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그나마 양은 적었지만 어쨌든 토사물은 그 냄새가 지독했다.
당황한 나머지 팔을 뻗어 머리카락이며 붉은 의주갑에 튄 오물을 어떻게든 털어내려 시도했다.
그 행동이 사실상 손가락으로 문대는 거였음을 깨달았을 적엔 이미 늦어 청년 장수의 이마로 푸른 혈관이 곤두섰다. 발칙하게도 똥을 문지른 것이다.

『우와앗?! 빨리 막아!』
『지, 지지지지 진정하세요! 애기가 놀란 나머지 그냥 토한 거에요.』
『여기서 화내시면 안 됩니다, 자손!』
네 명의 병사들이 동서남북 방향에서 매달려 나를 대신해 애원하며 사죄했다.
그리고「자손」이라고 불리운 자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사람이 웃으면 예뻐야 정상인데 이건 많이 무서웠다. 하여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 아아, 오늘 하루는 참 정신없었어. 하늘이 맑네... 날씨 좋다.

나는 이대로 정신줄을 놓고 그만 편안해지고 싶었다.
하나, 둘, 셋, 넷... 『지금 나더러 진정하라는 말이 나와~?!』마침내 귓청을 한 방에 날리는 대포 소리가 터졌다. 기함만으로 사람을 쓰러뜨리고 나무를 와지끈 부러뜨리는 거, 정말 오랜만에 목도한다.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은 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드러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하여 지금 내 몸으로 굵은 밧줄이 칭칭 감겼다.
표면상으로는「요괴인지 사람인지 여전히 구분이 가지 않아서」이고, 속내는「발칙해서」 다.
『미안하다. 아프거나 저리면 꼭 말해다오.』
이름이 이라벽치라고 했던가, 나이 서른 중반의 사내가 몸을 묶은 줄을 느슨하게 조정해주며 얼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 정도 나이라면 결혼하여 슬하에 어린 자녀가 있을 터이니 우는 아들 벌주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죄수 포승줄 묶는 것처럼 하지 않고 아낙네가 장 보따리 묶는 식으로 매듭을 해서 속된 말로 엄이도정 하였다. 눈 가리고 아웅했다는 얘기다.
『너무 뻑뻑하진 않고?』
『괜찮습니다.』
『조금만 참으렴. 이 아저씨가 잘 해결해줄게.』
믿어보라는 아저씨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만.

원래대로라면 포승줄에 묶이는 것 정도로는 안 끝난다.
왜냐하면 그들이 청년 장수를「자손」이라는 독특한 호칭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풀어서 적으면「무한권능으로 하늘보좌에 올라 온 산하를 지배하시는 위대하신 적룡신의 만세자손」- 줄여서 자손 - 황족이다. 진짜로 황족이 용신의 후예냐고 묻지는 말아 달라. 예전에 그 질문을 친구에게 했을 적에 그는 그걸 자기 입으로 설명하기엔 본인의 입장이 난처하다며 뺨을 긁었다. 인간과 용이 서로 교미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2세를 볼 수 있는가 - 호기심이 들지만 천벌 받을 질문이다. 알 듯 말 듯 하여도 짐짓 모르는 척해야 신상에 좋을 것이다.
아무튼 황송하여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가 없는 서대륙의 황제는 용신의 직계 자식으로 셈 쳐 적손, 황태자는 주손으로 구분하여 호칭하고 이하 황족은 자손으로 부른다.
그러니까 나는 평소 우러러 얼굴도 바라볼 수 없는 귀인을 향해 송구하게도 토를 하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가락을 지분거려 그 냄새 지독한 걸 치덕치덕... 윽.
흙바닥에 코를 박은 채 신음했다. 인생 종쳤다. 황족 능멸죄면 그 처벌 수위가 어떻게 되더라. 태장 30대였던가.

『촌 사람의 아이로는 보이지 않는군. 피부도 하얗고.』
『저 아래서 이두마차를 발견했습니다. 바퀴가 망가졌고 말 두 필은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짐 일부가 손상되었고요... 시체도 한 구 나왔는데요.』
일처리는 일사불란하여 버려진 마차와 미리노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도망간 놈이 있다던데.』
타평에 대해 묻는 말엔 도리질하며 모르겠노라 거짓말했다. 미운 감정은 터럭조차 없다. 아버지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니 차라리 이대로 멀리 도망가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망노예로 조만간 수배되겠지만... 혹시 또 아는가, 숯 만드는 마을에 숨어들어 제2의 인생이라는 걸 시작해볼 수도 있으니까... 타평이 구운 숯인지도 모르고 그걸로 밥을 짓게 될 지도 모른다.

『혹시 사친 행렬로 온 거 아닐까. 마침 그럴 때잖아.』
『사친이라... 헤에, 그렇군. 벌써 오월인가요?』
『넌 어떻게 생겨먹어서 세월 가는 것도 모르냐!』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죠, 뭐.』
『그게 자랑이니? 하여간 내 주변엔 왜 이런 칠푼이 같은 놈들만 꼬이는 거야.』
『암튼 사친이면 행렬에서 이탈했다가 변을 당한 거겠죠. 잘 됐네요, 서남문까지 데려다 주면 되겠네.』
『.......... 포박해서?』
이라벽치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귀신을 잡으라고 나라에서 녹봉을 내리는데 산속에서 하라는 짓은 안 하고 대신 어린애를 잡아 - 여론이 악화되고 맹비난이 쏟아질게 두려웠던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도 했다.
『그럼 거적으로 대충 모습을 가려서...』
『아예 시체 취급이냣?!』
『아니, 저한테 화를 내봤자... 저어, 자손?』
눈은 감았으되 잔뜩 긴장하여 귀를 세워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에 콧물만 훌쩍거렸다.

『서남문으로 던져.』
머리를 대충 털어낸 자손이 이번엔 벗어놓은 의주갑을 손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지만 익숙한 자세로 갑옷을 직접 손질하는 모습이 무인다웠다.
『아, 네. 서남문으로 보내라고요?』
『아니, 던지라고.』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 번만 더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무어라 하셨는지요.』
『이 귀머거리야! 던지라 하였다. 녀석이 요물이라면 성문에 닿는 순간 주술의 영향으로 온 몸이 터져 죽는다. 이사실의 여덟 성문은 용신의 가호 아래 있어 저주받은 것들은 감히 통과를 할 수 없어.』
이라벽치가 울먹거렸다.
『요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요~!!』
『그래? 사람이었어? 그럼 잘 됐네. 안 죽을테니. 그러니 빨리 저놈을 끌고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쉭쉭.』

황족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말씀 받들어 서남문에 도달한 이라벽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쉰 뒤, 왕래하는 인구가 그렇게나 많은 곳에서 모두의 눈총을 받아가며 밧줄로 칭칭 동여맨 내 몸뚱이를 성문 한 가운데로 집어 던졌다.

Posted by 미야

2015/05/11 20:41 2015/05/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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