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복구

제목도 없는 습작입니다.


맛있게 생긴 베이컨 버거를 외면하고 영양가 없는 풀쪼가리에 데면데면 포크질을 하는 동생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할 거 같아.
저건 남자도 아니고, 인간은 더더욱 아니야.
제길, 사만다. 이러라고 널 낳은게 아닌데.

『낳지 않았잖아.』
『그래. 낳지 않았어. 그래서 천만다행이라는 거지.』
『이거 왜 이래?! 아침부터 콜레스테롤 덩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삼키는 쪽이 비정상 아냐?』
『얼씨구? 네가 지금 나한테 정상, 비정상을 따지겠다는 거냐?』

샐러드는 훌륭한 식품이다. 이몸은 그 주장에 콧방귀나 뀌는 입장이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낸 엄청량 분량의 자료들이 코앞으로 들이닥친 상황에선 억지로라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자들이 엄청 많았다. 거기에 샘은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도 그어났다. 글쿠나. 샐러드는 좋은 식품이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기회다 하고 샘은 이걸 나에게 먹으라 강요하려는 건가.
결론만 말하자면 샘은 나에게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먹은 건 그쪽이다.
덧붙이자면 그「먹었다」라는 존재는 야채가 아니다. 샘은 출력한 종이를 먹었다.
그것도 나 모르게 화장실에 숨어 질겅질겅.

『이 염소 새끼야. 꾸역꾸역 잘도 처먹고.』
『시끄러!』
『형 앞에서 발끈해봤자지. 헌터라는 놈이 보란 듯이 저주에나 걸리고. 확인하기 전까지 내가 상자를 열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게 내 잘못이냐고. 상자를 열고 확인하라는 소리로 들었단 말이야.』
『오우, 그러셨어요? 혹시 보청기 필요하세요?』
힐난하는 말에 샘은 입을 앙 다물고 날 노려보았다.

어쨌든 상자는 열렸고, 샘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리가 쫓던 마녀는 성격이 아주 나쁜게 확실하다. 성격 좋은 마녀 따위가 세상에 있을소냐 - 거기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하고, 작금의 이 상황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래, 샐러드는 먹을 만하냐.』
내가 듣기에도 지친 목소리다.
『자꾸 긁어대지 말어. 충분히 토할 것 같으니까.』
답변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그보다 곱절로 지친 목소리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보통 마녀의 저주라고 하면 생니가 왕창 빠지거나, 정수리 부근 머리카락이 이유도 없이 불탄다거나, 멀쩡하던 눈이 먼다거나 이래야 정상 아니야? 그런데 이 마녀는 아주 치사하게 굴었어. 세상에... 사람이 먹는 걸 갖고 장난을 쳤다니까.
지금까지 샘이 충동에 못 이겨 제 아가리에 쑤셔 넣은 걸 언급해보리? 신문지. 화장지. 핸드크림. 화분흙. 세제. 빨지 않은 양말을 황홀한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는 걸 목격했을 적에 나의 섬세한 심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어. 덧붙여 동생이 좋아 죽는다며 쪽쪽 빨아댄 양말은 내 거였다고. 기절초풍할 일이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변태 같잖아.』
『아닌 척해도 변태 맞거든.』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닌데!』
『목소리 낮춰. 사람들이 쳐다보잖냐. 그리고 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쪽은 바로 나야.』
『형이 화낼 일이야?! 이건 내가 화낼 일이라고.』
『방구 뀐 놈이 역정낸다고 이놈이 어디서 큰소리 뻥뻥 치네. 형이 보기엔 안 그렇다고, 이 자식아. 최소한 자기가 신던 양말을 입에 물었어야지! 왜 하필 내 양말이냐.』
내 비난에 샘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한 것도 같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다. 무척 비참해하는 것도 같다.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닌 건지도 모른다.
『네 거, 내 거가 어딨어. 우리 사이에.』
『어쭈? 다음에 내가 속옷 좀 빌려달라고 애원하면「네 거, 내 거가 어딨어. 우리 사이에」라고 말하겠구나? 그래서 언제 네놈이 이 형에게 팬티 입으라고 빌려줬냐? 아니잖아!』
『티셔츠는 빌려줬잖아.』
항변하는 동생의 말에 한쪽 눈썹이 저절로 치켜 올라갔다. 하여간 이놈은 누구에게 버르장머리를 배웠는지 꼬박꼬박 말대꾸다. 화가 치밀어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무나 감사하여 차마 입이 안 떨어집니다요. 샘 윈체스터 씨. 그 귀한 티셔츠를 빌려줬으니 황송해서 어쩔스까요! 이 형이 만장하신 가운데 두가닥 닥닥, 탭탠스라도 출까요?』
『됐어.』
짜증이 나는 건 서로 마찬가지. 샘은 샐러드 접시로 시선을 내렸다.

『바비 아저씨는 뭐래.』
『알 것도 같다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래.』
『그 조금이 어느 조금인데. 한 시간? 하루? 아님 일주일?』
『샘.』
역겨워하는 표정을 감추지도 못한 채 샘은 포크로 찍은 양상추를 억지로 입에 넣었다.
사람은 누구나 때에 맞춰 음식을 먹어야 한다. 물도 마셔야 한다. 출출한 배를 채우는 행위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거라 누가 생각이나 해봤을까.
두어번 씹던 샘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흐트러지는 호흡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토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목울대가 심각하게 요동치는게 고스란히 보였다. 그래도 토할 수 없었던 동생은 초자연적인 파워로 뱃속을 진정시키려 기를 썼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입에 들어가 있던 걸 용케 삼켰다. 그렇다고 해도 죽을 지경인 건 여전했는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빌어먹을... 이게 어떤 맛으로 느껴지는 줄 알아?』
『알고 싶지 않아.』
『염소 똥을 바른 썩은 낙엽 같아.』
『친절한 설명 고맙다. 정말 우아한 식사 예절이구나, 동생아.』
『커피는 또 어떻고. 식초에 석탄 알갱이를 갈아 넣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그럼 콜라는?』
『더 싫어. 콜라는 상한 콩스프 냄새가 나. 게다가 개구리 내장 맛이 난다고.』

힌트는 있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비슷한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었다.
『나도 기억나. 모래를 주워먹고 죽은 남자에 대한 내용이었지?』
『정확하게는 고양이 변소용 모래야.』
『윽.』
『이식증이라고 착각될 소지가 있었지. 하지만 이식증은 보통 두 살짜리 어린애나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법이잖아. 어제까지 스테이크를 먹던 사내가 갑자기 머리카락을 주워먹고 있으니 귀신 장난이 분명하지. 아버지가 알아내신 바에 의하면 그건 마녀의 소행이었어. 그래서...』
『그럼 아빠가 처리했어?』
『아니. 케일럽 아저씨가 처리했어. 그래서 저주를 어떻게 풀었는지 아빠가 메모를 안 했어.』
나는 인상을 다시 구기고 동생을 응시했다.
『좋아. 헛구역질은 관두고 소시지를 먹어보는 건 어때, 샘. 원래 싫어했던 거니까 이번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도전해볼텨?』
나의 제안에 샘은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어 도리질했다.

《그래. 샘은 어떻게 하고 있니.》
수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바비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런 기색이 잔뜩 묻어 있었다.
『죽으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만 벌써 다섯 번 토했어요.』
《억지로 먹이지 마라. 자꾸 토하면 식도가 망가져. 그냥 푹 쉬게 하려무나.》
『아무 것도 안 먹겠다고 하면 괜찮죠! 녀석이 엉뚱한 걸 자꾸 먹고 싶어해요.』
《참으라고 해라.》
『말은 쉽죠. 우리 둘 다 참을성이 바닥나고 있다고요, 바비.』

샘은 과자 냄새를 맡고 있다는 투로 자기 신발의 냄새에 열중하고 있었다. 진저리가 난 나머지 아랫배에 힘을 팍 주고 기함을 질러댔다. 화들짝 놀란 샘은「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또리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바비가 듣지 못하게끔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욕을 퍼부었다.
『엉덩이에 말뚝 박아버린다! 네가 찰리 채플린이냐?! 신발에 왜 군침을 흘려!』
『그치만 여기서 좋은 냄새가...』
『들고 있는 거 내려놓고 얼른 침대로 가!』
그리고는 다시 바비에게로 집중했다.
『급해요, 급하다고요, 바비.』

늘 쓰고 있는 모자 속으로 연필의 뾰족한 부분을 재주껏 찔러넣은 바비가 가려운 곳을 긁적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다행스러운 거라면 이 마녀의 저주는 그렇게 강한 종류는 아닌 것 같더구나.》
『그래요?』
《어쩌면 소금물에 목욕하는 방법이 통할지도 몰라.》
『오!』
《추가적으로 다른 재료를 더 넣어야 하긴 하겠지만...》
여기까지만 듣고 나는 다시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샘! 당장 입에 넣은 거 뱉어내!』

어디서 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샘은 강아지가 아니고, 야단 맞았다고 꼬리를 내리는 강아지는 더더욱 아니며, 말 잘 듣는 착한 강아지 또한 아니었다.
『형, 이거 정말 끝내주...』
『죽을래?!』
저 녀석은 왜 내가 벗어던진 양말에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설마, 내 발에서 고양이 똥 냄새가 나는 건가.
불안해져 슬그머니 발을 올려 냄새를 맡아봤다.
아...
숨을 멈춘 채 눈물을 닦았다.
구려.

《그럼 노트에 받아 적거라, 딘. 박하, 라타니아, 생강...》
전화기 저편에서 바비의 차분한 - 차분함을 위장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Posted by 미야

2009/07/29 15:16 2009/07/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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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마리에 2009/07/29 22:08 # M/D Reply Permalink

    오오 이거 너무 좋은데요!
    웃기는 마녀 저주 거린 샘 너무 좋아요!
    미야님 저주를 걸어놓았으면 풀어도 주셔야죠! 뒷 얘기는 없나요?
    하다못해 새미 목욕 시키다가 사고 치는 얘기라도~ ㅎㅎㅎ

  2. T&J 2009/07/31 09:10 # M/D Reply Permalink

    억, 미야님.....ㅠㅡ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완전 좋아요~~딘이 벗어던진 양말을 물고빠는 새미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주가 풀린 뒤에 더 심하게 토하지 않을지...;;;;다음편....있는 거죠?...엉엉....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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