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19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7,000루멘 밝기의 초강력 손전등 두 개를 켜고 사방을 비추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여기는 건전지 없는 세상이다.
사방은 쥐 죽은 적막 속에 감겨 있었다. 심상치 않은 침묵이었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 밤 사냥을 하는 새들도 오늘만큼은 공쳤다고 여기기로 했는지 꿈쩍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최대한 납작 엎드린 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으로 여겨지는 건 짐승의 눈이다.
곰, 그것도 덩치가 큰 그리즐리 베어가 어느 때보다 가까이 접근했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몸이라 소리 부분에선 내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반대로 곰은 밤눈이 밝은 편이었다. 간혹 발을 헛디디고 비틀거릴 때도 있으나 내가 설치해둔 함정을 피해 다닐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까 뾰족하게 나무를 다듬어 숨긴 걸 알아본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력은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비교 불가능으로 저놈의 후각이 뛰어나다는 거다. 지금과 다르게 바람을 등지고 서면 그냥 망했다고 봐야 했다.

‘저 새끼, 어제 멧돼지 잡아먹었으면서. 아직 배가 안 고플 텐데 순전히 오기로 날 건드려볼 생각이군.’
곰은 느리게 움직이며 콧김을 뿜었다.
저 여유로움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단서를 잡았다고 알리는 거다.
그러니 어서 도망치라고, 낙엽을 밟아 소리를 내라고 떡밥을 던지는 거다. 참으로 사악한 사냥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둘의 기 싸움은 제법 길어졌다. 녀석의 의도를 읽은 나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고, 곰은 캐나다 주택가 쓰레기통에서 먹다 버린 캔을 낚아 올린다는 식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녀석은 제일 먼저 내가 꿍쳐놓은 견과류에 관심을 보였고, 다음으로는 노루, 어쩌면 사슴, 아니면 고라니로 만든 가죽 깔개에 코를 들이댔다.
다리가 부러져 죽어가는 걸 숨통을 끊고 껍데기를 벗겨내어 만든 깔개는 내가 요긴히 쓰는 물건이었다.
그걸 녀석이 입안에 넣고 내 살가죽이라도 되는 양 질겅질겅 씹었다.

‘가라, 제발. 이렇게 빈다.’
저놈의 미친 곰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진법 안까지 들어온 게 올해로 세 번째다.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의도도 있고, 나를 기어코 조져버리겠다는 의도도 있다.
아무래도 나란 존재로 인해 음기가 오랜 시간동안 한 곳에 집중되어버려 서식지 환경이 망가진 탓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번식도 녹록치 않아 저 암컷 곰은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낳은 새끼 전부를 잃었다.
그 부분은 나도 미안하게 여기고 있기는 한데... 어린 새끼가 음기에 중독되어 시름시름 앓다 죽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날 죽여 봤자 새끼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니. 제발 적당히 하자.

효성진 도장이 편지를 묶어 날려 보낸 새가 독이 묻은 걸로 추정되는 화살에 상처를 입고 떨어져 목이 부러진 게 벌써 5년 전.

구축된 진법의 효과는 여전히 효력을 유지하여 가끔씩 천지가 요동치며 흔들리곤 했다.
사람 - 죽었든 살았든 사람이면 결계는 무조건 반응했다. 사람이 접근하면 벼락이라도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진짜로 천둥번개가 쳤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공기가 격하게 요동쳤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건 덤이고.
일종의 마이크로파가 발생하여 재 정렬된 분자를 진동시키는 원리인 듯하다. 정확하진 않다. 나는 문과다.

결계를 건드린 게 방향감각을 상실한 주시일 때도 있었다. 이놈의 세계는 사방팔방 좀비 투성이라 원시림 같은 깊은 숲속까지 주시가 활개 쳤다.
때로는 대박을 기원하며 높은 산을 오르는 약초꾼일 때도 있었다.
애초에 아니다 싶으면 좀 돌아갈 것이지, 뭐 대단한 걸 찾겠다고 경고를 무시한 채 발을 억지로 들이밀어 1년에 한 두어 번 꼴로 사달을 냈다.
그래도 효성진 도장이 사람을 죽일 의도로 만든 결계는 아니라서 두 다리로 걸어 접근했다가 온몸으로 하얀 김을 풀풀 풍기며 엉금엉금 기어나가곤 했다.
큰 교훈을 얻었으면 다시는 접근 안 하면 좋으련만... 사람은 ‘출입금지’ 글자를 보면 청개구리처럼 반드시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우는 법이라 잊을 만하면 돌아와 진법을 건드렸다.

쿠웅-
큰 고목이 뿌리째 뽑혔다가 거꾸로 처박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땅에서 두 다리가 둥실 떠올랐다.
이번에도 약초꾼인가?
내 전용 깔개를 씹어대던 곰이 기색을 달리하고 결계가 흔들린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사람이 아니라 주시? 무릎을 꿇고 넘어질 뻔한 자세를 바로잡은 나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 반 시진 정도 남은 시각인데 공기의 흐름이 범상치 않았다.
쿠웅-
연속으로 결계가 흔들렸다. 나는 일단 안전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런 나를 쓱 한 번 쳐다본 곰이 ‘재웅신(災熊神)’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늠름한 자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빛은 잔인했고, 살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식인 습성을 가진 곰이었다. 언젠가 내 발목을 뜯어먹고 난 뒤부터 사람 고기 맛에 눈을 떴다.

“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결계를 건드린 건 주시도, 약초꾼이 아니었다. 약초꾼이 등에 화살 통을 메고 있을 리가 없다.
나무줄기를 껴안은 자세로 눈을 가늘게 접어 더 자세히 보고자 했다.
숲속이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한 무리의 인영이 저마다 횃불을 들고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가운데 드러누운 사내는 뜨거운 욕조에 들어갔다 막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 진법을 건드린 당사자인 것 같았다. 마이크로파에 얼마나 혼쭐이 났음 땅에 등을 대고 누워 죽는 소리를 내는 중이었고, 보다 못한 일행이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 하자 당장은 못 일어난다며 아우성을 쳤다.
그거 많이 아프지. 내가 여러 번 당해봐서 잘 알지.

“엄살은 그만 피워! 썩 일어나!”
“아이고오오, 도련님. 이거 계편으로 얻어맞은 것만큼 아프다고요. 아이고오...”
“계편으로 맞아본 적도 없잖아! 그리고 종알종알 떠들 힘이 있음 안 아픈 거야!”

씩씩거리며 큰소리를 내는 쪽은 나이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이제 고작 열두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하대하여 부리는 태도가 잘 잡혀 있는 모양새로 보아 제법 잘 사는 집 자제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옷도 반짝반짝하고 외모도 예쁘장했다.
단, 버르장머리가 없어 주둥이는 안 예뻤다.

“하여간 쓸모없는 것들! 노닥거릴 틈이 있음 진법을 풀 궁리부터 하라고! 너! 그리고 너! 어렵게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주저앉을 생각이야?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으니 여기에 영력을 주입해봐.”
“저요?”
“너 맞아. 왜 딴 곳을 쳐다보고 있어.”
“하지만 도련님. 제 영력은 볼품이 없어서...”
“수행자가 영력 작다는 게 자랑이냐?! 혼쭐을 내기 전에 하라는 대로 해! 아님 외숙부에게 전부 이를 거야!”
“알았어요, 도련님. 할게요. 한다고요! 그러니 이르지만 말아주세요!”

하이고... 콩나물 대가리가 싹수 누렇네.
코를 파고 나온 내용물을 둥글게 뭉쳐 가볍게 튕기면서 쯧, 혀를 찼다.
아무래도 오냐오냐 귀하게 자란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 롯데월드 놀러가는 기분으로 집안 하인들과 수사 몇을 동원하여 진법을 깨러 온 눈치였다. 결계 안에 희귀한 보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 기대를 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흥미본위였을 수도 있다.

의욕 넘치는 도련님과 달리 대다수는 억지로 끌려왔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일부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내색이었다. 굽실거려도 그때 뿐, 표정들이 다들 좋지 않았다.
특정 바위에 영력을 주입하라고 명령을 받은 수사도 그래서 하는 짓이 대충이었다.
“그거밖에 못 하겠어?!”
“말씀드린 대로 제 영력이 그다지 볼품이 없어...”
전력을 다하지도 않고 수사는 몸을 뒤로 뺐다.

그래. 몸을 사리는 것이 현명하다. 진법 깨기가 지금 문제가 아니다.
식인 취미가 있는 곰이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영리한 녀석은 뒤로 돌아 은밀히 무리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때로 어떤 이들은 곰의 펑퍼짐하고 푸짐한 외형을 보고 바보스럽다느니, 멍청하다느니, 느리다느니 평가를 내리는데 곰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해보면 전부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최강의 사냥꾼은 매우 능숙하게 앞발을 뻗어 맨 뒷줄에 자리한 하인을 손쉽게 잡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히이이익~!!!”
희생자는 끌려가면서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지만 이내 뼈 부러지는 불쾌한 소리로 바뀌었다.
저 망할 암컷 곰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두터운 앞발로 사람 목을 툭 치면 척수에서 머리가 분리되어 버린다. 그 뒤에 두 손으로 잘 잡고 꿀통에서 꿀을 핥아먹듯 깨진 대가리에 혀를 넣어 뇌수를 쪽쪽 빨아먹었다.

“산 요괴다!”
응. 아냐. 저건 곰이야.
“방어 태세를 갖춰!”
이미 늦었어.
“끄아아악!!”
어쩌냐. 한 사람 더 끌려갔네.
“모여 있지 말고 흩어져!”
허튼 소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어요.

오합지졸이라 단합이 쉽지 않았다. 저마다 비명을 지르더니 부리나케 도망가기 시작했다. 더러는 자기들끼리 몸을 부딪치고 자빠졌다.
우두머리 격 소년이 모두를 향해 도망치지 말라 외쳤으나 씨알도 안 먹히는 명령이었다.
“제기랄, 당장 돌아와! 저건 요괴도 아니고, 기껏해야 산짐승이라고!”
기껏해야 산짐승이라고? 너, 그 발언 취소하는 것이 좋을 거다. 저건 몇 년에 걸쳐 음기를 잔뜩 취하고, 심지어 내 발목도 삼킨 놈이라 예사롭지가 않거든.
“날 보조해!”
수사들이 저만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소년은 눈치도 없이 전통에서 꺼낸 화살을 활에 끼웠다.
“명중이다!”
끝까지 봐야지. 가죽이 두꺼워 스친 상처만 냈어.

곰이 두 다리로 벌떡 일어섰다. 압도적인 크기의 몸집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09 13:13 2021/11/0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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