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가방을 꾸려, 샘. 당장 이놈의 재수 없는 동네를 뜰 거야.』
사방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가며 동생을 향해 명령했다. 이에 반하는 기타 의견은 일절 수렴하지 않겠음.「동생과의 사전 협의」라는 단어를 빼먹은 이 키 작은 보스는 성큼 걸음으로 반대편 벽장까지 곧장 향했다. 버릇대로 공처럼 둥굴게 말아둔 양말을 찾아 비닐 백에 넣었다. 꺼내놓은 책들과 자료로 모은 신문 스크랩들은 아무렇게나 쓸어담아 가방 속에 마구 찔러 넣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은 두고볼 것도 없다며 포장된 상태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래도 무기류는 따로 신경을 써서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베개 아래 숨겨둔 호신용 칼을 뽑아 육안으로 날의 상태를 점검한 뒤, 가죽으로 만들어진 전용 칼집에 잘 꽂았다.
어디 보자, 그럼 또 무엇을 챙겨야 하나.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딘은 아차,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콩 찍었다. 제일 중요한 걸 깜빡 잊었다.
『널 두고 갈 뻔했네. 그러니까 새미? 싸게 움직여. 여차하면 여기다 두고 간다.』
공부를 도중에 때려치우고 뜨네기 여행자로 살아온지 어연 2년이다. 훌훌 털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일이 하나도 어려울 리 없건만 샘은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딘의 움직임을 눈동자로 쫓으며「제발」이란 단어를 연발했다.
『기다려, 형.』
『오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이거지. 알았어. 딱 5분만 기다려주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오줌이 아니라 똥 마려워? 오케이. 그럼 1분을 더해서 6분.』
『디-인.』
제발 얘기 좀 하자며 두 팔을 벌렸다.
『이성에 호소해서 형이 지금 이러는게 결코 옳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 핸드폰에 남겨진 EVP가 애쉬의 장난으로 판명난 것도 아니잖아. 혹시라도 그게 진짜 유령의 짓이면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말뚝으로 콱 박아버려야지.』
『쉽게 말하지 마.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나보다 형이 더 잘 알잖아.』
사람들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 유령은 무조건 경계하고 보는게 좋다.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도록 돕는다는 영국의 엘로브릿지 교차로의 유령처럼 선한 의지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령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보통은 겁에 질려있거나,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분노에 차있기 일수다. 이런 부류의 유령들은 대다수가 산 사람에게 적대적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격적 성향이 악화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어제는 예의바르게 문을 두드리다가 오늘은 노여움에 치를 떨며 무거운 가구를 거꾸로 집어던지는 식이다. 심각해지면 보이는 족족 유리창을 전부 박살내거나, 집안에 사는 어린아이를 일부러 물에 빠뜨려 죽게 만들기도 한다.
샘이 염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은 별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고 나중에까지 그러라는 법이 없다. 잠든 어린아이처럼 얌전하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마약에 취한 람보가 되는 유령은 많다. 딘이 자기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얼굴색을 달리하고 방법을 바꿔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도 있다. 머리 위로 화분을 떨어뜨려 경고를 주는 식이다. 만사가 극단적인 유령은 화분에 잘못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전혀 생각지 않는다. 아울러 머리통을 신나게 깨부수고도「미안하다」사과하는 법도 없다. 일단 죽으면 성인군자고 뭐고 다 그렇게 변하는 건지, 유령의 습성이라는게 원래 그렇다.
『그까짓 화분, 피하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라고 엄살이니.』
딘은 문제될 것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는 쇼트트랙 선수가 유연한 동작으로 얼음판을 미끄러지는 동작을 흉내내며 우쭐거렸다. 보았느냐, 형의 빼어난 운동 신경을. 화분이 아니라 바위가 떨어져도 끄떡 없느니라. 자, 아멘으로 화답하거라.
지퍼가 열린 가방을 침대 위로 던지고 샘의 재산 목록 제 1호인 노트북을 손가락질 했다. 어서 짐을 챙기라는 뜻이다.
『자, 이제 이야긴 다 끝난 거지? 그럼 싸게 가방을 꾸린다. 실시.』
『그치만 행여라도 형이 다치기라도 하면...』
『안 다쳐.』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 그건. 내 생각은 달라. 모든게 확실해지기 전까진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된다고 봐. 형이 계속 모르는 척하면 유령이 화가 나서 공격할 수도 있어.』
『이봐? 재수 없는 추측은 하지 말아. 자칫하면 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거니?』
『그건 알 수 없지.』
『그래. 알 수 없어. 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수도 있고, 안 부러질 수도 있는 거야. 알 수 없는 미래까지 염려해서 뭘 하게?』
두 다리를 벌리고 선 딘은 평소보다 키가 곱절은 커 보였다. 샘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어쩌다 내 핸드폰으로 정체불명의 유령 목소리가 포착되었을 뿐이야. 그것도「추워요」라고 말한게 전부이고. 이게 무서워 사방에 소금 결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니? 입에다 마늘을 달고 살아야 하냐고. 내가 그래야 할 것 같아?』
『딘...』
『그만하자. 난 무시할테다.』
그래도 샘은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형이 냄새 나는 마늘을 입에 달고 사는 건 반대야.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 괴 전화가 내 핸드폰으로 왔다면 형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신중해져야 한다며 몸 조심을 다짐시키고, 유령의 정체를 확인한답시고 부랴부랴 지역 도서관으로 가 오래된 신문들부터 들쳐봤을 걸. 내 말이 틀려?』
음... 그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딘은 끙 소리를 내며 어색함을 감추고저 코를 만졌다.
그것과 같이하여 샘은「이렇게 하는게 좋다」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물에 흠뻑 젖은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딘은 동생이 깽깽 소리를 내면 고집을 한풀 꺾는 경향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몰래 표정 연습도 해왔다. 바로 지금처럼 눈꼬리를 내리고 울상을 짓는 거다.
『그리고 난 형이「이건 내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는 걸 원치 않아. 형의 일이니까 나도 돕고 싶어.』
『동생아...』
『돕게 해줘. 그렇게 할 거지?』
타협을 하자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딘이 인상을 찡그렸다.
되었다. 샘은 확신했다. 성공적으로 구워 삶았다.
『.......... 5시간?』
『아니, 5주.』
『야, 강아지! 그건 너무 길어. 그러지 말고 5일로 하자. 5일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오케이. 그럼 당장 그 가방부터 내려놓자.』
그것은 제법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샘은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며 침착한 태도로 노트와 펜을 꺼내들었다.
『유령과 산 사람이 서로 마주치게 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
『혈연, 장소, 사건... 이 자식이 지금 누굴 테스트 하자는 거야.』
딘은 불만을 표시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너만 헌터인 줄 알어? 네 형도 헌터야.』
그 첫 번째가 혈연으로 서로 연관이 있는 경우다. 할아버지의 유령이 손녀에게 나타난다거나, 어머니의 유령이 아들에게 나타난다거나 하는 식이다.
『우린 이 경우는 제외해도 될 거야.』
샘은 노트 위로 적은「혈연」이라는 단어에 X자를 그렸다.
그렇다면 그 두 번째 접합점은 장소다. 잿더미만 남은 화재 현장에서 피해자의 유령을 봤다고 진술하는 소방관들이라던가, 호수에서 친구들끼리 뱃놀이를 즐기며 사진을 찍었는데 어린애의 팔뚝이 노를 잡고 있는게 찍혔더라 식의 얘기가 여기에 속한다. 유령과 목격자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단지 그 장소가 문제였을 뿐이다. 불타버린 집, 그리고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호수.
샘은「장소」라고 적은 단어를 볼펜으로 콕콕 찔렀다.
『지난 한 달동안 형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어.』
『파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요. 공사장, 집. 물류창고, 집, 공사장, 집, 물류창고, 집...』
여기서 숨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한 장소를 덧붙였다.
『랩 댄스 클럽에 딱 한 번...』
몰래 댄서들의 홀딱쇼를 즐기러 갔다는 고백에 동생의 눈빛이 확 거칠어졌다.
책망하는 그 시선에 딘은 중요한 경기를 망친 운동선수인양 고개를 푹 숙였다.
감독님이 화났다. 무셔, 무셔. 딘의 등이 노인네의 그것처럼 구부정하게 변했다.
『으아, 진짜~! 죽어라 고생해서 돈을 벌어놓곤, 한 타임에 35달러나 주고 G스트링만 입은 여자들의 테이블 댄스를 침 흘리며 구경했단 말이야?!』
『팁은 별도야.』
『의기양양해 하며 말하지 마!』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가끔은 오른손 애인이 싫어질 때가 있단 말이야, 샘. 너도 사내 자식이니까 내가 말하는게 어떤 건지 잘 알 거 아니냐. 리얼과 판타스틱이 교묘하게 만나...』
채 듣지 않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차라리 오른손 애인이 낫지! 놋쇠로 만든 봉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여자를 보며 욕구를 해소하는게 더 끔찍해! 그게 뭐야.』
『어. 가끔은 무대 밖에서 몸을 비벼주기도 하는데.』
『그만~!!』
샘이 쥐고 있던 볼펜이 뚝 소리를 내며 망가졌다. 더 얘기하다간 부러진게 볼펜 심이 아니라 다른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 딘은「무조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슬그머니 더듬이질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조사하러 가 볼래?』
『랩 댄스 클럽에? 꿈 깨.』
성가시다는 투로 샘이 메모지를 찢어 구겼다. 그 평범한 동작 하나하나가 딘에게는 위협이었다. 정작 구기고 싶은 건 종이가 아니라 남의 멱살이겠거니 판단한 딘은 크게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다. 아쉽긴 해도 좋지 않다고 판명된 패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나름 안전하다 싶은 주제로 돌아갔다.
『그럼 공사장이나 물류 창고가 문제였다는 얘긴데... 이 형님은 모르겠다. 내가 굴리던게 중국에서 온 싸구려 가방 덩어리들이 아니라 수족이 잘린 시체였다는 가정은 꿈에도 하기가 싫구나.』
현명한 판단이었다. 씩씩거리던 동생의 호흡이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겪은 특별한 징조 같은 건 전혀 없었어?』
『음... 창고에서 같이 일하던 푸에타리코 씨가 먹어보라고 권한 햄 샌드위치는 참 맛있었어. 토마토와 양상치가 아삭거리는 촉감이 기가 막혔지. 두툼해서 배도 불렀어.』
『딘? 난 지금 무지 진지하거든.』
『네 눈은 해태냐. 나도 진지해.』
양손을 머리 뒤로 대며 딘이 툴툴거렸다.
잠시 두 사람은 대화를 중지했다.
토옥, 토옥 소리가 나게끔 볼펜의 머리 부분으로 테이블을 찍었다.
아무튼 물류 창고 괴담은 그 가능성이 적다. 설사 딘이 운반하던 상자 속으로 중국제 짝퉁 시계 대신 원한에 사무친 미이라가 들어 있었다고 쳐도 - 그게 세관 통과를 어떻게 했는지는 별도로 치고 - 이미 오래 전에 트럭에 실려 마이애미, 플로리다, 기타등등 어딘가로 훌훌 떠나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 시점에서 이미「장소」이론과는 맞지 않게 된다. 시체는 - 유령은 수천km 밖으로 멀어졌다. 추워요 어쩌고 하면서 딘의 핸드폰에 대고 나부렁거리기엔 장거리 전화 요금부터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샘은 메모지를 다음 장으로 넘기고 목소리를 바꿨다.
『좋아, 그럼 방법을 바꿔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일단 그놈의 괴전화가 언제부터 오기 시작했는지 생각 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게...』
『최초로 전화를 받았던 장소가 힌트일 수 있어.』
『음, 가만 있어봐. 뭔가 떠오를 것도 같으니까.』
입술을 문지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흐릿한 그림이 떠오르려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힘내.
샘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런 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