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무려 5년이었다. 내가 말이지, 선반 위에 올려놓은 식초를 아쉬워하는 바람에 성불을 못 했다는 스님 이야기가 떠올라 그간 일부러 머리를 비우고 살아서 그렇지 아님 어쩔 뻔했어. 도끼로 쓸 돌을 갈 때 마음도 같이 깎으면서 ‘직지인심 견성성불’ 글자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 결말이 매번 다듬던 돌을 깨부수는 것으로 끝나 득도의 경지에 오름에는 실패했지만... 그게 내 잘못이겠냐고. 그 로빈슨 크루소도 난파선에서 식료품과 무기를 포함해 필요한 물자를 조달했다고! 갈아입을 옷 한 벌 없어 길 잃은 주시의 옷을 벗겨다 입은 나와는 하늘과 땅 차이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침착하자.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려는 잡념을 강제로 붙잡아 앉혔다. 지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 효성진 당신, 나한테 걸리면 죽어! – 이게 아니라. 일단 품안 아이를 제 일행에게로 안전하게 돌려보내도록 하자. 급할수록 코앞의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거다.
소년은 깨어났다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는데 솔직히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웅얼거림 중에서 ‘냄새 나’ 이 건 알아들었다. 업은 상태에서 어깨 뒤를 돌아보니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아미 한 가운데로 붉은 점을 찍은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픈데 똥 구린내까지 맡아 표정이 절간 입구를 지키고 선 나찰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못 생겼구먼.” 툭 내뱉은 내 말에 아이의 뺨이 실룩였다. 그러든 말든 등에 업은 아이를 고쳐 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끝나 이제 먼동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데려온 하인들과 수사들 숫자가 적지 않아 분명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텐데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답답한 기분에 ‘이봐요, 여기 댁들의 아가 도련님이 있어요!’ 큰 소리를 쳐서 불러볼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난 밤 곰이 수사들을 사냥하던 걸 떠올렸다.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둥지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곰은 욕심이 많다. 집착도 강한 놈이라 사냥에 욕심을 부려 조용히 뒤를 따라오는 중일 수도 있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가 않으니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옳았다. ‘아니면 이대로 되돌아가서 신호탄을 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들 무리가 곰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을 때 수사 중 하나가 신호탄을 꺼내 터뜨리려 하다 곰에게 밟혀 죽은 걸 떠올렸다. 곰이 죽은 수사의 시체를 물어가지 않았다면 아직 제자리에 남았을 거다. 운이 나쁘면 진법이 터져나갔을 때 휩쓸려 고운 가루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 진짜 효성진!!
“앉고 싶어.” 업혀 있던 아이가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만 흔들어. 머리가 울린다고.” 그 말을 듣고 아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지럼증이 심하다면 간밤의 충격으로 뇌진탕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아이의 시선방향과 안색을 살피며 혹시 구역질을 하지는 않는지 체크했다.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구역질이 안 나겠냐!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아이는 주둥이가 안 예뻤다. “불쾌해. 날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다니. 더럽잖아!” 이야... 말본새가 재벌 3세다. 대기업 손자야. 삿대질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꿀 먹었어? 입이 달라붙었어? 너 누구야. 내가 묻는데 왜 말을 하지 않아?!” “기가 차서.” “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인석아.” 너만 주둥이냐. 나도 주둥이다. 쏘아붙이며 눈을 흘겼다.
소년이 벌에 쏘인 것처럼 발끈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모르니까 그렇게 건방을 떠는 거지! 내가 누구냐 하면, 나는 금릉이다!” “됐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는 안 나냐? 눈이 침침하거나 모습이 겹쳐 보이지는 않고?” “이이익! 금릉이라고! 내 이름은 금릉이다!” “인석아. 이름이 아니라 네 몸 상태를 묻고 있잖아. 여기가 어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 “아.”
광폭화 스킬을 시전한 곰으로부터 머리를 통째로 물어뜯길 뻔한 걸 떠올렸는지 잔뜩 풀이 죽어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어두워졌다. 그래, 엄청 무서웠겠지. 내가 저만한 나이에 저만한 일을 겪었으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북극곰이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도 못 봤다. 이불속에 틀어박혀 벌벌 떨기만 했을 거다. 몸을 떠는 아이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냐! 추워서 그래!” 거의 울면서 금릉이 주장했다. 아이의 눈가가 습기로 촉촉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어깨를 으쓱였다. 상대방이 봤을 적에 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몸동작이었다. 그렇다, 아니다, 좋다, 나쁘다, 이해한다, 모르겠다, 원하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응. 믿어.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지금은 불을 피울 수가 없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 아직 위험하거든. 계속 움직여야 해.” 내 말을 듣고 아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더니 황급히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바짝 긴장했다. “혹시 그 망할 곰이 근처에 있는 거야?” “몰라.” “큰일이네. 활도 잃어버리고... 검도 없는데 어쩌지.” “그러니까 빨리 어른을 찾아야지. 검이 있어봤자 어차피 지금 네 힘으론 못 덤벼.”
금릉이 뾰족하게 반응했다. “너! 그 말 취소해! 난 약하지 않아! 얼마 전 금단도 맺었다고!” “금단이든 은단이든 부상을 입었잖아. 다친 몸으로 싸우고 그러는 거 아냐.” “이게 말을 못 알아듣네. 금단을 맺었다니까! 건방지게 누구에게 충고하는 거야!” “어른이니까 충고하는 거다, 인석아.” “나보다 작은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나는 올해 열둘이야! 넌 몇 살인데.” “스물 하나.” “흥! 숫자 세는 법을 엉터리로 배웠군.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이러면 그게 맞겠냐고.” 천하의 바보 취급하며 녀석이 눈을 흘겼다. 계속 따지기도 뭐해서 내가 동생 할 테니 네가 형 하라고 대인배의 마음으로 양보했다. 그보다는 지긋지긋한 이 산에서 내려갈 길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산을 무사히 내려가면...
“금릉아. 혹시 약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 여기서 많이 멀까?” “촌부의 자식이라 진짜 몰라서 저러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어디 함부로 내 이름을 불러!” 금릉이 자기 옷을 가리켰다. 더러운 게 잔뜩 묻었어도 여전히 비싸 보이는 옷이었다. 소매에 모란무늬가 있고 금실로 수를 놓았다. 전부 수작업으로 수를 놓았을 테니 엄청난 공임이 들어간 옷이었다. 아니 씨발, 그래서 뭐요. 혹시 그건가. 내 이름은 이지호! 내 아버지가 삼성 회장 이재용! 네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나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넌더리를 냈다. “알았어, 알았다고. 부잣집 도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정말 미안해. 너, 부자야! 나는 가진 거 없는 흙수저니까 도련님 이름 함부로 안 부를게. 됐지?” “그게 아니라... 야. 너 진짜 모르는 거냐? 아님 바보야? 이 백모란 무늬를 봐도 아무 생각이 없어?” “예쁘다고 생각해.” “맙소사. 진짜 바보였군!” 내 대답을 들은 금릉은 어째서인지 화를 누그러뜨리고 대신 날 불쌍하다는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 시선은 반칙 아닙니까. 내가 왜 불쌍해? 진짜 불쌍한 건 너지. 시장에 갈 적에도 두 다리로 걷지 않고 꽃가마 타고 다닐 것처럼 생겨서 굳이 험한 산속에 뭣 하러 들어와 이 고생이래?
“곰이 있다고 알았음 절대 안 왔어. 소문에는 이 부근으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신선이 만든 진법이 있는데 신선이 그 속에 무기를 숨겨놨다고 했거든.” 걸음이 계속 불편해보여 등을 보이고 업어주려 하자 금릉은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무례하게도 녀석은 코를 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좋을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대신 머리 높이로 자란 풀을 뒤로 꺾었다. 한껏 자란 풀들은 부드럽지가 않고 심지에 철사가 들어간 것처럼 단단하여 피부를 긁기 십상이었다.
“무기?” “어떤 무기라는 말은 없었어. 그래도 보통 무기라고 하면 검이 떠오르잖아?” 어느 날 한 신선이 예사롭지 않은 무기를 발견하였다. 쓰려고 하니 요사스럽기가 그지없어 제멋대로 날뛰었다. 술법으로 제압하자 곧 얌전하게 되었으나 신선은 이 무기가 제법 쓸모가 있으나 조종이 되지 않으니 사람에게 이롭지 않다 여겨 그대로 봉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주변으로 큰 진을 그려 사람의 접근을 가로막고, 밖으로는 작은 진을 덧그려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금릉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잠깐만요, 요사스럽고 조종이 되지 않는다며. 그런 무기를 굳이 찾으러 왔다고?” “쓸모는 있다고 했으니까. 여차하면 내가 써줄 생각이었지.” 그 무슨 근자감이냐.
금릉의 입이 댓바람이나 튀어나왔다.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어? 전부 외숙부 잘못이야. 외숙부가 내 검을 가져가서 눈을 이렇게 뜨고 ‘못 준다!’ 이래버리니 나로서도 방법이 없잖아. 외숙부도 10대 시절에 야렵을 나가 큰 공을 쌓았으면서 왜 나는 어리다고 못 나가게 막는 건데? 나도 충분히 요괴를 잡을 수 있거든?” 야, 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 네 외숙부라는 사람이 무척 현명한 분인 거 같다. “작은아버지도 내 실력이면 야렵에 나가 수살귀 서넛도 거뜬히 잡을 수 있을 거라 하셨어.” 그 작은아버지라는 양반은 단순히 널 추켜세우는 게 아니라 조카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 같은데. 코흘리개 어린애가 무슨 귀신을 잡아. “귀한 수호부를 주신 분도 작은아버지야. 혹시라도 위기에 처해도 이게 날 지켜줄 거라면서... 어, 내 팔찌. 어디로 갔지?” 자신의 텅 빈 손목을 보고 금릉이 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입이 험한 것과 별개로 은근히 애가 맹했다.
Posted by 미야
2021/11/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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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곰이 앞발을 휘둘렀을 뿐인데 광풍이 불었다. 나무 위에 올라간 나조차 솟구친 먼지로 눈이 따끔거렸으니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엉거주춤 서있던 수사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화살을 다시 재장전하고 활시위를 잡아당길 준비를 마쳤던 어린 소년도 풍압에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굴렀다. 힘을 잃고 따라 빨려가는 화살들이 여기선 꼭 이쑤시개처럼 보였다.
완전 미쳤다. 턱을 힘껏 벌려 포효하는 짐승은 어쩐지 곰이 아닌 다른 생명체 같았다. 플루토늄으로 오염된 땅에서 태어나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거대한 악의였다.
“도련님이 위험하다. 빨리 신, 신호탄을 쏴!” 수사 한 명이 허리 근처를 뒤적거렸다. 신호탄을 찾는 눈치인데 감정이 격해진 탓에 손을 떨어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해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걸 놓칠 곰이 아니었다. 거대한 체구를 움직여 수사의 몸통을 앞발로 찍어 눌렀다. 모양새가 좋지 않은 죽음이었다. 흉부가 납작하게 찌그러진 수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신호탄을 올리라니까!” “제길, 다리가 풀렸어!” “그러니까 여기에 오지 말자고 내가 누누이 말했... 허억!” 곰이 웃는 걸 본 적 있는가. 순식간에 사람을 죽인 곰은 진심으로 재밌어 했다.
“정신 차려! 그러고도 너희들이 현문 세가의 수행자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가 보기와 다르게 참 독했다. 어느 새 몸을 추스른 소년이 나무에 어깨를 기댄 자세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솜씨가 출중하여 이번에도 화살은 곰의 몸을 맞췄다. 억울한 부분이라면 아직 나이가 어려 힘이 약했다는 점이랄까, 화살은 단단한 곰의 피부를 약간만 뚫었을 뿐이었다. 깊게 박히지도 않은 화살은 곰이 몸을 털자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끝이었다. 결말을 예상한 나는 진심으로 속이 상했다. 이런 식으로 죽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다. 아직은 부모 아래서 어리광을 피워도 괜찮을 나이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일부러 위험한 곳까지 와서... 곰이 두 다리로 걸었다. 이족보행 종족도 아니면서 거짓말처럼 속도가 매우 빨랐다. 성큼 걸음으로 소년에게로 접근한 괴수는 주둥이를 벌려 넋이 완전히 나간 아이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야, 이 개 자식아! 어린애는 건드리는 거 아니야!” 내뱉고 보니 저건 개가 아니라 곰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뭐, 괜찮겠지. 뜻만 통하면 - 중얼거리며 근처에 있던 바위를 들어 냅다 던졌다. 왕년에 배추 250근을 혼자 들어 운반하던 나다. 힘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에 바위는 빙글빙글 돌며 곰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깨진 것이 곰의 머리가 아니라 바위라는 점은 심히 유감스러웠지만 - 그래도 명중이었다.
돌에 맞은 곰의 눈이 벌겋게 변했다. 이 거리에서 고작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등골이 오싹했다. 녀석은 분노로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듯했다. 발광하여 발을 굴렀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깨진 바위조각에 뽑힌 사람의 팔, 그리고 불운한 소년의 몸뚱이가 대포처럼 날아들었다.
‘씨발, 결계...!!’ 날아오는 물체가 뿌리 채 뽑힌 나무라면 괜찮다. 결계는 오직 사람에게만 반응한다. 그래서 진법 위를 통과하는 물체가 사람이면 문제가 엄청 심각해진다. 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제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벼락이 계속 같은 자리로 반복하여 내리꽂히는 기분이었고,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콰르르 우르르 땅이 울렸다. 발아래 떨림이 꼭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산중턱이 그대로 쓸려나간 것 같았다. 뭔가가 무너졌고, 다시 치솟았다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주저앉았다. ‘씨발, 이래선 반물질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잖아!’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이미 기절한지 오래여서 팔이 축 늘어진 소년의 몸이 허공에서 둥실 떠올랐다. 그러더니 나침반 바늘처럼 몸이 저절로 회전했다. 동시에 손목에 찬 팔찌에서 자색의 불꽃이 솟구쳤고, 이내 소년을 에워싸고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눈치껏 보아하니 주인을 보호하는 진귀한 아티팩트인 모양이었다. 불꽃은 소년의 육신을 통째로 튀기려 드는 결계의 힘에 맞서 맹렬하게 저항했다. 팽팽한 대결이었다. 먹느냐, 먹히느냐, 막상막하의 대결은 위력적인 폭풍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폭풍에 휩쓸린 주변 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터졌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다간 내 머리도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쪼그리고 앉았던 자세를 바꿔 아예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렸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토네이도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음 소들과 같이 오즈의 나라로 빨려갈 뿐이다. 뭔가가 코앞에서 와지끈 부서졌고, 간발의 차이로 머리 꼭대기 한 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의 정체는 금이 가고 깨진 팔찌의 구슬이었다.
소란이 멎어 사위가 고요해지자 시야에 대자로 누운 소년의 몸이 가득 찼다. 마침내 결계를 깨고 진법 안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왔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아님 슬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 뒤로 미루기로 했다. 퍼득 깨달음이 왔다. 지금 이 순간의 고요는 단지 폭풍의 눈 속에 들어와서 그런 거지 아직 태풍은 지나가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허공으로 여덟 개의 기둥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순서대로 나타난 그것은 구름을 뚫을 기세였다. 문제는 일곱 개는 튼튼했고, 하나는 깨지고 절반이 부러진 상태였다는 거다. 좋지 않았다. 수직으로 선 기둥 꼭대기로 빛나는 거대 문양이 떠올랐다. 동시에 건물 외곽 철근이 구부러지다 못해 뚝뚝 끊기는 굉음이 들렸고, 문양이 거대한 쟁반처럼 기둥 위에 올라갔다.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다음은 규모가 남다른 쟁반 노래방의 재현이었다.
기절한 소년을 등에 업었다. 초보자 아이템으로 주어졌던 곤선삭을 꺼내 나와 아이의 허리를 같이 동여맸다. 시간이 촉박했다. 기둥이 온전하지 않으니 문양은 곧 균형을 잃고 아래로 곤두박질할 것이고,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걸 공평하게 깔아뭉갤 터였다. 그 전에 파괴 범위에서 무조건 탈출해야 했다. “효성진 이 미친 양반이 자폭 장치를 숨겨놨어!” 도를 숭상하는 인간이 결계를 억지로 깨고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면 진법이 붕괴되어 침입자를 공격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보통의 붕괴가 아니다. 일종의 폭파공법을 사용해서 엄청난 무게를 가진 철판을 사람들 머리위로 수직낙하 시킨다고 상상해보자. 댁이 무슨 알 카에다냐고! 하여간 이 세계 사람들이 가진 선악의 가치관은 현대의 기억을 가진 내 입장에선 따라가기가 벅찼다. 재판과정 없이 은원을 갚는 일이 일상이라 그런지 사람 헤치는 일에 손속이 매웠다.
“으으...” “아파도 지금은 일단 참아!” 등 뒤 업힌 어린애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영험한 아티팩트가 지켜줬다고 해도 몇 년에 걸쳐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와 정면충돌을 했으니 찰과상만 입고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이런 경우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정석이긴 하다. 목이나 허리처럼 안 좋은 부위로 금이 간 경우 몸을 흔들면 신경이 어긋나 영구히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119가 출동할 것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납작 쥐치포 결말뿐인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정신없이 뛰었다. 그 와중에도 나중에 이 아이의 부모로부터 고발을 당하겠구나 싶었다. 제법 부자이고, 제법 잘 나가는 집안일 거 같은데 이거 어쩌냐.
“엄마.” 아이가 엄마를 찾았다. “아빠.” 아빠도 찾았다. “외숙부.” 부르는 순서가 많이 이상하다. 엄마랑 아빠 다음엔 형이나 누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야?
바로 그때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불길하고 기이한 소리가 천지를 찢었다. 큰 바람에 휩쓸려 튕겨져 나가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수직낙하 한 진법이 지표면과 충돌했다. 대략 반경 200간 정도의 땅이 트랙터로 뒤엎은 모양새로 일제히 주저앉았다.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대륙 크기의 손바닥으로 큰 거북 등짝을 후려갈긴 모양새였다. 오싹할 정도의 파괴력이어서 나무는 물론이고 새와 짐승들까지 전부 형태를 잃었다. “여기가 무슨 퉁구스카냐......” 뜨겁게 타오르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 참상은 대형 운석이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킨 퉁구스카 그 자체였다.
‘때마침 결계 가장자리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말 그대로 가루가 될 뻔했네. 효성진 이 인간... 선 넘었잖아! 만나기만 해봐.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따질 테야. 그리고 주먹으로 날려줄 테다.’
아이와 같이 곤선삭으로 묶여 있다는 걸 잊고 자리에서 엉금엉금 일어났다. 운이 좋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이 정도면 곧 아물 것이다. 팔과 다리도 잘 붙어 있었다. 아, 방금 만진 팔은 내 것이 아니었다만. 상관없겠지. 아이의 팔도 제자리에 든든하게 잘 붙어 있었다. 어쩐지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푸흐흣 이러고 실성한 듯 웃었다. 기쁜 것이 아니라 미칠 것 같은데 사람은 웃을 수가 있는 거였나, 그러고 보니 미친 곰에게 발목을 물어 뜯겼을 때도 이렇게 웃었던 것 같다.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웃어버리자 생각했던 게 얼핏 기억이 난다. 아니면 이런 게 인생 처세술인 건지도. 라면 다 끓여놓고 상 엎었을 적에도, 계약종료 통보서 받았을 적에도,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웃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누나가 말했다.
“아, 환장하겠네~” 배를 잡고 웃으며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충격으로 날아오른 흙먼지가 검은 방사능 비처럼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10 13:20
2021/11/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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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7,000루멘 밝기의 초강력 손전등 두 개를 켜고 사방을 비추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여기는 건전지 없는 세상이다. 사방은 쥐 죽은 적막 속에 감겨 있었다. 심상치 않은 침묵이었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 밤 사냥을 하는 새들도 오늘만큼은 공쳤다고 여기기로 했는지 꿈쩍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최대한 납작 엎드린 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으로 여겨지는 건 짐승의 눈이다. 곰, 그것도 덩치가 큰 그리즐리 베어가 어느 때보다 가까이 접근했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몸이라 소리 부분에선 내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반대로 곰은 밤눈이 밝은 편이었다. 간혹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릴 때도 있으나 내가 설치해둔 함정을 피해 다닐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까 뾰족하게 나무를 다듬어 숨긴 걸 알아본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력은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비교 불가능으로 저놈의 후각이 뛰어나다는 거다. 지금과 다르게 바람을 등지고 서면 그냥 망했다고 봐야 했다.
‘저 새끼, 어제 멧돼지 잡아먹었으면서. 아직 배가 안 고플 텐데 순전히 오기로 날 건드려볼 생각이군.’ 곰은 느리게 움직이며 콧김을 뿜었다. 저 여유로움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단서를 잡았다고 알리는 거다. 그러니 어서 도망치라고, 낙엽을 밟아 소리를 내라고 떡밥을 던지는 거다. 참으로 사악한 사냥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둘의 기 싸움은 제법 길어졌다. 녀석의 의도를 읽은 나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고, 곰은 캐나다 주택가 쓰레기통에서 먹다 버린 캔을 낚아 올린다는 식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녀석은 제일 먼저 내가 꿍쳐놓은 견과류에 관심을 보였고, 다음으로는 노루, 어쩌면 사슴, 아니면 고라니로 만든 가죽 깔개에 코를 들이댔다. 다리가 부러져 죽어가는 걸 숨통을 끊고 껍데기를 벗겨내어 만든 깔개는 내가 요긴히 쓰는 물건이었다. 그걸 녀석이 입안에 넣고 내 살가죽이라도 되는 양 질겅질겅 씹었다.
‘가라, 제발. 이렇게 빈다.’ 저놈의 미친 곰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진법 안까지 들어온 게 올해로 세 번째다.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의도도 있고, 나를 기어코 조져버리겠다는 의도도 있다. 아무래도 나란 존재로 인해 음기가 오랜 시간동안 한 곳에 집중되어버려 서식지 환경이 망가진 탓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번식도 녹록치 않아 저 암컷 곰은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낳은 새끼 전부를 잃었다. 그 부분은 나도 미안하게 여기고 있기는 한데... 어린 새끼가 음기에 중독되어 시름시름 앓다 죽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날 죽여 봤자 새끼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니. 제발 적당히 하자.
효성진 도장이 편지를 묶어 날려 보낸 새가 독이 묻은 걸로 추정되는 화살에 상처를 입고 떨어져 목이 부러진 게 벌써 5년 전.
구축된 진법의 효과는 여전히 효력을 유지하여 가끔씩 천지가 요동치며 흔들리곤 했다. 사람 - 죽었든 살았든 사람이면 결계는 무조건 반응했다. 사람이 접근하면 벼락이라도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진짜로 천둥번개가 쳤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공기가 격하게 요동쳤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건 덤이고. 일종의 마이크로파가 발생하여 재 정렬된 분자를 진동시키는 원리인 듯하다. 정확하진 않다. 나는 문과다.
결계를 건드린 게 방향감각을 상실한 주시일 때도 있었다. 이놈의 세계는 사방팔방 좀비 투성이라 원시림 같은 깊은 숲속까지 주시가 활개 쳤다. 때로는 대박을 기원하며 높은 산을 오르는 약초꾼일 때도 있었다. 애초에 아니다 싶으면 좀 돌아갈 것이지, 뭐 대단한 걸 찾겠다고 경고를 무시한 채 발을 억지로 들이밀어 1년에 한 두어 번 꼴로 사달을 냈다. 그래도 효성진 도장이 사람을 죽일 의도로 만든 결계는 아니라서 두 다리로 걸어 접근했다가 온몸으로 하얀 김을 풀풀 풍기며 엉금엉금 기어나가곤 했다. 큰 교훈을 얻었으면 다시는 접근 안 하면 좋으련만... 사람은 ‘출입금지’ 글자를 보면 청개구리처럼 반드시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우는 법이라 잊을 만하면 돌아와 진법을 건드렸다.
쿠웅- 큰 고목이 뿌리째 뽑혔다가 거꾸로 처박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땅에서 두 다리가 둥실 떠올랐다. 이번에도 약초꾼인가? 내 전용 깔개를 씹어대던 곰이 기색을 달리하고 결계가 흔들린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사람이 아니라 주시? 무릎을 꿇고 넘어질 뻔한 자세를 바로잡은 나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 반 시진 정도 남은 시각인데 공기의 흐름이 범상치 않았다. 쿠웅- 연속으로 결계가 흔들렸다. 나는 일단 안전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런 나를 쓱 한 번 쳐다본 곰이 ‘재웅신(災熊神)’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늠름한 자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빛은 잔인했고, 살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식인 습성을 가진 곰이었다. 언젠가 내 발목을 뜯어먹고 난 뒤부터 사람 고기 맛에 눈을 떴다.
“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결계를 건드린 건 주시도, 약초꾼이 아니었다. 약초꾼이 등에 화살 통을 메고 있을 리가 없다. 나무줄기를 껴안은 자세로 눈을 가늘게 접어 더 자세히 보고자 했다. 숲속이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한 무리의 인영이 저마다 횃불을 들고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가운데 드러누운 사내는 뜨거운 욕조에 들어갔다 막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 진법을 건드린 당사자인 것 같았다. 마이크로파에 얼마나 혼쭐이 났음 땅에 등을 대고 누워 죽는 소리를 내는 중이었고, 보다 못한 일행이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 하자 당장은 못 일어난다며 아우성을 쳤다. 그거 많이 아프지. 내가 여러 번 당해봐서 잘 알지.
“엄살은 그만 피워! 썩 일어나!” “아이고오오, 도련님. 이거 계편으로 얻어맞은 것만큼 아프다고요. 아이고오...” “계편으로 맞아본 적도 없잖아! 그리고 종알종알 떠들 힘이 있음 안 아픈 거야!”
씩씩거리며 큰소리를 내는 쪽은 나이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이제 고작 열두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하대하여 부리는 태도가 잘 잡혀 있는 모양새로 보아 제법 잘 사는 집 자제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옷도 반짝반짝하고 외모도 예쁘장했다. 단, 버르장머리가 없어 주둥이는 안 예뻤다.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노닥거릴 틈이 있음 진법을 풀 궁리부터 하라고! 너! 그리고 너! 어렵게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주저앉을 생각이야?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으니 여기에 영력을 주입해봐.” “저요?” “너 맞아. 왜 딴 곳을 쳐다보고 있어.” “하지만 도련님. 제 영력은 볼품이 없어서...” “수행자가 영력 작다는 게 자랑이냐?! 혼쭐을 내기 전에 하라는 대로 해! 아님 외숙부에게 전부 이를 거야!” “알았어요, 도련님. 할게요. 한다고요! 그러니 이르지만 말아주세요!”
하이고... 콩나물 대가리가 싹수 누렇네. 코를 파고 나온 내용물을 둥글게 뭉쳐 가볍게 튕기면서 쯧, 혀를 찼다. 아무래도 오냐오냐 귀하게 자란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 롯데월드 놀러가는 기분으로 집안 하인들과 수사 몇을 동원하여 진법을 깨러 온 눈치였다. 결계 안에 희귀한 보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 기대를 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흥미본위였을 수도 있다.
의욕 넘치는 도련님과 달리 대다수는 억지로 끌려왔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일부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내색이었다. 굽실거려도 그때 뿐, 표정들이 다들 좋지 않았다. 특정 바위에 영력을 주입하라고 명령을 받은 수사도 그래서 하는 짓이 대충이었다. “그거밖에 못 하겠어?!” “말씀드린 대로 제 영력이 그다지 볼품이 없어...” 전력을 다하지도 않고 수사는 몸을 뒤로 뺐다.
그래. 몸을 사리는 것이 현명하다. 진법 깨기가 지금 문제가 아니다. 식인 취미가 있는 곰이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영리한 녀석은 뒤로 돌아 은밀히 무리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때로 어떤 이들은 곰의 펑퍼짐하고 푸짐한 외형을 보고 바보스럽다느니, 멍청하다느니, 느리다느니 평가를 내리는데 곰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해보면 전부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최강의 사냥꾼은 매우 능숙하게 앞발을 뻗어 맨 뒷줄에 자리한 하인을 손쉽게 잡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히이이익~!!!” 희생자는 끌려가면서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지만 이내 뼈 부러지는 불쾌한 소리로 바뀌었다. 저 망할 암컷 곰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두터운 앞발로 사람 목을 툭 치면 척수에서 머리가 분리되어 버린다. 그 뒤에 두 손으로 잘 잡고 꿀통에서 꿀을 핥아먹듯 깨진 대가리에 혀를 넣어 뇌수를 쪽쪽 빨아먹었다.
“산 요괴다!” 응. 아냐. 저건 곰이야. “방어 태세를 갖춰!” 이미 늦었어. “끄아아악!!” 어쩌냐. 한 사람 더 끌려갔네. “모여 있지 말고 흩어져!” 허튼 소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어요.
오합지졸이라 단합이 쉽지 않았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더니 부리나케 도망가기 시작했다. 더러는 자기들끼리 몸을 부딪치고 자빠졌다. 우두머리 격 소년이 모두를 향해 도망치지 말라 외쳤으나 씨알도 안 먹히는 명령이었다. “제기랄, 당장 돌아와! 저건 요괴도 아니고, 기껏해야 산짐승이라고!” 기껏해야 산짐승이라고? 너, 그 발언 취소하는 것이 좋을 거다. 저건 몇 년에 걸쳐 음기를 잔뜩 취하고, 심지어 내 발목도 삼킨 놈이라 예사롭지가 않거든. “날 보조해!” 수사들이 저만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소년은 눈치도 없이 전통에서 꺼낸 화살을 활에 끼웠다. “명중이다!” 끝까지 봐야지. 가죽이 두꺼워 스친 상처만 냈어.
곰이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섰다. 압도적인 크기의 몸집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09 13:13
2021/11/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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