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태워져 우리가 향한 곳은 부유한 상인이 애용할 법한 여관으로 시설이 무척 고급스러운 장소였다.
이름은 부용관이라고 했다.
멈춘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니 직원인 듯한 자가 바깥까지 나와 깍듯이 인사하며 마중을 했다.
이라벽치의 군장을 보고 놀라고, 다시 피투성이 옷차림의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숨을 들이킨 걸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결례는 없었다. 어지간한 상황은 죄다 겪어봤던 걸까. 다급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라고 묻는 대신 말고삐를 쥐고 앵무새처럼「어떤 방을 준비해드릴까요」정해진 대사만 늘어놓았다.

『이 아이를 씻기게.』
이라벽치의 주문에 직원의 뺨이 딱 한 번만 실룩 움직였다.
둔한 사내인 이라벽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는데 사실 눈여겨 관찰하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묘한 움직임이긴 했다.
그래봤자 직원이 숨을 죽인 까닭을 짐작해버린 내 입장에선 낯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음... 직원은 비교적 신분이 높은 적룡군 병사가 그다지 순종적이지 않은 어린 남창과 잠시 유희를 즐기려고 한다 착각하고 있었다. 남창은 뺨을 맞았고, 옷이 매우 더러웠는데 분명 여기에 오기 전 한바탕 치정 싸움을 벌였다 - 역사책 두께의 장대한 두루마리 이야기가 상상의 세계에서 화려하게 펼쳐졌지만 그래봤자 훈련된 직원은 사연을 캐묻는 대신 우리와 시선이 마주치는 일 없게끔 고개를 숙였다.
신분과는 별개로 그런 목적으로 잠시 방을 빌리려는 손님은 늘 있어왔다. 수도 루은에선 매춘은 합법이었다.
다만 납치와 강제추행은 다른 문제라서 직원은 눈물자국이 남은 내 얼굴을 눈치껏 살폈다.
신고해야 할까. 하지만 상대가 적룡군이다 보니 신고를 하지 말자는 쪽으로 저울이 급격히 기울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안마사도 같이 부를까요 묻는 목소리가 물을 잔뜩 머금은 잎사귀처럼 나긋나긋했다.
『안마사가 왜 필요해?』
이라벽치는 역시 못 알아들었다.
『안마사는 부르지 말고. 목욕 후 이 아이가 입을 새 옷이 필요하네. 적당히 준비해주게.』
『알겠사옵니다. 그럼 도련님을 욕탕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직원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말하며 나를 꽤 깊은 안쪽까지 데려갔다.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벗어 내놓으라 했다. 부정을 탔으니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태워버릴 거라고 했다.
『속옷까지 모두?』
되묻는 질문에도 직원의 표정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흡사 진흙으로 만들어 붙인 가면 같았다.
『잃어버리면 곤란한 물건이 있으시면 따로 맡겨주십시오. 그럼 시중을 들 아이를...』
『혼자 할 수 있네.』
『알겠습니다. 그럼 물의 온도가 맞지 않으면 꼭 말씀하여 주십시오.』
희고 붉은 화려한 부용화 그림으로 장식된 개인 욕탕은 세 명의 어른이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성인의 남녀가 목욕을 핑계로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라 옷을 전부 벗고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기가 싫어지려 했다. 여관 사람들이 알아서 관리를 잘 했겠지만 또 아나, 어젯밤 이 속에서 정분이 난 연인이 한바탕 난리를 쳤을 수도 있다.
넓직한 욕탕에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았지만 결국 나는 욕조 바깥에 앉아 대야로 물을 끼얹는 걸 선택했다. 좍좍 물 끼얹는 무식한 소리에 혀를 끌끌 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겠지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흙과 먼지를 전부 지웠다 판단하고 욕실 밖으로 나오니 이런 일엔 이골이 난 직원이 끈으로 여미어 입는 속옷인 겨우기리를 대동하고 서서 발가벗은 나를 입혀주려 했다.

『크, 읍.』
그가 침을 기관지로 잘못 넘긴 소리를 낸 까닭은 달릴 것이 달리지 않은 내 아랫도리를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조화래. 옷을 벗기 전까지는 소년이었는데.」
덕분에 주변이 다소 분주해졌다.
『바깥손님에게 일러 여자 옷을 준비하리까, 아님 사내 옷을 준비하리까 여쭈어라.』
내 판단엔 쓸데없는 일이었다. 질문을 들은 이라벽치는 근육이 와르르 무너진 이상한 표정으로「그 녀석에게 여자 옷을 왜 입혀! 그건 누구 취미냐!」화를 냈다.
서로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직원은「그렇군요. 취향이 아니시군요.」공손히 대답하곤 뒤편을 향해 가만히 눈짓했다. 순식간에 이라벽치는 유녀(幼女)기호를 가진데다 침실 시중을 들 어린 소녀에게 남장을 시키는 변태스러운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다. 돌아가는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손님은 왕처럼 모신다던 부용관 사람들은 변태적 취미에 최대한 부응하여 나를 흡사 사무월 축제 최종 우승자처럼 꾸며놓았다. 뜨개바늘로 뜬 얇은 무늬장식을 덧댄 화려한 저고리에 나풀거리는 천으로 주름 장식을 최대한 넣은 마고를 입혔다. 마고는 통이 넓은 바지로 매듭으로 발목을 조이면 흡사 부풀어 오른 꽃송이 모양의 치마처럼 보이게 된다. 뭐, 기능성과 활동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사실 제국 사람들은 안방마님의 속바지라고 폄하하며 손가락질하는 의상이기도 하지만... 나는 무표정을 가장하며 천장을 응시했다. 이 옷의 장점은 틈새가 많아 옷 안으로 손을 넣기가 아주 쉽다는 점에 있다. 꿀이 나는 꽃술은 어디에 숨었는가, 이러고 손을 깊숙이 넣어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기엔 더도 말고 딱이랄까. 대놓고 말해 천박한 종류다.

『뭐가 좀 이상한데. 이게 뭐냐.』
마고의 쓰임새는 몰랐어도 이라벽치는 인상을 썼다. 보는 눈은 없었어도 이건 잘못된 거라는 인식은 있었다.
『요즘엔 이런 옷이 유행이냐? 하지만 이건, 이건. 그러니까 이건...!』
어휘력 부족으로 이라벽치가 말을 더듬자 부용관 사람들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하니 다른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이건 좀 아니다. 평범한 걸로 해, 평범한 걸로. 내 아들이 저러고 나타나면 나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나는 다시 직원들 손에 이끌려 뒷방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그럭저럭 얌전한 분위기의 옷이 나와서 나는 안심하고 소매춤에 팔을 쑤셔 넣었다. 다만 옷의 크기가 좀 커서 손등을 덮는 소매의 시접을 접어야 했다. 덕분에 바보처럼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와.』
『의원도 부를까요.』
부용각 직원의 질문에 이라벽치는 내 쪽을 보았다.
『혹시 이가 흔들리거나 피가 나는 곳이 있니?』
나는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의원은 됐고, 대신 얼음을 좀 준비해주게.』
『예.』
그동안 나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피곤함에 등을 구부정히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시장하냐. 배가 고프다면 식사를 주문해주마.』
식욕 따윈 멀리 달아난지 오래다. 나는 괜찮습니다, 라고 짧게 말해주고 다시 등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그걸 화가 나서 그런 모양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라벽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나를 다독이려 했다.
『하은 그 녀석은 원래부터 좀 막무가내지. 맞은 곳이 많이 아프니?』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야 사내 대장부지. 얼음으로 식혀주면 금방 열이 빠질 거야. 주머니를 대고 있으렴. 하지만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피부가 상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예.』
『대답도 잘하고. 착한 아이구나.』
평범한 아이라면 칭찬에 기뻐하며 수줍게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몸이라서 피곤한 미소만 짓고 말았다.
 
『것보다 원래 자리로 서둘러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라벽치 님.』
『신경 쓸 거 없어.』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빨리 돌아가 보았자 뭐가 좋다고」다.
하긴, 루은의 대로를 걷고 있는 자손을 보좌하고 있을 뿐이니 하품이 나오는 한가로운 업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게다가 자손의 실력은 일당백이라서 도중에 불온한 자가 죽자 살자 덤벼들어도 걱정을 해야 할 대상은 적의 목이지 자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라벽치가 해야 할 일은 자손이 퍼붓는 불평을 가까운 곳에서 들어주고 때때로 달래주는 것에 불과해서 자리를 보다 오래 비우고 싶은 욕구가 솟는 것도 지극히 당연했다.
『매년 같은 일을 하시는 건가요?』
『보통은.』
『힘드시겠어요.』
『괜찮아. 그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알던 시절에는 이런 거 안 했거든요? - 얼음주머니의 위치를 바꾸고 이를 다르게 질문했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 건가요? 고귀한 분을 모시고 친히 대로를 걷다니.』
『아, 그건... 고귀한 핏줄을 이은 분께서 신룡 님의 힘을 빌려 결계를 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거란다. 사악하고 나쁜 것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하는 거지. 이게 다 제국의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란다.』
알아. 그건 나도 눈치 챘어. 하지만 그건 원래 신룡의 은혜로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 적룡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될 걸 가지고 사람이 구태여 나서 결계를 튼튼하게 만들고 자시고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Posted by 미야

2015/08/04 16:21 2015/08/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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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8/04 21:06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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