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안쪽을 기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사람을 찾는다고 말을 걸자 열 명 모두 모른다고 잡아뗐다. 그것도 얼마나 신속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던지 이쪽에서 찾는 이의 이름을 대기도 전이었다.
『아닐세. 뭘 항의하거나 따지려고 그러는게 아니고, 단순히 물어볼 것이 있어 그래.』
저자세로 읍소를 하자 구석에서 야채를 다듬던 하수가 눈을 비스듬히 치켜떴다. 양파가 아무래도 매운지라 눈가가 붉었는데 얼마나 이력이 났던지 도마와 칼을 보지도 않고 갖은 야채를 재주껏 잘게 토막내고 있었다. 저러다 손가락을 자를 것 같아 보는 사람은 무서웠지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난 또 누구라고. 얼굴을 보니 창고 도령이구먼.』
내 별명이 또 늘어났다... 도토리, 다람쥐, 팥알, 깨알, 빈사국 거렁뱅이에 창고도령.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자니 하수가 칼날에 묻은 자질구레한 야채 조각을 행주로 닦아내며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내게로 다가왔다. 여전히 작업용 식칼을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채여서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생선용 식칼에 찔려 죽을 뻔한 것이 바로 어제다. 날 선 쇠붙이는 사절이다.
팔뚝 소매에 재주껏 땀방울이 솟은 코를 문지른 하수는「그래, 누구를 찾는다고요?」확인하며 물어왔다.
생사를 확인해보려 한다 말할 수는 없어 최대한 가벼운 어투로 락연의 이름을 언급했다.
『락연이라는 이름의 자를 찾고 있네. 혹시 오늘 일하러 왔나?』
『글쎄요. 집에 일이 있다고 며칠 쉬기는 했는데... 잠시만 기다려봐요. 락연~!! 안에 있냐?! 락연!』
귀청 울리는 천둥 부름에 대답하며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이는 체격부터 내가 알던 자와 전혀 달랐다. 나이도 훨씬 많아 이쪽은 40대 후반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노화된 피부 위로 검버섯이 약간 피었다. 눈동자는 평범한 밝은 갈색이었다. 손에는 연료로 사용할 숯을 하나 가득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날 찾수?』
『이쪽 도련님이 물어볼 것이 있다길래.』
락연은 다소 불온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이는 어려도 내 신분이 높았기에 겉으로 올리지는 않았지만「뭘 물어보러 온 것이 아니라 요구하러 왔겠지」불평하는게 훤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소방 하수들이 높으신 도련님들이 자신들을 개인 하인 취급을 한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걸 본 기억이 났다. 부탁이야 뻔했다. 개인 취향에 맞는 간식을 대령하라, 오늘 국은 너무 짰다, 혹은 싱거웠다, 재료에서 당근을 빼라, 접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타등등. 이번엔 또 무슨 잔소리를 들으려나 싶어 락연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뭘 따지려는게 아니라니까. 일을 며칠 쉬었다고 들었네.』
『아, 예예. 과년한 딸아이가 시집을 가게 되었기에... 애비된 노릇을 하느라 자리를 비웠습니다.』
예상치 않은 질문에 락연은 동료들을 흘끔거렸다.
「나 없는 동안에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없었어.」
입 뻥긋으로 의사소통을 간단히 해결한 그는 그 즉시 안도하며 다시 나와 눈을 맞춰왔다.
『그런데요? 도련님.』
『어제도 이곳에서 일을 했나?』
『그랬습니다만.』
『혹시 락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하수가 자네 말고 또 있는가.』
『글쎄요, 어지간한 사람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소방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아이들까지는 아닙니다. 제 이름이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니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닐세. 일을 방해해서 미안허이. 내가 착각을 한 모양이야.』
락연은 별 싱거운 일 다 봤다며 꾸벅 인사를 한 뒤 일하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신원을 도용했나 보군.」
자리에 없는 사람을 골라 그 사람 행색을 하며 암시를 걸어두는 건 중급 이상의 요괴들에겐 쉬운 일이다. 이름마저 빌려왔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곳 소방에서 딸의 결혼식으로 정신없이 바빴을 진짜 락연 대신 톱니 모양 치아를 드러내며 더러워진 그릇을 치웠을 거라 생각하니 기가 찼다.
「난감하군. 나와 같이 저자 거리로 나가도 된다 허락한 자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중문으로 나가 칼에 찔린 시체 모습으로 들어온 자가 있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진짜 이름을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자다. 그런 자의 생사를 내 힘만으로 확인한다는 건 유령을 산 사람으로 부활시키는 것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행방불명된 자를 찾습니다 - 특징 : 톱니 이빨」벽보를 써 붙일 것도 아니었기에 포기했다.
「하는 수 없다. 어딘가에서 무탈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런데 그 기도가 (가짜)락연이 아닌 나를 위한 기도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다 지나면 나는 과연 무사히 숨 쉬고 있을까... 뺨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려 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연무장을 한 바퀴 뛰고 옵니다. 실시.』
『허허허... 농담도 잘 하시네요, 이라벽치 님은.』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거부하자 이라벽치는 정색했다.
『농담 아니야. 네 친구는 벌써 다섯 바퀴째 뛰고 있는 걸.』
『그야 린청은 저와 달리 강철 체력의 소유자니까요. 하지만 전 그렇게 오래 달리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 정도쯤 근육의 근 자도 보이지 않는 네 물렁거리는 팔뚝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일단 한 바퀴만 뛰고 오라는 거 아니겠니. 빠르게 뛰지 않아도 좋으니까 완주하겠다는 목표만 노려.』
이라벽치가 우리를 데려온 곳은 적룡군이 훈련하는 연무장이 아닌 일반 체력 단련장 - 곰보자국이 선명한 화살과녁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궁술을 연습하는 장소인 듯했지만 어쨌든 그 규모가 건물 열 채는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그걸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도 아니고 바깥으로 돌아 한 바퀴를 뛰라니. 아이고, 오늘 그냥 제삿날이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무리라니까요!』
『도중에 정 힘들면 걸어도 좋다. 일단 뛰고 보자.』
『저어, 배가 살살 아파서... 잠시 뒷간에. 그럼 다녀오겠습니닷!』
『이 넓은 풀밭 전체가 야성의 화장실이야. 어디를 간다는 거니.』
『아! 깜빡 잊어먹고 있었는데 곧 수업 시간이에요.』
『지리가 안즈가 수업이라는 걸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걸 여기서 모르는 사람 없다.』
결국 뺨 가득히 공기를 가득 집어넣은 채「힘 내라」응원까지 받아가며 풀밭을 뛰어야 했다.
달리기라니, 달리기라니! 내 취미는 어디까지나 인쇄된 글자를 읽는 것이지 몸을 쓰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만 쉬고 살던 소녀는 햇빛을 보는 일이 적어서 그랬는지 또래에 비해 체격이 작았다. 운동량 부족으로 팔다리는 부러질 것처럼 가냘팠다. 제공되는 식사가 끊어진 적은 없지만 기름진 밥상을 받았던 건 손가락에 꼽는다. 영양 불균형은 결국 저질 체력으로 돌아왔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 호흡이 곤란해지고 말았다. 그새 땀이 솟은 이마를 닦으며 출발지점을 돌아다보았더니 이라벽치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다리가 무겁다. 종아리가 당긴다. 폐가 안쪽에서부터 짜부라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호흡이 뚝뚝 끊겨져 코와 입으로 뿜겨 나왔다.
『입은 벌리지 말고.』
충고를 듣고 벌어진 입을 닫았지만 그 즉시 질식사의 위기가 닥쳤다.
『지금처럼 팔을 크게 흔들면 나중에 힘들어져. 상체에 바짝 붙여!』
흔들리는 팔이 어디에 있다고. 내 몸뚱이에 그런 거 안 달렸다. 인식 가능한 신체 부위는 발바닥과 심장, 그리고 허파 정도다. 거추장스러운게 더 있는 것도 같다만, 머리와 몸이 죄다 따로 놀았다.
『턱을 당겨.』
그 말을 오해한 나는 입을 벌렸다.
『아니, 입은 다물고 턱을 당기라고.』
그거나 이거나 같은 말 아니었어? 이래라 저래라 헷갈리게 만들고. 미워 죽겠다.
이제 여섯 바퀴 째를 맞이한 린청이 뛰는 속도를 줄여 내 옆으로 붙었다.
『안즈, 눈은 뜨고 뛰어.』
『노력 중이야.』
더위 먹은 개처럼 헐떡대느라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 대꾸는 했다.
그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린청은 한참동안 소리 없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여기서 소리가 없었다는 건 말을 걸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나처럼 크억, 크억, 쇳소리를 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녀석은 나보다 몇 곱절 오래 달렸음에도 잠자는 아기처럼 편안하게 호흡했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돼.』
『욕심?! 그런 거 전혀 없거든요?!』
나 같은 건 무시하고 어서 가라 짜증냈더니 그제야 원래대로 속도를 올려 저만치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