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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급자족용 습작입니다. ※


린청과 송주 두 사람은 숙사감대부로부터 열쇠를 받으면서 귀신이 나온다던 보물창고의 위치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도중에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일 없이 큰 못이 있는 현선당 앞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샛길을 연상시키는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큰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이 심하게 진 탓에 오전 무렵이었음에도 어둡게 느껴졌다. 게으름을 피웠을 리 없는데 정원사들이 나무 가지치기를 전혀 하지 않아 인공으로 가꾼 것들이 아니라 숲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났다는 거친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도 주변으로 새가 없다.
개운치 않은 섬뜩함에 쥐고 있던 걸레를 좌우로 비틀었다.
본인은 아마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옆에서 송주도 가래가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탁한 기침을 했다.
『바람이 시원해서 좋군.』
린청은 그런 쪽으로는 둔한 눈치다.

편돌로 포장된 언덕길은 그 기울기가 완만하여 고되게 느껴지거나 땀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오호라, 올해의 공양물인가.』
상급생임이 분명한 자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더러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겁에 질려 눈알이 동그랗게 떠진 송주가「지금 무어라 하시었소?!」외치며 겁도 없이 상급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봤자 보라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우리를 완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최고급 완선 부채를 반쯤 펼쳐 느리게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 동작이 안부 인사를 올렸을 적에 내 아버지가 하던 행동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던지라 나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자는 뜻으로 송주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산책을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내는 무심한 듯 시선을 위로 올려 현선당 앞 연못의 수면을 주시했다.
송주는 미련이 남은 눈치이나 저 상급생 남자는 우리가 말을 걸거나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도 결코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들었어?! 너희들도 들었냐고. 분명 공양물이라고 말했어!』
『겁주려고 장난을 친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손바닥으로 왜 자기 머리를 일부러 반복하여 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래도 안 아픈가?
어쨌거나 흥분상태인 건 확실한 것 같아 나는 슬그머니 린청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년은 그런 나를 흘끔 쳐다보곤「이거 참...」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일종의 방패 취급을 당했음에도 그리 기분 나뿐 눈치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매미처럼 등가죽에 달라붙었어도 크게 신경 안 썼다.

『것보다 이런 곳에서도 귀신이 나오나? 다른 곳도 아니고 신룡이 사는 곳이라며.』
『모기도 나오는데, 뭐. 귀신이 대수겠어?』
『아... 그런가. 안즈 네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일주일 전엔 나, 바퀴벌레도 잡았다?』
『거 봐. 나온다니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송주는 자기 머리카락을 비참한 모습으로 쥐어뜯었다.
『그런 식으로 납득하지 말란 말이야, 너희들~!!』
어쨌든 결론은 이런 것이다. 나오는 곳에서는 나온다.
이사실 황궁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은 폐병을 앓아 죽은 악사 누박기로 이 자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일곱 줄 현금을 연주한다. 이때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며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좋은 연주 실력이다, 혹은 음색이 별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일단 답을 해주면 그럼 이 곡은 어떻소이까, 나대며 새벽이 다 되도록 연주를 쉬지 않는다. 현금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거니와 천장에 매달린 귀신이 언제 바닥으로 내려올지 몰라 겁이 나 잠 한숨 잘 수 없어 숙직하는 관료들이 제일 싫어했다.
이 누박기가 신룡을 무서워했던가. 겁을 상실하여 황제의 침실에도 떠억 나타나기까지 했는데?
오죽하면 열 받은 친구가 제발 좀 닥치라며 천장을 향해 엄청난 무게의 침구장을 통째로 집어던진 일도 있다.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의 대소동이었다. 녀석은 서대륙 황제라는 지위에 올라 있었음에도 인류가 이미 귀마개라 부르는 좋은 물건을 발명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누박기? 못 들어봤는데.』
그래? 그렇담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운 좋게 성불한 건지도.
『현금을 연주하는 귀신? 그것도 황제 폐하의 침실에도 나타나는?』
송주가 의심을 품고 뒤집어진 여덟팔자 눈썹을 하자 나는 또다시 애꿎은 걸레를 비틀어 쥐어짰다.
이건 재미삼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친구가 침구장을 집어던져 천장에 구멍을 냈을 적에 그 옆에 나도 같이 있었다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입 밖에 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걸 떠나 내 입장에선 이게 또 엄청 부끄러운 얘기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어?』
『어렸을 적에 유모에게서.』
눈 딱 감고 거짓말하자 송주의 힘껏 당겨진 눈썹이 스르륵 제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그건 가짜야. 우리 유모도 곧잘 무서운 이야기를 공상하여 멋대로 꾸며내곤 했지. 난 또 뭐라고... 정말인가 싶어 깜짝 놀랐네.』
소년은 빗자루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채 다시 언덕 꼭대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걷는 속도가 방금 전과 비교해서 절반밖에는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기분 탓일까.

『송주, 넌 귀신이 무서워?』
린청의 질문에 소년은 수상한 약 냄새가 풍기는 조청을 실수로 목구멍 안쪽으로 삼킨 사람처럼 굴었다. 삼키기는 싫고, 뱉을 수도 없고. 당연히 무섭다. 안 무서운게 비정상이다. 하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 그것도 콩나물보다 더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외국인 앞에서 귀신을 보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인정하기는 죽기만큼 싫은지라 송주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나이든 어른처럼 허허 웃었다.
『절대 그럴 리 없지.』
말은 자신 있게 했으면서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호랑이 냄새를 맡은 산토끼처럼 미세하게 몸을 떨어댔다.
『대낮이야.』
『안 무섭다니까!』
『정 그렇게 무서우면 부적이라고 가지고 올 것이지.』
린청의 타박에 송주는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가져왔어.』
『뭐?』
『챙겨서 나왔다고... 부적.』
그러면서 땅굴이라도 파서 부끄러운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는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서 은밀히 비린내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북어포를 가져왔구나?』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송주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나는 린청을 위해 간단히 설명했다.
『귀신이 나타났을 적에 오른손에 쥔 북어포를 내보이면 귀신이 사람 대신 그걸 가져간다는 속설이 있어. 이때 반드시 오른손으로 내밀어야 하고, 나중에 그 손은 소금물로 씻어야 하지.』
『말도 안 돼. 이사실 귀신들은 생선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거냐?』
『말린 북어의 비린 냄새가 피비린내를 연상시켜서 귀신을 혹하게 만든다고 하더군.』
『그것도 유모에게서 들은 얘기냐? 그거 진짜야?』
『나도 모르지. 일단 내 고향인 빈사국에는 바다가 없어. 그래서 북어포는 매우 귀하다고.』
린청은 고개를 길게 빼고 송주에게 다시 물었다.
『안즈의 말이 사실이야?』
송주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우리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납으로 만든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하던 방금 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어서 나는 배를 구부려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Posted by 미야

2015/06/13 14:25 2015/06/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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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로 돌아오자마자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자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나는 창피함도 잊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술에 취한 듯 금방 현기증이 일었어도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은 자유를 만끽했다.
머리를 씻기 위해 찬물을 뒤집어썼을 적엔 격한 욕지기가 터져 나왔지만... 굴하지 않고 두피를 문질러 닦았다. 더운물이 가득 찬 욕조 생각이 간절했어도 숙사감대부의 엄중한 명령으로 식사를 가져온 하수에게 개인적인 목욕물까지 부탁하는 건 사실상 무리였다. 가뜩이나 싫은 표정이었는데 거기다 눈치도 없게 목욕물 이야기를 꺼냈다간 실수를 가장하고 들고 있던 쟁반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을 거다. 이럴 적엔 눈치껏 구는게 좋다. 다행히 지금은 한 겨울도 아니고 해서 나는 미리 나무통에 우물물을 길어두었다.
『차가워!』
괜찮다. 사람은 찬물로 머리를 감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 장담은 못 하겠다.

몸이 둘로 쪼개지는 감각을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물을 한 바가지 더 부었다. 괜한 호기였다. 네 번째 물바가지를 붓자 신체가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제야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간수들이 죄수의 몸에 얼음장 같은 물을 끼얹는 건 순전히 고문을 하기 위해서라는 걸 떠올렸다.
『어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동안 나는 제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얻어맞은 피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화기와 방금 전의 냉기가 격렬하게 부딪쳐 일종의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듯했다. 우박 섞인 폭풍우가 살가죽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며 뼈와 근육의 틈새를 망가뜨리며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녔다. 억지로 허리를 펴고 일어나 속의를 걸치려고 하자 살이 조각나는 통증이 등가죽을 타고 발뒤축까지 흘러내렸다. 끈 매듭을 묶으려는 손은 계속 떨렸다.

그 상태에서 침상에 가 눕는 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어떻게 무릎 하나를 올리긴 했지만 몸을 완전히 침상으로 이동시키고 바닥으로부터 발을 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곧 종아리가 당기며 쥐가 나려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두 다리를 뻗고 눕자 이번에는 꼬리뼈가 찌르르 아파왔다.

『거울을 보고 싶구나.』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팔을 위로 뻗어보았다. 바짝 야윈 아이의 손은 어쩐지 낯설어 내 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주먹을 폈다 접었다하며 작은 손톱의 모양새와 손바닥의 주름을 잘 기억해뒀다. 그래도 피곤함에 눈을 감자 어린아이의 손은 어느새 핏줄이 돋아난 성인 남자의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먹물이 묻었고, 필기구를 하도 오래 쥐어 엄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배었다. 관절은 툭툭 튀어나왔고 손끝은 뭉툭했다... 아니다, 이것은 안즈의 손이 아니다. 힘겹게 다시 눈을 뜨자 세로줄 모양의 상처가 생긴 고사리 손이 보였다.
『맙소사. 이러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먹겠어.』
쓰게 웃으며 뺨을 만져봤다. 열이 올라오는지 피부가 뜨거웠는데 신기하게도 목 아래쪽은 서늘하고 차가워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다시 더듬어 올라와 이마를 만지자 이쪽은 이미 열탕지옥, 자고 일어나면 연못에서 주워온 나무토막 신세가 될 거라는 숙사감대부의 말은 반드시 실현될 예언이었나 보다.

저녁식사로 나온 닭죽과 호박나물, 우엉조림과 바지락 튀심도 식욕을 잃어 반 이상을 남긴 상태.
그대로 까무룩 기절하려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숙희가 말똥을 양손에 들고 나타나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휩쓸리지 말라고 내 경고했소.」
어째서인지 나는 커다란 용으로 변해 빛도 없는 흑암의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곳은 풍압이 엄청나 날개를 똑바로 펼 수도 없었다.
기를 쓰고 막을 펼치자 비늘이 떨어지고 피부가 찢겨져 뼈가 밖으로 드러나려 했다.
「내 충고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도 않더니만.」
고통에 몸부림치자 곱게 갈린 날개가 찌익 소리를 내며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우와~, 엄청난 얼굴.』
사흘 뒤 창고 문을 두드린 린청은 나를 보자마자 소매를 들어 눈가를 가렸다.
햇빛을 가리려는게 아니라 몹쓸 전염병에 걸려죽은 사람을 보았을 적에나 하는 행동이라서 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세워두고 부정한 시체 취급을 하다니,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 문지방에 팔을 기대고 서서 죽일 기세로 쏘아보자 소년은 가만히 소매를 도로 내렸다.
『몸살이 대단했던 모양이군, 안즈. 뺨이 푹 꺼졌는데?』
『신경 꺼주세요.』
『멍은 보라색이고. 아니다, 검정색에 더 가까우려나. 한 번 만져 봐도 돼?』
『거절하겠습니다. 것보다 송주, 넌 거기서 뭐 하냐?』
놀랍게도 린청의 등 뒤로 떨떠름한 낯빛을 한 송주가 보였다. 우리와 일행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소년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서서 회색의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봤자 싫든 좋든 이미 굴비 두름이었다. 콧망울을 긁는다고 한 벌이 된 걸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은 우리 세 사람이 나란히 벌을 받기로 한 날이다.

『어디 열쇠야?』
두 사람은 수업에도 참석을 못 하고 대신 숙희로부터 열쇠 하나를 받아왔다. 먼지를 치우고 걸레질을 하기로 되어있는 장소의 열쇠다.
겉옷을 주워 입으며 곁눈질로 보니 척 보기에도 크기가 매우 크고 낡아빠진 열쇠다. 그리고 제법 묵직했다. 일반적으로 열쇠의 쇠막대기에서 튀어나온 부분은 요라고 하고 깎여서 들어간 부분을 음이라고 한다. 이건 요가 셋이고 음이 다섯이나 된다. 그리고 요의 생김새가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와 ㄱ자형이다. 이 정도면 복제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서 혹시라도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강바닥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가뭄을 정성으로 기원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특이한 건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버릇인지 콧망울을 만지며 송주가 말했다.
『그야 넌 열쇠 종류를 잘 모르잖아.』
『그러는 넌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하는 거냐, 변방인!』
『네놈과 마찬가지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 대문 열쇠와 비슷하게 생겼어. 그런데 숙희 님은 이게 어디 열쇠라고 하였지?』
『어. 그게... 내게 말하길, 귀신 나오는 보물창고의 열쇠라고 농담하던데.』

우리 셋은 나란히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앞서 당해본지라 숙희가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닌지 일단 확신이 없다.
제일 먼저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신경 쓰인다. 진짜일까. 뭐, 한 걸음 양보하여 그깟 귀신, 복숭아 가지를 흔들어 내쫓는다고 치자. 그런데 진짜로 보물창고라면...
『걸레질하다 실수로 골동품 화병을 깨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침 삼키는 꿀꺽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송주가 느끼는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는 괴담도 있다. 어린애 울음을 그치게 하는 종류의 옛날 얘기인데 줄거리는 이러하다. 보물창고를 청소하던 몸종이 털이개를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다 그만 선반 꼭대기에 올라간 화려하게 조각된 상자를 잘못 건드렸다. 바닥을 구른 상자는 걸쇠가 풀려 뚜껑이 열리고 말았는데 동그랗고 작은 것이 그 속에서 떨어져 나왔다. 몸종은 그게 귀한 바다진주일 거라 생각하고 얼른 집어 올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색도 흐리고 광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무리 봐도 진주가 아니었다.
그걸 이리저리 굴리며 그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노라니 뒤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 눈알이야. 그만하고 돌려줘.」
우리 세 명은 다시 팔짱을 낀 자세로 침묵했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몸종의 두 눈이 모두 뽑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 괴담이 주는 교훈은 뭐냐, 안즈.』
『먼지털이개를 사용할 적엔 신중하게.』
『그게 아니라 땅에 떨어진 건 함부로 줍지 말라는 거 아니야?』
나와 린청이 한가롭게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고 있자 송주가 모두를 대표하여 자기 바지주머니 속에 열쇠를 넣었다.
『속 터져 죽겠네. 지금 한가롭게 잡담이나 떠들고 있을 때냐?! 이 무식한 변방인들아!』
물론 그건 아니다. 하여 나는 얼른 빗자루와 걸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11 19:41 2015/06/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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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6/12 01:00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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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전해오는 말에 붓은 칼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도끼를 든 사형집행인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던 나도 붓을 휘두르는 자 앞에선 오금이 저려왔다. 분명 붓이 더 무섭다. 이게 왜 무섭냐 하면...
『이 싸가지 없는 것들이!』
기억해두자. 숙희는 흥분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욕설을 한다.
『자, 여기에 서명하라고, 서명해! 우리가 반드시 책임지갔슴다, 이러고 서명하라고! 내가 과로로 쓰러지면 내 마누라와 아이들 부양은 온전히 너희들의 몫이다. 싫다고 하기만 해봐, 불알을 까버린다.』
『차라리 일주일치 반성문을 쓰라고 하세요!』
『송주 님? 제가 방금 전 뭐라고 경고를 드렸지요?』
『부, 불알을 까버린다고...』
『야, 이 자식아! 내가 깐다고 하면 진짜로 까는 거야! 못 할 것 같어?!』
그러면서 붓과 종이를 코앞에서 펄럭거리고 있으니 소름이 돋다 못해 온몸에 난 땀구멍이 전부 막힐 지경이었다. 마른침을 꼴딱꼴딱 삼켜가며 지긋이 올려다보니 검은 안개처럼 생긴 것이 남자의 몸을 위아래로 두껍게 휘감고 있었다. 가끔씩 푸른빛의 번개도 번쩍였는데 아무리 봐도 그간 먹은 것이 부실한 탓에 허깨비가 보이는 것 같진 않았다. 두건 속의 감추어진 그의 머리카락도 아마 벼락을 맞은 감나무처럼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하자 체온이 내려갔다.

이런 흉악한 것에 대항하여 이길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린청의 옆구리를 툭툭 치고 숙희가 내민 종이에 지리가 안즈라고 조그맣게 이름을 적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린청 또한 나를 따라서 자기 이름을 그 옆으로 나란히 적었다.
이 와중에도 송주는 꾀를 낸답시고 몰래 점을 하나 더 찍어 제 이름이 아니라「송쥬」라고 썼는데 지금까지 글자 밭에서만 놀고 살았던 숙사감대부가 그 사소한 걸 놓칠 리 없었다.
『눈 가리고 야옹거리면 내가 모를 줄 알아?!』
벽돌 두께의 사전을 번쩍 들더니 도끼살인마 저리가라 식으로 그걸로 불알을 찍어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암튼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바닥을 벌벌 기던 송주는 먼저 적은 이름에 가위표를 그린 뒤에 적당한 여백에 다시 글자를 적었다. 붓이 와들와들 흔들린 탓에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이번만큼은 숙희의 얼굴로 그럭저럭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도 남의 영혼을 절인 고등어 한 마리 가격에 강탈한 악마의 미소 그 자체였다.

『맙소사. 이제 내 나이 열 한 살인데... 여차하면 부양을 해야 할 사람이 생겼어.』
『그러니까 날 과로사의 위기로 몰아넣지 말란 말입니다, 린청 님. 처지가 비슷한 변방인이라고 자꾸 안즈 님 편을 들어주시는 눈치인데... 내 편도 들어달라고요. 보십시오, 제 눈자위가 시커멓게 색이 죽은 것을.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소동을 겪은 건 결코 흔치 않았소. 제발 부탁이니 다른 분들처럼 얌전히 지내시란 말입니다. 골칫덩이 짓은 하지 말라고요.』
순간 항의가 빗발쳤다. 사람이 코앞에서 목이 졸리고 있는데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건 비정상 - 말똥이 머리에 비벼졌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 왜 얌전히 있는 놈에게 마굿간 청소를 시켜서 일을 이 지경으로 - 엄한 손가락은 왜 부러뜨리고 지랄 - 귀가 따가워진 숙희는 재빨리 가느다란 실을 가로로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동작을 해보이며 모두 입 다물고 정숙할 것을 요구했다.
『여러분. 내가 쓰러지면... 부양비가 청구됩니다. 거짓말 같죠? 시험 해봐요.』
협박도 이런 협박이 없다. 우리 세 명은 끽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특히 수중에 돈 한 푼 없어 빈털털이인 내 입장은 더욱 난감했다.
『또 소동을 피우면 이 숙희, 자리를 보존한 채 드러눕겠습니다. 제 말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우리들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제 가족들에 대한 부양비 청구는 그렇다 치고.』
뒤로 붙을 내용이 또 있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니 숙희가 다시금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들은 사흘 간 각자의 방에서 자숙하십시오.』
나는 대놓고 발끈했다.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요? 내일은 중부고가 일주일에 딱 한 번 열리는 날인데요.』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차피 그런 몸으로 독서는 불가능하오, 안즈 님. 부어서 눈도 잘 뜨지 못하면서 얼어 죽을. 그리고 내 장담하는데 오늘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이게 과연 내 몸뚱인지 아니면 연못에서 주워온 나무토막인지 구분도 안 갈걸. 돌아눕고자 했는데 호흡이 곤란, 사람 살려 외치지만 마시구려. 그러니 사흘간 침상에 누워 잘 쉬고 - 이후로 몸이 괜찮아지면 벌칙으로 노동을 좀. 요~만큼만.』
『노동?! 설마, 마굿간을 또 청소하라는?!』
『말똥은 이제 질렸소. 대신 다른 곳에 보내어 걸레질을 시킬 거요. 세 사람 전부!』

세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걸레질을 시키겠다는 엄포에 송주가 격렬하게 반항했다.
『나는 엄연히 피해자인데 왜 나까지 걸레질을?!』
그래봤자 씨알도 안 먹혔다.
『헐... 대륙어 공동 사전보다 더 커다란 걸로 확 까버려?』
소중한 곳이 맛보았던 지옥의 고통을 기억한 소년은 다소곳이 몸을 웅크렸다.
『알겠소? 지금부터 자숙이오. 이제부터 한 마디라도 더 뻐끔하면 쓴 맛을 보여주지. 각자 방으로 돌아가시오.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오는 것도 금지하겠소.』
린청이 서둘러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대륙어 공동 사전의 크기를 가늠하자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뭔가를 눈빛으로 열심히 호소했다. 그러나 나는 점쟁이가 아니라서 린청이 하고 싶어 한 말이 무엇인지 알 재주가 없었다.
「네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
입모양으로 뻐끔거리자 숙희가 보란 듯이 사전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우리들은 나란히 발잔등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쨌든 우리의 이름이 적힌「영혼 매매 증서」는 돌돌 말려 소매춤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숙희는 예의 피곤에 찌들고, 업무에 차이고, 수면시간이 부족한 관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젠장, 글피까지 재고 파악도 해야 하는데.』
그가 늘 파김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개인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 한계치보다 늘 많아서임을 오늘에 이르러 확신했다. 지금 보니 탁상 위에 놓은 종이뭉치가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예부나 호부, 내이정부의 고급관리 - 예를 들어 예부의상서도 저 정도의 살인적인 서류작업은 하지 않을 터인데... 그들은 일개 숙사감대부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안즈 님.』
간단히 목례하고 돌아 나오는데 숙희가 조용히 나만 불러 세웠다.
『예.』
『그분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예?』
『안즈 님은 똑똑하신 분이니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실 겁니다.』
이쪽에서 영문을 몰라 머뭇거리자 재차 못을 박았다.
『그분에게 휘둘리면 명이 획기적으로 짧아집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실이에요.』
숙사감대부가 말한「그분」이라는 건 분명 자손을 가리키는 것일 터, 나는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작금의 말똥 소동은 그가 부추겨서 커졌다기보다 나 혼자 제멋대로 난리를 친 면이 없잖아 있고, 잘잘못을 따지면 죽을 죄인은 나 하나다. 숙희는 내가 그에게 심리적인 조종을 받아 그리하였다 여기는 듯했는데 사실 자손의 잘못은「제일 좋은 위치에서」호기롭게 싸움 구경을 하려 했다는 것 정도라서 숙희의 지적은 엉뚱한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휘둘린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마구 부림을 당하거나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사감대부의 눈빛은 근심 걱정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상대가 황족이라고 호기심을 가지면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이사실의 황족과 변방인이라는 신분의 차이 이전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저는 분명 경고 드렸습니다... 그래봤자 귀담아 듣지도 않겠지만. 뭐, 이것도 다 팔자소관이려나.』
그러고서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데 어딘가 나사가 풀렸던지 끼익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Posted by 미야

2015/06/10 11:41 2015/06/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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