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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는 산소가 필요합니다

눈 녹으라고 소금을 뿌려 길은 진창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발목이 부실한 탓에 이런 날씨엔 목숨이 걱정되기도... 어떻게 집까지 기어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뾰족한 굽의 부츠를 신고 요리조리 잘도 걷는 아가씨는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 잘도 걷는다.
그 옆에서 뒤뚱거리며 걸으려니 쪽팔리더군. 창피한 건 둘째고 근육통이 도졌다.

"더 레이븐" 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포우의 검정 고양이가 지금 읽으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완전 딴 작품이다. 내가 기억하던 그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어렸을 적엔 애꾸눈 고양이가 무섭다 난리를 쳤는데 지금 보니 화자가 더 무서워... 덜덜. 이거 뭐야?
어셔 가의 몰락은 TV-미니 시리즈로 봤던 기억이 강렬한데 그 드라마가 사기였음. 뜬금없이 드라마에선 조로증을 왜 넣었던 걸까. 그렇다는 건 모르그 가의 살인도 완전히 딴판일 거란 이야기.
고전인 만큼 고색한 표현이 많아 잘 읽히진 않는다.
것보다 포의 환상은 너무나 어둡다. 읽다보면 질린다.
뜬금없이 "소년 마법사" 에서 네 이름이 무어냐 물으니 "NeverMore!" 라고 화답하던 마물이 생각난다.
인왕은 신을 만들었을까. 일본에선 연중되지 않았다던데. 크아악.

이든 필포츠의 "붉은머리 가문의 비극" 과 헬렌 매클로이의 "어두운 거울속에" 책을 샀다.
젠장, 제본이 엉망인게 왔다. 바꿔달라고 하기엔 그렇고 본딩이 지저분하다.
달달한 로맨스 소설을 읽고 싶은데 맨날 사는 건 어떻게 된게 미스테리 소설이야.

Posted by 미야

2012/12/05 20:27 2012/12/0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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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35

※ 야, 오늘 눈 온다...;; 퇴근 어떻게 하냐. 낙서 형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내가 아저씨 버닝을 할 줄이야... 원작과 일부 맞지 않는 설정이 있습니다. ※


『당신도 나에겐 전부를 말해주지 않잖아!』
감정이 잔뜩 섞인 그의 외침을 듣고도 핀치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겪어온 세월의 굴곡이 다름이다. 지옥의 가장자리까지 굴러 떨어졌다가 자력으로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이 절름발이 사내는 노간지 나무로 만들어진 기다란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미 올빼미의 현자였다.
『지금 그 대답은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스터 리스.』
존은 격분했다.
참을성이 2%만 부족했어도 리스는 팔을 뻗어 핀치의 목을 사정없이 졸랐을 거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졸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가운데 리스는 자신의 손아귀로 독특한 감각을 느꼈다. 타인의 피부를 힘껏 누르고, 그 뼈를 꺾고,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트는 그러한 감각 말이다. 그 느낌이 어찌나 실제처럼 선명했던지 리스는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래봤자 생명을 빼앗는 살의는 바닥으로 떨어지기는커녕 혈관을 타고 어깨 죽지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핀치는 리스가 겪고 있는 감정의 혼란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이해 못 한다는 눈빛을 띄었다. 존의 고통은 살 속으로 파고든 발톱의 뿌리를 강제로 파헤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봤자 발톱일 뿐이다. 심장이 다친 것도 아니며, 등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통이 엄청나다는 건 안다. 그까짓 발톱일 뿐인데 존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파하고 있다.
나무라야 할까? 아님 다독거려야 할까.
회전하는 의자를 빙글 움직여 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리스가 재차 으르렁거렸다. 차분한 어조와 격식을 차린 말투는 인정사정없이 내팽개쳤다.
『당신은 프로필에 적혀져 있는 것처럼 내가 워싱턴 퓨알럽 출신이 아니고 미주리 태생이라는 것도 알아. 내 생일이 5월 1일이라는 것도 알지. 짐작하자면 돌아가신 내 아버지 이름도 꿰고 있을 거야. 그런데 난 당신 생일을 몰라.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 기껏해야 그 빌어먹을 센차에 설탕 한 스푼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 당신은 컵스와 레드삭스 야구팀을 좋아한다고 말해줬을 뿐이야. 그리고 잔인하게 그것으로 출신지를 추측하면 안 된다고 못도 박았지. 그런데 지금 당신, 나에게 무어라 말했나. 숨기는게 있으면 안 된다고?!』
다 듣고 핀치는 제발 진정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리스는 흡, 이러고 숨을 들이마셨고 폐 속으로 들어갔던 다량의 공기는 격앙된 단어들로 바뀌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신은 처음부터 경고했었지.《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과 당신이 저에 대해 아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큽니다. 당신은 그 차이를 가능한 한 빨리 줄이려하겠죠. 미리 말씀드리지만, 미스터 리스. 전 정말 비밀스러운 사람입니다.》나도 이해해.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난 지금까지 당신의 미스테리한 사생활을 어떻게든 참고 용인하려 노력했어. 그리고 이걸 봐! 그게 지금의 이 결과야! 당신은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인데 난 당신이 모르는 이유로 밤새도록 컴퓨터로 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지.』
『존. 그건 비난한게 아니라...』
『그럼 그건 비난이 아니고 칭찬이었나.』

아무래도 서서 말하기엔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핀치는 일단 대화를 중단한 채 앉았던 작업용 의자에서 일어나 리스에게 이리로 와서 앉으라고 권유했다.
당연한 거였을까. 흥분한 상태인 리스는 펄쩍 뛰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제는 날 취조하려는 겁니까! 싫어! 거기에 안 앉아!』
『나는 취조 같은 건 할 줄도 몰라요, 미스터 리스.』
슬슬 지치려 한다. 옆으로 몸을 돌려 여벌 의자 위에 올라간 엉킨 전선들과 책들을 치웠다. 둥글어진 눈으로 리스가 그러한 핀치의 동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든 말든 등받이 부위의 먼지를 손으로 털어낸 뒤, 평소엔 선반이나 보조 테이블로 사용하는 나무 의자에 기꺼이 앉았다.
『나도 앉았어요. 그러니 당신도 이리로 와서 앉아요.』
『..........』
『부탁합니다. 앉아주세요.』
여전히 싫다는 표정이었지만「부탁합니다」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제야 리스는 핀치의 체온이 남은 작업용 의자로 가서 주춤주춤 엉덩이를 내렸다.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데워진 의자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단순하게「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라는 말로는 순간적으로 리스가 느낀 심리적 만족감을 표현하기 어렵다. 긴장된 어깨가 원래의 위치를 찾아갔다. 치솟던 혈압도 완만한 수준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존은 힐끔거리며 나무 의자에 앉은 그의 고용주를 쳐다봤다. 그러다 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정색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번들거리던 눈빛이 아까와는 달리 훨씬 차분해졌다.
자세를 바꾼답시고 엉덩이를 좌우로 돌려 의자에 비볐다. 적당한 따뜻함이 마음에 들었다.

핀치는 손깍지를 낀 자세로 리스와 가깝게 앉았다.
『스노우 요원이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고 있었다고요?』
『카터가 봤답니다.』
가까스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두 사람 모두 이것으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을 품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뻣뻣한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리스는 옆에 앉은 고용주를 존중하여 목소리를 낮췄다.
『확실한 건 아직 없어요. 그래서 말을 꺼내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변병하듯 덧붙였다.
『계속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말하려고 했어요.』
핀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말하려는 시기를 늦추려 했을지도.』
핀치가 등을 편안하게 구부렸다.
일부러 따라하려는 것도 아닌데 리스의 등도 구부러졌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 싸울 수 없어요. 이건 우리가 같이 대응을 해야 할 문제라고요.』
총에 맞은 리스가 피투성이가 되어 주차장 계단을 내려오던 모습을 떠올린 그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카터가 그들을 그냥 놔주지 않았더라면, 멀리서 저격당한 탓에 사입구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출혈이 심했다.
핀치는 겁이 났었다. 하마터면 어렵게 얻은 파트너를 잃을 뻔했다.
『우리의 삶은 매일이 위험의 연속이죠, 존. 나나 당신이나 언제 죽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위험에 대비하고 위협 요소를 사전에 파악해둬야 해요.』
리스는 쓰게 웃었다.
『죽고 싶다 생각한 적 없어요, 핀치. 당신과 만나고 난 뒤부터는. 단 한 번도.』
핀치의 손이 리스의 팔에 부드럽게 닿았다. 토닥토닥.
『나도요, 존.』

존은 손바닥을 들어 건조해진 뺨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화가 났던게 진흙탕 아래로 가라앉자 피곤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백하자면 그는 지난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조사도 조사지만 초조감과 긴장감이 숙면을 방해했다.
『후지마 테크로닉스 연구실 출입증을 마크가 위조했어요.』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었던 건지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도.』
『그녀?』
그녀의 이름은 카라 스탠튼입니다 대답하는 대신, 리스는 자신의 오른팔에 지긋이 올려져있던 핀치의 작은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동작이 흡사 떨어뜨린 심장을 줍는 것 같아서 핀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항의도 하지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12/12/05 11:19 2012/12/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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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34

두 눈을 무겁게 꿈뻑거리더니 손등으로 눈꺼풀을 비비기까지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잤나, 아님...」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림과 동시에 곁눈질로 리스를 관찰했다.
옆에서 보니 흰자위가 새빨갛게 충혈된게 보인다. 정도로 짐작하자면 질병의 징후로 결막에 염증이 생긴 건 아니고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 희한하게도 오른쪽보다 왼쪽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아 짝눈이 되었다. 덕분에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희극적으로 보였다.
「쯧쯧... 한쪽으로 엎드려서 잤나.」
가볍게 킁, 이러고 콧소리를 내자 리스가 거기에 반응하여 얼굴에서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니건만 뻘쭘한 표정이다. 구석으로 얼굴을 감추고 몰래 손가락으로 코를 파다 걸린 것도 아닌데 제법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핀치의 머릿속으로 노란색 전구가 켜졌다.
『어젯밤 뭘 했나요? 미스터 리스.』
『호오, 제가 뭘 했는지 궁금한가요, 핀치.』
이것 봐라? 능구렁이처럼 웃는 리스의 대응에 좁은 세탁실을 밝히던 전구가 활주로를 밝히는 대형 헤드라이트 수준으로 확 불타올랐다.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는 안전요원이 미친 사람처럼 양팔을 휘젓고 있다. 위험, 위험, 위험. 당장 기수를 돌리시오. 그러나 미지의 개척지를 탐구하는 학자는 재앙의 경고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법이다. 폭발하려면 폭발하라지. 최근 들어 그는 파트너의 심기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침대 밑으로 더러운 양말을 숨겨놓은 거라던가, 서랍 속에 도색 잡지를 넣어둔 것 정도는 금방 건져 올릴 수준은 된다. 물론 리스는 세탁물을 바구니에 모아놓는 대신 그것들 전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며, 여자들의 발가벗은 몸뚱이에 그다지 반응하는 일이 없다. 아무튼. 단단한 등껍질을 가면처럼 뒤집어쓴 전직 CIA 요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딘가에 있을 빵부스러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은 직구.
『눈이 충혈되었어요.』
의외로 리스는 핀치의 지적에 쉽게 수긍했다.
『그러게요. 속눈썹이라도 들어간 것 같아요. 아침부터 상태가 영 좋질 않네요.』
『흐르는 물에 씻어봤어요? 아님 식염수를 넣어보지 그래요.』
이리 가까이 오라고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자 키 큰 사내는 별 의심 없이 순진하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서자 핀치는 한 번 더 손짓했다.
리스는 고용주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다지 내켜하진 않았지만, 한 걸음 더 앞으로 움직였다.
고개만 돌리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들이마시고 내쉬는 상대방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그대로 시선을 위로 하고 가만히 있어 봐요.』
『왜요.』
『속눈썹이 들어갔는지 찾아볼게요.』
『어, 그건.』
핀치가 제안에 리스는 싫습니다 - 이러고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하지만 핀치는 왈츠의 스탭으로 재빨리 따라붙어 거의 몸을 밀착시키다시피 했다. 리스는 그걸 못 견뎌했다. 그러나 핀치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빤히 한 곳을 쳐다보며 혹시라도 미세한 이물질의 그림자가 보이지는 않을까 주의를 온전히 거기로 집중시켰다. 그런 까닭으로 눈치를 못 챘다. 근사한 케이크를 눈앞에 둔 공룡의 뜨거운 콧김이 핀치의 피부에 닿아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말 그대로 남의 얼굴에 대고 잔뜩 거칠어진 숨을 뿜어대고 있다는 걸 깨닫자 리스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지경이었다. 호흡을 참아야 할까? 얼마나 참아야 하지? 이러다 질식해서 죽는 거 아니야? 질겁해서 뒤로 다시 몸을 뺐다.
『저도 거울을 보고 한참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핀치.』
『그러게요. 안 보이네요.』
『저어, 그만했음 좋겠는데.』
『물구나무서기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람이 참을성이 없어요.』
여전히 핀치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리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시선을 입구 방향으로 돌리고 있어 봐요. 아뇨. 고개를 거기로 돌리라는게 아닙니다.』
나더러 어쩌라고!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 코가 시원쌉싸름한 코롱의 냄새를 맡았다. 어쩌면 코롱이 아니고 고급 비누일 수도 있다. 그쪽으로는 문외한에 가까운 리스는 핀치가 애용하는 화장품의 종류가 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남들에게서는 잘 맡을 수 없는 종류라는 거, 그리고 적당히 달고 시원하다는 것만 알았다. 백화점의 고급 남성용 향수 코너를 수백 번 지나쳐도 맡을 수 없던 냄새다. 그리고 좋아하는 냄새다. 리스의 몸은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이제 숨을 힘차게 뿜어대는 거에 그치지 않고 콧구멍까지 벌릉거리고 있겠군.」

궁여지책으로 손바닥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걸 핀치는 다른 방향으로 오해했다.
『어제 술 마신 건가요, 미스터 리스. 알코올 냄새는 안 나는데.』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날 지경이다.
『그럴 리가. 혼자서는 마시지 않아요.』
『저번처럼 형사님들과 같이 마시러 간 거 아녜요?』
『안 마셨다니까요. 카터나 푸스코는 요즘 바빠서 제가 전화하면 화부터 내요.』
이번에는 핀치의 콧구멍이 벌릉거렸다. 그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순간 리스는 오늘 아침 비닐포장을 뜯은 새 셔츠를 꺼내 입고 나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동시에 자신에게서는 어떤 체취가 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걸 핀치가 좋아해줄지도 궁금했다.
그러다 퍼득 깨달음이 왔다.
좋아할 리 없지. 먼지와 화약 냄새가 날 테니.
손으로는 코와 입을 막았고, 체온은 1도 정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동시에 눈에 띄게 풀이 죽은 사내는 다시 한 번 더 뒷걸음질 쳤다.
이번에는 핀치가 그의 움직임을 좇아 따라오지 않았다.

『속눈썹은 없어요, 미스터 리스.』
핀치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언제나처럼 무덤덤했다.
어째서 - 이유를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화가 났다라기 보다는 속상했다. 까닭은 모른다. 어쩐지 우울했고, 가슴이 답답했다.
핀치가 그의 냄새를 싫어할 거라는 걸 깨달아서? 그건 너무 웃기는 변명이다.
그런게 아니라.
뭐랄까.
설명이 난감하다.
리스는 감정기복이 심한 사춘기 소년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벽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그 증상은.』
고용주는 어쩐지 산만한 몸짓을 보이는 리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하다면 주의를 끌기 위해 물결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손도 흔들었을 거다.
『안구 건조증이에요.』
『네? 지금 뭐라고요?』
『안구 건조증이라고요, 미스터 리스. 밤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뭘 했던 거예요? 고백해 봐요. 인터넷 도박을 했어요, 아님 나 몰래 무슨 조사라도 하고 그랬나요. 어느 쪽이든 내 맘에는 안 드는데.』
찡그린 표정으로 핀치가 팔짱을 꼈다.

Posted by 미야

2012/12/04 12:15 2012/12/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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