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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10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아님!) BL 호러물입니다. 잔혹한 묘사 있습니다.
묵향동후 작가의 표절 논란, 드라마 진정령의 동북공정 논란은 일단 접어둡니다.
어쨌거나 포스타입에는 못 올리겠군.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남망기가 ‘위영!’ 이름 부르는 걸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설양의 이름이 설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설양이 꺼내든 은침은 길이가 무려 한 뼘이 넘었고 굵기는 짧은 젓가락 정도 되었다.
은색의 몸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설양의 손바닥 위가 아니라 방물장수 손바닥 위에 있었으면 여인의 머리꽂이 장식이라 해도 그런가보다 싶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런데 내가 저걸 왜 머리장식이 아닌 은침으로 알아봤느냐 하면...
침의 끝자락에 검붉은 얼룩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저게 핏자국이라는 데 내가 일만 금을 건다.

“금란대에서 다섯 개 정도는 챙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하나밖에 안 보이지 뭐야. 한참을 뒤엎어도 이거 하나밖에 안 나오더라. 이게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벌벌 떨고 있는 내게 그가 은침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눈 크게 뜨고 잘 보라는 의미였다.

“궁금해? 궁금하겠지. 이건 어떻게 쓰는 물건이냐 하면...”
설양의 손에 영력이 실리면서 희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영력을 띄운 손에 힘을 주더니 내 오른쪽 귀 바로 윗부분 지점으로 깊게 찔러 넣었다.
“이렇게 하는 물건이란다.”
찌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끝까지 박아 넣었다.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뇌의 깊은 안쪽까지 닿은 다음에야 누르는 걸 멈췄다.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 정수리에 정은으로 만든 대못을 박는다더니 더도 말고 딱 그거였다.

“아냐, 아냐. 안 죽어. 그러니 그런 얼굴 하지 마. 이건 의식을 제어하는 도구야.”
부르르 경련하며 주저앉으려는 나를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면서 설양이 말했다.
“게다가 원래는 세 개를 사용해야 하는 물건인데 하나밖에 쓰질 않아 그냥 숙취처럼 느껴질 거야. 워, 그만 침 흘리고... 찡그리지 말라니까.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이 더 개구리처럼 되어버리잖아.
익숙해지면 괜찮아. 진짜야. 속이는 거 아니라니까. 금린대에서 은침을 더 가져와 여기랑 여기, 추가로 박아주면 아픈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이 안 날 거야. 지금은... 음. 약간 불편할 수는 있겠다.”

이게 불편하다고 말할 수준이겠냐. 머리에 젓가락이 들어갔는데!
소주를 앉은 자리에서 안주도 없이 퍼 마신 것 같았다. 냄비뚜껑이 심벌즈처럼 쾅쾅 쳤고, 땅바닥이 물결쳤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독이 온몸에 퍼지며 쥐어짜는 고통이 엄습했다.
이번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입으로 엉엉 소리를 내며 설양의 바짓단을 붙잡고 매달렸다.
머리에 박은 침을 빼달라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앞으로 발가락도 핥겠다며 애걸했다.
주인님이라고 부르겠다고, 앞으로 걸레가 되겠다고 맹세도 했다. 간이고 쓸개고 다 줄 테니 이 고통을 멈춰달라고 빌었다. 뇌가 이물질에 눌려 찌그러지고 있었다.

“아걸. 나는 기회는 한 번 뿐이라고 말했어.”
설양이 휘파람을 불자 주시가 몸종처럼 빠르게 달려 나왔다.
나는 초점이 엇나가는 눈으로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주시들은 벌레 먹은 염복을 입고 있었는데 옷깃에 나무 부스러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로 만든 관을 부수고 나온 듯했다.
나와는 달리 죽은 지 오래되었던지 움직임이 뻣뻣했다. 환자 부축이라도 하는 모양새로 내 양팔을 단단히 잡았을 적에 높이가 맞지 않아 내 두 다리가 허공에 둥둥 떴다.

“벌 받을 시간이야.”
그렇게 말한 설양은 다시 풀피리를 입에 물었다.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고, 주변을 에워싼 주시들이 출동을 명받은 군졸들처럼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옛날 옛적, 배가 고픈 한 어린아이가 있었어요.
그 소년에게 어느 귀한 집 나리가 손짓했어요.
아이야, 아이야. 맛있는 간식이 먹고 싶지 않니? 내 말을 들어주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단다.
배고픈 아이가 달려가 ‘시키는 대로 할 게요, 나리’ 씩씩하게 외쳤어요.
그럼 이 편지를 건너편 주점에 배달을 해다오. 아주 쉬운 일이지.

편지를 건네받은 술집 주인이 아이의 뺨을 때렸어요.
이런 경거망동을 보았나. 욕설을 적어 내게 읽으라 하다니.
입술이 터진 아이는 깜짝 놀라 외쳤어요. 편지의 내용은 난 몰라요. 글을 몰라요. 약속한 사탕은요?
술집 주인이 사탕보다 더 좋은 걸 맛보게 해주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요.
머리를 때려라, 어깨를 짓눌러라, 배를 후려쳐라, 다리를 꺾어라.
밟아라, 밟아. 어떠냐, 어떠하냐. 맛이 근사하지? 아주 맛있을 게다.


설양이 흥얼거리는 제멋대로의 곡조에 맞춰 주시들이 쿵쿵 뛰었다.
주시들의 뒤로는 녹색으로 빛나는 귀혼불이 병풍처럼 둥둥 떠서 공중을 배회했다. 귀혼불은 다시 요괴를 불러냈고, 형체가 불명확한 잡귀들은 눈더미처럼 굴러 저마다 크기를 키워갔다.
머리를 산발한 처녀귀신, 피부가 파란 청귀, 머리에 뿔이 돋은 사영귀, 십악불사의 여귀사신이 소란을 떨며 돌아다니는 백귀야행이었다.
그 행렬의 맨 앞줄에 양팔을 붙잡혀 둥실둥실 끌려가는 내가 있었고, 악신들이 키득키득 소리 내며 뒤를 따랐다.
 
“어디로... 지금. 설 공자. 가는 겁니까.”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설양은 은침이 박힌 머리부위를 꾹꾹 눌렀다. 그것도 화분에 식물을 옮겨 심고 흙을 다지는 식으로 야무지게 눌렀다.
“어디라고 말해준들, 정신이 흐릿할 텐데 기억이나 할 수 있겠어?”
“새... 풀어... 끼. 야. 그만. 말할 때.”
“응? 지금 뭐라고?”
좋게 말할 때 풀라고.
입 밖으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아 유감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내 몸뚱이는 대궐 같은 집 청당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편돌에 뺨을 대고 자빠진 상태로 올려다보니 커다란 마당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어 있었다. 그들 중 다섯은 차고 있던 검집에서 이미 검을 뽑아든 상태였다. 밖이 소란스러워 상황을 살피러 나왔다가 떼를 지어 몰려온 악신잡기를 보고 혼비백산한 눈치였다.
검을 들었어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은 자들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옹이눈으로 보기에도 자세가 초보 티를 벗지 못했다. 검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평소 구색만 겨우 갖추고 창고지기나 했을 사람들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러니 저런 말을 하며 주춤거려도 다 이해를 해줘야만 했다.

“웬 놈이냐!”
그들 중 가장 풍채가 좋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지붕 기왓장 꼭대기에 올라탄 설양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평소 장부를 정리하고 주판만 만지던 사람이었는지 이 자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
“당장 내려와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거냐. 여기가 약양 상씨 가문의 저택임을 모르는 거냐?!”
“잘 알고 찾아온 거니 걱정 붙들어 매쇼.”
“이런 시건방진! 어느 가문의 수행자인데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가!”
“미안, 미안. 내가 고아로 자란 잡놈이라 예의가 없어.”

뒷짐을 지고 자세를 달리한 설양이 돌연 팔을 길게 뻗어 날벌레를 잡아채는 동작을 해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설양이 파리를 잡을 리가 없었다.
지척에서 무거운 솥뚜껑이 뜨거운 열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는 식의 굉음이 났고, 순간 풍채가 좋아 보이던 사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겨, 결계를... 가문을 보호하는 진법을 부수다니. 네 놈 지금 무슨 짓을!”
눈을 뜰 수 없는 심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온 집안의 문과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다. 자물쇠로 단단히 걸어 잠갔던 창고의 문도, 내당의 창문도, 하나도 빠짐없이 비명을 지르며 젖혀졌다.
청당에 모여 있던 가솔들이 에구머니 비명을 지르며 눈 감은 채 도망쳤다.
그 모습을 비웃던 설양이 이번에는 잡았던 날벌레를 도로 놓아주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큰 바위가 땅에 떨어지는 진동이 울려 퍼지면서 함께 일시에 모든 창과 문이 굳게 닫혔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던 가솔들도 저마다 움직임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챌 수 있었다.

“일어나라, 내 귀장군.”
설양의 명령에 엎드려 누운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명령이다. 저들을 전부 죽여.”
“......안.”
“그거 참 고집스럽네.”

범상치 않은 검은색 아지랑이가 발 아래자락서부터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안개라고 하기엔 미세한 벌레 같다는 느낌이었다. 크기가 아주 작아 현미경으로 보아야 그 모양새가 드러나는 흉측한 벌레... 본능적으로 꺼려졌고, 소름끼쳤고, 그렇기에 익숙한... 익숙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방금 ‘익숙하다’ 는 생각을 했나?
수상한 검은 안개가 허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 근처까지 닿았다. 벌레? 왜 나는 이것을 벌레라고 여기는 거지? 수십, 수천만의 더듬이가 갈작갈작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봉지에 들어간 과자 부스러기가 내는 소음과 흡사한...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에 박힌 은침 때문에 제대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흙속에 내가 있다. 땅속에 누워있다. 나는 정말 작은 아이다.
‘음철! 음철을 찾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검들이 충돌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죽여라~!! 전부 죽여!’
피투성이가 된 검을 휘두르며 그들이 외쳤다.

음철. 검은 쇠. 어둠 속에서 제멋대로 흔들리며 쉬익, 쉬익 뱀처럼 구는 것.
절대로 들키면 안 돼. 숨어야 해.
어머니가 나를 살리고자 흙속에 파묻었다.
소매 붉은 자들이 나를 죽이고자 흙속에서 파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저들은 뭘 원하는 거지.
이건 모두 꿈인가. 그거 참 빌어먹을 꿈이네.

시야가 좁아지며 곧바로 제어력을 잃었다.

Posted by 미야

2021/10/28 14:20 2021/10/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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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09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아님!) BL 호러물입니다. 잔혹한 묘사 있습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돈 단위, 먹는 반찬, 풍습 이런 것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버려진 산적들의 요새 같은 장소에서 빠져나와 방향도 모르고 뛰고 보니 방향을 잃었다.
절도 중도 안 보이는 주변엔 모르는 산기슭에 평생 본적 없는 구릉이 펼쳐졌다. 이정표는커녕 제대로 닦여진 길도 안 보였다. 어쩌면 여기는 소산이 아닐 수도 있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머리 위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해의 기울기가 신시(※오후3시~오후5시) 막바지라는 느낌이었지만 매일 보던 풍경이 아니니 확신은 가지 않았다. 이러면 동쪽과 서쪽 구분도 애매했다.

Y자로 갈라진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수맥 탐지봉처럼 들었다. 그리고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 나뭇가지가 저절로 움직여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기를 기다려......는 개뿔.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휙 던져버리고 일단 설양의 망자지옥 아지트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은 없었다.

채소가게로 돌아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일단 내 몸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시변한 건 확실하니 어쩌면 외모도 흉측하게 변했을지 모른다.
살을 만졌을 적에 시체처럼 딱딱한 느낌은 아니었다만 설양의 말대로라면 죽은 지 이미 열흘이었다.
숨이 끊어지고 단 3시간만 지나도 피부색이 바뀐다.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인해 가스가 차기 시작하면서 몸이 부푼다. 일반적으로 열흘이면 안구는 다 녹아버린 뒤고 항문과 입을 통해 내장 녹아내린 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주술인지 뭔지 하는 것의 힘으로 부패의 진행이 멈췄다고 해도 눈의 총기는 잃었을 거다. 돌아다니는 주시들 전부가 눈깔이 허연 빛깔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서 검은자위가 사라진 눈을 치켜뜨고 있음 보나마나 사람들이 도사님을 불러 날 없애려 하겠지. 게다가 배추배달 도중에 실종되었으니 화가 단단히 난 송씨 부인이 직접 날 불살라 없애버리려 할 거야. 우리 배추 값 물어내, 소리도 지르고. 먹고 재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욕도 하고.’

주먹으로 이마를 치다가 이번엔 방향을 바꿔 구릉을 타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허리 위까지 길게 자란 풀들이 파도치며 훼방했다. 그러든 말든 수풀을 헤치며 움직이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해가 지면 이동하는 일도 쉽지 않다. 등불도 없이 산속을 헤맨다는 건 ‘나 죽여 줍쇼’ 하는 말과 같은 뜻이다.
‘뭐, 이미 죽었지만.’
승냥이 같은 들짐승이 주시를 먹으려 할지 잘 모르겠다. 썩은 고기도 마다않는 애들이면 훌륭한 잔칫상이겠지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죽은 사람이면서 몸은 피곤하고 목이 말랐다. 배도 고파 따끈한 탕에 고소한 누릉지가 먹고 싶어졌다. 꾸르륵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탄식하며 밥과 물을 달라고 난리치는 뱃가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래선 마치 죽어본 적 없는 사람 같잖아.’
언제 죽은 적 있느냐는 식으로 몸이 반응했지만 딱 한 가지만은 달랐다.
펑펑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왔다.

물을 찾아 인적이 끊긴 외진 길가에 위치한 우물가에 당도했을 적엔 두 명의 선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행색으로 추측하자면 한 사람은 덫을 놓아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냥꾼처럼 보였고, 한 사람은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바느질 도구나 연지 같은 화장품을 파는 방물장수인 것 같았다.
나이가 많아 머리가 하얗게 센 방물장수는 대나무 보퉁이를 가까운 바닥에 내려놓은 채 품질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연초를 입에 물었고, 그 아들뻘 나이인 머리 지저분한 사냥꾼은 허리를 숙여 끈 떨어진 신을 임시로 수리하고 있었다.
나는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최대한 기척을 줄였다.

“당분간 이 짓도 못해먹을 거 같수다. 어찌된 게 사람이 없어, 사람이.”
사냥꾼이 투덜거렸다. 방물장사로부터 얻은 색끈으로 매듭을 묶어보지만 그게 영 신통찮은 눈치였다. 여자들이 머리를 묶을 적에나 쓰는 끈은 약해빠져서 힘을 줘서 묶으려 하면 할수록 올이 풀리고 찢어지려 했다. 사냥꾼은 이내 짜증을 내며 망가진 자신의 신발을 패대기쳤다.

“형씨도 그러하오? 나도 장사를 시원하게 말아 잡쉈지. 연지 하나 못 팔았소.”
“어휴... 어쩌겠수. 선동요에서 먼저 난리가 나더니 소산도 난리가 났다던데. 뿐만 아니라 수행자가 요술에 걸려 시변을 했다며 멀쩡한 대낮에도 시장에 사람이 안 돌아다녀요.”
“뭐요? 그게 참말이오? 수행자가 시변을 했다고? 그게 가능한가? 내가 알기로는 도를 닦는 분들은 거 뭐라더라... 안혼례를 치러 악귀로 변할 일이 없다 했는데?”
“노인장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네. 그거야 높으신 분들 이야기고. 듣자하니 밑바닥부터 고생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선자(※여성 수행자를 일컫는 말)라던데. 그럼 뻔한 거 아니겠소.”
“쯧쯧... 안혼례와는 거리가 멀었겠군. 예전에 내 귓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소. 안혼례 비용을 치르려면 집안 기둥 하나는 부순다고 하더군.”
“기둥 하나가 아니라 셋이오, 셋!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내는 것보다 몇 곱절 더 들어간다오. 게다가 일곱 살이 넘으면 제 아무리 큰돈을 써봤자 안혼례도 효과 없다던데 차라리 그 돈으로 시귀를 막아주는 부적을 사고 말지.”

방물장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궁금해 했다.
“시귀를 막는 부적이 있소?”
“내가 어찌 알아!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그래도 부적인데 없는 것보단 좋을 거 아니오. 자, 이거 받으슈. 선동요에서 얻은 부적이오. 한 장에 열닷 푼! 엄청 싸다! 주시가 들러붙는 걸 막아준다고 하더이다.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해서 시변한 것들에게 딱 붙이면!!!”
“붙이면?”
“얌전해져서 움직임을 멈춘다고 합니다. 노인장, 하나 드려요?”

조용히 뒷걸음질 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오지 않는 곳까지 멀어졌다.
부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 이어진 내용이 섬뜩해서다.

“수행자까지 시변했으니 드디어 상씨 세가가 나서겠구먼. 지금까지는 그 정도의 일은 알아서 하라 분위기였지만 이젠 모르는 척할 수가 없겠지.”
“노인장 말씀이 옳아요. 시변한 수행자가 어디 보통 일인가요.”
“그럼 야렵은 언제쯤...”
“글쎄요. 이 근방 주민들이 겁을 집어먹고 밭일까지 포기한 채 죄다 문을 걸어 잠갔으니 늦어도 일주일 뒤엔 해결을 보겠지요. 오래 시간을 끌면 농사를 망칠 테니까요.”

이 세상에는 4대 현문세력이 운몽, 난릉, 고소, 청하 각 지방을 지배하고 있고, 이 망할 놈의 땅이 워낙에 광활한 탓에 여러 군소 토착세력이 틈새를 비집고 존재하고 있다.
저 사람들이 말한 상씨는 약양에서 세를 펼치고 있는 지방 토착세력이라 할 수 있다.
내 이해 방식대로라면 그들은 봉토를 가진 영주 대행쯤 된다. 잘 훈련된 사병을 데리고 있고 소출에 대한 세금도 가져간다. 그래서 주민들이 밭일을 거부하고 외출을 삼간다는 소식에 반응하는 거다.
문제는 저들이 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전신갑옷을 입은 서양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행군하며 스켈레톤 해골병사를 썰어버리는 걸 상상해봤다.
큰일이다. 상씨가 주시들을 토벌하러 나오면 나도 모가지가 썩둑 잘린다.

우물에서 물 마시는 걸 포기하고 능선을 따라 높이가 낮은 산을 여럿 넘어갔다.
멀리서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고, 짐승의 이빨소리 비슷한 신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쉬지 않고 걸었더니 어느새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었다. 저물어가는 노을이 야산에 붉게 불을 지르는 걸 지켜보며 뭉친 종아리를 주물렀다. 배달로 단련된 종아리가 적당히 하라며 난리였다.
이정표라도 보이면 오죽 좋으련만. GPS와 구글 없는 세계가 원망스럽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길을 찾아 산자락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큰 길로 나가면 장사치와 여행자들을 위한 표지석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희망사항이라면 부생이나 곡여라는 글자가 보였음 했다. 곡여는 소산을 기준으로 삼았을 적에 선동요보다 거리가 더 먼 마을이었다.

“이게 뭐야. 전에 봤던 우물이잖아.”
그렇게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원위치.
거짓말처럼 한 바퀴를 돌아와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사냥꾼이 집어던진 헤어진 신발 끈이었다.
넋이 증발할 것 같은 기분에 방물장수가 앉았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있던 체력, 없던 체력 쥐어짜서 산을 몇 개나 넘었는데 제자리.
“귀신에게 홀렸나.”
불가능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걸었던 게 아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삼아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구는 둥그니까 일직선으로 걸으면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온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치겠네. 이러다가 아예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거 아냐?”
근심하며 먼지를 털고 일어나 1시진 가량을 더 걸었다.

“......”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로 되돌아왔다.
산적들이 집 짓고 살다 버리고 간 모양새의 산채 앞에서 말을 잃었다.
절반은 무너진 입구 앞에서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서있던 설양은 ‘산책은 즐거웠어?’ 손을 흔들며 물어왔다.
이러니 줄곧 추적하는 기척이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내 신세는 어장 속 물고기였다.

“설 공자. 나는...”
목이 갈라져 피가 날 것만 같았다.
“됐다. 말 하지 마렴.”
내 앞에서 그가 풀피리를 입에 물었다.
피리릭 풀피리 음색이 울려퍼지자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모를 일백의 주시가 나를 포위하며 몰려들었다.

Posted by 미야

2021/10/27 13:02 2021/10/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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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08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아님!)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나는 다시 심하게 멀미했다.
돛단배를 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어찌나 뒤집어지던지 이젠 내가 진짜로 죽은 사람인지, 가짜로 죽은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웩웩 소리를 내는 동안 알 수 없는 힘이 내 머리를 뽑아 긴 엿가락 모양으로 늘어뜨리려 했다. 12리(※대략 5km) 이상 늘어지지 않나 싶었을 적에야 강하게 잡아당기던 힘이 느슨해졌다.
흰옷을 입은 소년들과 택무군이라고 불리우던 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고, 얇게 늘어진 내 몸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나풀나풀 흔들렸다.

“돌아와, 걸람.”
날 부르는 목소리는 매우 거만했고, 단호했다.
“당장 안 돌아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목이 움츠러들었다.
얼마나 살기등등하던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다리뼈를 분지르겠다는 어조였다.
“술법이 잘못된 건 아닌데 왜 이리 돌아오는 속도가 늦지? 내가 모르는 실수라도 있었던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님 이릉노조의 글에 빠진 내용이 있었던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머리카락과 뺨을 만졌다.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 지금 누가 날 만졌다는 걸 인지한 거야? 죽었는데?

차가운 손이 피부 결을 따라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차가운 건 상대가 아니라 내 쪽이라 해야 맞았다. 체온을 잃은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을 거고, 죽음으로 인해 가닥가닥 끊어진 신경회로로 방금 전 재가동 불이 들어오면서 온기의 주인을 착각했다.
“아걸... 내 말 들려? 깨어난 거 맞지?”
설양이 여자 꼬시는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아래턱으로 내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두 눈이 번쩍 뜨였을 적에 제일 먼저 시야를 장악한 것은 수천 장에 이르는 부적이었다.
구멍을 제외하고 –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의 칠백을 제외하고 부적이 얼기설기 달라붙은 상태였다.
기겁을 하고 상체를 일으키자 약한 장력으로 목과 가슴에 붙어있던 종이부적이 바닥으로 우수수 흘러내렸다.
아니 이거 진짜 뭐냐고. 비주얼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잖아.
바닥에는 피로 그린 것이 분명한 진법이 제법 큰 크기로 그려져 있었고, – 저게 제발 사람 피는 아니길 빌었다 - 내가 누운 자리에만 마른 지푸라기가 이불모양으로 깔려 있었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얼마 되지 않은 초로 밝힌 주변은 컴컴하고 습했다.
동굴인가, 아님 지하실?
흙벽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풀풀 피어올랐다. 연무에선 언짢을 정도의 악취도 났다. 습도 높은 장마철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였다. 무언가 상했고, 썩어가는 중이었다.

벌벌 떨며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오랜 노동으로 거칠어진 걸람의 손이었다. 다만 핏기가 없어 분칠을 바른 것처럼 피부가 뽀얀 빛깔이었다. 움직임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주먹을 쥐고자 하자 쥐어졌고, 도로 펴자 펴졌다.
문제는 다행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거다.

“맙소사. 이게 뭐야.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는데 눈은 메말라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멋대로 죽여 놓더니 이젠 맘대로 되살려놓고... 이러는 법이 어디에 있어.”
몸에 붙은 부적들이 살을 파먹는 구더기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진저리치며 손에 잡히는 부적 전부를 계속해서 잡아 뜯었다. 뜯어서 던지고, 구겨서 던졌다. 검에 찔려 숨이 끊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잠깐 눈 감고 떴을 뿐인데 언데드가 되었다.

“열흘이나 깨어나지 않았어.”
“네?”
“열흘이나 깨어나지 않았다고. 진짜지 더 늦어지면 날 우습게 여기는 거라 생각하고 벌을 주려 했지.”

설양은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미리 준비한 것으로 여겨지는 작은 소반을 가져왔다.
소반 위에는 무려 금박을 정교하게 입히고 모란무늬가 음각된 술잔 두 개와 붉은 천으로 입구를 막은 술병이 올라가 있었다.
저런 비싼 술잔은 어디서 가져왔대?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물건이 나왔다. 아니지, 지금 그게 문제냐.
인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성년자야!
하지만 목구멍이 솜으로 틀어 막혀 외침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 귀신도 기가 막히면 말문이 막히는 거였다.

이쪽에서 끙끙거리는 것도 모르고 술상을 내려놓은 설양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 세계에선 미성년자 음주에 관대한 탓에 포장을 벗기고 술을 따르는 자세가 매우 능숙했다.
“명령이야. 이리 와서 앉아.”
나는 거부의 의사를 밝히며 도리질했다.
“주인의 명령이다. 이리 와서 앉아.”
“누가 주인이라는 거야. 너는 내 주인이 아니야.”
그간 기분 좋아보이던 설양의 얼굴색이 내 반말투에 약간 거칠어졌다.
마음 같아선 술상을 뒤엎고 행패를 부리고 싶은 것 같았지만 애써 숨을 고르는 눈치였다.

설양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까딱까딱 흔들었다.
“한 번은 봐주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까. 딱 한 번만 봐주는 거야. 그러니 잘 들어, 아걸. 죽은 너를 이릉노조의 술법으로 내가 되살렸어. 내가 주인이고 너는 내 인형이야. 이릉노조가 온녕을 귀장군으로 만든 것처럼 내가 널 만들었어.”
“이릉노조? 귀장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넌 내 인형이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누구더러 인형이래. 내가 왜 네 말대로 해야 하는데.”
“아걸! 닥치고 네 주인에게 복종해! 여기 와서 앉아! 명령이야!”

어디선가 딸랑 소리를 내고 방울이 울렸다.
그러자 손오공이 긴고아로 머리가 조여졌을 적에 어째서 근두운에서 떨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그건 두통이라 부를 종류가 아니었다. 펜치를 사용해 잘게 부순 두개골을 야무지게 뽑아내는 아픔과 같이하여 대규모 지옥 합창단이 ‘복종해, 복종해, 복종해, 복종해.’ 노래를 불협화음으로 불렀다. 게다가 접속곡 가락은 엇박자로 꼬이기까지 하여 ‘해복종, 해복종, 해복종.’ 이러며 존재할 리 없는 가사로 바뀌기까지 했다.
오금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바닥에 머리부터 처박은 모양새로 고꾸라졌다.
콰직, 이러고 두꺼운 나무토막이 분질러지는 소리가 났는데 부디 목뼈가 부러진 건 아니길 바랐다.

“아걸, 너는 이제부터 내 귀장군이야.”
설양이 화가 잔뜩 나 씨근덕대며 말했다.
저기요? 저더러 장군이라고 하면 부끄러운데요. 키가 8척이기를 해요, 관우처럼 수염이 났기를 해요. 나더러 장군이라고 하면 다들 애기 장군이냐며 비웃기부터 할텐데.
“누가 뭐래도 넌 내 귀장군이야.”
벌레처럼 꿈틀꿈틀 기고 있는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설양이 재차 강조했다.
“내 거야. 내 거라고.”

설양이 내 뒷덜미를 잡고 술잔이 있는 소반 앞으로 끌고 가려 했다.
아 좀~!! 여전히 긴고아가 내 머리를 빈틈없이 조여 대고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반항했다.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다음날 아침 6에 서울로 출근했던 경기도 거주 직장인의 근성을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두통? 그런 건 편의점에서 컨디션 하나 빨면 가라앉아!
두 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지푸라기를 움켜쥐곤 설양의 다리를 뻥 걷어찼다.
그래! 염라대왕이 소원성취 하라고 날 지상으로 다시 불러들였구먼. 설양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거였어. 아이고 시원하다, 아이고 고소하다.

“복종해!”
설양이 두 팔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그것도 다른 사내와 정분이 나 도망간 마누라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매우 찰지게 뜯었다.
우습게도 두피가 뜯겨나갈 것 같아 아파 미치는 줄 알았다. 되살아난 시체인데 통증이 웬 말이냐.
나는 놓으라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그를 밀었다.

한 움큼이나 뜯겨져나간 남의 머리카락을 손에 쥔 채 밀려난 설양이 어이없어 했다.
“뭐야...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음호부로 되살렸는데 어째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술식이 잘못되었어? 뭐야. 이럴 리가 없는데. 이릉노조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음호부라서 실패한 거야?”
그런 거 난 몰라. 이릉노조이고 철도노조이고 닥치라고 해.
어딘지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설양의 얼굴을 향해 스트레이트 펀치 한 방을 날린 뒤,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21/10/26 13:32 2021/10/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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