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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07

이후 드라마를 보면 푸스코가 아들 사진을 핸드폰 바탕 화면으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내용이 틀려졌네욤.


카터는 지갑에 아들 테일러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이리라.
최근에 찍은 사진은 아니어서 아들은 지금보다 몇 년은 어려 보였다. 애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부모님과 같이 사진을 찍는 걸 매우 싫어하는 법이다. 모자의 사이는 매우 좋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청소년 아들은 정해진 순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엄마보다는 친구였고, 따라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헤벌죽 웃는 사진은 학교 친구들끼리만 나눠 가졌다. 엄마에게 떨어지는 국물은 없었다. 아이의 관점에선 그런 건 촌스러웠다.

의외로 라이오넬의 지갑에는 가족사진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혼을 했으니 전처가 사랑스럽지는 않을 것이고.
아직 어린 아들의 사진은 경찰서 책상 위로만 올라가 있다.
리스는 새삼 푸스코의 조심스러움에 감탄했다. 심지어 푸스코는 핸드폰에 아들 사진을 저장해놓지도 않았다.
「스틸스가 말아먹은 사업에 억하심정을 품은 마피아가 아직도 날 노리거든.」
콜롬비아 마피아는 공포감의 극대화 효과를 노리고저 피해자의 가족들을 참살하는 경향이 있다. 아내를 강간하고, 딸의 배를 가르고, 아들의 생식기를 베어내어 경고를 한다.
「경관의 아들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간 큰 짓은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어.」
그의 판단은 그럭저럭 적절해 보였다.

리스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어 좌우로 활짝 펼쳐보았다.
안에는 존 랜달이라는 이름으로 된 가짜 신분증과 신용카드, 그리고 현금이 약간 들어가 있었다. 마음먹고 누군가 훔쳐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는 칠칠맞게 지갑을 흘리는 타입은 아니긴 하다.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게 있다. 천재적인 손재주를 가진 도둑이 전직 CIA요원의 안주머니를 뒤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리스는 실수로라도 떡 부스러기를 흘리는 일 없도록 늘 주의하고 다녔다. 그래서 쓰레기통에 가짜 신분증을 집어던지고 불을 질렀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신분증은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금방 훼손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불에 탄 증거물을 복구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불에 탄 증거물은 그저 처치 곤란의 쓰레기일 뿐이다.

마루 바닥에 숨긴 비밀 금고를 열어 새 신분증을 꺼냈다.
존 개빈. 누군지도 모를 낯선 사람.
『안녕, 존. 잘 부탁함세.』
금고를 도로 닫으려던 찰나 밑바닥에 깔린 낡은 흑백사진으로 관심이 쏠렸다.
충동적으로 사진을 꺼내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두꺼운 잠자리 안경을 쓴 20대의 핀치와 그의 친구 네이슨 잉그램이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찍은 것 같지는 않다. 배경으로 나뭇잎이 무성하다. 잉그램은 챙이 앞으로 튀어나온 모자를 썼는데 캐쥬얼한 옷차림도 그렇고 둘이서 캠핑이라도 나온 분위기를 풍겼다.
「사적인 사진을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몇 번이나 찢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찢지 못했다.
이제는 아예 달관했다.
이다지도 오래되고 낡은 사진 - 한 장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좀 봐 달라.
그게 부모의 사진이나 죽은 연인의 사진이 아니라는게 좀 우습게 되긴 했다만,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사람의 인생이다.

손가락으로 학생 핀치의 얼굴선을 따라 어루만졌다.
뭐가 그리도 기뻤을까. 젊은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 해롤드.』
사진을 따라 존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Posted by 미야

2012/10/23 10:20 2012/10/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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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06

약 5분 전, 남자는 동석할 사람을 찾는다며 가게 내부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약속 상대를 못 찾았던지 키 큰 사내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서로 엇갈리는 경우는 제법 흔했기 때문에 웨이츄리스는 그 남자에 대해 곧 잊어버렸다. 꼬투리를 잡을 것처럼 흘깃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하나 굵은 소금을 뿌리는 바보짓을 할 여유 따윈 없다. 서빙을 맡은 직원 중 한 명이 아이가 아프다며 빠져나간 탓에 재앙의 핵탄두라도 떨어진 기분이었다. 눈썹을 휘날리며 일했음에도 잠시도 쉴 짬이 안 나고 있다.
『커피 리필해주세요.』
『네! 곧 갑니다.』
그나마 이제 곧 늦은 아침 식사를 주문하던 사람들도 이제 슬슬 포만감으로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주방 쪽도 한숨 돌리는 눈치다. 턱을 목 아래로 바짝 붙인 자세로 커피 주전자를 들고 홀을 한 바퀴 돌았다. 10분 뒤에는 담배를 피우러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예의 그 남자가 손짓하여 부르는 걸 알아차렸다.
언제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안경을 쓴 나이 지긋한 사내와 같이 있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식사보다는 커피가 급한 눈치였다.
시선이 그녀가 들고 있는 커피 주전자에 못 박혀 있었다. 전형적인 카페인 중독자다.
『그쪽은요. 커피 드려요?』
안경을 쓴 사내는 커피를 사양하곤 편안한 얼굴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사실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다. 마치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투명인간이라도 된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 큰 사내는 상대방의 무시하는 태도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이상한 커플이다.

두 사람은 간단한 이야기도 나눴다. 이를테면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날씨가 좋다 - 등등. 그래봤자 잡담은 짧아서 키 큰 남자는 창밖을 응시하며 냅킨을 손가락으로 접거나 꼬았다.
『그릴 샌드위치와 토마토 계란 볶음 나왔습니다.』
『핀치. 식사가 나왔어요.』
『아아, 한참 재밌는 대목이라서...』
『그렇게 먹으면 콧구멍으로 밥이 들어가요.』
하는 수 없지, 이러고 안경 쪽이 읽던 책을 덮었다.
『것보다 리스 씨도 커피 말고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전 커피면 충분합니다.』
『음... 충분해 보이지 않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혹시 말입니다, 리스.「현장에선 먹는 건 안 된다, 왜냐하면 언제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라서 그런 건가요.』
키 큰 남자가 이렇다 저렇다 설명 없이 빙긋 웃었다.

『아참. 도서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베어가 먹을 사료를 사야 해요.』
『사료 말고 장난감도 알아봐요, 리스.』
『장난감?』
『씹는 뼈다귀 같은 거요. 녀석이 신발을 가지고 놀아서 골치가 아파요. 그나저나 이 스크램블, 정말 잘 만들었는데요.』
남자는 맛있다, 맛있다, 이러면서 부지런히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동석한 커피 중독자는 그저 흐믓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2/10/22 11:04 2012/10/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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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05

시리즈물 쓸 생각 없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관찰력이 뛰어난 핀치는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나타난 리스를 보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뭘 하다 다친 거지. 나 모르는 곳에서 몸싸움이라도 했나.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낼 수 없다며 우물거리는 고용주 앞에서 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폭력이 낯설어도 그렇지. 주먹다짐을 했다면 이렇게 엄지손가락 하나만 다칠 리가 없잖는가.

『그러니까... 그게. 음. 엄지손가락을 잘 갈무리해뒀다가 상대방의 눈을 푹 찔러서...』
핀치는 안경다리를 놓았다 들었다 했다. 리스가 사람 안구를 터뜨리는 걸 상상하고 불안해진 모양이다.
『그건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할 테크닉이고요, 저는 그 방법 잘 안 씁니다. 이마로 받아치는게 더 확실하거든요. 둥글게 생긴 이마는 대단히 단단해서 이쪽에서 작정하고 세게 박으면 벽돌로 내려치는 효과를 냅니다.』
『그럼 손가락으로 눈 안 찔렀어요?』
『안 찔렀습니다.』
설령 사람의 눈알을 후벼팠다고 해도 손가락에 붕대를 왜 감누, 망가지는 건 다른 놈 눈깔이지 내 손가락이 아님 - 보스의 가련한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뒷말은 생략했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피식거렸다.
『보통은 벽에 못을 박겠다며 망치를 휘두르다 엄한 엄지손톱을 날렸구나 그렇게 추측하지 않던가요, 핀치.』
『리스 씨가 그림이니 사진이니 이런 거 안 좋아한다는 거 압니다. 당신은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질을 할 사람이 아니죠. 망치 어쩌고 가설은 처음부터 고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은 왜 다친 겁니까?』
웃음기가 싹 가셨다.
사과를 깎다가 실수로요 - 라고는 죽어도 말 못 하지.
그래서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는 머그컵을 손가락질하며「오늘은 분말차가 아니고 잎사귀를 우려낸 건가요?」질문했다.
문제는 핀치가 거기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다.
『말 돌리지 마세요, 미스터 리스.』

내켜하지 않는 표정의 리스로부터 결국 자초지종을 들은 핀치는 음,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턱받침을 했다. 사과에게 당한 거였어? 전직 CIA 요원이? 갖은 훈련을 다 받은 사람이 정작 사과는 못 깎아... 뭔가 웃기다. 그런데 웃으면 안 될 것 같다. 리스의 표정이 사납다. 실수로 실실 웃음을 쪼개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 허나 무진장 애를 써봐도 자꾸만 입술이 말려 올라가려 했다. 안 된다. 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핀치는 다시 헛기침했다. 그냥 우울한 잿빛 하늘을 떠올려. 냄새나는 개구리를 상상하라고.
『뭐, 그럴 수도 있죠. 넘어갑시다.』
『방금 킥, 하고 웃었어요. 핀치.』
『제가요? 언제요. 전 안 웃었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요. 그러니 인정하라고요.』
『진짭니다. 안 웃었... 크큿.』
『핀치.』
퉁명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리스 앞에서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풋! 아니,, 실례. 어쨌든 사과는 가능하면 껍질 채 먹는게 좋아요. 껍질 바로 아래 과육에 비타민이 아주 풍부하지요.』
리스는 그렇다 아니다 대꾸하지 않고 금이 간 유리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인정할 리 없겠으나.
사내는 삐졌다.

그날 늦은 오후, 핀치는 생각났다는 투로 과일가게에 들려 소량의 사과를 구입했다.
과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몸에 좋은 것들이다.
향긋한 냄새에 반응, 베어가 나도 한 입만, 나도 한 입만 이러며 궁둥이를 흔들어댔다.
『개에게 사과를 줘도 되려나.』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개에게 사과를 줘도 괜찮습니까 질문하는 건 좀 우습다. 그래서 타협했다. 아주 조금만 주자. 소량이면 괜찮을 거다.
칼을 꺼내와 사과를 4등분 했다.
『그래도 씨가 있는 부분은 소화가 안 되겠지?』
4분의1 조각을 손에 들고 단단한 부분을 도려냈다.
서걱.
어? 하는 사이에 엄지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12/10/19 11:25 2012/10/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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