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35

※ 야, 오늘 눈 온다...;; 퇴근 어떻게 하냐. 낙서 형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내가 아저씨 버닝을 할 줄이야... 원작과 일부 맞지 않는 설정이 있습니다. ※


『당신도 나에겐 전부를 말해주지 않잖아!』
감정이 잔뜩 섞인 그의 외침을 듣고도 핀치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겪어온 세월의 굴곡이 다름이다. 지옥의 가장자리까지 굴러 떨어졌다가 자력으로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이 절름발이 사내는 노간지 나무로 만들어진 기다란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미 올빼미의 현자였다.
『지금 그 대답은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스터 리스.』
존은 격분했다.
참을성이 2%만 부족했어도 리스는 팔을 뻗어 핀치의 목을 사정없이 졸랐을 거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졸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가운데 리스는 자신의 손아귀로 독특한 감각을 느꼈다. 타인의 피부를 힘껏 누르고, 그 뼈를 꺾고, 비정상적인 각도로 비트는 그러한 감각 말이다. 그 느낌이 어찌나 실제처럼 선명했던지 리스는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래봤자 생명을 빼앗는 살의는 바닥으로 떨어지기는커녕 혈관을 타고 어깨 죽지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핀치는 리스가 겪고 있는 감정의 혼란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이해 못 한다는 눈빛을 띄었다. 존의 고통은 살 속으로 파고든 발톱의 뿌리를 강제로 파헤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봤자 발톱일 뿐이다. 심장이 다친 것도 아니며, 등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통이 엄청나다는 건 안다. 그까짓 발톱일 뿐인데 존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파하고 있다.
나무라야 할까? 아님 다독거려야 할까.
회전하는 의자를 빙글 움직여 리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리스가 재차 으르렁거렸다. 차분한 어조와 격식을 차린 말투는 인정사정없이 내팽개쳤다.
『당신은 프로필에 적혀져 있는 것처럼 내가 워싱턴 퓨알럽 출신이 아니고 미주리 태생이라는 것도 알아. 내 생일이 5월 1일이라는 것도 알지. 짐작하자면 돌아가신 내 아버지 이름도 꿰고 있을 거야. 그런데 난 당신 생일을 몰라.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 기껏해야 그 빌어먹을 센차에 설탕 한 스푼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 당신은 컵스와 레드삭스 야구팀을 좋아한다고 말해줬을 뿐이야. 그리고 잔인하게 그것으로 출신지를 추측하면 안 된다고 못도 박았지. 그런데 지금 당신, 나에게 무어라 말했나. 숨기는게 있으면 안 된다고?!』
다 듣고 핀치는 제발 진정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리스는 흡, 이러고 숨을 들이마셨고 폐 속으로 들어갔던 다량의 공기는 격앙된 단어들로 바뀌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당신은 처음부터 경고했었지.《제가 당신에 대해 아는 것과 당신이 저에 대해 아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큽니다. 당신은 그 차이를 가능한 한 빨리 줄이려하겠죠. 미리 말씀드리지만, 미스터 리스. 전 정말 비밀스러운 사람입니다.》나도 이해해. 당신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난 지금까지 당신의 미스테리한 사생활을 어떻게든 참고 용인하려 노력했어. 그리고 이걸 봐! 그게 지금의 이 결과야! 당신은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인데 난 당신이 모르는 이유로 밤새도록 컴퓨터로 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지.』
『존. 그건 비난한게 아니라...』
『그럼 그건 비난이 아니고 칭찬이었나.』

아무래도 서서 말하기엔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핀치는 일단 대화를 중단한 채 앉았던 작업용 의자에서 일어나 리스에게 이리로 와서 앉으라고 권유했다.
당연한 거였을까. 흥분한 상태인 리스는 펄쩍 뛰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제는 날 취조하려는 겁니까! 싫어! 거기에 안 앉아!』
『나는 취조 같은 건 할 줄도 몰라요, 미스터 리스.』
슬슬 지치려 한다. 옆으로 몸을 돌려 여벌 의자 위에 올라간 엉킨 전선들과 책들을 치웠다. 둥글어진 눈으로 리스가 그러한 핀치의 동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든 말든 등받이 부위의 먼지를 손으로 털어낸 뒤, 평소엔 선반이나 보조 테이블로 사용하는 나무 의자에 기꺼이 앉았다.
『나도 앉았어요. 그러니 당신도 이리로 와서 앉아요.』
『..........』
『부탁합니다. 앉아주세요.』
여전히 싫다는 표정이었지만「부탁합니다」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제야 리스는 핀치의 체온이 남은 작업용 의자로 가서 주춤주춤 엉덩이를 내렸다.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데워진 의자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단순하게「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라는 말로는 순간적으로 리스가 느낀 심리적 만족감을 표현하기 어렵다. 긴장된 어깨가 원래의 위치를 찾아갔다. 치솟던 혈압도 완만한 수준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존은 힐끔거리며 나무 의자에 앉은 그의 고용주를 쳐다봤다. 그러다 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정색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번들거리던 눈빛이 아까와는 달리 훨씬 차분해졌다.
자세를 바꾼답시고 엉덩이를 좌우로 돌려 의자에 비볐다. 적당한 따뜻함이 마음에 들었다.

핀치는 손깍지를 낀 자세로 리스와 가깝게 앉았다.
『스노우 요원이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고 있었다고요?』
『카터가 봤답니다.』
가까스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두 사람 모두 이것으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을 품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뻣뻣한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리스는 옆에 앉은 고용주를 존중하여 목소리를 낮췄다.
『확실한 건 아직 없어요. 그래서 말을 꺼내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변병하듯 덧붙였다.
『계속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말하려고 했어요.』
핀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말하려는 시기를 늦추려 했을지도.』
핀치가 등을 편안하게 구부렸다.
일부러 따라하려는 것도 아닌데 리스의 등도 구부러졌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 싸울 수 없어요. 이건 우리가 같이 대응을 해야 할 문제라고요.』
총에 맞은 리스가 피투성이가 되어 주차장 계단을 내려오던 모습을 떠올린 그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카터가 그들을 그냥 놔주지 않았더라면, 멀리서 저격당한 탓에 사입구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출혈이 심했다.
핀치는 겁이 났었다. 하마터면 어렵게 얻은 파트너를 잃을 뻔했다.
『우리의 삶은 매일이 위험의 연속이죠, 존. 나나 당신이나 언제 죽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위험에 대비하고 위협 요소를 사전에 파악해둬야 해요.』
리스는 쓰게 웃었다.
『죽고 싶다 생각한 적 없어요, 핀치. 당신과 만나고 난 뒤부터는. 단 한 번도.』
핀치의 손이 리스의 팔에 부드럽게 닿았다. 토닥토닥.
『나도요, 존.』

존은 손바닥을 들어 건조해진 뺨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화가 났던게 진흙탕 아래로 가라앉자 피곤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백하자면 그는 지난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조사도 조사지만 초조감과 긴장감이 숙면을 방해했다.
『후지마 테크로닉스 연구실 출입증을 마크가 위조했어요.』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었던 건지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도.』
『그녀?』
그녀의 이름은 카라 스탠튼입니다 대답하는 대신, 리스는 자신의 오른팔에 지긋이 올려져있던 핀치의 작은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동작이 흡사 떨어뜨린 심장을 줍는 것 같아서 핀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항의도 하지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12/12/05 11:19 2012/12/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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