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급자족용 습작입니다. ※
린청과 송주 두 사람은 숙사감대부로부터 열쇠를 받으면서 귀신이 나온다던 보물창고의 위치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도중에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일 없이 큰 못이 있는 현선당 앞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샛길을 연상시키는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큰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이 심하게 진 탓에 오전 무렵이었음에도 어둡게 느껴졌다. 게으름을 피웠을 리 없는데 정원사들이 나무 가지치기를 전혀 하지 않아 인공으로 가꾼 것들이 아니라 숲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났다는 거친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도 주변으로 새가 없다.
개운치 않은 섬뜩함에 쥐고 있던 걸레를 좌우로 비틀었다.
본인은 아마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옆에서 송주도 가래가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탁한 기침을 했다.
『바람이 시원해서 좋군.』
린청은 그런 쪽으로는 둔한 눈치다.
편돌로 포장된 언덕길은 그 기울기가 완만하여 고되게 느껴지거나 땀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오호라, 올해의 공양물인가.』
상급생임이 분명한 자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더러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겁에 질려 눈알이 동그랗게 떠진 송주가「지금 무어라 하시었소?!」외치며 겁도 없이 상급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봤자 보라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우리를 완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최고급 완선 부채를 반쯤 펼쳐 느리게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 동작이 안부 인사를 올렸을 적에 내 아버지가 하던 행동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던지라 나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자는 뜻으로 송주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산책을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내는 무심한 듯 시선을 위로 올려 현선당 앞 연못의 수면을 주시했다.
송주는 미련이 남은 눈치이나 저 상급생 남자는 우리가 말을 걸거나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도 결코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들었어?! 너희들도 들었냐고. 분명 공양물이라고 말했어!』
『겁주려고 장난을 친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손바닥으로 왜 자기 머리를 일부러 반복하여 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래도 안 아픈가?
어쨌거나 흥분상태인 건 확실한 것 같아 나는 슬그머니 린청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년은 그런 나를 흘끔 쳐다보곤「이거 참...」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일종의 방패 취급을 당했음에도 그리 기분 나뿐 눈치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매미처럼 등가죽에 달라붙었어도 크게 신경 안 썼다.
『것보다 이런 곳에서도 귀신이 나오나? 다른 곳도 아니고 신룡이 사는 곳이라며.』
『모기도 나오는데, 뭐. 귀신이 대수겠어?』
『아... 그런가. 안즈 네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일주일 전엔 나, 바퀴벌레도 잡았다?』
『거 봐. 나온다니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송주는 자기 머리카락을 비참한 모습으로 쥐어뜯었다.
『그런 식으로 납득하지 말란 말이야, 너희들~!!』
어쨌든 결론은 이런 것이다. 나오는 곳에서는 나온다.
이사실 황궁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은 폐병을 앓아 죽은 악사 누박기로 이 자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일곱 줄 현금을 연주한다. 이때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며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좋은 연주 실력이다, 혹은 음색이 별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일단 답을 해주면 그럼 이 곡은 어떻소이까, 나대며 새벽이 다 되도록 연주를 쉬지 않는다. 현금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거니와 천장에 매달린 귀신이 언제 바닥으로 내려올지 몰라 겁이 나 잠 한숨 잘 수 없어 숙직하는 관료들이 제일 싫어했다.
이 누박기가 신룡을 무서워했던가. 겁을 상실하여 황제의 침실에도 떠억 나타나기까지 했는데?
오죽하면 열 받은 친구가 제발 좀 닥치라며 천장을 향해 엄청난 무게의 침구장을 통째로 집어던진 일도 있다.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의 대소동이었다. 녀석은 서대륙 황제라는 지위에 올라 있었음에도 인류가 이미 귀마개라 부르는 좋은 물건을 발명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누박기? 못 들어봤는데.』
그래? 그렇담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운 좋게 성불한 건지도.
『현금을 연주하는 귀신? 그것도 황제 폐하의 침실에도 나타나는?』
송주가 의심을 품고 뒤집어진 여덟팔자 눈썹을 하자 나는 또다시 애꿎은 걸레를 비틀어 쥐어짰다.
이건 재미삼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친구가 침구장을 집어던져 천장에 구멍을 냈을 적에 그 옆에 나도 같이 있었다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입 밖에 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걸 떠나 내 입장에선 이게 또 엄청 부끄러운 얘기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어?』
『어렸을 적에 유모에게서.』
눈 딱 감고 거짓말하자 송주의 힘껏 당겨진 눈썹이 스르륵 제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그건 가짜야. 우리 유모도 곧잘 무서운 이야기를 공상하여 멋대로 꾸며내곤 했지. 난 또 뭐라고... 정말인가 싶어 깜짝 놀랐네.』
소년은 빗자루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채 다시 언덕 꼭대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걷는 속도가 방금 전과 비교해서 절반밖에는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기분 탓일까.
『송주, 넌 귀신이 무서워?』
린청의 질문에 소년은 수상한 약 냄새가 풍기는 조청을 실수로 목구멍 안쪽으로 삼킨 사람처럼 굴었다. 삼키기는 싫고, 뱉을 수도 없고. 당연히 무섭다. 안 무서운게 비정상이다. 하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 그것도 콩나물보다 더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외국인 앞에서 귀신을 보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인정하기는 죽기만큼 싫은지라 송주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나이든 어른처럼 허허 웃었다.
『절대 그럴 리 없지.』
말은 자신 있게 했으면서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호랑이 냄새를 맡은 산토끼처럼 미세하게 몸을 떨어댔다.
『대낮이야.』
『안 무섭다니까!』
『정 그렇게 무서우면 부적이라고 가지고 올 것이지.』
린청의 타박에 송주는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가져왔어.』
『뭐?』
『챙겨서 나왔다고... 부적.』
그러면서 땅굴이라도 파서 부끄러운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는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서 은밀히 비린내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북어포를 가져왔구나?』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송주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나는 린청을 위해 간단히 설명했다.
『귀신이 나타났을 적에 오른손에 쥔 북어포를 내보이면 귀신이 사람 대신 그걸 가져간다는 속설이 있어. 이때 반드시 오른손으로 내밀어야 하고, 나중에 그 손은 소금물로 씻어야 하지.』
『말도 안 돼. 이사실 귀신들은 생선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거냐?』
『말린 북어의 비린 냄새가 피비린내를 연상시켜서 귀신을 혹하게 만든다고 하더군.』
『그것도 유모에게서 들은 얘기냐? 그거 진짜야?』
『나도 모르지. 일단 내 고향인 빈사국에는 바다가 없어. 그래서 북어포는 매우 귀하다고.』
린청은 고개를 길게 빼고 송주에게 다시 물었다.
『안즈의 말이 사실이야?』
송주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우리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납으로 만든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하던 방금 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어서 나는 배를 구부려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