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더우니까 그냥 멍하네요.. ※


흥분한 사람을 급히 진정시키려면 코를 잡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 코가 막히면 차선책으로 입을 벌려 호흡을 하게 된다. 이때 입으로 호흡하면서 동시에 횡설수설 떠들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코를 막으면 입으로 숨을 쉬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떠들기를 멈추게 되고, 조용해지고, 다음 단계로 혈압이 서서히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손가락에 콧물이 묻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고.
간혹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아가미로 호흡하는 자에겐 시도하지 말도록 하자.

『웃?!』
갑작스럽게 코를 잡힌 린청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보니 머리카락만 잡아당겨도 길길이 날뛰는 아이다. 장난으로라도 이런 식으로 취급당한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처럼 발광하며 뿌리치지 못하는 건 이쪽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한 편은 아니잖아. 너, 그러다 나중에 의처증 걸린다, 린청. 개인의 망상을 이미 정해지거나 이루어져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간주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누가 누굴 욕보이고 누가 누구의 명예를 짓밟아.』
손집게로 코를 집힌 소년은「그럼 아니야?」라는 간단한 말을「그엄 아이야?」라고 비음을 잔뜩 넣어 발음했다.
사실 하고픈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더 길었지만 입안에서 뱅뱅 도는 30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문장을 완성하려면 도중에 숨을 멈춰야 했다. 내가 노린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하던 말을 끊는 것.
『이라벽치 님은 좋은 분이라고. 예전에 내가 이사실로 오는 도중 곤란한 일을 겪었을 적에 나를 밧줄로 포박하여 서남문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어.』
듣고 있던 이라벽치가 신음했다.
『밧줄로 포박했다는 말을 거기서 왜 붙여! 그러면 내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 같잖니.』
들려오는 배경음은 무시하고 손가락에 힘을 더 주며 짐짓 으르렁거렸다.
『이대로 비틀어버린다?』
그제야 린청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강제로 당하고 돌아왔다면 곧 죽어도 지금의 나처럼 이러지는 못 한다.
울거나, 미치거나,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강간당한 아이들의 반응은 셋 중 하나다.

『진짜 괜찮은 거야?』
아직도 의심하고 있군. 슬그머니 놓으려던 코를 다시 움켜쥐려 했다.
『역시 비틀어야겠다.』
『아, 알았어! 내가 착각했어! 그러지 마.』
통증과는 별개로 안도해 하는 눈치다. 아니,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뺨이 온통 붉었고 콧잔등 역시 잘 익은 과일처럼 붉었다. 음? 그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고? 넘어가자. 그보다 다른게 훨씬 급했다.
황급히 몸을 돌려 이라벽치를 향해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절을 올렸다. 오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막대기를 들어 적룡군을 공격했으니 꾸짖음을 당하는 건 물론이고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때 처벌은 저녁밥을 굶거나 반성문을 쓰는 수준이 아니다. 아직 미성년인 신분이지만 성인으로 간주되어 약식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약식이든 정식이든, 재판을 받는 기간 동안 금옥에 갇힌다는 점이다. 약식이라고 해도 2~3개월이나 걸리는데 열 한 살의 솜털 가득한 소년이 일반 죄수들과 같은 장소에 갇히면 이건 그냥 엉덩이 까고 국물까지 쪽쪽 빨아 잡수세요 청하는 모양밖에 되지 않는다. 감시가 아무리 삼엄해도 빈틈은 늘 있기 마련이고, 죄수들 중에서도 악질은 항상 기회를 노렸다.

『이리 무례를 저질러... 린청 대신 사죄드립니다.』
『아냐. 사과할 거 없다. 무기도 들지 않은 어린애에게 공격당했다고 진지해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이 거구의 남자에겐 쥐를 쫓는 막대기는 무기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몸을 일으키는 대신 고개가 땅에 닿도록 더욱 조아렸다.
『용서를 구합니다.』
『됐다니까 그러네! 다친 사람도 없으니 그냥 없었던 일로 치면 되잖니.』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이 있습니다.』
『거 무지 까다롭군. 알았다. 그렇다면 서로 대련을 했다고 하면 되는 거지?』
그만 되었으니 어서 일어서라며 이라벽치가 허둥거렸다.

『기왕 대련이라고 치기로 했으니까 말인데... 음.』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이라벽치가 린청의 외관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는 소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경멸감을 표현하며 습격 비슷한 걸 당했으니 기분이 썩 좋을 리 없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심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너, 무가 출신이지?』
그 간단한 질문에 린청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덩어리는 존대하여 예, 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렇다, 거만하게 대답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나는 슬그머니 소년의 등허리를 찔러 신호를 보냈다. 이러고도 계속하여 꿀 먹은 벙어리 흉내를 낸다면 다음으로는 옆구리 살을 꼬집을 작정이었다.
『...... 예.』

억지 대꾸를 들은 이라벽치는 황당하다는 투로 내 쪽을 한참 응시했다가 가까스로 소년에게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재능도 있고 기본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야. 나이와 체격에 비해 실력은 좋다. 그런데 네 스승은 누구였지? 집안에서 검술을 가르칠 교사를 붙여주었느냐?』
『예.』
『그러면 그 스승이라는 자가 아까 나에게 해보인 검법도 가르쳤니?』
『그건...』
『그럴 거라 짐작했어. 제대로 정신이 박힌 자라면 자신에게 수업을 받는 제자에게 아류 거합도를 가르칠 리 없으니까. 그러니까 누구였느냐, 네게 그 검법을 가르친 악독한 자가.』
『악독하다고요?』
『악독하고말고. 그 자가 누구이든 너와는 적이다. 결코 네 편이 아니고, 동지도 아니다.』
『하지만 사촌 형님께서는...』
『사촌 형님!』
그는 피곤하다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난 진짜 이런 종류의 음습한 이야기는 질색이야. 웃으면서 독을 먹이거나,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검으로 찌르거나, 잠든 사람의 발치에 독사를 풀어놓거나... 이봐, 소년.』
『련 가의 린청입니다.』
『그래, 련 가의 도련님.』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느냐며 이라벽치는 답답해했다.
『네가 쓴 그 기술은 원래 상대방이 앉았다 일어서는 상황에 맞추어져 있어. 나처럼 서있는 사람이 그 대상이 아니야. 이제 그림이 그려지냐? 전장에서 쓰는 무거운 검이 아니라 가벼운 칼에 맞춰진 암살 기술이야. 사내대장부의 패기를 드러내는 일격필살의 승부수는 결코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직접 해보니까 알겠지? 최초의 공격이 사실상 전부라서 그 이후는 공백이야. 네가 공격할 방법도, 상대의 공격을 막을 방법도 뾰족하게 없다. 전장 한 가운데서 그랬다고 해봐, 내 부하가 그딴 짓을 하면 내가 직접 녀석을 발라버릴 거야.』
듣고 있던 린청의 안면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친절하신 사촌 형님께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비기라면서 가르쳐주든? 그러니까 악당이지. 검을 얕보지 마.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걸어두는 흉수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좋다. 도대체가,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무슨 짓거리야.』
그러면서 린청이 아닌 내 어깨로 두 손을 얹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죽을 각오라는 건 훌륭하지만... 진짜로 죽을 작정을 하고 상대에게 덤비는 건 난 반대야.』
『예.』
『죽는 것보단 사는게 훨씬 좋다고.』
『물론입니다, 이라벽치 님.』
『그러니 잘못된 방법은 집어치우고 제대로 단련을 해야 하지 않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동의한 거다?』
『무엇을요.』
『단련을 한다.』
『으익?!』
불똥이 왜 나에게로 튀느냐며 항의하려 했지만 이라벽치는 이미 귀를 닫고 우리 두 사람의 훈련 계획을 짜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5/08/07 14:05 2015/08/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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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8/07 16:19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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