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은 <이보다 더 슬픈 추리소설은 없다> 라는데 나는 왜 슬픔은 전혀 못 느끼고 짜증스러움만 느꼈던 걸까. 재미가 없어서 짜증난다라는 건 아니다. 내용 자체가 짜증난다.

<용의자 X의 헌신>처럼 이 책도 거꾸로 되어있다. 형사 내지는 탐정이 범죄현장에서부터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건과 범인을 맨 처음에 모두 보여준다. 그리고 범죄를 은닉하고자 기를 쓰며 노력하는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가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셜록 홈즈 내지는 김전일이 <네가 범인이다!> 라고 외치는 스릴감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어쩐지 모두가 피해자가 된 기분이 들고, 나쁜 놈의 범인이 잡혀도 일상에서의 일탈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찝찝한 기분이 계속 남는다.

왜냐면 이 책에서의 범죄는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성의 문제로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가족, 그리고 엉망진창의 학교, 그리고 나 몰라라 사회 시스템이 건재하는데 살인범이 잡혀봤자 달라지는게 뭐가 있겠느냔 말이다.

여기 집에 돌아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까지 잔업을 하는 회사원이 있다. 아버지는 치매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치매환자다. 아들은 맛이 간 히키코모리 중학생이고, 아내는 잔소리의 여왕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전화를 걸어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집에 도착해보니 마당에 죽은 소녀가 비닐봉투에 절반쯤 담겨있다. 중딩 아들이 목을 졸라 죽인 소녀다. 무슨 일이냐 따져묻고 싶건만 아들은 나 몰라라 방에 틀어박혀 야겜만 하고 있다. 아내는 아들을 자수시켜선 안된다고 무작정 우기고, 아버지는 시체를 치워야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몸부림친다.

이런 줄거리에서 슬픔을 느끼면 그게 이상한게지. 날씨도 더워죽겠는데 짜증이 치솟는다.
쥰쥰과 히가시노 게이고는 좀 안 맞는가 보다. 책을 덮으면서 불쾌감만 커졌다.

Posted by 미야

2007/08/05 14:38 2007/08/0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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