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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18 노아드롭 1-02 by 미야
  2. 2012/08/17 노아드롭 1-01 by 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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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드롭 1-02

정신병 걸린 갓파가 우물통 아래서 정좌하고 써내려가는 괴이한 이야기


마을로 나가려고 하면 늘 신경이 곤두선다. 여자들이 사용하는 긴 망토 모양의 겉옷을 챙긴 핀치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도 감았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면 이 방법이 최고다.
마치 투명한 코끼리와 부닥칠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 사람들은 그가 병적인 긴장증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다소 외진 곳에 세워진 그의 집으로부터 마을 광장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기준을 느린 걸음으로 잡은 건 그의 왼쪽 다리가 불편해서다. 건강한 성인 남자는 15분이면 돌파가 가능하다. 종종 걸음이라면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요점은 15분이든 30분이든 그동안 하늘에서 큰 불덩이가 떨어질 리 없다는 거다. 땅으로 구멍이 뚫리지도 않으며, 세찬 돌풍이 불어 숲의 나무를 부러뜨리는 일도 없다. 공룡은 진작에 멸종했고, 주변엔 식인 식물따윈 자라지 않는다. 강도? 음... 그건 좀 현실성 있다. 유령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곱절로 무서운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그는 곰을 무서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 25일 무렵 근경에서 커다란 갈색 곰이 목격되었다. 사냥꾼들은 이게 웬 떡이냐 환호했다.
각설하고, 아직까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너무 과민반응 하는 거 아냐?」라는게 마을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정말로 곰이 무서운 거예요? 교수.』
후스코의 질문에 핀치는 감았던 눈을 도로 떴다.
살인 곰? 그런 건 차라리 귀엽다. 핀치가 두려워하는 종류는 전혀 다른 것이다.

파랗게 빛나는 지구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 아찔한 - 거대한 유리 돔 -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무색투명한 세계 - 사람을 죽이고 삭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무신경함- 완전무결한 - 쓰게 웃으며 도리질했다.
『글쎄다. 나는 아직까지 곰을 직접 본 적이 없어.』
『어? 소문과는 다른데.』
『누가 그러든. 내가 곰을 무서워한다고.』
『경비병 시멘스키가요.』
방금 전 헛소문을 유포한 장본인으로 지목된 시멘스키는 펄쩍 뛰었다.
『틀려. 내가 말한 건 곰이 아니고 곰 같은 여자! 그 둘은 서로 같지 않아!』
낮은 덤불을 좌우로 헤치며 씩식하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후스코와 핀치 두 사람을 충분히 질리게 만들었다. 사람이 다니기 힘든 길을, 그러니까 산짐승들이나 뛰어다니는 곳으로 잘도 걸음을 하고 있다.
이 근방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다. 그러나 줄기로 가시가 돋은 종류의 유전자 변이 식물이 많이 자란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엔 무리다. 운동이나 해야겠다, 이러고 무모하게 도전했다간 팔뚝이며 손잔등이며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천연의 가시철조망이다.

지혜롭지 않은 짓을 저질렀다며 핀치가 타박했다.
『왜 그런 곳에서 튀어나오는 겁니까, 시멘스키.』
『예? 그야 제 직업이 생선 장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멘스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핀치에게 왜 야단을 맞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투다.
『중앙 정부가 지급하는 소정의 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서 인민의 안전을 위해 순찰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듣자하니 마을에 움무 상인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읏샤...』
거기까지 말한 시멘스키는 다리를 크게 벌려 움푹 패인 도랑을 날렵하게 뛰어넘었다.
『아시다시피 움무들은 날강도 짓도 곧잘 저지르니까요.』

움무는 공인된 출생증명서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자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적게는 넷, 많아도 열 명이 되지 않는 숫자로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매우 비밀스러운 사람들이며,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
그들을 왜 움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으로선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존재라서 umm이라는 별 의미 없는 감탄사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움무 상인은 우리 집에 있어요. 우리 아버지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감시하고 있죠.』
후스코가 턱을 들고 코를 으쓱였다. 쇳덩이처럼 몸이 단단한 아버지는 소년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시멘스키는 그건 모르는 거라고 잘라 말했다.
『두 명만 나타났다며. 그렇다는 얘기는 숲속 어딘가에 나머지 움무들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거잖아.』
전자통신 시설은 진작에 사라졌다. 먼 곳의 소식은 움무들의 입으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다. 간혹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어서 주민들은 그들의 방문을 일부러 막지 않았다. 시멘스키는 단추를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둥그렇게 생긴 기계 같은 걸 기억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유적지에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몰려들자 여자 움무들은 노래를 부르며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춤을 췄다. 젖가슴을 다 드러내며 그녀들이 추는 춤은... 음. 상당히 근사하고 엄청 섹시했다.
『그게 함정이었지. 주민들이 넋을 잃자 그 틈을 타 식량 창고를 털어갔거든.』
교훈이 워낙 혹독해 시멘스키에게 있어 움무는 천둥 벼락과 같은 재앙일 뿐이었다.

『그들이 이번엔 제트-트랜스 전지를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예, 그 이야긴 저도 들었습니다, 핀치.』
『근방에 우리가 모르는 유적지가 있는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시멘스키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지난 15년간 꾸준히 감시하고 확인했잖습니까. 근방에 노아의 구역은 없어요.』
여기까지 말한 시멘스키는 만약을 위해 주변을 더 둘러봐야겠다며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켰다.
핀치는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못 사요.』
대장간은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쇳물을 다루는 곳이니 원래 열이 많기도 하거니와 관리사문관인 카터가 모처럼 도깨비 얼굴이 되어 열변을 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우리 마을의 작황은 상황이 좋지 않아요. 보리와 밀을 사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제트-트랜스 전지라고 할지라도 그걸 살 여유따윈 없습니다.』
『그치만 카터, 빵은 밖으로 나가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이런 전지는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게 아니야. 암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든 거라고.』
『그래서 당신은 배가 고프다는 아들에게 멀건 죽을 먹이고 싶은 겁니까?』
발음을 흘리는 버릇이 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대장간 밖에서도 알아듣기 쉬웠다. 흥분한 상태라는 증거다.
『윽, 안에서 곰이 화를 내고 있어. 썩 좋지 않은데.』
『교수. 문을 열까요?』
『그렇게 하려무나, 후스코.』
긴장한 핀치는 후스코에게 앞장서라는 신호를 했다.

『오, 후스코. 어서 와라. 심부름은 잘 했고?』
남자 몇 명이 안으로 쪼르륵 달려오는 곱슬머리 소년을 반겼다.
이상한 점은 뒤따라 들어온 핀치에겐 그 어느 누구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Posted by 미야

2012/08/18 17:08 2012/08/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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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드롭 1-01

설정은 POI와 같지 않으며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름만 빌려왔습니다.
단편으로 끝낼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부 진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교수, 안에 계세요?』
알이 뱅글뱅글 도는 두꺼운 안경을 걸친 핀치는「교수」라는 호칭에 반응하여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고개를 들었다. 하던 일이라고 해봐야 어려운 종류도 아니고 손으로 갈겨 쓴 회계 장부의 검토 작업이었지만 - 잡화점의 에밀리 루이스는 간혹 숫자를 틀리게 적곤 한다. 세제 1kg의 가격은 30다트인데 장부에는 3다트로 기입이 되어 있다. 이러니 금전출납기에 들어간 현금과 장부상의 잔액이 서로 안 맞을 수밖에. 장부를 도로 덮기 전, 볼펜을 들어 틀린 부분에 V자로 체크를 했다.

『들어오렴, 후스코. 그런데 나는 교수가 아니란다.』
『네? 하지만 안경을 쓰고 계시잖아요.』
소년이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건 좀 아닌데. 얘야? 네가 알고 있는 교수는 어떤 사람인지 차분하게 한 번 설명을 해보겠니.』
『아저씨처럼 안경을 쓴 사람이오.』
후스코는 그런 간단한 걸 왜 묻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핀치가 기가 막히다는 투로 입을 벌리자 후스코는 기분이 나빠졌다. 어째서 저 영감은 나를 바보 원숭이 쳐다보듯 하는 거지. 후스코는 체온이 뜨거운 어린애답게 발끈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핀치는 그렇다, 아니다 설명을 생략한 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대학이라는 것이 사라진 마당에 교수니, 박사니 하는 호칭 자체가 부질없다. 많이 배운 사람 - 이런 의미라면 꼭 틀렸다 하기도 그렇고... 하여 핀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니.』
『잠깐만요. 말 돌리지 마요. 교수라고 부르는게 잘못인가요.』
『그 문제는 나중에 토론하도록 하자꾸나, 후스코... 어디보자. 그래도 모처럼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대접이 신통치 않구나. 녹차라도 마실래?』
『녹차라는게 저번에 마셨던 녹색의 구정물을 의미하는 거라면 사양할랍니다.』
『허! 참으로 예절바르구나! 녹색의 구정물?!』
핀치는 짐짓 화를 내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런다고 해봐야 대장간의 곱슬머리 차남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핀치는 허당이다. 주먹이 강하지도 않고, 목소리가 크지도 않다.
후스코가 일곱 살이던 무렵, 장난삼아 조약돌을 던지고 도망친 적이 있었는데 이 허약체질 사내는 나 잡아봐라 메롱메롱 이러고 뛰어가는 일곱 살 남자애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건 둘째고
- 날씨가 좋은 날엔 그도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다. 흐린 날에는 인상을 찡그린 채 왼쪽 다리를 절며 걷는다 - 다른 어른들처럼 귀싸대기를 날려버리겠다 고함도 못 쳤다. 너무나 얌전하고 너무나 유약하다. 마차가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만 봐도 현기증을 일으키며 어지럼증을 호소할 지경이니 말 다했다.
그런 남자가 정색하며 화를 내봤자. 흥.
후스코는 어디 먹을 건 없나 두리번거리며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질렀다.

『마을을 방문한 움무 상인이 제트-트랜스 전지를 팔고 싶어해요. 모두 두 개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작동을 하고 하나는 녹이 쓸어 망가져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교수를 모시고 오라 하셨어요. 상인이 전지를 팔고 싶어 하거든요.』
핀치의 얼굴 근육이 굳었다.
『제트-트랜스 전지?! 그 사람들이 그 귀한 걸 어디서 가져왔다고 하든.』
후스코는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 알면서 왜 그래요. 그들은 움무라고요. 쓰레기를 뒤지고 무덤을 파죠. 땅 아래 세계를 제멋대로 돌아다녀요. 어디서 나온 물건인지는 자기네들도 모를 걸요? 아니면 다른 마을에서 몰래 훔쳐온 것일 수도 있죠.』
『그래서 네 애비는 전후 사정도 모른 채 그걸 덥썩 사야 한다 말을 꺼냈다는 거냐.』
비난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후스코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뇨!』

세계는 붕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의 문명이 붕괴했다.
원인이 뭐였느냐고?
일단은「질병」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뇌가 말고기처럼 변형이 되어버리는,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질병이었다고 한다. 혹자는 그런 질병은 없었으며, 혹독한 기후 변화 탓이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이를 연구할 학자 자체가 사라졌으니 지금에 이르러 멸망의 이유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우주선을 만들 줄 알았던 인류는 후퇴와 퇴보를 거듭하여 지금은 동물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어업, 축산업 같은 것들이 되었고 의사와 과학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씨가 말랐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글자와 산수를 배운다. 사실상 그게 배우는 것 전부다. 고등교육은 불가능하다. 지식은 단절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를 모른다. 책은 대단히 희귀한 물건이며, 별의 궤도라던가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땅에서 명맥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핀치가 안경을 벗었다.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벗으면 사물을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세상을 보는 건 눈을 감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끔씩 핀치는 안경을 벗는다. 그러면 눈을 감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네 아버지를 비난한게 아니란다, 후스코. 산다는 건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지.』
제트-트랜스 전지는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구 시대의 유물이다. 어른 손바닥 크기이고 그 속에는 많은 전기가 들어가 있다. 충전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30년 가까이 큰 도시의 불을 밝힐 수 있다. 문제는 충전 기술을 잃어버려 제대로 활용을 못 한다는 점에 있달까, 지금은 0.1% 정도의 성능만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긴한 물건이다. 대장간의 풀무질하는 기계를 돌리는데 사용한다면 아마 평생 쌩쌩 돌리고도 남으리라. 그렇게 귀한 물건을 기껏 풀무질하는 기계에 사용할 거냐는 비난은 둘째로 치고 -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그런 무식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 실제로 이 마을에선 우물에서 물을 퍼올리는 동력원으로 제트 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핀치는 얼굴색을 달리했다.
『차라리 이웃 마을에서 몰래 훔쳐낸 거라면 마음이 놓일 거다. 그들이 섣불리 노아의 구역으로 들어갔던게 아니었음 좋겠는데...』

구 인류 - 노아들이 살던 곳은 이제 저승이 되었다.
저승의 독기는 맹독이다. 사람을 죽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걸 선명하게 기억하는 핀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Posted by 미야

2012/08/17 12:51 2012/08/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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