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모텔로 돌아가 그저 발 뻗고 자고 싶었다. 반면 흥이 오를대로 오른 그의 형님은 양편으로 여자를 둘이나 꿰차고는 입이 귓가에 걸린 상태다. 자신이 무슨 헐리우드 신흥 프로덕션 관계자인양 흐린 연막을 치며「어때, 생각이 있으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보겠어?」라고 말하는데 두손 다 들었다. 낧아빠진 중국제 청바지를 입은 스카우터가 말이 되느냔 말이다. 게다가 그가 신은 신발엔 간밤에 무덤을 파느라 생긴 진흙 얼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약이나 하는 동네 건달도 구두만큼은 번지르르하게 신는 법이다.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그의 신발은「내 직업은 사실 외판원이랍니다. 아님 그와 비슷한 거겠죠」주장을 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 딘이 승부 카드로 여자들에게 내밀만한 것은 반반한 외모밖엔 없었다.
『어머, 하지만 내 가슴은 너무 작고...』 『왜 그러시나, 아가씨들. 요즘은 개성으로 승부하는 시대야. B컵도 충분히 섹시하다고.』 『정말?』 『그럼! 실리콘으로 크게 해봤자지. 요컨대 사이즈가 아니라 봉긋 솟은 모양이 중요한 거야.』 『크기가 아니라 모양인가. 하지만 남자들은 사.이.즈.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죠? 호호호!』
문제는 형이 낚은 상대가 평범한 처자들이 아니라 닳고 닳은 세이렌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딘의 같잖은 허풍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는 점이었다. 알면서 속아준다는 말은 이럴 적에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만 들어도 현기증이 났다. 게다가 그 가식적이고 음탕한 몸짓들... 샘은 벽돌 사이즈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가져와서 그들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금발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딘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으려 했고, 후끈 달아오른 딘은 험프리 보가트 스타일로 위스키를 들이켰다. 빨간색 힐을 신은 여자가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둥글게 문질렀다. 정확히 가슴돌기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 당장 모텔로 돌아가고 싶다니까욧!
불쾌감이 솟구치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샘은 그런 신체적 반응을「아마도 취해서 그런 모양」이라 가정하고 눈앞에 놓인 냉수를 벌컥거렸다. 그리고나선 곧 후회했다. 왜냐하면 그런 천치 같은 행동은 필연적으로 사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급격히 수축하는 것과 동시에 격렬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덩달아 두 개의 안구가 눈구멍에서 튀어나오려 발악했다. 『어이, 어이. 괜찮아?』 누군가 안쓰럽다는 투로 등을 쓸어주었다. 샘은 큰 문제 없으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고, 자신의 무사함을 표현하는 손짓은 우습게도「살려주세요!」를 많이 닮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남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고, 상대방은 그것이 무슨 구조 요청이라도 된다는 듯이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샘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눈물이 가득차 흐리멍텅해진 눈으로는 그가 밝은 청회색의 재킷을 입었다는 것밖엔 알아볼 수 없었다. 연령대 불명, 생김새 불명, 피부색(인종) 불명. 넥타이를 매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인디언 억양이 섞인 말투를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샘은 계속해서 기침을 터뜨렸고,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내장까지 튀어나올라. 숨 쉴 수 있겠어?』 『괜... 콜록! 괜찮아요.』 『알레르기는 아니겠지? 저런,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는 걸.』 남자는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샘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폈다. 순수하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까? 모르겠다. 다만 신경쓰이는 건 여전히 그의 등을 덮고 있는 커다란 손이었다. 뭐랄까, 그건 친밀감을 한껏 드러내는 행위라서「나랑 당신이 언제 친구이기라도 했나요?」진지하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세게 뿌리치는 건 무례할 거다. 샘은 고민했다.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뒤로 물러서라 요구하려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걸까. 사탄아, 썩 물러가라?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샘의 눈으로 제일 먼저 히끗히끗한 흰머리가 들어왔다. 『의사는 의사인데 사람은 치료하지 못 하는 그런 의사일세.』 『그럼 수의사이신 모양이군요.』 『바로 맞췄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동시에 깨달았다. 남자는 샘을 병원으로 주사를 맞으러 온 개 다루듯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끙끙대는 골든 리트리버의 털가죽을 쓰다듬으며「착하지?」이런 거다. 스트레스를 받은 개에게 개껌을 내밀었음 - 자신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차린 남자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직업이 직업이라지만 사람과 개를 착각하다니. 『앗, 미안. 버릇이 되서!』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그리고는 연거푸 사과했다. 『미안하네! 이상하게 오해받을 짓을 저질렀네. 하지만 맹세코 수상한 의도는 없었다고.』
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른 사람이 먼저 반응했다. 『수상한 의도는 없으셨다고라... 아앙?』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두 사람은 흠칫거리며 위를 쳐다보았다. 잔뜩 굳은 얼굴인데 오로지 뺨만 붉다. 『그런 허튼 변명을 믿으라고? 이놈이 어디서!』 떡 벌어진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음성치곤 톤이 대단히 높았다. 『나에게 한 번 죽어봐라.』 칙칙폭폭 연기를 뿜는 기차가 차단기 신호를 무시한 채 힘차게 전진하려 했다. 샘의 머릿속으로 찢어지는 경종이 울렸다. 진정하라며 두 손을 들어올렸지만 아마도 그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딘!』 『이보쇼. 우리 얘기로 합시...』 『이 늙다리가 순진한 아이를 꼬셔서 뭘 어쩌려고!』 『오해야! 오해라고! 제발! 엉뚱한 사람에게 주먹질 하지 마!』 『이 변태 자식! 오늘 임자 만났다.』
펄펄뛰는 딘의 모습에 수의사 양반은 단단히 얼은 눈치였다. 샘은 눈치껏 신호했다. 『도망쳐요!』 그리고는 냉큼 뒤따라가려는 딘을 가로막았다. 『빨리 가요!』 남자는 샘에게 고맙다고 눈짓하며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자알~한다. 새미. 얼마나 빈틈 투성이면 같지도 않게 놈팽이가 와서 수작을 걸고 말이야.』 설명하고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부지 어린애를 야단치는 형의 태도에 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침 내가 제때 발견해서 망정이지, 아님 끌려갔어.』 그는 확신했다. 『끌려갔다고!』 그래서 분을 못 삭이고 씩씩거렸다.
나는 그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아 - 편의점 강도와 맞붙어 이길 자신도 있다. 딘과 비교하자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흑심을 품은 멍청이에게 끌려가 험한 짓을 당할 정도로 엉망인 건 아니다. 핸디캡이 없는 상황이라면 성인 남자 둘을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은 분명 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들을 일종의 테러리스트로 양성시키려 했고 - 그 테러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악령들이라서 천만 다행 - 남들이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점에서 밑변의 중점으로 내린 선분은 밑변에 수직이라는 걸 두고 머리를 쥐어싸고 있을 적에 그는 형과 같이 판크라티움을 강제로 익혀야 했다. 그들이 태어난 곳이 현대 미국이 아니라 기원 전 스파르타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수영, 달리기, 격투기... 덕분에 허점을 노리고 손을 뻗어 상대의 목을 조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나이도 많은 영감에게 끌려가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한다는 가정 자체가 웃기다.
가슴 위로 두 팔을 깍지끼고 딘은 도리질했다. 『하나도 안 웃겨, 새미. 실제로 끌려갔었잖아. 미네소타 주에서의 일, 기억 안 나? 끼꺼덕 소리나 내는 고물 트럭을 모는 괴상한 영감에게 납치당했던 주제에. 술집 앞에서!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울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딘은 계속해서 으르렁댔고,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려 했다. 『자식아. 제발 부탁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란 말이야!』 『과장 좀 하지 마, 딘. 그 남자는 내가 사래가 들려서 걱정해준 것뿐이야.』 『말도 안돼. 걱정한다면서 남의 등을 막 쓰다듬고 그러니? 내가 봤을 적에 그건 완전히 성희롱이었어! 조금 더 나갔으면 그 자식이 네 넙적다리를 만졌을 거다.』 『그만해, 딘.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거 아냐.』 『임마. 네 형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앗! 그 늙은이의 눈빛을 네가 못 봐서 그래!』 『그래도 그 남자는 내 가슴은 안 만졌어. 형이 집적거리던 여자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삐진 동생이 눈을 흘기자 딘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팔을 활짝 벌렸다. 『이봐, 똥강아지. 왜 비교를 하필 그 따위로 하냐.』 『그 여자들, 젖꼭지 만졌다고!』 『그게 뭐가 대수냐. 여자들이잖아.』 『젠장! 그럼 나도 형처럼 말할래.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날 만졌다. 그게 뭐가 대수야!』 『어허,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새미.』 딘은 차갑게 말하며 경고조로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렸다. 『정말로 그랬다간 난 그 자식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일 거란 말이다.』
엄청난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아님 단순히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샘은 다리가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두 눈만 꿈뻑거렸다.
『하, 하지만 나는 그 여자들을 안 죽일건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딘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 대신에 넌 날 죽이려 덤빌 거 아니냐.』 『어... 그게...』 『착하구나, 새미.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막 감동 먹는다.』 거기까지 말한 딘은 기색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정신을 놓고 있는 샘을 억지로 차에 밀어넣었다.
Posted by 미야
2008/02/14 19:19
2008/02/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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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샘은 이게 무슨 신종 게임인가 싶었다. 사흘에 걸쳐 딘이 시선을 피했다. 똑바로 쳐다보며「양말 벗고 빨리 가서 발 씻어」라고 말한게 억만 년 전으로 지금은 형의 눈동자 색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했다. 그렇다고 골이 났거나, 불만이 쌓인 눈치는 아니다. 따로 할 말이 있었다면 딘은 진작에 샘을 바닥에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는 남이 실수로 똥을 밟으면 즉석에서 얼레리꼴레리 놀려먹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샘이 노트북을 꺼내들고 다른 일에 열중할라 싶으면 기회는 이때다 뒤에서 빤히 쳐다 보았다는 거다. 뒷통수가 쏘는 것처럼 아파「왜?」라는 표정으로 돌아보면 무기를 점검하는 척하며 얼른 딴청을 부리긴 했지만.
결국 샘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저게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먼.
엄마가 돌아가신 날도 아니다. 아빠의 생신도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외삼촌의 결혼 기념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샘은 숫자가 잔뜩 그려진 달력을 한참동안 쳐다봤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딘이 혼외정사를 즐기다 실수로 임신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딘의 배가 좀 앞으로 나오기도 했다.
『임마! XY의 염색체를 가진 동물은 암만 재주를 굴러도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거, 모르냐?』 머리 좋다던 동생의 생물학 점수는 낙제였다. 얼토당토한 추정에 버럭 고함부터 질러댔다. 『게다가... 뭐? 배가 나왔다고?』 탁탁 소리가 나게끔 잔근육이 가득한 배를 두둘겼다. 『출렁거리는 삼겹살을 때려선 이런 탱탱한 소리는 절대 안 난단 말이야!』
그러나 내심 뜨끔하는게 있어 딘은 오늘 저녁만큼은 맥주를 안 마시기로 결심했다. 맨날 사냥한다고 뛰어다니는게 아니다. 요즘처럼 개점 휴업인 상태에선 잉여 칼로리는 고스란히 살가죽 속에 남는다. 그런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퍼마셨고, 베이컨 치즈 버거를 맛있게 씹었다. 입맛을 다시며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맨날 입는 바지가 여전히 헐렁하다고 방심했다간 바비 아저씨의 후덕함을 모방하는 건 금방이다. 오래된 저택을 탐색하는 와중에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이 꺼졌다고 하면 놀림감밖엔 되지 않는다. 아아, 제발 부탁이니 이 배꼽 아래로 잡히는게 군살이 아니라고 해줘. 숨을 멈춘 채 동생 모르게 배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임신 아니야. 안 했다고. 반대로 내가 임신을 시켰다면 또 모를까.』 『시켰구나.』 『아냐!』 『그럼 뭐가 문제야, 딘?』 변호사 지망생답게 (비록 과거형이긴 해도) 샘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냈다. 『임신이 아니라면 다른 까닭이 있다는 거군. 그렇지?』
딘은 내심「당했다」생각했지만 이미 동생은 갖은 방석을 끌어다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샘은 오랜만에 형과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그깟 뱃살 운운에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는 형의 반응이 재밌기도 했다.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무덤에 들어간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시신에 말뚝을 힘차게 박아대는 인간이 고작 5파운드 - 2.2kg의 살덩이에 우거지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웠다. 확언하거니와 딘의 그런 행동은 순전히 엄살이다. 어차피 윈체스터 집안엔 간경화나 비만으로 고생했다는 사람은 없다. 편안하게 쿠션 위로 등을 기대면서 샘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대신 악마가 꼬여 진작에 인생을 조졌지만.
샘의 냉소적인 미소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해석한 딘은 발끈했다. 『우~우~웃었어?!』 『설마. 내 목숨은 하나밖에 없거든.』 『거짓말 말아. 방금 웃었잖아! 욘석아!』 『진짜입니다, 형님.』 『못 믿겠는데. 너, 지금 뒤로 손가락 꼬고 있지.』 『미안해. 천 개의 팔을 가진 관음보살이라면 뒤로 손가락으로 꼬는 용도로 하나쯤 남겨두었겠지만 슬프게도 내 팔은 딘이 보다시피 딱 두 개밖에 없다고.』 거기까지 말한 샘은 옆으로 와서 앉으라는 의미로 쿠션을 탁탁 두드렸다.
그는 동생의 낯간지러운 요청을 단숨에 거부했다. 팔짱도 꼈다. 나는 네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는 똘똘이가 아니란다 - 하지만 이마에 큼직하게 내걸린 나이키 에어 광고를 보고도 샘은 그런가 보다 가볍게 넘겼다. 이럴 적엔 다르게 구슬러대면 되니까. 『나, 목 말라. 냉장고에서 맥주 가져다 줘.』 『뭐?』 『맥주.』 보통의 형님들은 네가 직접 가져다 마시라고 버럭질을 한다. 그런데 딘 윈체스터는 얼른 달려가 냉장고를 열었다. 뿐만 아니다. 이쪽에서 어설프게 돌리는 시늉을 하면 손수 병뚜껑도 따준다. 차마 부끄러워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먹여달라고 부탁을 하면 우유병을 물리는 기분으로 병 주둥이를 기울여 입가에 대줄 것이다. 트림하라고 등을 토닥거리지만 않으면 다행 - 그래도 나름 이점은 많다. 아기처럼 굴면 딘은 경계심을 풀고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샘이 다 자란 어른이고, 자동차에 앉아 기어 조작을 할 줄 알고, 키가 198cm나 되고, 남의 머리 꼭대기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는 걸 잊어버린다. 대신 묘하게 안절부절해 하면서 귀여운 아기 동생이 괜찮은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든다.
이쯤해서 인정해야만 할 거다. 샘은 찬찬히 뜯어보는 딘의 시선이 좋았다.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걸어가는 미모의 여배우라도 된 기분 - 비유를 해도 참으로 걸작이군 - 딘이 빤히 쳐다보는 걸 즐기며 천천히 맥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순간적으로 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샘은 사래가 들린 것처럼 가볍게 기침했다. 『있잖아, 형이 열 세 살이 되던 해에 말이야...』 『뜬금없이 웬 옛날 이야기?』 눈썹을 찡그리는 상대를 향해 샘은 집중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해보였다. 『고백 시간이라고, 형님.』
딘이 드디어 열 세살이 되었다. 틴 에이저가 되었다. 유대 식의 거창한 성년식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딘은 세상이 갑자기 확 달라진 것처럼 우쭐거렸다. 평소 아이들 생일을 챙기지 않던 존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답지 않게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느냐 물어왔다. 『나는 내 방을 갖고 싶다고 말했어.』 『맞아. 그래서 어빠는 크게 당황하셨지. 왜냐하면 형이 청바지나 시계를 갖고 싶다고 말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셨으니까. 실제로 아빠는 손목 시계를 하나 마련해 두기까지 하셨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곤 묻지 말아.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포장된 박스를 몰래 풀어봤노라 고백하는 건 쪽팔리니까.』 『그거 대단히 쪽팔리겠구나.』 딘은 어이가 없는지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딘은 자기만의 방을 원했다. 그가 요구한 건 최신 카셋트 플레이어도, 게임기도, 비싼 운동화도 아니었다. 존은 아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십대가 된 장남이 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이해했다. 바야흐로 피가 끓는 시절이었고, 갓난쟁이 시절부터 궁둥이 밑으로 찰싹 붙어있던 동생을 어렵사리 따돌리며 자위를 해야 하는 딘의 고충을 납득했다. 침대에 엎드려 도색잡지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팬츠 속으로 손을 넣을 수는 없다. 욕구는 있는데 처리는 불가하다? 삐뚤어지는 건 잠깐이다. 남자 대 남자로서 존은 아들의 불만을 접수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단, 샘은 이해 자체를 못 했다.
딘이 좋아라 하며 개인 물건을 박스에 넣는 걸 보고 샘은 할 말을 잃었다. 낑낑대며 형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불을 절반은 씹어먹었다. 숙제를 빼먹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상급생 세 명에게 무지하게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왔지.』 샘이 마시던 맥주를 빼앗아 입안에 털어넣었다. 오늘 하루는 안 마시겠다는 맹세는 걷어치웠다.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자 어쩐지 뿔딱지가 났다. 『나는 훌쩍거리며 우는 널 다그쳐서 널 때린 녀석들 이름을 알아냈고.』 『톰슨, 조나단, 캐빈.』 『질린다. 이름도 기억하냐. 하여간 나는 그 길로 뛰쳐나가선 녀석들을 묵사발로 뭉개버렸어.』 『그랬지.』 『그 사실을 안 아빠가 나에게 무지하게 화를 내셨어.』 『하는 수 없지, 딘. 애들 이는 부러뜨리지 마라 - 아빠가 항상 형에게 하던 말씀이었잖아.』 『억울해. 난 그저 코피만 내게 하려고 했는데 조준이 잘못된 것뿐이야.』
조준이 잘못되었든, 아니든, 존은 싸움을 한 아들을 꾸짖으며 펄펄 뛰었다. 그리고 방을 따로 가져도 된다는 결정을 그 날로 취소해버렸다. 막연히 외출 금지를 짐작했던 딘에겐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있잖아... 딘.』 그쯤해서 샘은 더듬거렸다. 그리고 한참동안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일부러 그랬어.』 톰슨에게 뻐드렁니라고 욕했다. 조나단에게 모래를 뿌렸다. 캐빈에겐 발길질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급생들은 코흘리개 샘에게 본때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일부러 그들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거냐?』 『맞아. 때리라고 내가 도발했어.』 『흐응~ 왜 그랬느냐고 묻기도 싫어지는군.』 딘이 고개를 돌리자 샘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혀, 형이 싸우고 돌아오면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알고 있었거든. 그, 그래서...』
대꾸하는 딘의 말은 샘에겐 충격적이었다. 『알고 있었어.』 『뭐?』 『이 멍청아. 넌 그걸 제대로 숨겼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어. 박스에 넣었던 내 소지품을 도로 풀어놓았을 적에 네 표정은「만세, 이제 됐다!」였거든. 이 녀석이 일부러 얻어맞고 와서 날 도발했구나 하고 깨달은 건 순식간이었다고.』 샘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그런! 딘은 지금껏 나에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뭐 하러 하냐, 그런 말을.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딘은 멎적게 웃었다. 『나는 그다지 네게 화가 나지 않았다고.』
샘은 조심스러워졌다. 『화가 안 났다고?』 『그래. 대신 웃겼지.』 『뭐?』 『손가락에 침을 발라 눈가에 문지르면서「형, 맞은 곳이 아파 죽겠어. 엥엥」엄살을 부리는 건 귀여웠다고. 네가 어떻게「우리 마을」이란 연극을 했는지 모르겠다. 넌 진짜지 연기력이 꽝이야. 자, 그러니까 새미. 이쯤해서 그만둬. 네가 숨겨둔 비밀을 하나 어렵게 고백했으니 사나이 대 사나이답게 나도 비밀을 하나 고백하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이 형에겐 안 먹히니까.』
맞받아치는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모든 걸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그, 그래도 형이 모르는 건 있어!』 『그래? 내가 그럼 뭘 모르고 있지?』 『내가 형을 사랑한다는 거!』 뜬금 없는 고백에 딘의 눈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뭐?』 『거봐. 당황하고 있잖아. 그건 몰랐지? 그건 몰랐을 거다! 그렇고 말고!』 샘은 바보처럼 의기양양해 하며 어깨를 부풀렸다.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동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아얏!』 그리고 흘겨보며 말해주었다. 『이 바보야. 이 형은 그것도 이미 알고 있어.』
Posted by 미야
2008/02/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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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올린다고 했는데 그만 깜빡했습니다. ^^ 으아, 몸에서 식용유 냄새가 진동하네요. 다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그런데 올라가는 글은 꾸리꾸리하다...;; ※
피부 위로 도드라진 속박의 문양이 파랗게 빛을 내기 시작했을 적에 지니는 숨어 있던 장소로부터 뛰어나와 먹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갑작스런 기척에 흠칫하고 떨던 남자는 평균치보다 반응이 월등하게 빨라서 이쪽에서 채 덤비기도 전에 호전적인 호박색 눈을 크게 부릅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니는 그 눈빛에 겁이 났다. 그러나 결심하고 방아쇠를 채 당기기도 전에 부채꼴 모양의 푸른 광선이 남자의 이마를 눌렀고, 인간의 의식은 숟가락처럼 구부러졌다.「이럴 수는 없어!」라는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눈꺼풀이 감겼다. 잡아 먹고, 먹히는 그런 세계... 누가 먼저 상대의 목덜미로 이빨을 들이박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보다 빠르면 살 것이고, 처지면 죽는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남자가 떨어뜨린 산탄총을 멀찍이 치워놓은 뒤, 지니는 짧은 숨을 들이켰다. 말로만 들었던 헌터와 직접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싫든 좋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헌터는 그를 죽일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정확히 꿰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집어들 수 없는 것 - 양의 피가 묻은 은칼을 발견한 지니는 몸서리를 쳤다.
《20년 이상이나 완벽하게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지.》 이제 그의 둥지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으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떠나야겠군.》 허리를 펴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쪽으로 다른 헌터들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갈지자로 느릿느릿 기어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나무 판자를 옆으로 치웠다. 얇은 판자로 어설프게 가려놓은 바닥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크기의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매설 하수관까지 직접 내려갈 수 있었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 있긴 있었지만 냄새에 둔감한 정령에겐 다행스럽게도 코를 찌르는 썩은내는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끙끙 신음하며 의식이 없는 남자의 두 다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머리부터 구멍 속으로 밀어넣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남자를 거꾸로 떨어뜨리고 나면 다음으로는 위장용 판자를 도로 덮고 그 또한 하수관으로 얌전히 내려가면 되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그곳을 출구로 이용한 탓에 눈을 감고도 외벽으로 삐져나온 철근을 사다리처럼 밟을 줄도 알았다. 행여 재수가 없어 미끌어지더라도 저 아래엔 젖은 낙엽과 들쥐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구멍의 위치를 짐작하며 지니는 남자의 발을 세게 잡아당겼다.
『씨발! 그만 좀 잡아당겨!』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른 채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을 굴렀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다. 아니, 그것보단 발길질을 당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손에는 무슨 영험한 보물인양 낡은 신발 한짝이 쥐어져 있었고, 덤으로 외짝 양말도 하나 얻었다. 믿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앉은 남자는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어, 어떻게?》 몸을 곧추세우기도 전에 사내가 곧장 덤벼들었다. 그리고는「볕에 널어 말리려다 엉망으로 상해버린 영양 고기 - 임팔라」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쓰벌 놈의 자식아! 임팔라를 몰고 최대 속도로 곧장 가로수를 향해 돌진해야만 했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냐?! 피눈물 나왔어, 피눈물! 제기랄, 에어백을 달던가 해야지... 쇠창살도 아닌 운전대가 사람 갈비뼈를 그렇게 쑤셔대도 되는 거냐고. 야! 듣고 있냐?! 내 보물단지 임팔라가 종잇장처럼 부숴졌단 말이다! 쾅, 와직, 우직끈! 표정이 그게 뭐야. 내가 지금 외계어로 떠들고 있냐?! 아니잖아. 산산조각난 유리창 밖으로 내 뼛조각이 튕겨나갔다고!』 눈에 보이는게 없는 듯했다. 남자는 고함을 지르며 눈앞에 자리한 정령을 있는 힘껏 떠밀었고, 지니는 얼굴을 바닥에 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내 임팔라!』 양탄자는 알아도 자동차는 전혀 모른다. 당황한 지니는 몸을 굴려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자 애쓰는 그의 노력을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무릎을 세워 등짝을 힘껏 찍어눌렀다. 『으으, 내 임팔라!』 숨을 몰아쉬고, 욕설을 퍼부으며, 이판사판 죽어보자는 식의 태도로 날뛰었다. 『젠장! 새벽 다섯 시에! 나체로 발광하는 새미 앞에서!』 지독하게 흥분한 탓에 목소리가 철쑤세미처럼 갈라졌다. 『최악이야!』
고통과 모멸감이 뒤섞인 어지러운 눈빛이 지니의 머리 꼭대기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지니는 깨달았다. 이것은 분노다. 사악하리만치 깊고 어두운 분노였다. 어째서? 지니는 그가 귀신처럼 화를 퍼붓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잠에서 깨어난 것도 놀라웠지만 바위를 둘로 쪼개버릴 기세로 폭발하는 것 역시 놀라웠다. 뭐가 잘못된 걸까. 지니의 힘은 사막을 횡단하는 자에게 푸른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여준다. 그 낙원과도 같은 푸르름에 나그네는 고단한 여정을 포기하고 마침내 평온한 안식을 얻었음에 기뻐하게 된다. 그것은 미끼이자, 먹이로 바쳐진 목숨에 대한 댓가였다. 지니는 자신의 힘이 혹시 송두리째 메말라버린 건 아닌가 의심하며 질문했다. 《꿈을... 꿈을 꾸지 않았는가.》 『그~래, 신나게 꿨다. 이 개자식아. 무지하게 야한 꿈이었다! 검정색 끈팬티를 입은 여자가 한 다스나 나와서 랩댄스를 췄다고. 그래서 내가 네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냐?』 펄펄 뛰며 퍽 소리가 나게끔 지니의 콧잔등을 내려쳤다. 지니의 얼굴은 교수형을 당한 여자의 것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든 말든, 아무래도 헌터는 그 순간만큼은 주먹질 정도로는 정령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걸 깜빡 잊은 듯했다. 빠른 속도로 되감기는 비디오 테이프의 한 장면처럼 두두다다 양손 펀치가 작렬했다.
『형? 지니는 목졸라 죽일 수 없어.』 『오야.』 『그리고 아무리 막대기로 때려도 코피가 안 나와.』 『누가 뭐랬냐.』 『그런데 왜 막대기를 들고 때렸어?』 사냥이 끝나면 형제들은 의무적으로 늘 가까운 술집에 들려 회포를 풀었다. 단순히 긴장을 풀고 즐기려는게 목적은 아니다. 뭔가를 죽였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황폐케 만들었고, 특히나 감정이 예민한 샘은 한동안 소리내어 웃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어두워지곤 했다. 그리고 사흘 가까이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다녔다. 『내가 왜 막대기를 들었냐고?』 술 자체가 그리 큰 위안이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텁텁해진 뱃구멍을 속일 뭔가로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것 역시 딘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딘은 주량이 늘었다. 『흥! 너도 봤잖아, 새미. 그 그지 똥갱이 자식이 내 신발을 홀랑 벗겨갔다고. 순간 꼭지가 확 돌더라고.「오늘 저녁은 오뚜기 카레」라는 식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잖아?』
샘은 데킬라를 두 잔 마셨고, 주량이 센 딘은 이미 그 세 배를 먹었다. 앉아서 시작한지 이제 15분이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썹을 찌푸린 샘은 형의 몫으로 놓여진 유리잔을 슬그머니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알콜을 감추려는 행동에 딘의 한쪽 눈썹이 활처럼 휘었다. 우직스런 사내들의 세계에서 그런 치졸한 행동은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아닌게 아니라 딘은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뭐하는 거냐. 내 동생이 아니었음 앞니가 부러졌어, 새미.』 『그렇다면 난 위조한 보험증을 들고 치과에 가야겠네.』 『좋아. 선생님 앞에서 아~ 하고 입 벌리렴.』 『싫어. 딘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잖아.』 『겁 먹지 마. 형이 어금니가 썩지는 않았는지 살펴볼테니. 아아~ 크게 입을 벌리세요.』 『저리 가, 영감탱이!』 『어익후, 우리 동생 화났다.』 『내가 딘보다 곱의 곱절로 양치질을 한다는 걸 잊지마.』 『엣헤헤. 그건 그렇지.』
낄낄거리고 웃음를 터뜨리는 딘을 보고 나서야 샘은 마음을 놓았다. 솔직히 쇠몽둥이로 지니를 두둘겨 패는 그를 발견했을 적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딘은 쓸데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면 비무장인 여자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있었지만 그럴만한 까닭이 충분하지 않으면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요컨대 샘이 목격한 광경은 하수구에서 순결한 천사가 올라오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양의 피를 묻힌 은칼은 고스란히 냅두고 다짜고짜 쇠몽둥이로 퍽퍽? 당신이 정녕 딘 윈체스터 맞소이까?
『저어... 있잖아, 딘.』 『저 갈색머리 아가씨, 네가 보기엔 어떠냐, 새미.』 캐묻는 듯한 동생의 시선을 피해 딘은 왕가슴 바텐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일부러라고밖엔 설명이 안 되는 꾸며낸 목소리로 음담패설을 주워담았다. 『형은 저 여자 다리를 가로로 찢고 싶어. 와우, 무지하게 뜨거울 것 같아. 저 멋진 엉덩이를 보라고. 예술이 따로 없구나. 가서 말을 붙여볼까?』 「어디 한 번 그렇게 해보시지?」순식간에 샘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형은 천치 바보야!』 『그래. 그러는 너는 구제불능의 얼간이고.』 『못난이.』 『계집애.』 『술이나 잔뜩 마시고 취해버려랏.』 『네 말대로야. 이 형은 머리가 망가지도록 잔뜩 취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찰나이긴 했다. 딘은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폐된 비밀들과 결코 누설되지 않을 거짓이 그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회전목마가 광대의 우스꽝스런 음악을 연주하며 거꾸로 뒤집히려 했다. 그의 시선이 동생의 눈동자에서 코로, 다시 입술로 내려갔다.「안돼」주머니 깊숙이 찔러넣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붕대로 묶인 주먹은 이미 바위처럼 단단했고, 어깨가 경련을 일으켰다.「나는 그걸 하지 않을 거야」가만히 눈을 감았다. 좋은 꿈, 그리고 원하던 꿈...「참아」딘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샘은 바짓자락의 주름을 잡아당기다가 무척이나 어색해하며 물어왔다. 『괜찮아? 저어... 정말 괜찮은 거야?』 폭주하는 영혼따윈 암염탄으로 쏘아버리면 된다. 딘은 가슴에 박힌 커다란 소금 결정을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거짓말했다. 『괜찮고 말고.』
Posted by 미야
2008/02/07 11:52
2008/02/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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