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05

시리즈물 쓸 생각 없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관찰력이 뛰어난 핀치는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나타난 리스를 보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뭘 하다 다친 거지. 나 모르는 곳에서 몸싸움이라도 했나.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낼 수 없다며 우물거리는 고용주 앞에서 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폭력이 낯설어도 그렇지. 주먹다짐을 했다면 이렇게 엄지손가락 하나만 다칠 리가 없잖는가.

『그러니까... 그게. 음. 엄지손가락을 잘 갈무리해뒀다가 상대방의 눈을 푹 찔러서...』
핀치는 안경다리를 놓았다 들었다 했다. 리스가 사람 안구를 터뜨리는 걸 상상하고 불안해진 모양이다.
『그건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할 테크닉이고요, 저는 그 방법 잘 안 씁니다. 이마로 받아치는게 더 확실하거든요. 둥글게 생긴 이마는 대단히 단단해서 이쪽에서 작정하고 세게 박으면 벽돌로 내려치는 효과를 냅니다.』
『그럼 손가락으로 눈 안 찔렀어요?』
『안 찔렀습니다.』
설령 사람의 눈알을 후벼팠다고 해도 손가락에 붕대를 왜 감누, 망가지는 건 다른 놈 눈깔이지 내 손가락이 아님 - 보스의 가련한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뒷말은 생략했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피식거렸다.
『보통은 벽에 못을 박겠다며 망치를 휘두르다 엄한 엄지손톱을 날렸구나 그렇게 추측하지 않던가요, 핀치.』
『리스 씨가 그림이니 사진이니 이런 거 안 좋아한다는 거 압니다. 당신은 그림을 걸기 위해 벽에 못질을 할 사람이 아니죠. 망치 어쩌고 가설은 처음부터 고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은 왜 다친 겁니까?』
웃음기가 싹 가셨다.
사과를 깎다가 실수로요 - 라고는 죽어도 말 못 하지.
그래서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는 머그컵을 손가락질하며「오늘은 분말차가 아니고 잎사귀를 우려낸 건가요?」질문했다.
문제는 핀치가 거기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다.
『말 돌리지 마세요, 미스터 리스.』

내켜하지 않는 표정의 리스로부터 결국 자초지종을 들은 핀치는 음,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턱받침을 했다. 사과에게 당한 거였어? 전직 CIA 요원이? 갖은 훈련을 다 받은 사람이 정작 사과는 못 깎아... 뭔가 웃기다. 그런데 웃으면 안 될 것 같다. 리스의 표정이 사납다. 실수로 실실 웃음을 쪼개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 허나 무진장 애를 써봐도 자꾸만 입술이 말려 올라가려 했다. 안 된다. 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핀치는 다시 헛기침했다. 그냥 우울한 잿빛 하늘을 떠올려. 냄새나는 개구리를 상상하라고.
『뭐, 그럴 수도 있죠. 넘어갑시다.』
『방금 킥, 하고 웃었어요. 핀치.』
『제가요? 언제요. 전 안 웃었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요. 그러니 인정하라고요.』
『진짭니다. 안 웃었... 크큿.』
『핀치.』
퉁명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리스 앞에서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풋! 아니,, 실례. 어쨌든 사과는 가능하면 껍질 채 먹는게 좋아요. 껍질 바로 아래 과육에 비타민이 아주 풍부하지요.』
리스는 그렇다 아니다 대꾸하지 않고 금이 간 유리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인정할 리 없겠으나.
사내는 삐졌다.

그날 늦은 오후, 핀치는 생각났다는 투로 과일가게에 들려 소량의 사과를 구입했다.
과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몸에 좋은 것들이다.
향긋한 냄새에 반응, 베어가 나도 한 입만, 나도 한 입만 이러며 궁둥이를 흔들어댔다.
『개에게 사과를 줘도 되려나.』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개에게 사과를 줘도 괜찮습니까 질문하는 건 좀 우습다. 그래서 타협했다. 아주 조금만 주자. 소량이면 괜찮을 거다.
칼을 꺼내와 사과를 4등분 했다.
『그래도 씨가 있는 부분은 소화가 안 되겠지?』
4분의1 조각을 손에 들고 단단한 부분을 도려냈다.
서걱.
어? 하는 사이에 엄지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12/10/19 11:25 2012/10/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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