퍼맨 빼면 돈 없는 불법이민자들밖에 안 남는다. 그런데 지금 그가 마주보고 있는 남자는 제법 비싸 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다. 안목이 없어 잘 몰랐지만 사실 핀치가 입고 있는 양복의 가격은 남자의 5개월치 급여와 맞먹는 수준이다. 핸드폰이 없어 공중전화를 애용할 사람으로는 안 보였다.
그런데 왜 안색이 새파랄까.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까.』
게다가 애원하기까지 한다.
『전보가 사라진 것과 비슷한 겁니다. 여기서 다시 10년이 지나면 핸드폰 또한 없어지겠죠.』
포기하고 한 시대의 종말에 그만 작별인사를 하라며 뜯어진 전화기의 잔해를 가리켰다.
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
핀치가 창조한 기계는 덩치만 커다란 바보는 아니라서 공중전화가 사라지면 다른 소통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지 대응 방식을 마련하여 리스와 핀치에게 지속적으로 번호를 보내올 것이다. 그러니 거리에서 공중전화 한 대 사라졌다고 풀 죽은 표정을 할 까닭이 없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것이다.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아으아으아.」
의자에 앉았다가 곧바로 다시 벌떡 일어섰다.
「어쩌지. 차라리 통신회사를 인수해버릴까.」
하지만 이 경우엔 자금력이 문제가 아니라 익명성이 큰 문제가 된다. 몇 개의 유령회사를 동원하여 호텔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공공자재로 인식되고 있는 통신회사의 인수는 얘기가 다르다. 세금만 먹는 바보들이라 욕을 얻어먹고 있을지언정 미합중국 정부는 나름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있다. 뭔가 수상하다 생각한 관련 기관에서 유령회사의 자금 흐름을 비밀리에 추적하기 시작하면 도마뱀 꼬리를 자르는 정도로는 흔적을 감추지 못한다. 자칫하면 발각된다. 핀치로서는 그런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한다.
안드레아 보깔톨로냐 가명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볼까.
공중전화, 필요합니다. 고국에 있는 아내, 기다립니다. 없어져 불편해요.
쓸데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기업이 특정 개인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것 같은가.
안경을 벗었다가 눈살을 찌푸리곤 도로 콧잔등 위로 얹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생겼습니까.』
리스의 눈으로 보기에 지금의 핀치는 진한 커피를 연거푸 마셔댄 사람처럼 보였다.
『아님 어디 아픈 곳이라도...』
『아뇨.』
반사적으로「신경 쓰지 마세요」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우리 집 앞에 있던 공중전화기가 갑자기 철거되어 속상해요.」라고 해봐라. 그 즉시 입이 귀에 걸려서는 뉴욕시 공중전화 철거현황 자료를 구해다놓고 곳곳에 빨간색 X자를 그려놓을게 틀림없다. 사흘 뒤에는 초인종이 울릴 것이고, 놀라서 나가보면 페페로니 피자 상자를 들고 있는 리스가 시치미를 떼고 서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사흘이 지나면 주문하지도 않은 싱글 침대가 배달될 것이고, 의외로 뻔뻔한 구석이 있는 고용인은 손가락으로 작은방을 가리키며「제가 저 방을 쓸게요, 괜찮겠지요?」즐겁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것 같냐 - 일부러 점잔을 빼며 의자에 착석했다.
그 작은 허풍을 못 알아차릴 리스가 아니다.
『단골 재단사가 이사라도 갔어요?』묻는 목소리에 장난끼가 가득이다.
『리~이~~스~ 씨.』
『알았어요. 얌전히 입을 다물겠습니다. 전 착한 사람이니까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한 리스가 몇 개의 소설책을 들고 핀치의 시야가 닿지 않은 장소로 이동했다. 그래봤자 낯선 인기척이 들리면 3초도 되지 않아 핀치의 손을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바지 뒤춤으로 장전된 권총 한 자루도 쑤셔 넣었다. 도서관은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게을리 할 까닭은 없다. 발자국 소리가 점차 멀어지면서 싱글거리는 눈웃음만이 헨젤과 그레텔이 숲속에 뿌린 빵부스러기처럼 남았다.
핀치는 다시 손깍지를 한 자세로 골몰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10년 뒤에...」
사회가 그 모습을 바꿔감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편리한 공중전화기가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을 정도다.
물론 표면만 보자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아이들은 10년 전처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달나라까지 로켓을 쏘아올리고,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도로를 왔다갔다 움직인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있으며, 공원의 나무는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낙옆을 떨군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각각의 일상은 그렇게 격변하지 않았다. 미래에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주부들은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장바구니 안으로 시리얼 박스와 우유를 담는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면 가게로 나와 새 우유와 빵을 산다. 또 일주일이 흐르고... 또 흘러서.
그러나 그 일상의 바닥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묵시록이.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질렀다.
「그만둬!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는 거야, 맙소사... 정신 차려. 10년 전과, 지금과, 다시 10년 후를 여기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잖아.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10년 후의 미래 같은게 있을 것 같아? 고작 1년 뒤의 날 확신할 수 없는데 공중전화기의 종말을 걱정해서 뭐에 써먹어.」
가슴이 뛴다. 먼 과거에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찌꺼기들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듬거리며 뺨을 만졌다.
탄력을 잃은 피부가 암시한다.
노쇠한 현자는 무능력하다. 고루한 노인이 할 줄 아는 건 후회밖에 없는 법이다.
다가올 미래를 염려할 힘 따위는 없다.
귀 밝은 남자가 한숨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성큼거리며 다가오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핀치.』
『왜요, 리스 씨. 갑자기 그렇게 정색을 하고.』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아요?』
『괜찮습니다, 미스터 리스. 가끔 이유 없이 심란할 때가 있잖아요? 저에게 오늘이 그런 날인가 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핀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걱정하는 이의 시선을 외면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