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일단 옷과 신발을 구입했다. 상인이 지저분한 내 모습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얕잡아보고 터무니없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 그런데 내 속 알맹이가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거덩요. 목을 감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보여주며 귀신을 잡으러 온 수사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떠벌리자 어색하게 웃으며 가격을 도로 깎아줬다. 상인은 소란만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수사들이 어검하여 날아가더니 산이 무너지고.’ 무슨 노래 제목 같은 이야기가 이미 마을을 한 바퀴 돌았기에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상태로 예민하게 몸을 사렸다. 얼마 뒤, 검을 소지한 수사들이 트럭 크기의 곰 사체를 가져와 가죽손질을 의뢰하자 숙덕거림은 배가 되었다. ‘며칠 전 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들렸잖아요? 그때 거기서 잡은 괴물 곰이래요.’ ‘깊은 계곡에서 도를 닦던 곰이었는데 산신이 되고자 욕심을 부려 태산의 법기를 훔쳐 달아났다네요.’ ‘그런데 진법을 깔고 수행을 계속해도 진척이 없자 사술에 빠져 사람을 잡아먹어 법력을 높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난릉 금씨가 몰려가서 진법을 부수고 곰을 죽였대요.’ ‘난릉 금씨가 아니라 운몽 강씨라던데?’ ‘금씨나 강씨나. 수진계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하지. 아무튼 저 곰을 깔개로 만들 거라네요. 짐승의 몸으로 분수를 모르고 법기를 훔치고 사람을 먹었으니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그 몸을 밟아 벌을 주겠다는 의도래요.’ ‘그나저나 가끔 도사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무리를 지어 저 산으로 올라가는 이유가 있었던 거네? 우리에겐 귀한 약초를 캐러 가는 거라고 했으면서. 실은 잃어버린 신선의 법기를 되찾으려고 한 거군.’ ‘그런데 난 저 산꼭대기로 사람 먹는 곰이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숲에 들어가 몰래 숯을 굽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적은 있잖아.’
먼발치에서나마 수레에 실려 작업장으로 떠나기 전의 곰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이 전부 나와 법석을 떨며 구경을 하였기에 앞에서 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몸을 밟는 벌을 주겠다니.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자고로 거짓말이 도는 건 더 큰 거짓말을 숨기기 위함이다. 수사들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짜고 치는 판을 벌렸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거대한 악이 처단되었고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좋다며 만세를 불렀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벽계를 빠져나와 약양으로 향했다. 약양은 멀었다. 그리고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중간에 행상을 만나 수레를 빌려 타지 않았더라면 매우 고생했을 거다. “제법 먼 곳까지 가는 거네. 무슨 볼일인데?” 나는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작은아버지가 장가를 간다고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독촉하는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곧 갚겠다고 답장이 왔다. 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었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내어 작은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하였다... 듣고 있던 수레 몰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그러면서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마를 찌푸리더니 잠시 후에 하는 말, 어쩌면 작은아버지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작은아버지 말씀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양에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어.” “듣기로는 상씨라고 큰 세가가 있다고 했는데요.” “옛날에는 있었지. 하지만 언젯적 이야긴데, 그게.”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 내가 알던 약양은 큰 마을이었다. 진짜로 거지 꼬라지에 아무것도 없던 소산과 비교하면 거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장터엔 파는 물건도 많았고, 군것질이나 장난감을 파는 노점도 있었으며, 마을 겉모양도 번지르르하여 기와를 얹은 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뉘앙스는 완전 쫄딱 망한 동네 취급이다. 잠깐만. 숨을 고르고 잘 생각해보자. 뉴욕 마천루를 구경해본 사람의 눈엔 10층짜리 건물이 코딱지로 보이는 법이다. 수레 다섯을 끌고 가는 행상이면 약양을 두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는 곳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 이런 행상이 소산에 오면 판자촌이라고 할 거야.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진 나를 향해 수레 몰이꾼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돈은 형제 사이에도 함부로 빌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서로 의만 상하지.”
이어 그는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시냐 물었다. 기침을 많이 하신다 둘러댔더니 이것저것 폐에 좋은 약초 이름을 언급하며 가격까지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 아이고, 우리 아들과 똑같이 열세 살인데 불쌍해서 어쩌노.” 어디 가서 스물하나라고 말을 하면 큰일 나겠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완전 망했어!!’ 천신만고 끝에 약양에 도착하니 오히려 갈 길이 구만리였다. 상씨가 망했다. 쫄딱 망했다. 오래전에 버려진 저택은 폐가 이전에 귀신이 나오는 흉가가 되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혔고 부적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낮인데도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 주변으로 키 큰 잡초가 무성했다.
“뭐? 상씨 집에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간식으로 먹기 좋은 전병을 팔던 장사꾼이 내 질문을 듣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이거 반응 안 좋다. 전병 값을 계산하면서 쭈물쭈물 예의 거짓말을 다시 반복했다. 먼 친척 형님이 장가를 간다며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상씨네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중이니 곧 갚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답장이 왔다. 형님도 만날 겸 막상 약양에 도착을 해보니... “속았군.” 다 듣지 않고 전병가게 주인이 말꼬리를 잘랐다. “상씨 가주 상평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네 친척이라는 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야. 나 참, 풍비박산 난 집안에서 종살이를 한다고 둘러대다니. 돼먹지 않은 사람일세.” “예? 죽어요?”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송자침의 말로는 저택에서 벌어진 흉사를 접하고 충격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고 했다. 젊은 가주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일어나지 못한 건가.
“큰 소리 내지 말고 들으렴. 살해당했어.” “네??” “좋은 일도 아니니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살해당했어.” “살해를 당하다니. 무슨 일인데요. 왜요?” “얘가 진짜! 쉿! 목소리를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름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그 자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저승에서 돌아올 거야.” 누구여 그건. 볼드모트여?! 전병 가게 주인이 개미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릉노조 몰라? 이릉노조라니까. 상씨를 멸문시킨 자가 이릉노조 위무선이거든. 지금도 이릉노조라고 하면 현문 세가 사람들이 분하고 화가 치밀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잖아. 불야천에서 무려 3천 수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이릉노조 위무선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귀신으로 나타나 상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고. 그러니 어디 가서 상씨 집안에서 종노릇 하던 사람을 찾는다며 함부로 휘젓고 다니지 말아. 경을 칠 테니. 전병도 사줬고, 네 신세가 하도 불쌍한 거 같아서 큰 맘 먹고 알려주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상씨 집안에 여귀사신을 몰아넣고 공격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 건 설양이잖아요.” “설양이 누군데.” “실화냐! 이거 진짜 망했네?!” 아무래도 설양이 만든 음호부를 찾아 이를 증거로 약양 상씨에게 일어난 비극을 증언하겠다던 효성진의 계획은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전부 틀어진 게 분명했다.
귓동냥으로 몇 가지 얻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5년 동안 상씨는 피해복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가주 상평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버린 저택을 제대로 처분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간 듯하다. 이게 왜 추측이냐면 이사를 간 곳이 어디라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다.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는 말도 있고, 곧 돌아올 작정이라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무튼 상평이 집안에서 벌어진 흉사에 큰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던 건 사실이라서 병을 치료할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효성진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이게 왜 설양의 짓이 아니라 이릉노조의 짓으로 뒤바뀐 건데?!’
이릉노조가 사술로 상평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기에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육신과 혼백이 전부 찢겨져 죽었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거나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상평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남은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릉노조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미리 작당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설양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효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쏙 빠지고 없어.’ 당연히 나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참변의 날, 상씨와는 상관 없는 피해자로 발견되었던 한 시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품속에서 너덜거려 곧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의 서찰을 꺼냈다. 한자를 잘 모르기에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효성진은 나를 진법에 가둔 뒤, 도술로 새를 부려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보낸 서찰은 내용이 길었고, 중간 것은 간결했으며, 마지막 것은 비명처럼 짧았다. ‘함부로 이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어.’ 글자를 읽으면 약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서를 잡을 지도 모른다. 다만 효성진이 나에게 알린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그 전에 글자를 먼저 배워야 했다.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끝.
Posted by 미야
2021/11/15 13:26
2021/11/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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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귀를 닫았는데도 바람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았는데도 밝은 햇살에 시린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탈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고된 철야 작업이 끝나 생체리듬이 무너진 상태에서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끓이며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는 기분이 들었다. 김치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둘로 쪼갠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 면이 다 익기를 기다리면서...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생각하는 거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막연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곳에 올 적에 시체자루에 넣어져 효성진 도장 손에 운반되어왔으니 사방이 낯설어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이나 마찬가지이고, 진법 안에 갇혀 - 비유하자면 5년간 감옥에 갇혀 썩고 있다 방금 출소한 셈이니 갈 곳을 몰라 두 다리가 얼어붙을 만했다. 그랬다. 나는 지금 급한 마음과 달리 엉거주춤 서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그때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거다.” 아까부터 계속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는데요, 속으로 대꾸하며 상대를 향해 몸을 틀었다. 짙은 자색으로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염 없이 턱과 뺨이 맨질거렸고, 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묶어 올렸다. 표정이 방금 사람이라도 죽이고 온 것 같아서 - 실제로는 곰을 죽인 거였지만 - 여하간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어 그럭저럭 준수한 외모가 완전히 빛을 잃었다. ‘곰도 죽였는데 너 같은 건 그냥 한 줌이지.’ 식의 눈빛을 하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는데 잔털을 다듬은 눈썹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냐고.
나를 분석하듯 쳐다보던 사내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작고 왜소한 체구, 어깨 길이밖에 오지 않는 쥐 파먹은 머리, 속의도 없이 얇은 중의 한 장만 달랑 걸친 더러운 외견, 그런 주제에 걸맞지 않게 수행자들이나 쓸 수 있는 곤선삭을 들고 있고, 목덜미에 제법 깊어 보이는 상처가 있다. 인정한다. 나라도 수상하다 여겼다.
“수행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들고 있는 곤선삭은 훔친 건가.” 그의 음성이 매우 낮게 가라앉았다. “괴이하군. 민가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으로 미로진까지 설치되어 있었는데 너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이쪽에서 납득할만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베어버릴 기세다. 곰의 목을 꿰뚫었던 검을 오른손에 쥐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잘 생각하고 혀를 놀려야 할 것이다. 너는 누구냐.” 사내는 성격이 조급했다. 그가 검을 고쳐 쥐자 아홉 장 꽃잎매듭 장식술이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해졌다.
나는 채소가게 송씨의 조언을 떠올렸다. 신분이 높아 보이는 사람과 마주치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신분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화를 내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나리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빌어라. 배꼽으로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나리 한 번만 잘못했습니다.” 빠르게 내뱉고 보니 어색하다. 고개를 갸웃거린 뒤, 바로 잡았다. “소인이 용서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콩글리쉬로 말하는 느낌인데. 워째 더 이상해졌다.
“외숙부, 잠깐만요!” 저만치 앞에서 금릉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녀석은 죽기는커녕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잠시 표정이 복잡해지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며 떼쟁이 어린아이로 변해 울그락불그락 화를 내던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왜 왔느냐! 내가 안전한 곳에서 얌전히 목을 닦고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니!” “목을 닦을 수건을 안 주셨잖아요. 그게 제 잘못이에요?” “금릉!” “알았어요, 알았어. 목 닦는다고요. 하지만 그 전에 제 말을 먼저 들어보세요. 저건 그냥 바보예요!” 그러니까 때려봤자 이쪽이 손해라며 말렸다. “저 멍청한 얼굴을 보라니까요? 자기가 뭘 말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잖아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이도 제대로 셀 줄 몰라 저한테 자기가 스물하나라고 하더라고요.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 수상한 게 아니라 머리가 잘못된 놈이라고요.”
외조카가 말리자 살기등등하던 사내의 기세가 약간 누그러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누가 누굴 때린다고.” 그러면서 엉뚱한 방향을 보며 흠흠 헛기침했다. 보아하니 말보다 주먹이 빠른 양반이면서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였다. 와, 나 하마터면 맞을 뻔했네? 그것도 무공을 배운 사람에게 털리게 맞을 뻔했네??
“종주님, 잠시 와보시지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마찬가지로 자색 옷을 입은 수사 무리가 다가와 두 손을 마주 모은 자세로 일반례를 올렸다. 높은 분이 눈짓하자 두 명이 따로 움직여 날 붙잡았다. 내가 빼빼 마른 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한 건지 세게 붙잡지는 않았다. 그저 어깨만 잡았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시신의 상태가 신선하다는 얘기다. 종주는 계속하라는 의미로 턱을 끄떡거렸다. 이에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자가 침착한 말투로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두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입니다. 검을 지녔으되 경지가 높아 보이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품에서 부적과 방울, 효능이 의심스러운 잡기들이 잔뜩 나왔습니다. 이곳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에 끌려 근처까지 올라왔다가 미로진에서 길을 잃고 환각을 보는 중 자기네들끼리 다툼이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수행자가 아니면 그럴 수도 있지. 귀신을 봤다며 날뛰다 서로를 베어 죽인 모양이군. 하찮기는!” “저어, 종주님... 그 죽은 사람들 중 저 소년의 부친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제야 아차 싶었던지 높으신 분께서 입안 살을 오목하게 물어 깨물었다. “아니면 짐을 들게 할 목적으로 데려온 머슴이었을 수도 있고요.” 쥐가 뜯어 먹은 내 머리 모양을 보고 수사가 얼른 하던 말을 바꿨다. 이곳 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길러 끈으로 묶거나 관을 써서 모양을 꾸몄으므로 돌칼로 멋대로 잘라내어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온 내 머리 모양이 제법 충격적인 듯했다. 제 핏줄의 머리를 저리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리 없으니 하인이랍시고 험하게 부려진 아이가 아니겠냐는 것이 수사의 의견이었다.
“어른이 전부 죽자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섣부른 추측은 삼가라.” 말은 그렇게 해도 결론은 이미 그렇게 도달한 눈치다. 수사들은 쯧쯧 혀를 차며 ‘운몽에서는 그 누구도 하인을 저렇게 다루지 않는다’ 수군거렸다. 엄청 말랐다, 옷이 더럽다, 머리를 죄인처럼 꾸몄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었다, 바보라더라, 말도 들려왔다.
“시끄럽다! 운몽의 수사들이 쟁알쟁알 계집처럼 말이 많구나. 시신 수습이나 해! 여긴 음기가 가득하니 시변하지 않도록 조처하라. 거기 둘은 다른 무리가 더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산이 무너져내린 곳으로 가야겠다.” “예, 종주! 그런데 이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갈 곳이 있는지 물어봐서 없다고 하면 연화오로 데려가. 있다고 하면 노잣돈을 충분히 주고 목의 상처를 치료해준 뒤에 보내줘. 금릉~!! 네 이놈. 또 어딜 가려는 게냐. 여기서 또 사고를 치면 네 다리를 분지르겠다! 그만 촐랑거리고 따라와! 네가 데려왔다는 하인들을 찾아야 할 거 아니냐! 금씨 수사 이것들은 널 내버려 두고 죄다 어디로 튄 거야! 내 돌아가면 금 종주에게 단단히 한마디 해야겠다. 널 호위하라고 붙여준 수사들 중 제대로 된 놈은 하나도 없고 전부 쓰레기밖에 없었다고!”
금릉은 내가 서 있는 곳을 한 번 쳐다보곤 얼굴색을 바꿔 얼른 외숙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아이를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줄까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참변을 당한 무리에서 저 혼자 살아남은 하인은 풀 죽은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는 편이 어울렸다. 금릉이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가끔씩 이쪽을 쳐다본다는 걸 알았어도 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시를 받은 수사가 약초와 붕대를 가져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받았다. 갈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약양으로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수사는 원하는 대로 하라며 무게가 묵직한 작은 주머니를 나에게 쥐어 주었다. 돈인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잘 숨겨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그러고도 영 못 미더웠던지 날 가까운 마을 초입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간 고생이 엄청 심했던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가지 그러니. 운몽에선 하인이라고 굶기지 않는다. 밥은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만,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알겠다. 네 좋을대로 하렴.” 그는 길게 설득하진 않았다.
멀리서 펑 소리를 내며 신호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노란색이었고, 모란무늬였다. “하여간 난릉 금씨들은 거북이를 조상으로 모시는 건지 느려 터졌어.” 날 데리고 가던 수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졸졸 물이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양해를 구한 뒤 정성스럽게 세안을 했다. 거기서부터 조금 더 가자 길 옆에 큼직한 돌이 세워져 있었다. 돌 표면에 지명일 것 같은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수사에게 저걸 어떻게 읽느냐 물어보았다. 수사는 ‘벽계(廦界)’ 라고 읽는다 알려주고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라 했다. 감사의 뜻으로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운몽 강씨의 수사를 배웅했다.
Posted by 미야
2021/11/14 20:38
2021/11/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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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폭죽이 올라왔다. 피요용 귀를 찢는 소리의 끝자락으로 자색의 연꽃무늬가 팡 하고 떠올랐다. 신호탄이다! 나는 반색하며 걷던 방향을 바꿔 폭죽이 터진 곳으로 가고자 했다. 목숨을 건진 수사들과 하인들이 드디어 채비를 정비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낙오가 된 자들도 저 불꽃을 보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저리로 몰려갈 거다.
“안 갈래.” 그런데 소년의 반응이 신박했다. “뭐?” “모양이 모란문(牡丹纹)이 아니고 구판연(九瓣蓮)이잖아. 싫어. 안 갈래.” 빨리 가자는 재촉에 금릉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모란이나 연꽃이나 똑같이 꽃인데 차별하고 앉았어. 삐거덕 소리를 내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려는 금릉의 목덜미를 얼른 붙잡았다. 자존심 강한 도련님은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며 당장 놔라 언성을 높였다. 그래봤자 배추보다 가벼웠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작은 새끼 고양이를 왼손으로 안고 오른손으로는 무성한 덤불을 헤쳤다. 작은 가시가 달린 줄기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뚫고 가기가 영 성가셨다.
“싫다고 했잖아! 명령이야! 내려놔!” “명령이라굽쇼? 미안한데 내가 네 녀석 부하는 아니라서.” “건방진 놈! 나중에 용서해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을 줄 알아! 하인들을 시켜 널 몽둥이로 때려주마!” “어머나~ 그 몽둥이로 날 때려줄 하인들이 저기 있네? 그러니 저기로 가자.” “안 된다니까! 구판연이잖아! 외숙부가 저 신호를 보고 달려오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내 두 다리가 부러져! 편지만 써놓고 몰래 나온 주제에 야렵에 실패했냐며 야차처럼 화를 내실 걸? 절대로 모란문이어야 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저기로 가는 건 호랑이 입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금릉이 다리를 동당거리며 아우성쳤다.
녀석이 외숙부에게 다리뼈가 부러지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곰의 입보다 호랑이가 낫다. 둘 다 맹수라서 매섭기는 거기서 거기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호랑이 입 크기가 살짝 작다. 그러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선택은 호랑이 입이다. 나는 금릉의 몸을 옆구리 쪽으로 흘리면서 등허리를 사선으로 비틀었다. 주변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와중에 살짝 주의가 흐트러졌던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까지 눈치를 못 챈 건 오롯이 내 실수다. 단단히 각오하기도 전에 식인 곰의 몸통 박치기가 이어졌다.
“우와악!” 이건 바닥에 내동그라진 금릉의 비명.
나는 손에 감고 있던 곤선삭을 수평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 일종의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금속 줄이 튕기는 저음의 굉음과 함께 곤선삭이 곰의 벌어진 아가리 한 가운데를 정확히 후려쳤다. 언젠가 내가 큰돈을 벌면 곤선삭 제작 비밀을 캐고 말테다. 모양은 그렇고 그런 밧줄인데 내가 이것보다 더 튼튼한 걸 본 적이 없다. 괴물이 된 곰의 이빨도 막아주고, 보물이다 보물.
송곳니가 곤선삭에 갈리자 통증을 느꼈던 것 같다. 기습에 실패한 곰은 입을 다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 우리의 악연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냐고. 물러서는 척하여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더 깊게 입질한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있나. 나 역시 곤선삭을 내리는 척하다 더욱 팽팽하게 들어올렸다. 이걸 몰라 몇 년 전엔 발목이 통째로 날아갔다. “사람을 그만큼 먹었음 만족이라는 걸 하라고, 이 망할 새끼야!” 욕을 얻어먹은 곰이 눈에서 거짓말처럼 밝은 레이저를 쏘아댔다. 현생이 아니라 전생 시절에도 사람 고기를 탐닉하면 힘이 세졌다가 초현실적인 괴물로 변한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컴퓨터 호러 게임도 있었다. 나는 저 망할 놈의 곰이 지금까지 사람을 얼마나 많이 헤쳤을지 짐작이 안 갔다.
“금릉아, 달려!” “뭐?” “가서 어른을 불러와! 빨리!” 상황이 급박했다. 나는 금릉의 예상 도주 방향으로 뛰어들어 몸으로 가로막고 권투 스트레이트 컷의 동작을 취했다. 글쎄다. 화살에 맞았을 때도 가죽에 작은 생채기만 났으니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큰 북이 울리는 투웅, 소리는 제법 그럴 듯했지만 곰은 그저 움찔거렸을 뿐이었다. “빨리 가!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 누구든 좋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해!” “뭐라고?! 지금 이 몸더러 등을 보이고 도망치라고 말하는 거야?!” “아, 좀!! 누가 도망치라고 했어? 가서 어른을 불러오라고!” 곰의 시선을 끌며 네 다리로 후다닥 움직였다. 곰은 그런 나를 쫓아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체중을 실어 찍어 내리려 했다. 두더지 게임도 아닌데 여기를 쿵, 저기를 쿵쿵, 찍었다. “빨리 가라니까! 형이 하는 말 좀 들어!” 정신없이 공격을 피하면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자 그제야 금릉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 절룩거리며, 그래도 제법 빠른 속도로 수풀을 가로지르는 아이를 보며 안도했다. 여기서 내가 충분히 시간을 벌어주면 쟨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와라!” 기합을 아무리 넣어도 내 기세가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며 곰이 주둥이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철조망으로 분리된 동물원에서 저 얼굴을 봤음 나름 귀엽다고 했을지도. 곰이 앞발을 휘둘렀다. 간발의 차이로 나무 뒤로 돌아 몸을 숨겼다. 머리가 좋은 녀석은 그대로 돌진하여 날 가리고 있는 나무를 정통으로 갈겼다. 그러자 나무를 통해 전달된 충격이 뱃속을 온통 휘저었다. 트럭에 들이받힌 느낌이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배를 끌어안은 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오른쪽 귀 옆이 뜨끈해졌다. 곰이 휘저은 앞발에 귓바퀴가 날아간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은 왼쪽이다. 돌아보지 않고 상체를 숙였다. 다리가 꼬였지만 운이 좋아 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 마당에 옆구리가 당겨 아프다니!’ 전력질주 달리기 도중에 당겨오는 것처럼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신체 반응이긴 한데... 내가 언제 산 사람처럼 산소가 필요했다고. 그런데 진짜 개처럼 헐떡거렸다. “우와아아!”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한쪽 무릎을 접은 자세에서 곤선삭으로 곰의 다리를 걸어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곰도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울음소리를 냈다. 놈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발톱을 세워 사방을 긁었다. “같이 죽자!” 땅을 박차고 일어서며 뒤로 자빠지려는 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빈틈없이 주먹을 꽉 쥐고 놈의 심장 부위를 노렸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한 방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다른 수는 없었다.
주먹이 곰의 가슴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놈의 강철 손톱이 내 목덜미를 길게 훑었다. 내가 급소를 노린 것처럼 녀석도 급소를 노렸다. 충격으로 흐려진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자 멀리 떨어져 있던 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니, 그건 얼굴이 아니라 벌려진 입속이었다. 곰의 입안은 더러운 침으로 흥건했다. ‘뭐, 이만하면 시간은 충분히 벌어줬겠지. 열심히 했다, 나라는 녀석.’ 나는 천천히 눈을 감...
그때였다. 눈을 감으려던 찰나 휘리릭 소리를 내며 창백한 금속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번쩍이는 금속은 곰의 목 한가운데를 정확히 꿰뚫었다. ‘어?’ 곰도 멈칫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네가 그런 거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검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온 건지 보지도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도 안 갔다. 곰이 깊숙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흘렸다. 입으로 피거품도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눈에서 불빛이 꺼졌고, 놈은 천천히 주저앉았다. 마침내 놈이 모든 움직임을 멈췄을 때 검 손잡이에 달린 보라색 장식 술이 나풀나풀 흔들렸다.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 되어 흔들리는 장식 술을 가만히 손에 쥐었다. 아홉 장 꽃잎을 표현한 매듭이 달린 훌륭한 장식이었다. 꽃의 모양이었음에도 고운 여성이 쓰는 물건이라기보다는 남성적 느낌이 강했다. 부드럽지 않고 강직했고, 어딘지 모르게 기색이 날카로웠다. 그러고 보니 허공에 신호탄이 쏘아 올려 졌을 적에 이와 비슷한 무늬가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금릉이 어른을 불렀구나. 내 말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 안전하게 자기 일행과 조우했다. 다행이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목의 상처에 손을 가져가 세게 눌렀다. 상처부위를 눌렀다 떼어낸 손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패인 자국이 제법 깊었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며칠 지나면 새살로 덮여 흉터로 바뀔 것이다. 시선을 움직여 곰의 목에 박힌 검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번득이는 검 날을 보자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검의 주인은 원거리에서 눈으로 보지도 않고 검을 집어던져 일격으로 곰의 숨통을 끊었다. 끔찍스러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런 능력자와 마주쳐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 거다.
발뒤축을 세워 살금 걸음으로 죽은 곰으로부터 열 걸음 떨어졌다. 과거, 설양이 만든 가슴의 상처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오래된 상처가 욱신 저려오며 만감이 교차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울 뿐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현장에서 벗어났다.
Posted by 미야
2021/11/12 14:40
2021/11/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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