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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라는 단어는 어쩐지 혀에 올리기가 껄끄럽다.
원수를 갚는다고 하면 뭔가 힘들고 불편한 일을 억지로 해치운다는 기분이 든다. 잘 흐르던 물을 막아뒀다가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윗동네로 어렵게 퍼 올리는 거와 흡사한 느낌이랄까, 하여 나는 복수라는 단어 대신「대가」라는 표현을 애용하는 편이다.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 법이다. 벌레가 많다고 나무를 베어내면 시원하던 그늘이 사라지고, 쥐가 많다 독약을 풀면 배를 굶주린 올빼미가 쥐 대신 닭을 채어간다. 그런데 이 올빼미가 뒷마당 닭장을 공격하는 건 쥐약을 놓은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연속 현상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에는 기분 나쁜 인위적인 힘의 개입이라 여길만한게 없어 전반적인 줄거리와 그 그림이 매우 자연스럽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낫을 빌리러 온 이웃 농부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면 그 다음 날 밭을 가로지르는 길에 장대가 걸려 사람의 통행을 막게 되는데 나는 이것을 일컬어 이웃 농부의 졸렬한 복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낫을 빌려주지 않은 대가이고 그것에 대한 인과관계다.

자손은 이거나 그거나, 엎치거나 뒤치거나 서로 똑같지 않느냐며 어리둥절해 했다.
『도대체 그 둘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나는 쭈그려 앉은 자세로 양손으로 냄새나는 말똥을 땀이 나도록 주물럭거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낫을 구하지 못한 농부가 복수를 한 거라고 결론을 내리면 길을 막는 장대를 내건 행위는 명백히 증오라는 감정에 의한 것이 되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낫을 빌려주지 않은 내 행동에 대한 대가라고 설명하면 동전 세 닢을 주고 마치 시장에서 떡을 사는 것과 같아서 미움이나 증오라는 감정의 개입을 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호라, 그런 얘긴가. 자손이 무릎을 때렸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하지만 곧바로 반박했다.
『허나 지금의 네 얼굴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렇게 말한 자손은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싫은 냄새를 멀리 날리거나, 더위를 식히기 위함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스러운 걸 보다 멀직히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외발수레 도구따윈 진작에 내던진 채 맨손으로 똥을 만지면서 악귀처럼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으니 복수가 아닙네, 증오가 어쨌네 하는 얘기 전부가 공염불과 마찬가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낱 말장난에 불과했다. 나는 입으로 흐흐 소리를 내며 모래밭에서 장난을 치는 어린애처럼 말똥으로 성을 쌓으면서 그것을 툭툭 두드려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배설물이 두껍게 발려진 손바닥을 옷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그러면서 어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것으로 어쩌려고?』
『대가로 가져갈 겁니다.』
『어.., 그래. 너도 화초를 키우느냐?』
이 인간도 마분이 매우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걸 알고 있나 보다. 그런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똥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화분 안에 묻으면 그 독성으로 인하여 식물이 죽는다.
달걀을 한 번에 여러 개를 줍듯 말똥을 품안에 그러모으며 나는 이마를 찡그렸다.
『어차피 그럴 용도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제가 화초를 키울 것처럼 보입니까?』
『전혀.』
넌 꽃을 키우는 쪽이 결코 아니야 - 그는 확신하여 그리 말했다. 네가 화분에 무언가를 심었다면 그 정체는 미친광대버섯이거나 아님 흰독말풀일 거야 - 그렇게도 말했다.
농담조로 장난삼아 말한 것도 아니다.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어가며 만성 적자 경영 중인 가게를 이제 그만 매물로 처분하자는 식으로 그리 말했다.
그런 심한 말을 듣고도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화분에 심어진 흰독말풀에 정성껏 물조리개로 물을 주는 내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어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히 내 성격엔 나팔꽃이나 봉숭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 꼬맹아. 그 지저분한 걸 푸짐히 안고 어디를 가누?』
『왜 저를 따라오십니까. 달리 할 일은 없으십니까?』
『이곳은 나의 집이고 여기는 나의 안마당이다. 내가 내 집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곁눈질로 흘끔 쳐다보니 이 인간, 뱀 나오게 휘파람까지 불고 있다.
『그러시면 거북합니다만.』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을 하거라. 널 따라가는 나는 그냥 투명인간이라 생각하고.』
투명인간으로 생각하라며 일부러 발자국 소리도 크게 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유령처럼 기척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 모르지도 않는데 갑자기 왜 신발을 질질 끌고 다니며 일부러 나 여기에 있소 광고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기 너! 이봐! 그런 더러운 꼬라지로 어디를 감히... 어엇!』
충격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한 하수 두 명과 경비병이 맨발로 달려왔다.
그러다「나란 인간 여기에 있소~」를 온몸으로 표시하고 있는 자손을 한 눈에 알아차리곤 그 즉시 달려오던 걸 멈췄다. 더하여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안색에서 핏기도 지워졌다.
『처, 천세. 천천...! 세!』
말까지 더듬는 경비원이 서둘러 예를 올리려 하자 그걸 단칼에 제지했다.
『꺼져.』
짧았으나 압도적인 중량감을 가진 어조였다.
자손이 눈을 한 번 흘기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꽁지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허겁지겁 달아났다. 뿐만 아니라 주변 공기 자체도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과해 송두리째 빠져나간 것 같았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완벽한 공백. 거짓말처럼 벌레의 기척마저 사라지자 그야말로 텅 빈 마을에 나와 자손 두 사람만 남겨진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양손에 말똥을 가득 쥔 채로 - 진짜로 이상한 공간으로 뚝 떨어진 건가 싶어 순간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꺼지라는 저 남자의 말 한 마디에 일상마저 지워지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그림자마저 지워지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내 그림자가 저 혼자 살겠다며 제멋대로 멀리 달아나는 걸 상상했다. 그러다 공기가 빠져나간 구멍으로 휩쓸려 사라져버리는 거다. 우와, 생각해보니 두렵다.

자손은 술명하게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그림자가 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어, 그런데...』
『아, 이건 담배라고 하는 거란다. 꼬맹아.』
쳐다보는 내 시선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 자손은 나른한 표정으로 한가롭게 흰 연기를 내뿜었다.
『이걸 보니 너도 피우고 싶어졌누? 하지만 참아다오. 스물 셋인 나는 얼마든지 피워도 괜찮겠지만 너는 아직 어려서 무리다. 아랫도리에 털이 나면 그때 가서 피우렴.』
『아뇨. 지금보다 나이가 스물 세 살 더 많아져도 그런 거 안 피울 겁니다. 담배는 몸에 나빠요.』
『좋으실 대로.』
자손이 무심하게 다시 흰 연기를 내뿜었다.

글쎄다. 이 남자가 누구를 닮았는지 짐작이 안 갔다. 내 친구의 젊은 시절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비슷한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거야 혈통이 같으니 당연한 거라 할 수 있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청결감과 기품이 있고 콧망울에 약간 살집이 있다. 턱 선이 보다 뾰족하고 눈썹이 흐렸으면 내 친구의 여동생이었던 기후화려 황녀와도 상당히 닮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고 그 분위기다. 이 남자는 묘하게 살벌하면서도 변덕스러운 기운이 있다.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불안이 솟구친다... 누구의 아들일까.
『이번엔 또 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똥을 꼬옥 품에 안고 목적지인 교당을 향해 부지런히 걸을 뿐.

Posted by 미야

2015/06/07 14:34 2015/06/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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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늙은 암말은 줄을 걸어 잡아끌자 시키는 대로 얌전히 끌려나왔다.
행동이 워낙 느려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둥에 매듭을 묶는 동안 코를 벌름거려 내 냄새를 맡더니 그 즉시 흥미를 잃은 눈치다. 마차를 끌기 위해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다. 심지어 녀석들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파리를 쫓는 일조차 귀찮아했는데 어쩌면 이른 더위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녀석들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것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반대로 거세한 숫말은 아까부터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소금에 절인 육회, 소금에 절인 말고기 육회 - 부릅뜬 눈이 긴장감을 드러내며 나의 접근 자체를 기피했다. 청소 솔을 들어 보이며 줄을 잡으려 하자 뻣뻣하게 굳어 가뜩이나 긴 주둥이를 더욱 길게 내밀었다. 가만 보니 땀도 흘리는 눈치다.
『그러니까 얌전히 굴란 말이야, 인석아.』
숫말은 소심하게 푸르르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혔다.
덕분에 얼굴에 침이 튀었지만, 뭐 괜찮다. 나는 그걸「보복행위」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마사 청소는 그야말로 두뇌가 쓸모없는 단순 노동이다.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데리고 나가 운동을 시키라고 주문을 받았더라면 많이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라는 건 말 그대로 배설물이 엉겨 붙은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치우고, 물을 뿌려 바닥 솔질을 한 뒤에, 새 짚을 가져와 깔면 끝나는 일이다.
마분 - 그러니까 말의 똥은 버리지 않고 한 곳에 모아두는데 예로부터 화초를 키우는데 이만한 비료가 없다 하였다.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앞을 다퉈 가져가겠다 난리를 피우기에 똥도 그만큼 대접을 받았다. 다만 모아두는 장소가 마사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 외발수레에 퍼 담아 그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다.
무거운 쇠스랑을 이리저리 굴려 똥을 한 곳으로 모으고 난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외발수레는 이름 그대로 바퀴가 하나라서 조금만 실수하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자빠진다. 초보자가 다룰 도구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 힘이 장사여도 요령이 없으면 온몸에 똥 폭탄을 뒤집어쓰게 된다.

『여어, 도토리. 말이 재채기 한다~』
똥 폭탄은 이 경우에도 뒤집어 쓸 수 있는데 사람이 기침을 하면서 불가항력적으로 방귀를 뀌는 걸 상상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말은 달리면서도 배변을 하는 동물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초식동물의 항문이라는 건 참으로 절조가 없다.
귀로는 알아들었음에도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한 탓에 허리 아래로 오물이 튀었다.
『에잇, 젠장. 야! 너 진짜로 이럴 거야?!』
무어라 야단하자 거세한 숫말이 푸르르 주둥이를 떨며 불만을 표현했다. 하긴, 이 모든 건 생리현상일 뿐으로 녀석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엉덩이를 이쪽으로 쭈욱 내밀고 있는 모습이「고의」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들긴 했어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자 말의 귀가 위아래 방향으로 팔랑팔랑 흔들렸다. 내가 보기엔 완전 딴청이다.

등 뒤에서 자손이 큭큭 숨 죽여 웃기 시작했다.
『말이 무슨 죄가 있냐. 경고까지 해줬는데 피하지 못한 쪽이 잘못이지. 안 그렇누?』
사람 아닌 짐승을 편들어준 자손은 한가로운 태도로 휴대용 곰방대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설마, 여기서 담배를 피우려고? 허겁지겁 쇠스랑을 구석에 세워두고 - 그걸 들고 나섰다간 흉기를 들고 황족을 위협한 죄로 태장이 100대다 - 서둘러 만류했다.
『사방에 마른 짚더미가 있습니다. 여기선 화재 위험이 높으니 삼가주세요.』
『허어, 다른 인간도 아닌 이 내가 부주의하게 불을 낼까 싶으냐?』
자손의 한쪽 눈썹이 말도 안 되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설령 불이 나도 밉상인 네 녀석과 쓸데없는 말 몇 마리가 타죽기밖에 더 하겠어?』
참 징그럽게도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가며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대신 슬그머니 옆구리에 끼어 넣는 걸 보니 안심이다.
나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말똥을 치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외발수레를 쓰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도토리야. 진짜로 말고기가 그렇게 맛이 괜찮아?』
『저도 얘기만 들어봤습니다.』
『노루 고기와 비슷하려나?』
『모르죠. 직접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런 주제에 소금에 절인 육회가 최고 어쩌고 떠들어댄 거냐? 쳇, 창리궁 마마에게 한 접시 보내볼까 했는데 관둬야겠군.』
창리궁?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럼 이름의 장소가 없었다. 창리궁 마마라는 건 또 누구일까. 황제의 여러 비빈들 중 한 명일까? 슬그머니 발등으로 시선을 내리고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관두고말고 처음부터 무리에요. 애초에 어느 말을 잡으려고요.』
『뭐가 걱정이야.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한 마리 골라서 목을 베면 되는데.』
『그럼 안 되죠. 엄연히 말 주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이것들 전부가 결국 이사실의 소유물이다.』
『아니오, 이건 송주라는 자의 사유 재산입니다.』
순간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게 뭐였더라,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곰방대가 불쑥 나타나 내 머리를 때렸다.

『아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인석아, 너는 네 애비에게 뭘 배웠느냐. 이럴 적엔 손바닥을 비비며 당신 말씀이 진실로 맞사옵니다, 이러고 아부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곳에 있는 말 전부가 이사실의 재산입니다. 황제 폐하의 소유물이고, 황실의 물건입니다. 자손께서 원하시면 아무 말이나 그 목을 베셔도 좋습니다. 육회 만들어 잡수셔도 괜찮으니 대신 저에게 한 점 맛을 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게 정답이지. 너처럼 그딴 식으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놈이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곰방대 공격이 재차 이루어졌다.
『아얏!』
『발랑 까진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면에서 순진한 녀석이군. 저 숫말을 죽여 그 엉덩이 살로 맛있게 요리를 해먹읍시다, 이렇게 날 설득해야지. 저 말은 널 때리고 마굿간 청소를 시긴 자의 소유물이잖아. 애기 도토리 너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거냐?』
그런 사적인 걸 어떻게 꿰고 있느냐 따져 묻는 것도 잠시 잊었다.
나는 따끔거리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그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세요, 이러고 소리를 질러댔다.
『당사자에게 복수를 하면 하는 거지, 말 엉덩이를 육회로 만드는게 무슨 복수가 됩니까!』
그렇게 외치자 속이 텅 빈 곰방대가 눈앞을 왔다갔다 움직이며 위협 아닌 위협을 가했다.
『아버지가 미우면 그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미우면 그 집의 개를 죽이는 거야. 그걸 모르느냐.』
『압니다! 모르긴 뭘 몰라요!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실제로 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요.』
『호오?』

나는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어쩌면 흥분한 건지도 모른다.
똥을 외발수레에 하나 가득 퍽퍽 퍼 담고는 손잡이를 불끈 잡았다.
그리고 다섯 걸음도 채 떼지 않고 수레를 옆으로 멋지게 뒤집었다. 사방이 똥이었다.
『그럼 당사자에게 직접 복수할 거야?』
넘어져서 어떻하냐, 진작에 조심하지, 이런 얘기는 죄다 잘라먹고 자손이라는 자가 하는 말은 이거였다.
맵고 쓴 맛을 풍기면서 동시에 조청처럼 달콤하게.
덕분에 이가 썩으려 했다.
상체를 기울이더니 수레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나와 가만히 눈높이를 맞췄다.
『복수할 거지?』
그러고 미소를 짓는데 세상에, 도원에 산다는 날개옷 선녀가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Posted by 미야

2015/06/05 10:27 2015/06/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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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펌은 사절합니다. 자급자족 습작입니다. 일부 내용이 계속 수정되고 있습니다. ※


맞은 곳이 퉁퉁 부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감히 이족보행을 하는 넝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견디지 못했을 거다.
다만 눈과 달리 귀는 제대로 열려진 상태였기에 숨을 훅 소리 나게 들이마시거나, 혀를 차거나, 숙덕거리는 기척 전부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 핏자국이라도 지우고 나올 것이지.」
「와... 면신인가. 멋지게 얻어맞았군.」
「뉘집 아들이지? 응? 뭐라고. 변방인? 과연, 그랬군.」
그중에는 지나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다수가 면신 관습을 두둔하면 두둔했지 내 처지가 가엾다며 동정심을 드러낸 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웃는 자는 있었다. 내 생각엔 재밌다 여길 요소가 눈꼽만치도 없는데 분명히 숨 죽여 낄낄거렸다.

모르겠다. 기분 탓은 아닌데.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만 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현선당 돌담 아래에서 느낀 수상쩍은 기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만... 설마, 그때부터 내 뒤를 계속해서 졸졸 따라왔다면 악몽이 따로 없게 된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넌더리를 내며 작은 조약돌을 주워 나무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팔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던진 돌은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절반쯤 이르러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웃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그려, 맘대로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그러더라.」
드러내어 해코지를 하지는 않으니 당분간 내버려둬도 좋겠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오늘의 일터, 마굿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굿간 앞에는 이미 선객이 있어 두 명의 아이가 훌쩍거리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일하는 하수들과 다르게 연두색과 분홍 같은 고운 빛깔로 염색을 한 비싼 옷을 입고 있기에 나처럼 면신을 당한 아이들인가 보다 추측하고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랍쇼,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낮에 몽둥이에 맞아 죽은 귀신이 나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어, 왜!』
『하지만 얼굴이 귀신 같은 걸.』
『그래, 멋지게 알록달록하지. 하지만 죽은 건 아니라고? 그러니 멋대로 산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지 말아줘.』
그렇게 부탁했건만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반대로 더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더니「이러려고 여기에 온게 아닌데」한탄했다. 집을 떠나온 처지가 서글프고, 구박받는 신세가 속상하고, 얻어맞는게 무서우니 눈물이 나올 법도 하다. 녀석은「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도 했다. 소매가 수분으로 푹 젖어 밝은 연두색 옷감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다.

『울지 마.』
내가 듣기에도 말하는 내 목소리는 쌀쌀맞았다.
『울면 체력이 떨어져.』
상냥하게 달래는 위로의 한 마디를 내심 기대했던 아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 말하면 무익한 사탕발림이 될 터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누군가 나서서 구원해줄 거라고? 도와줘? 누가. 황충이 소중한 벼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저절로 재앙이 사라지길 기다리겠다고? 실제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막연히 사당에 들어가 조상신에게 기도하는 부류는 딱 질색이다. 들판에 큰 불을 놓아 차라리 같이 죽자 이러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만 - 낙망한 채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는 불을 놓는 편이 낫다. 이런 식으로 주저앉아 우는 건 쓸데없다.

나는 아이들을 그대로 지나쳐 송주의 소유인 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진짜로... 할 거야?』
눈물을 글썽대고 있던 아이가「더럽잖아」하소연했다.
『더러우니까 치우는 거지. 그게 청소잖아.』
『그래도!』
『하겠다고 했으면 해야지.』
싫다면 처음부터 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

명문가 소유임을 증빙하는 마사의 명패를 하나씩 살펴 어렵게 세 필마를 찾았다.
말들은 자기 주인을 닮아 인상이 고약했다. 털이 짙은 갈색이었던 놈은 앞다리로 바닥을 긁으며 두 귀를 뒤로 바짝 젖혔는데 가까이 가면 물어뜯겠다며 이빨로 딱딱 소리도 냈다. 성격이 그 지경인지라 바닥에 흘린 배설물도 일부러 밟아서 마구 짓이겨 놨다. 거세한 말 주제에 하는 짓이 지랄 맞았다.
『......』
어떻게 나오려나 가만히 눈을 마주치자 이번엔 흥분하여 머리를 홰홰 저었다.
저런 놈은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십중팔구 뒷발차기를 한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마사 안으로 들어갔다간 벽으로 튕겨나가 뼈가 부러진다. 염소에게 차여도 몇 일은 끙끙거려야 하는데 하물며 상대는 몸집이 큰 숫말이다. 나처럼 작은 아이는 자칫하면 목숨도 위태롭다.
「청소 이전에 저 포악한 놈을 마사에서 끄집어 내는 일이 급선무겠군.」
다시 한 번 부운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말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옆에선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소곤거렸다.
『듣자하니 말고기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기가 막히다던데.』
바닥을 부산하게 긁어대던 앞다리의 움직임이 그 즉시 따악 멈췄다.
영악한 것.
나는 혀를 안쪽으로만 부드럽게 굴려 다시 한 번 말했다.
『특히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지?』
흰자위가 잔뜩 드러난 말의 눈이 이렇게 묻고 있었다.「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하하하, 크하, 으하하, 아이고 나 죽네~』
덧붙여 설명하자면 지금 내 뒤에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웃느라 숨 넘어가게 생긴 이는 예의 울보가 아니다. 그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고, 이름으로 부르기도 송구하여「자손」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자다. 근접하기도 어려운 귀인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혼자의 몸으로 어슬렁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것보다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눈치를 전혀 못 챘다. 발자국 소리 같은 거, 하나도 안 났다.
『끝내준다. 완전 악랄한 녀석이야. 그게 말 앞에서 할 얘기냐.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니! 으하하하! 게다가 쫄았어! 말이 어린애 농담에 쫄았다고~!! 와하하!』
『자손...』
『아이고, 배야~!! 나 미친다, 미쳐.』
『그만 웃으세요.』
저 남자의 신분을 생각하자면 돌아서서 최소한 반절이라도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단단히 잡친 나는 예절이고 나발이고 생략한 채 솔과 주걱 따위의 도구를 찾아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나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차마 생각을 못한 자손은 목을 길게 빼고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03 14:56 2015/06/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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