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드롭 1-23

1편의 마지막 회.


『움무의 무릎을 쏘았다고 했죠?』
그녀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어조가 거슬렸다. 같은 말이라도 미묘한 음정의 높낮이로 일상적인 질문과 취조로 구분이 된다. 지금의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네. 무릎을 쏘았습니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미리 가정하고 들어가는 이런 식의 대화는 서로의 신뢰감을 좀먹을 뿐이다. 리스는 감정이 상했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벗었던 셔츠의 단추를 도로 채웠다.「엉덩이로 이름을 쓰라고 하면 군소리 말고 써라」고 한 핀치의 조언을 떠올려 보자면 사실상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는 진실을 알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훈련을 받은 사람이고, 솔직히 그 방법은 리스가 알기론 때로 매우 거칠다.

『계곡 아래서 무릎이 나간 시체를 찾아냈어요.』
『핀치를 데리러 온 경비병이 그 이야기를 잠시 흘립디다. 걷지 못하게 된 움무를 등 뒤에서 쏘았다고. 그리고 쓰레기처럼 던져버렸다고요.』
『당신이 손봐준 겁니까.』
『나는 죽은 사람을 쓰레기처럼 취급하지 않아요.』
카터는 고개를 숙여 책상에 놓인 노트에 글자를 적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아이를 납치했어요. 나쁜 짓이죠.』
『그것 말고.』
『그다지.』
『예전에 본 적이 있다거나.』
『전혀. 그런데 이게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자기네들끼리 이름을 불렀어요. 내가 죽인 사람의 이름은 스틸스고 무릎을 날려버린 쪽은 아자렐로요.』
『글쎄요. 크게 도움은 안 될 겁니다. 원래 움무들은 두 개의 이름을 써요, 부모로부터 받은 본명은 미신을 이유로 비밀로 하고 대신 가명을 쓰죠.』
카터는 연필 끝으로 책상을 똑똑 두 번 쳤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그게 본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신의 팔뚝으로 문신이 있었어요. 먹이를 움켜쥐려는 매를 그렸는데 엉성하게 그린게 아니고 전문가 솜씨더군요. 물론 움무들도 문신을 즐깁니다. 하지만 선명한 색상을 내는 염료는 쉽게 구해지는 종류가 아니지요. 우리 마을에서도 못 구합니다. 보다 큰 도시로 가야 해요.』
『그래서요?』
『도시를 방문한 움무가 돈을 내고「문신하고 싶어요, 최고로 멋지게 해주세요」했다는 거잖아요. 불가능해요. 움무의 도시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고, 그들의 방문 가능한 장소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문신 시술소는 방문 가능한 장소에 포함이 안 되어 있어요.』

냄새가 난다, 냄새가. 쉰 냄새가 풀풀 난다.
매우 희귀한 트랜스-제트 전지를 가져와 흥정을 하려고 한 움무 무리.
그 제트 전지가 가짜라는 걸 한 눈에 알아차린 해롤드 핀치.
여기까지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눈감아도 그 다음부터가 한층 더 괴상해진다.
움무 무리의 두목이 소년을 윽박질러 핀치의 집을 알아내고 그리로 쳐들어간다.
사기 행위를 들켰다 판단, 협박하여 그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다?
그런 것 같진 않다.
노트에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그렸다. 손으로는 낙서를 하며 사건의 순서를 정렬해봤다.
핀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다.
움무는 소년을 다시 납치한다.
그리고 핀치와 맞교환을 하자고 요구한다.
왜냐 - 핀치가 중앙에서 쫓겨난 전직 퇴물 관료라고 착각을 해서.
돌아와서 핀치는 말한다. 움무들이 진짜 원하는 건 해롤드 핀치라는 인간이 아니고 오른손에 이식된 중앙의 칩이라고.
칩? 중앙 관료들에게 이식되는 칩따위가 다 뭐야. 난 실제로 본 적도 없어.
핀치는 자신에게 그런 물건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칩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관료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핀치는 중앙 사람이야. 그건 분명해.」
「그리고 움무들도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리고 다시 눈앞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저 남자는 아마도 중앙의 델타. 물어보면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지만.」
중앙, 중앙, 중앙. 어느새 화살표가 전부 중앙으로 향하고 있다.

『핀치에 대해 아는 것들을 말해봐요.』
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속으로 다섯까지 숫자를 센 뒤 천천히 내뱉었다.
『똑똑한 사람입니다. 다소 괴짜이고요. 꿍꿍이가 깊어 다른 사람 뒤통수를 잘 쳐요. 건강은 좋지 않고, 특히 허리와 다리 상태가 나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열심히 하는 눈치가 아닌데 귀찮아서가 아니고 치료 행위를 불신하기 때문이지요.』
『남들 다 아는 사실 말고요.』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로 찬물을 끼얹으면서 차가워 죽겠다, 죽겠다 혼잣말해요.』
『그런 종류 말고.』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카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를테면 중앙과 핀치와의 관계 같은 거요. 그런 걸 말해봐요.』
『아는 내용이 없는데요.』
『그런 식으로 뒤로 빼지 말고.』
『정말 모릅니다, 카터.』
『허, 계속 그렇게 나오시겠다?』
『찌르고, 때리고, 고문해도 해도 알지 못하는 건 말할 수 없는 노릇이죠. 아니면 그럴 듯하게 지어낸 걸 듣고 싶어요?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그 즉시 질문의 방향을 다르게 해봤다. 슬쩍 흘리면서 옆구리를 치는 방식이다.
『찌르고, 때리고, 고문해도 알지 못하는 건 말할 수 없다라... 예전에도 아는 내용을 실토하라며 고문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나보죠?』
『있었습니다.』
공책에 그 내용을 받아 적지는 않았지만 카터는 실마리를 하나 잡았다고 생각했다.
일반인이 고문을 당하는 일은 흔치 않다. 거의 없다. 아니, 없다는 말이 옳다.
『잠을 안 재우던가요.』
『고압 전류를 흘려보내 고통을 줬죠. 단지 제 이름을 알아내려고요.』
『고압 전류! 그래서 그들에게 이름을 말해줬나요?』
『제 이름은 처음부터 말해줬습니다, 카터. 존 리스가 내 이름이라고요.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지쳐서 내 이름이 알렉산더 카프레타크로스라고 거짓말을 했죠.』
『솔직히 제 생각으로도 존 리스는 언뜻 듣기에 가명 같아요.』
『그래도 그게 내 이름인데요.』
『당신을 고문한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리스는 그런 건 안 통한다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는 사람 약 올리는 미소였다.
『누구였는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납니다, 미스. 아니. 카터.』
성질이 나려했던 것 같다. 카터가 다시 연필을 들고 책상 위를 또옥, 똑똑 두드렸다.

한참 만에 풀려나 건물 밖으로 나오자 엉덩이를 문질문질 만지고 있던 핀치가 그를 향해 접근해왔다. 화가 난 의사 선생에게 주사 바늘로 찔린 부위가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다리를 저는게 아침보다 더 심해졌다. 안색도 나빴다.
그래도 전리품이랍시고 남성용 옷가지를 잔뜩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점이 기쁜 듯했다.
『보세요, 리스. 이렇게나 많이 얻었어요. 그리고 모두 사이즈가 큰 옷들이에요.』
게중에는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도 있었는데 둘째 아들을 구해줘 정말 고맙다며 대장간 주인이 특별히 신경을 써줬다고 했다.
『이제 8부 바지처럼 생긴 제 옷은 그만 입어도 되요.』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당장 좋아졌다. 리스도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죠? 모두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이것 좀 받으라며 핀치가 얻어온 물건들을 리스의 품에 잔뜩 안겨주었다.

Posted by 미야

2012/09/20 12:15 2012/09/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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