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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끝까지 갈 수 있으려나. 수정본입니다. 심각하게 말씀드려 빨간망토 레죠 캐릭터의 오리지널 성격은 잊으시길 바랍니다. 내용은 엉망진창, 만사 뒤죽박죽입니다. (도망간다)


생긋 웃으며 이쪽을 쳐다본다. 하여 제1단계 경계 경보령 발생.
로머디스는 알아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자고로 폭풍 영향권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레이워즈 후작 가문의 녹을 먹고 산지 오늘로 만 10년, 그동안 뼈저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그의 주인은 기분이 좋아도 웃고, 기분이 더러워도 웃는다는 거였다. 그러니 일단 웃는다 싶으면 살살 피하고 본다. 점쟁이도 아닌데 저 작자가 기분이 좋아 웃은 건지, 아니면 개차반이라 웃은 건지 그걸 어떻게 아누.

속으로 오래된 격언 하나를 읊었다.
맑은 하늘에서도 천둥번개는 잘만 떨어진다. 날씨 좋다고 방심하다간 저승간다.
『각하?』
『(피식)』
어이쿠. 로머디스는 목을 움추렸다.
대답 대신 다시 살인적 미소가 날아온다.
단언할 수 있다. 주인 나리는 지금 대단히 저기압이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다.
그레이워즈 후작의 기분을 저리도 벅벅 긁어댄 원흉이라면 뭐가 있을까.
음, 그러고보니 최근들어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여성 덕분에 심기가 불편한 주인이었다. 남자인 이상 여자에게 인기 많음을 싫어할 리는 없지만「레죠니임~!!」하고 스토커처럼 따라다녀서야 기분이 유쾌할 리 만무하다.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 - 산더미처럼 쌓이는 선물공세도 지겹고,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드는 애정 고백 편지도 지겹다. 연회장에서 맨발로 달려나와 두 볼을 붉히든 말든, 제발 화장실 갈 적엔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편한 마음으로 싸자. 뒷통수가 따가워서야 시원하게 볼 일도 못 마친다.

로머디스는 에리스 양의 머리카락만 보여도 후작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던 걸 기억했다. 특유의 포커 페이스가 흐트러진다는 건 보통이 아니라는 거다.
드디어 한계점을 돌파했다. 여성에겐 절대로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는 기사의 맹세가 드디어 깨어지려나 보다. 높으신 분의 명령이면 어쩔 수 없다. 때리라면 때리고, 땅에 묻으라면 묻는다. 후작은 여성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자기 기분에 거스르면 그걸로 끝이다. 특유의 웃는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하면 왕조차 눈치를 보고 달아나는데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같은 일개 기사는 알아서 기어야 한다.

『로머디스?』
『예. 각하.』
어떻게 할까요. 몰래 쳐들어가서 에리스 양의 다리 뼈라도 분지를까요.
『사냥 준비를 해두세요.』
짐작도 못한 예상 밖의 명령에 로머디스는 멀쭘거렸다.
에- 사냥입니까. 이 계절에요.
달력은 8월 중순을 가리키고 있다. 밤바람은 제법 차갑지만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는 해골 타는 빠지직 소리가 들려온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악마의 숨결이 녹아 있다. 이런 날씨엔 농부들도 밭 일을 하다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사치들도 오후 2시엔 가판대를 아예 치워버린다. 따라서 야외 스포츠는 미친 놈 아닌 이상에야 날짜를 훨씬 뒤로 미루는 법이다. 더워 죽겠는데 무슨 사냥이냐. 말을 타고 3시간만 가볍게 달려도 엉덩이가 땀으로 짓무를 터인데 무슨 개뿔 같은.

그래도 주인을 향해「당신 지금 돌았수?」라고 말을 못하니 신세가 서럽다. 후작은 자기 말에 토를 달고 늘어지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뭣 모르는 신참이 천진난만하게「왜요?」라고 말했다가 반죽음 당했다는 이야긴 유명하다. 그러니 고개 숙인다. 얌전히 수긍하고 말씀 받들어 모실 준비를 갖췄다.

『솜씨 좋은 자 서른 다섯 정도를 준비시키세요.』
『에-』
『개는 풀지 말고.』
『에~?』
『일정은 한 사나흘 걸릴 겁니다.』
『에에~?!』
무슨 인원이 서른 다섯이나 됩니까. 개도 풀지 않고요? 구두 없이 무도회장에 나가라면 나갑니다. 하지만 개가 없어서야 사냥이 되지 않지요. 그것도 사나흘씩이나 걸려서 사냥합니까? 수상합니다, 수상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냥이 아는 거 같습니다만.

이렇다 말도 없이 가만히 있으니 그의 주인이 이를 드러내고 웃기 시작했다 - 성질을 부렸다.
『로머디스?』
『예!! 준비하러 갑니다!!』
이런, 내 주책 봤나. 저 인간을 긁어서 뭐하겠다고.
로머디스는 짧게 대답하고 꽁무니부터 내뺐다.
알게 뭐냐. 사냥이 아니라 무력 시위라고 해도 내 책임은 아닌데, 뭐.
문을 닫으면서 가만히 성호나 그었다.
그레이워즈 후작의 분노의 화살을 고스란히 얻어맞을 사람을 향하여 삼가 묵념이다.

한편, 로머디스가 물러나기가 무섭게 레죠 그레이워즈 경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억지로 꾸민 가식된 미소를 들입다 집어던진 그의 표정은... 묘사는 생략하겠다. 그저 미친 호랑이처럼 살벌했다고만 적겠다. 지금은 그거 하나로도 충분하다.
서른 아홉 번째 여름까지 살아오면서 이토록 화가 치민 적은 처음이다.
『겁도 없이 감히 나에게!』
짜증이 치밀어 버럭 고함부터 질렀다. 이도 부득부득 갈아봤다.
시골 촌뜨기 귀족 - 그것도 돈주고 작위를 산 사꾸라 인버스 남작이 자신이 그.렇.게.나. 탐내하던 포도밭을 경쟁자인 제라스 백작부인에게 옳타꾸나 팔아넘겼을 적부터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었다. 물론 자유 시장경쟁의 원칙에 의하야 더 많은 낙찰가, 그것도 무려 세 배의 가격을 적어낸 백작부인이 옥션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있었다는 점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애가 탄 나머지 손수 친서를 보내「반드시 나에게 그 밭을 파시오」라고 압력을 보냈던 걸 이 마당에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돈이라면 껌뻑 죽는 시골 귀족이 얌전히 그 말을 들을 거라곤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찌된 건지 다 이해한다. 팔을 벌려 하여간 수긍한다. 그래봤자 포도밭이다. 전국에서 가장 맛좋은 포도가 생산된다는, 황금 신의 축복을 독차지한 포도밭이면 또 어떠냐. 그러니까 기분만 약간 상했을 뿐, 더 이상「남의 것이 되어버린 훌륭한 포도밭」에 연연해하진 않는다. 그런 계집애 같은 짓을 할 것 같나. 안 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인버스 남작의 열 여섯된 아들이 자신의 조카 제르가디스의 면상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는 이야기엔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새까맣게 낮은 신분의 자가 감히 그레이워즈 가문의 사람에게 손찌검을?!
손톱으로 책상을 톡톡 두둘겼다.
슬레진 제국의 열 귀족 중 하나인 우리 가문을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분을 참지 못해 눈앞에 펼쳐진 서류를 꾸깃 구겨버렸다.
더 열받는 사실은 조카 제르가디스가 인버스 남작 놈과 그 자식 놈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잘못했으니까 때렸다, 이런 안하무인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잘못? 무슨 잘못! 하!

「숙부. 맞은 사람은 나야.」
「물론 그렇지요.」
버르장머리 개차반 조카는 반말에다 눈까지 치켜떴다.
「그런데 왜 역정은 그쪽이 내는 거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한술 더 떠서 그의 바보 조카는 시큰둥한 얼굴로 여행이나 떠나버렸다.
여행이다. 이 마당에 여행이란다. 인버스 남작의 아들에게 결투라도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물어봤을 적엔 - 사실은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물어봤을적엔 - 웃었다. 세상에. 누가 그레이워즈 가문 사람 아니랠까봐 웃은 것이다.

조카 녀석이 말에서 낙마하여 팔이 부러져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레이워즈 후작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그 감상이 달랐다.
팔만 부러지면 억울하다. 기왕이면 녀석의 목도 부러졌음 좋겠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으르렁대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찍었다.
분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잠을 편히 잘 수 없다.
그의 모친 왈, 속 좁은 꿍얼쟁이라고 아들을 흉봤다.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지고는 못 산다.
그러니 인버스 남작의 위장에 스트레스성 구멍이라도 뚫어놔야...
『어디 두고 봅시다.』
전형적인 악당의 코멘트를 읊조리며 레죠 그레이워즈 후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Posted by 미야

2008/03/18 12:57 2008/03/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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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mie 2008/03/18 15:13 # M/D Reply Permalink

    어머나, 너어-무 너무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미야님의 슬레팬픽을 보네요. 더군다나 이번건 제가 전부터 계속 보고 싶어했던 거라 더 기뻐요. 아무쪼록 이번엔 완결까지 보시기를...요즘 많이 힘드실 텐데 크게 화이팅 한번 외쳐드리고 싶네요.

  2. 엘리바스 2008/03/18 22:49 # M/D Reply Permalink

    아악! 드디어 제 마음 속 간절한 염원을 들으신건가요!!!
    안그래도 곧 슬레이어즈 다음 작품(?)이 애니화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다시 근질근질해진 참입니다.

    미야님의 글이 타들어가는 속을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듯 하군요.
    제발.. 제발 짧더라도 완결을!(묵념-_-)

  3. 애플밀크 2008/03/20 09:46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 오오오, 미야님~♡
    그저 감격의 홍수 속에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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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anfic] -

금침대에 꽃베개, 천사의 깃털로 만들어진 이불을 덮고 공주님은 잠들었어요 - 남자니까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호사까진 바라지 않는다. 눈으로 봐서 적당히 깨끗하고, 손으로 눌렀을 적에 푹신거리면 된다. 까탈스런 성격의 누구 씨 동생처럼 천의 색깔, 이불의 두께, 세제의 잡냄새 어쩌고 불평한 적 일절 없다. 무릇 진정한 남자는 사소한 것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람 몸에 무거운 돌 이불을 얹어놓는 건 반칙이지...」
갑갑한 기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모로 돌아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눈꺼풀만 올려 떴다. 그리고 잘 돌아가지 않는 흐릿한 머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만히 분석했다.
벼랑까지 몰려 코앞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넘실거리는 파도가 가까이에서 보였다. 금방에라도 배는 좌초할 위기이고,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덩 소리를 내며 아래로 곤두박질하기 일보직전이다.
아찔한 위기감에 숨을 후후 불며 뒤로 엉덩이걸음을 해봤다. 그래봤자 적당한 공간 확보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앞으로 진격하는 것밖엔 허락하지 않겠노라며 코가 뾰족한 인간 말종이 등을 떠밀었다. 뭐야, 이거. 해적의 판자에서 고무 튜브도 없이 바다로 풀쩍 뛰어내리라는 것?

흘깃 어깨너머를 돌아다 보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는 동생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등을 찔러서 성가시다.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진 그는 누가 엎어가도 눈치조차 채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땀에 살짝 젖은 앞머리 탓에 여전히 애띈 모습이다. 그런 주제에 덩치는 남산인지라 그 옆에서 반으로 쪼그라든 딘은 팔을 폈다 구부리는 동작마저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놈이 왜 여기에...」
라고 생각했다가 실수는 자신이 했음을 깨달았다.
계속된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에 쩔은 그는「부탁이니 제발 신발이라도 벗어」라고 꾸중하는 동생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옷이 사람을 벗는 건지, 아님 사람이 옷을 벗는 건지, 아무튼 발버둥치며 겉옷에서 팔을 빼낸 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외에는 깨끗한 백지, 언제 TV를 켰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텍사스 지방으로 강한 돌풍을 동반한 폭풍우가... 』
노란색 투피스 차림새의 여자가 다소 긴장한 듯한 딱딱한 목소리로 일기예보를 전해왔다. 배경으로는 애들이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회색의 구름이 빠르게 떠다녔다. 그래봤자 이곳은 미주리라서 바람 사이로 마구 날아다닐 불운한 젖소는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딘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반대쪽으로 뒤집었... 뒤집으려 노력했다.
추측하자면 졸려 정신이 없는 나머지 제일 가까운 침대로 몸을 던진 모양이다.
결국 피해자는 딘이 아니라 샘으로, 78kg짜리 인간 폭탄에 얻어맞은 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멍한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곧 죽어도 자기 침대다 이거지. 어쩜. 옆으로 비키면 남극 빙산이 무너지냐.」
블랙 아웃한 형의 머리를 향해『이건 내 침대야! 형 침대는 옆이란 말이야!』고함을 질렀을 샘을 상상하자 허탈해졌다. 나아~쁜 놈, 팔짱을 끼고 절대로 비켜주지 않은 행태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 불쌍한 형님, 편하게 잠 좀 자자. 여기서조차 내꺼 네꺼 싸워야 하냐. 하루 정도는 양보해도 좋잖아. 텁텁한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싱글 침대를 설계한 사람은 애초부터 성인 남자 둘이서 매트리스에 나란히 누울 수도 있다는 걸 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는 표준 사이즈를 넘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필연적으로 겹쳐졌을 팔다리가 쿡쿡 쑤셨다.
 
온기 없는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는 건 정말 싫다. 끙끙거리며 빳빳하게 정리된 침대에 새 주름을 만들었다. 싸늘한 감촉에 움찔거리며 무릎을 오무렸다. 편하게 두 다리를 쭉 뻗었음 좋으련만, 가슴이 텅 빈것처럼 허전해서 차마 그렇겐 못 하겠다.
다시 따뜻해지길 기다리며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이 비단 이불이 네 이불이냐.」
비몽사몽인 와중에 존이 무뚝뚝하게 물어왔다.
「아님 이 육중한 돌 이불이 네 이불이냐.」
딘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존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감정이 메마른 것이 분명한 존은 무감각한 얼굴로「옛다, 돌 이불」하고 아들을 향해 바위를 던졌다.

답답한 기분에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그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코가 뾰족한 악당이 등을 콕콕 찔러댔다.
옆 침대로 옮겨가겠노라 마음만 먹고 꿈에서나 실행에 옮겼나.
고개를 뒤로 돌리자 아까처럼 웅크리고 누운 샘이 보였다.
「내가 진짜로 많이 피곤했나 보다. 계속해서 꿈만 꾸고 있잖아.」
어쨌든 그는 요의를 느꼈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부스스 일어났다.

전등은 켜지 않은 채 달빛에만 의지에 주섬주섬 바지를 내렸다.
시든 페니스로 변기를 조준하고 오줌 발사, 물 떨어지는 조로록 소리를 귀로 들으며 하품했다.
『형?』
덩달아 요의를 느꼈나 보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샘이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방안을 어슬렁거렸다. 딘은 다시 찢어져라 하품했고, 손도 안 씻고 화장실에서 얼른 나왔다.
『어... 비었어. 들어가.』
어디가 위쪽이고 어디가 아래쪽인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문에서 제일 가까운 침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기어갔다. 때려죽여도 잔다. 배게로 얼굴을 파묻곤 이번에야말로 보드라운 비단 이불을 덮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가 안 났다.
대신 방안을 빙빙 도는 걸 멈춘 샘은 가볍게 한숨을 쉬곤 딘의 옆으로 가서 도로 누웠다.
『음?』
거북살스런 바위 이불에 딘이 이마를 찌푸린 건 그로부터 약 3초 뒤다.

Posted by 미야

2008/03/15 19:37 2008/03/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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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기 2008/03/15 21:26 # M/D Reply Permalink

    샘으로 만들어진 돌 이불이라면!!!!!
    평생 참으며! 아니 즐기며 덮겠어요!!!
    그러면 딘으로 만들어진 섹시한 가죽이불도 따라오겠지요?ㅎㅎ

  2. 로렐라이 2008/03/16 01:17 # M/D Reply Permalink

    'ㅂ'* 올라온 소설을 보며 기쁨을 감출수가 없는 저였지요~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바위 이불 새미...ㅠㅠㅠㅠ

  3. 밤맛만쥬 2008/03/16 04:45 # M/D Reply Permalink

    돌이불 새미~평새 덮고잘 수만 있다면 그 무슨 행복이겠어요~아웅.
    결국 범인은 샘이었던가요~ㅋㅋㅋ 귀여워요

  4. 아이렌드 2008/03/17 12:30 # M/D Reply Permalink

    「옛다, 돌 이불」.....아버님이 허락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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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의 낭만이 아니라 라면과 밀가루 같은 생필 필수품의 절박함을 닮은 키스였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초코렛처럼 달콤한 - 이라는 전형적인 광고 문구 위로 두 개의 밑줄이 그어졌다. 이건 뭐 끝장이다 싶은 입맞춤 10위권 내로 당당히 진입이다. 제일 먼저 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튀긴 닭의 맛이 난다」라는 점이었다. 사과 맛도, 풍선껌 맛도 아닌,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딘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운게 불과 몇 분 전이니까 이 틈새로 적지 않게 찌꺼기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더럽고 지저분한 입안에서 서로의 혀가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비위생적이야
- 지극히 상식적인 샘이 가까이에서 고개를 흔들어댔다.
로맨틱하지도 않고 - 넌더리도 냈다.
샘은 어쩐지 재수 없게 굴고 있는 자신의 일부를 뒷발로 뻐엉 걷어찼다. 지금 그게 문제야? 반 고호가 묘사한「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잇몸이 문질러지자 귓속에서 벌레가 앵앵거렸다. 견딜 수가 없어져 신음 소리를 흘리며 딘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먹지도 않은 치킨의 맛은 더욱 강렬해졌고, 입천장을 자극하는 혀의 움직임에 머리가 흐릿해졌다.

『으응...!』
두 번째 벽돌 위로 다섯 번째 기왓장이 아슬아슬하게 얹혀졌다. 그것이 언제 균형을 잃고 소복히 주저앉을지는 하느님도 모를 것 같았다. 순서도 엉망, 모양도 엉망, 뒤뜰에 창고를 만든다면서 수영장을 파고 있었다. 설계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일하러 나온 인부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엉뚱한 삽질로 지하에 매설된 수도관에 구멍만 안 뚫으면 다행 - 찬란하게 빛나는 별은 사이프러스 나무 위에서 형형의 색채로 뒤섞였다. 눈을 감았음에도 무수한 작은 점들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샘은 반 고호가 미쳤던 것처럼 자신도 미쳐가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반 고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귀를 잘라야 할까.
어쩌면 이미 잘려나간 건지도. 딘이 그 손을 들어 귓불을 쓰다듬자 그저 흐느껴 울고만 싶었다. 온몸이 녹아 반투명한 젤리로 변한 것 같았다. 아니, 귀만 남고 나머지 부분은 송두리째 사라진게 분명했다. 머리도 없고, 몸통도 존재하지 않았다. 약한 부분이 반복적으로 어루만져지자 샘은 자신이 누구였고, 어디에 살고 있고, 무엇이었는지조차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숨 같은 건 안 쉬어도 좋다. 머리 위로 뜨거운 숯불이 올라가 있지만 상관 없다. 계속 이대로만 있을 수 있다면 영혼마저 불필요하다.
『딘.』
더욱 밀착하기 위해 고개의 각도를 바꾸며 형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사랑해.

그는 총소리라도 들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 균형을 잃고 뒹굴었다. 거기까지도 충분히 꼴불견인데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부릅뜨곤「올해가 서기 2019년이 맞나요?」식으로 허둥거렸다. 높이 400층의 마천루 밖으로 택시가 잠자리처럼 날아다니고, 경찰들이 불법 복제인간을 사살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유독한 산성의 비로 건물의 처마는 일찍이 부식되어 그 형태를 잃어버렸다.
검은 하늘. 그리고 검은 비. 유황불에 살 타는 냄새.
『미, 미안해!』
딘은 벽을 쳐다보며 연거푸 사과했다. 아직은 동생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엉뚱하게 테이블 모서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다신 안 그럴게. 정말이야. 맹세코 다시는...』

채 듣지 않고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딘은「왜?」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어서 샘은 화가 치밀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뭘.』
『다신 안 하겠다는 말.』
『그게 무슨...』
이마를 찌푸리며 무어라 반박하려는 입술을 빠르게 눌러 막았다.
『읏!』
『닥치고 키스 해.』
놀란 것이 분명하다. 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평소의 얌전하고 고지식한 동생에게선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샌님 같은 녀석이 보일 돌발 행동 역시 아니었다.

워, 잠깐잠깐잠깐잠깐만.
필사적으로 샘의 머리를 힘주어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되려 역습을 받고 혀의 뿌리부터 세게 빨리웠다. 여유가 사라지고 강약 조절이 생략된 행위는 어딘지 모르게 폭력을 많이 닮았다. 분명 쾌감도 있지만 그에 반하는 고통도 상당했다. 찡그리며 입술을 비틀자 그 틈새로 타액이 흘러나왔다. 그 한 방울이 아깝다며 샘이 혀로 그것을 쫓았다.
『그만!』
『왜 그래. 시작은 형이 먼저 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런다고 해도 용서치 않을테니까...』
『알았어. 이해했어.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래, 내가 죽을 놈이야. 그러니까 샘? 떨어져.』
『맞아. 나는 화가 났어. 하지만 형이 짐작한 거와는 많이 달라.』

셔츠깃을 단단히 움켜쥔 채로 이쪽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그게 어쩐지 무서워져 딘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맨발로 달아나봤자 샘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똑같은 속도로 뒤따라왔다.
『우린 잘못하지 않았어.』
헐떡이는 호흡이 이마에 닿았다.
『잘못된게 아니야.』
호소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형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오히려 기쁘다. 기뻐서 견딜 수가 없다. 가능하다면 매일 하고 싶다.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잠들기 전에 생각한다. 깨어나서도 생각한다. 딘과 같이.

『머리에 총 맞았냐.』
불쑥 튀어나온 말에 샘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딘!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그치만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맙소사, 나는 너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돼. 상처 입히지 않을 거야. 널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아빠와 약속했어!』
『하지만 딘과 키스하면 기분이 좋아. 그럼 괜찮은 거 아니야?』
『인석아... 대학에 가서 그 좋은 머리로 법률 공부한 거 맞냐. 네 이론대로라면 대마초는 당연히 합법이겠다. 기분이 좋으니 그걸로 끝,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고. 자연적 생리반응을 왜곡하지 마. 그러니까... 찬물에 집어넣으면 손이 시린 것과 마찬가지야.』
『형이나 멋대로 왜곡하지 마시지. 아무하고나 키스한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아. 그리고 흥분하지도 않아. 적어도 나는 그래.』

흠칫해서 시선을 거기로 향했다.
나사는 화성의 시도니아 평원에 자리한「얼굴 바위」가 빛과 그림자가 만든 일종의 허구라며 인공 구조물 설을 부정했다. 그치만 지금 그가 눈으로 보고 있는, 바지의 그 부분이 부푼 모양은 결코 빛과 그림자로 인한 착각이 아니다.

식은땀이 났다. 바보처럼 입술을 오므리고, 어버버 소리를 내면서,「네 똘똘이가 커졌잖아!」외치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이럴수록 이성을 잃어선 안 된다.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금방에라도 끊어질 것 같은 자제력을 놓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25 더하기 36은 모두 얼마지. 답은「뇌가 펄펄 끓고 있다」.

겉옷을 움켜쥐고 바람처럼 뛰었다.
『밖에 나갔다 올게!』
『딘!』
만류하는 샘의 동작에 딘은 발악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만지고 싶어진단 말이야!』
『만지면 되잖아.』
『안됏!』
세상이 끝장나도 그것만은 절대 안돼. 위협적으로 검지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며 경고했다.
『형을 너무 부추기지 마.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어중간하게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건, 네가 알고 나도 알아.』
『난 끝까지 가도 상관 없는데.』
『난 상관 있어!』
『왜. 내가 그렇게 싫어?』
『이 멍청아!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럼 뭐가 문제야? 응? 뭐가 문제냐고!』
서로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만지면 행복해질 것 같다. 눈빛만으로 범한 것도 여러 번이다.
분명한 의도를 담고 손목을 붙잡았다.
『보내지 않을 거야. 못 나가!』

붙잡힌 피부가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지저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널 키웠다고! 내가! 누가 너에게 우유를 먹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누가 너에게 기저귀를 채웠지?! 나야! 그건 바로 나라고! 그러니까 안돼! 이건 옳지 않아!』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샘을 바짝 끌어안았다. 동생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 점이 딘으로 하여금 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다. 벨트를 풀고 바지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도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속옷의 선을 좌우로 벌려 그 안으로 머뭇머뭇 손을 집어넣었을 적에도 - 오히려 샘은 팔을 둘러 딘에게 매달렸다.

목덜미로 뜨거운 숨이 불어왔다.
『우린... 결코 잘못하고 있는게 아니야, 딘.』
잔뜩 달아오른 상징이 보다 많은 자극을 요구했다.
『어서. 빨리!』
딘은 엉뚱한 곳으로 눈물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에 고이고 있는 투명하고 따뜻한 액체는 원래라면 그의 양쪽 눈구멍에서 흘러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왜 샘의 발기한 그곳에서 쉬지 않고 새어나오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기가 막혀서? 아님 단순히 출구를 잃어버려서?

거친 호흡이 귓전에 울렸다.
입술을 깨문 채 빈틈 없이 감싼 샘의 그것을 흝어 올렸다.
샘이 경련을 일으켰다.

딘은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야겠다고 결심했다.

Posted by 미야

2008/03/09 21:17 2008/03/0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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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ya 2008/03/09 22:07 # M/D Reply Permalink

    먼저 댓글 남기고 심호흡하고, more 살포시 누르러 갑니다 ㅡ_ㅡ*

  2. 아이렌드 2008/03/09 22:12 # M/D Reply Permalink

    얼쑤!!!! 미친듯이 봉산탈춤...(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요~)

  3. 로렐라이 2008/03/09 22:50 # M/D Reply Permalink

    아이렌드 님과 더불어 모니터를 부여잡고 미친듯한 광란의 봉산탈춤의 세계로 떠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네요, 세상이 아름다워요 'ㅂ'*

  4. 2008/03/10 15:26 # M/D Reply Permalink

    ^_^b 정말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ㅠㅠ

  5. 마리 2008/03/10 21:38 # M/D Reply Permalink

    엄훠. 말이 나오지 않네요!!!//ㅁ//
    전 원래 샘딘파였는데 미야님 소설읽고 딘샘파가 됐습니다.

  6. 소나기 2008/03/10 21:46 # M/D Reply Permalink

    얼쑤!!! 봉산탈춤에 상모돌리기 추가요!!!!!!

  7. 바람의노래 2008/03/17 22:13 # M/D Reply Permalink

    얼쑤~~~ 봉산탈춤에 상모돌리기에 풍악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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