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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13

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요소 존재하는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의장은 장례용품을 보관하는 장소다.
관과 상여, 음력사(※ 저승에서 망자 대신 악귀와 싸워주고 지전을 귀신들에게 빼앗기지 말라고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종이인형) 같은 걸 넣어두는 창고 역할을 한다.
때로 연고 없는 시신이나 집안에 두기엔 불길한 시신이 나왔을 적엔 임시로 놓아두는 장소로 쓰기도 한다.

소산의 의장과는 달리 이곳의 의장은 크기가 컸다.
미리 만들어든 장례용 종이인형도 무슨 메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빈 관은 여섯 개나 있었다. 이곳의 인구가 소산보다 많다는 뜻이다.

창문은 없었다. 대신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용도로 뚫은 작은 구멍만 있었다.
뒤편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쪽문이 나있었는데 짐작과 달리 출관하는 구멍이 아니라 의장지기가 휴식의 용도로 쓰는 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출입구 높이를 낮게 만든 이유는 혹시라도 시체가 시변하더라도 허리를 쉽게 굽히지 못해 머리를 벽에 턱턱 박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계산을 해서다. 낮은 단계의 시변자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어 잘 걷지 못하니까.
낮은 단계의 시변자가 아닌 나는 당연히 허리를 접어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불을 밝힐 수 있는 등롱과 지전 같은 잡동사니가 들어간 서랍장이 전부인 별 거 아닌 장소였다. 청소도 잘 되어있지 않아 천장에 거미줄이 가득했다. 나라도 이런 곳에 들어와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의장지기의 게으름에 뭐라 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건 한 마디 해야겠다.
이 사람들아, 자루에 시체 담아 던져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음 어쩌라고?!

빛이 들지 않는 의장에서, 그것도 자루에 넣어진 상태에서 얼마나 버텼는지는 신만이 아실 일이다.
처음에는 시체의 본분을 어기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어야지. 이 게으른 인간들은 시체를 넣어두고 의장 문도 안 열어봤다. 느낌 같아선 거의 한 달 족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썩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일까? 흔히 미역국 데운다고 냄비 올려놓곤 타는 냄새 나기 전까지 잊어먹지 않던가. 냄새가 없으니 의장지기가 깜빡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팔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썩기는커녕 미약하게나마 온기도 느껴졌다. 탄력도 그대로여서 손가락으로 눌렀다 떼자 자국 없이 복원되었다. 화학 방부제 팍팍 뿌려 앞으로 몇 년 지나도 안 썩을 기세다.
아니면 참변을 당한 저택의 일이 쉽게 수습이 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죽은 사람 숫자가 많은데다 기둥 굵은 집이었으니 인력이 전부 그쪽으로 쏠렸을 거다.
밥 동냥 하러 갔다가 죽은 거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내일 들여다봐야지, 모레 들여다봐야지, 글피 들여다봐야지, 이러다가 아예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지면 얼굴에 쓴 안경을 찾는답시고 가방을 뒤지는 법이다. 이건 의장지기의 잘못이 아니다.

너무 심심해 장례용 지전 뒷면에 일천만원(一千萬圓), 일억원(一億圓) 이러고 글을 썼다.
내가 가지고 갈 노잣돈이었다. 설마, 단위가 달라도 환전되겠지.
그나마 종이도 금방 다 떨어져 이마저도 할 게 없어졌다.

낮에는 의장지기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빈 관에 들어가 눕기를 반복하기를 그렇게 여러 번, 동네에서 장례 치룰 일이 생겼는지 드디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로 파악하자면 다가오는 사람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의관을 정리하고 착한 시체가 되어 누웠다.
구석에 들어가 있으면 혹시라도 발견을 못할 수도 있으니 관 말고 그럭저럭 눈에 띄는 곳에 두 다리를 뻗었다.

“이곳이오?”
의장지기가 문을 열었다. 그는 문만 열었을 뿐, 다섯 걸음 떨어져 안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예, 나리. 이곳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나리라고 하지 말고 도장이라 부르시오. 그나저나 시취가 나질 않는데 이미 매장을 한 건 아니오?”
“그렇진 않을 겁니다. 확실하진 않으나... 저기. 워낙 경황이 없어...”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전부인 게 아닌 듯한데. 혹여 다른 이유가 있소?”
“무서워서요. 상씨 세가에서 가져온 시신인데 아무래도... 시변했겠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멀쩡할 리 없잖아요. 다들 겁이 나 지금껏 문을 잠가두고 감히 접근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담 저 안에서 수상한 소리가 난 적이 있는지는 아오?”
“저어. 그게...”
“괜찮소. 눈치볼 것 없소. 함부로 확인하려 했다가 주시가 달려 나오면 그것도 나름대로 곤란한 일이지. 이해하오.”
의장지기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굽실거렸고, 도장 나리라고 높여 불린 사람은 괜찮다고 말해줬다.

도장 나리는 성격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 같으면 방임행위 아니냐 야단했을 거다.
“정면 말고 혹시 다른 출구는 없소?”
“없는데요.”
“그거 다행이군. 뒷문이 없음 되었소. 그럼 나 혼자 안에 들어가 보겠소.”
“조심하세요, 나리!”

높은 문턱을 넘는 동작은 간결했다. 몸이 가벼워서인지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도장은 한 3초 정도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눈으로 내부를 본 뒤에 텅 비어있는 관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두드리는 소리에 밖에 서있던 의장지기가 ‘뭡니까? 뭔데요? 뭐가 있습니까?’ 물어왔다.
도장은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고 내가 구석으로 잘 개켜놓은 자루로 시선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잘못한 거 같다. 그간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데 시신자루에서 죽은 몸뚱이가 빠져나오고, 자루가 네모반듯하게 접혀 있으면 누가 봐도 그건 퍽이나 수상쩍어 보였을 거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동시에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의장 안을 한 바퀴 돌고, 바닥에 깔린 볏짚의 색을 확인하고, 공양한 물건을 올려놓는 공대와 그 앞에 자리한 의자를 주의 깊게 살폈다.
“볏짚이 깨끗한 걸 보아 안에 썩어가는 것이 없었고, 먼지를 보니 의자를 옮긴 흔적이 있구나.”
마지막으로 팔을 가지런히 하고 누운 내 곁으로 다가와 단서를 추적하는 셜록 홈즈처럼 행동했다.
손가락과 손톱을 보고, 소매를 걷어 팔을 보았다. 찢어진 옷가지 틈으로 드러난 흉터에 주목하고, 입을 벌리게 해 입속을 보았다. 짐작하자면 살을 뜯어먹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 것 같았다.

“의장지기. 혹여 이 아이가 어떻게 죽었다는 말을 들어보았소?”
“자세한 건 모릅니다, 도장 나리. 하지만 일꾼 말로는 시변해도 뛰어다니지 말라고 다리의 힘줄을 미리 끊었다고 했습니다.”
“잘려 있지 않소.”
“그럴 리가요.”
“원하면 직접 봐도 좋소.”
“아뇨, 아뇨, 아뇨! 도장 나리 말씀대로겠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장지기가 질겁하며 손사래를 치는 와중에 도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내 옷의 앞섶을 열었다.
그 부분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다른 심각한 상처는 잘 붙고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설양이 찌른 자국만 그대로였다.
도장은 별 말없이 더듬더듬 가슴의 상처 자국을 만졌다. CSI 요원들은 시신에 남은 상처를 보고 범인과 피해자의 위치라던가, 자세라던가, 범행도구 종류를 추정하던데 그와 비슷한 작업에 들어간 눈치였다. 조사에 임하는 그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고, 침착했다.
그리고 대단히 간지러웠다.

“......”
“......”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리고 남자여도 젖꼭지는 부끄럽단 말예요!

챙, 맑은 소리와 함께 순백색의 차가운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둥둥 뜬 채 날 겨눴다.
나는 황급히 가슴을 여미고 뒷걸음질부터 쳤다.
세상에, 해리 포터에 나오는 님부스 2000도 아니면서 저게 막 날아다녀!
검은 무슨 자아라도 가진 것 같았다. 뒷걸음질을 하는 내 움직임을 보며 미간 정 중앙을 노리고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성격이 급한지 확 찌를 것처럼 시늉하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검이라면 양아치처럼 욕을 했을 지도 모른다. 확! 이걸 그냥 확!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최대한 정중하게 검날을 옆으로 밀었다.
그래봤자 약간만 밀려났을 뿐, 하얗게 빛나는 검은 미간을 노리며 고집스럽게 제 위치로 돌아왔다.

“선생님, 우리 말로 합시다!”
“도장이라고 불러라.”
“도장님!”
“효성진 도장이다.”
“효성진 도장님! 이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효성진 도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있잖아요... 도장님이 보기엔 한심해 보인다는 거 잘 압니다만. 저는 지금 대단히 심각하거든요?
걔 좀 치워주심 안 되겠어요? 찔려봐서 아는데 그거 많이 아프거든요?

에고 소드는 성격은 급해도 주인의 말은 잘 듣는 것 같았다.
도장이 돌아오라는 의미로 검집을 앞으로 내밀자 순백의 검이 빨려들 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Posted by 미야

2021/11/01 15:36 2021/11/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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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12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그럴 리가!)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드라마와 소설의 사건 흐름이 다른 관계로 이 글의 동선 또한 꼬여 있습니다.


머리에 박힌 은침 때문이다.
과거와 현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면서 나는 일종의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이곳은 내가 살던 원룸이고, 여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내 이름은 비렁뱅이라는 뜻의 걸람이고, 배추를 배달하던 고아 소년이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다섯 살 터울 위의 누나가 거의 날 키우다시피 했다. 사진 속 어머니와 누나는 친자매처럼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너도 네 엄마를 닮았으면 좋았으련만. 못생긴 날 닮아 인기가 없겠구나.’ 한탄하셨다. 그래도 코는 엄마를 닮았다. 사진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 사실에 만족했다.

어머니 품에 안겨 본 기억은 없다. 그럼 이 어머니는 누구일까.
창과 칼을 든 사병에게 쫓기던 어머니는 날 보호하기 위해 기혈을 눌러 반 가사상태에 빠진 나를 흙속에 나를 파묻었다. 한 시진이 지나면 경직은 저절로 풀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전에 돌아와 흙에서 다시 꺼내줄 거라고도 하셨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숨이 막혀 거의 죽을 뻔했고, 어쩌면 죽었던 것도 같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을 적에 코와 입속에서 흙이 쏟아졌다.
눈물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움직이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예전 거래처로 물건을 전부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화가 잔뜩 난 부장님이 호통을 쳤다.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아 죄송하다 연거푸 말하는 중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틀 전부터 몸살 증상을 보이더니 갑자기 열이 치솟았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증상 발현 후 정확히 사흘 뒤 의식이 흐려졌다.
증세가 빠르게 악화되어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어렵게 문병을 온 누나도 못 알아보았다.
지금도 이렇게 숨 막혀 하는 건 산소호흡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다.

아니다. 여기는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 아니다. 정신 차려.
나는 땅속에 파묻혔다. 어머니가 날 흙속에 숨겼다.
어머니, 그럼 누나는?
제발 그 지긋지긋한 담배 좀 끊으라고 잔소리하던 우리 누나는?
누나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숨이 끊어진 내 몸뚱이는 무조건 화장된다. 흙에 묻을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럼 땅에 파묻힌 내 작은 몸은 누구의 것이지?

누군가 내 뺨을 세게 쳤다.
신음하며 눈을 뜨자 나는 가로로 동강난 장명등에 체중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치미는 불쾌감에 피 섞인 침부터 뱉자 입속 틈새에 껴있던 붉은 살덩이가 같이 빨려 나왔다.
글쎄다. 볼 안쪽을 강하게 깨물어 떨어져 나간 조각 같았다. 아니면 내가 물어뜯은 다른 사람의 살덩이라는 얘긴데 전자이든 후자이든 어느 쪽이든 불쾌하긴 마찬가지라 차라리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설양.”
“어랍쇼. 아직 말을 할 수 있나... 그래.”
“어째서 이 난리를 친 거야.”
커다란 대궐 같은 집이 쥐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이만한 크기의 저택이면 가솔들 숫자도 상당했을 텐데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은 모양이다. 불빛이 전부 꺼진 집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이걸 그저 재미로 몰살시켰다고?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네가 말했지.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하실 신묘하신 설 공자,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심지어 새끼손가락만 있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아걸, 나는 새끼손가락이 없어.”
그렇게 말한 설양이 왼손을 활짝 펴보았다.
아뿔싸, 진짜로 그의 왼손은 새끼손가락이 없어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내게 새끼손가락이 없으니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할 수 없겠구나. 내 재주가 신묘하지 않은 건 전부 새끼손가락이 없는 탓이구나... 내가 못난 건 새끼손가락이 없어서구나.”
평소 눈여겨본 적이 없어 몰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은 밑동부터 떨어져 나가 애초에 존재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손가락 이런 거 처음 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 아걸은 전혀 몰랐던 것 같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우리 아걸은 배추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설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지워졌다.
“그래. 난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억울해지더군.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어. 맹렬한 원망이 들끓었어.”
설양은 짐짓 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누가 봐도 속지 않을 거짓 울음이었다.
“내 기분이 어떠했겠어, 아걸. 너도 짐작이 가지? 슬펐어. 화났어. 속상했어. 속에서 분이 올라왔어. 그러자 내 새끼손가락을 망가뜨린 인간에게 복수가 하고 싶어지더라. 당연하지! 복수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야. 이 사람들 전부를 죽인 건 그래서야.”

그가 흑흑 울음 소리를 지어냈다. 그런데 내 귀에는 킬킬 웃는 소리로 들렸다.
“아걸, 아걸... 전부 네 탓이야. 네가 날 비웃어서 그런 거야. 신묘하신 설 공자님은 새끼손가락만으로도 요괴를 혼쭐낼 수 있다고? 어? 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기던 설양이 몸이 망가져 기력을 잃은 날 힘 주어 팽개쳤다.
“이젠 고개도 못 드나. 허리는 부러지고, 팔은 빠지고, 다리는 잘렸네. 음호부로도 이젠 조정이 불가능한 것 같군. 그래...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갈기갈기 찢겨 뻘 속에 가라앉은 의식이 다시 돌아온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내 몸은 뚜껑 없는 초라한 관 속에 뉘여져 있었고, 머리와 발 끝자락에 부적을 붙여놓은 상태였다.
반쯤 떴던 눈을 다시 감고 발가락과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보았다.
찢어지고, 베어지고, 뭉개져 떨어져 나간 신체부위는 어찌된 노릇인지 거짓말처럼 잘 돌아와 붙어 있었다.
주변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수는 없어!”
“나리. 고정하시옵소서!”
“지금 고정이라 하였느냐?!! 야렵을 나간 사이 식솔들이 전부 죽임을 당했는데 어떻게 나더러 고정하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고정하셔야 합니다, 가주님. 귀에서 피가 나고 있습니다. 여봐라. 어서 와 가주님을 뫼셔라. 그리고 가서 의원을 불러와. 서둘러라.”
“에잇, 놓아라. 놓으라 하지 않았느냐!”
“가주님, 정신 차리세요! 뭣들 해. 어서 의원을 불러오라 하지 않았느냐!”

짐승처럼 울부짖는 가주의 기척이 멀어지고, 대신 몸가짐이 단정하지 않은 발자국 소리는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예닐곱 수의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 살아있는 사람은. 찾았느냐.”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법보를 보관하는 비밀창고까지 다 열어봤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수색을 계속해. 우물 속까지 뒤져라.”
“틀렸어요! 함아 할멈과 한 살짜리 손주까지 전부 죽었습니다! 임신한 정이도 죽었구요! 얼마 뒷면 출산이었는데 담즙을 토하고 죽었습니다! 악신도 이, 이럴 수는!”
“도망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냐! 변소 똥물에라도 숨은 사람이 없다고?!”
“찾아낸 시신이 일흔두 구입니다. 저택에서 살아나간 사람은 없어요. 야렵으로 자리를 비운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습니다.”
가슴을 치며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누군가 의문을 드러냈다.
“잠시만. 일흔둘? 일흔하나가 아니라?”
“피를 토하고 죽은 시체가 한 구 더 있었습니다, 부사 어르신. 어린애인데 모르는 얼굴입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집 안 사람은 절대 아닌데... 맨발에 겉옷도 없고 상처 자국이 많더군요. 길을 떠돌다 허기가 져 저희 가문에 밥 동냥을 하러 왔다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허!”
“수소문을 하면 아이를 알아보고 장례를 치루겠다는 자가 나올지도 몰라 일단 가관(假棺)에 넣어두었는데요, 부사 어르신. 직접 보시겠습니까.”
“되었다.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다. 저택을 보호하는 진법에 깨진 흔적이 있다는데 그것부터 조사해!”
서둘러 말한 사내는 다른 사람을 독촉하며 자리를 떴다.

내가 누운 관 주변으로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가만히 팔을 들어 머리로 가져갔다.
얼마나 난리를 쳤음 설양이 끝까지 박아 넣어둔 은침의 머리 부분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망설이기를 두어 번 하고 난 뒤, 눈을 질끈 감은 채 힘껏 잡아당겼다.
붙었던 뼈와 뇌가 덕분에 도로 망가졌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아파 죽을 것 같으면서 눈물도 안 나오니 참 편리한 몸이다.

이제 이걸 어쩐다.
노인에, 한 살짜리 어린아이와, 임산부까지 죽었단다.
그 사람들을 헤친 기억은 없지만 전부 내 탓이다. 나는 절망했다.
“하는 수 없지. 이대로 죽어야지...”
증오해 마지않는 은침을 관 밖으로 내던지고 두 손을 가슴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호흡도 없고, 심장의 박동도 멈춘 몸뚱이다.
장례를 치러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해도 괜찮았다. 땅에 묻어도 상관없고, 불에 태워도 그만이었다.

만 하루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내 몸을 가관에서 꺼내 큰 자루에 넣었다.
“의장으로 옮겨라.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시체를 여기에 계속 둘 수 없다.”
“예, 부사 어르신. 그런데 시변하여 뛰어다니면 곤란하니 미리 다리를 잘라둘까요. 이 거지는 참변을 당한지라 시변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부사라고 불리던 자는 잠시 고민한 뒤,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잘라라.’ 명령했다.

하인 둘이 묶었던 자루의 매듭을 풀고 내 다리를 꺼냈다.
수행을 하지 않은 일반인의 힘으로는 뼈까지 전부 끊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인은 요령을 피워 힘줄만 베어냈다.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끝

Posted by 미야

2021/10/30 16:55 2021/10/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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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시] 풀피리 11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그럴 리가!) BL 호러물입니다. 잔혹한 묘사 있습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나는 불을 끈 방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커다란 쿠션, 감자 맛 과자봉지가 굴러다녔고, 냉장고에서 꺼내온 차가운 캔 맥주는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이미 캔 하나를 해치운 직후라 배가 살짝 거북했다. 그 더부룩한 느낌에 맥주가 아니라 탄산음료를 마실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출근을 제대로 하려면 몇 시에 잠자리에 들면 좋을지를 생각하며 리모컨 버튼을 만지작댔다.
보고 있는 텔레비전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특수효과에 정성을 들여 난무하는 피보라가 어색하진 않았다만, 어리고 약해보이는 여자가 녹색을 띈 검은 즙을 토하고 쓰러지는 모습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엑스트라 쟤 지금 뭘 토한 거야? 설마, 녹즙이야? 빨간 물감도 아니고 녹즙? 저건 진짜 에바쎄바잖아.

카메라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쓰러진 여인을 클로즈업하여 잡아냈다.
배우의 얼굴은 희고 창백했다. 강남 미용센터에서 비용을 들여 점을 전부 빼버린 듯한 하얀색이었다.
자고로 피부가 고우면 인물이 사는 법이다. 코가 조금만 더 오뚝하면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조연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쳐요, 도망치라고요! 빨리 달아나!’
쓰러진 여자 뒤에서 허리 부분에 넓은 요대를 두른 한 장 차림새의 남자가 악을 써댔다.
남자는 부러진 검을 들고 있었다. 보고 있는 영화가 아무래도 중국 무협물인 모양이다. 그가 잇, 잇, 기합 소리를 내며 엑스 자 방향으로 부러진 검을 휘둘렀다. 동작이 힘든지 피가 쏠린 얼굴이 새빨갰다.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감자 맛 과자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재미없다.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 배우는 보이지도 않고 전부 엑스트라다.
얇게 기름에 튀겨진 감자가 경쾌한 파삭 소리를 내며 입안에서 부스러졌다.

‘내보내줘, 여기서 내보내줘~!!’
수십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려가 대문을 손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음향효과 감독이 그 장면에서 모든 소음을 소거했다.
두드리는 동작에 쾅쾅 소리가 빠지니 소금 간이 빠진 맹탕 국이었다. 쯧, 혀를 차고 다른 드라마를 보기 위해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어라. 안 되잖아. 건전지가 다 되었나.”
반복해서 눌러도 채널이 바뀌지를 않았다.
일어나서 직접 텔레비전을 조작해야 하나.., 귀찮은데. 먹통인 리모컨을 소파 위로 던져버리고 쿠션에 머리를 괴고 비스듬히 누웠다.

장면이 바뀌어 피눈물을 흘리는 괴물이 등장했다.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분장 담당자는 배우의 눈가에 붉은 물감을 바르는 것만으로는 인상적인 장면 연출이 어렵다고 여겼던지 코와 입가에도 붉게 칠을 했다. 없느니만 못했다. 코피가 주룩 흘러내리는데 무섭다는 느낌 이전에 바보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싸움 중 코피가 터지면 패배자라는 인식이 있어서다.
“제대로 좀 해라, 귀장군.”
누군가 타박을 했고, 분장한 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괴물이라고 단정 짓기엔 체구가 너무 왜소했다. 바짝 말라 어린애처럼 보였다. 기껏해야 10대 초반 정도나 될까, 감독 취향 정말 고약하다. 제대로 된 악당 캐릭터를 구축하려면 덩치가 큰 근육질의 배우를 썼어야지. 그런 면에서 배트맨에 나온 톰 하디는 최고야.

하품을 참고 있는데 롱 테이크 기법으로 10분 이상 살육의 장면이 이어졌다.
‘줄거리를 영 모르겠군. 누가 악당이고 누가 착한 사람이지? 아예 내 편, 네 편이 없는 거야?’
화면 속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어린 괴물이 잡혔다. 괴물의 어깨를 잡은 건 하얀 특수렌즈를 낀 엑스트라였다.
좀비? 중국 무협 영화인데 좀비? 여하간 도끼날 번쩍였고 아이의 목덜미와 어깨가 두 번 찍혔다.
충격을 받고 괴물이 쓰러졌다. 목덜미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야 하는데 제작진이 검열에 걸리는 걸 염려했는지 입고 있는 옷이 피로 흠뻑 젖어가는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그렇다고 환호하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그저 겁에 질려 구르고, 뛰고, 담벼락에 매달렸다.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얀 특수렌즈의 엑스트라가 소년의 이마 한 가운데를 향해 다시 도끼질했다.

뇌수가 튀면서 소년이 풀썩 쓰러졌다.
그러자 담벼락에 매달려 있던 남자도 같이 풀썩 넘어갔다.
아니, 왜? 머리가 깨진 건 저쪽인데?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진 남자의 얼굴이 한쪽으로 툭 돌아갔다. 슬며시 벌어진 입술 틈새로 아까처럼 짙은 색의 녹즙이 줄줄 샜다.
설마, 녹즙 회사가 스폰서로 붙어서 그런 거야? 질감과 색채 묘사에 질겁했다.

‘□□□ □□□□□!’
어. 이 대사는 못 알아들었다.

‘당연히 못 알아듣지. 저건 중국어잖아. 그런데 왜 자막이 없어?’
고개를 갸웃하며 맥주를 한 모금 입안에 담았다.
‘응? 잠깐만... 방금 전까지 대사 다 알아들었는데?’
내가 언제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가? 놀라워하며 입안에 물고 있던 맥주를 꿀꺽 삼켰다.

‘이릉노조야! 이릉노조가 분명해! 이릉노조가 부활했다!’
이 영화 메인 빌런 이름이 이릉노조인가? 녹즙 토하며 쓰러지는 사람들이 저마다 이릉노조의 이름을 외쳤다.

“정말 이릉노조를 몰라?”
누군가 나에게 질문했다.
“이릉 난장강에서 사마외도로 이름을 드높인 그 자를 모른다고?”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이릉에 가본 적도 없다고. 그리고 소산은 작은 동네야.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식이 전달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
“기산 온씨는 알고? 사일지정 진짜 몰라?”
“모른다니까. 배추를 배달하던 애가 뭘 알아. 세상 어지러운 건 일부러 나서서 알고 싶지도 않고, 마을 어귀에 방이 붙어도 글자를 읽을 줄 모르거든. 한문 싫어. 한문 몰라. 나라말쏘아미 듕귁에달아 문쪼아와로 서르 소아모앗디 아니호알쏘아이.”
“까막눈이었어? 종이를 보면 매번 열심히 들여다봐서 글을 아는 줄 알았는데.”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그 정도는 알지.”
“그래선 전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지... 까막눈 맞네.”

그런데 댁은 뉘슈. 내가 지금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대화 내용도 이상하다. 소산? 배추 배달? 우리 회사에서 포장용기가 아니라 채소를 취급했다고? 언제부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업무 과중에 의한 스트레스가 컸었나 보다.
피식 웃으며 벽에 걸린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일요일이라고 늦게까지 뒹굴고 놀면 월요일 아침이 지옥이 되어버린다. 발주 신청서 검토도 해야 하니 씻고 일찍 잠자리에... 어라, 시계 어딨어.

본가에서 대학생 시절부터 쓰던 벽시계가 없어졌다.
벽지에는 둥근 모양새로 변색된 얼룩이 남아 있었는데 걸려 있던 시계만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도둑이 든 건 아닐 테다. 싸구려였고, 디자인도 촌스러웠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재활용장에 버린 기억은 없으니 남의 손을 탔다는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람, 중얼거리며 무릎을 세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다 풀썩 쓰러졌다.
‘응?’
무릎 아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예리한 날에 잘린 뼈가 제대로 힘을 낼 리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산발한 채 바닥을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미역줄기처럼 흔들거리는 머리를 들었을 적에 공포에 질린 여자의 창백할 얼굴이 보였다.
“귀신아!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여자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실례잖아. 나는 귀신이 아니다. 직장인이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만석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손가락이 죄다 잘려나가 엄지와 중지만 겨우 남은 손을 뻗어 여자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씩씩하고 후끈거리는 건강한 기운이 여자의 몸에서 빠져나와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으아악~!!! 저것이 혼백을 먹었어! 혼백을 먹었다고!”
먹어? 혼백을? 그게 뭔 소리야.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건 편의점에서 산 파울라너야. 넌 맥주도 못 먹어 봤냐.
“도로 뱉어내! 뱉어내라고!”
끝이 갈라진 쇠고랑으로 남자가 내 몸통을 찍었다.
무쇠로 만든 쇠고랑은 크고 무거워 물리의 힘으로 내 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었다.
나는 이게 저예산 스플래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이 없었다.
왜냐면 고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픔은 찌른 쪽에서 느낀 것 같았다.
사내의 눈이 확 벌어졌다. 그리고 헐떡이며 자기 가슴을 눌렀다.
또다. 이번에도 따뜻한 기운이 남자로부터 나에게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남자의 입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검은 색조의 녹즙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다.
사내는 숨이 곧 끊어졌고, 컬커덩 소리를 내며 쇠고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Posted by 미야

2021/10/29 11:25 2021/10/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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