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아님!)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나는 다시 심하게 멀미했다.
돛단배를 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어찌나 뒤집어지던지 이젠 내가 진짜로 죽은 사람인지, 가짜로 죽은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웩웩 소리를 내는 동안 알 수 없는 힘이 내 머리를 뽑아 긴 엿가락 모양으로 늘어뜨리려 했다. 12리(※대략 5km) 이상 늘어지지 않나 싶었을 적에야 강하게 잡아당기던 힘이 느슨해졌다.
흰옷을 입은 소년들과 택무군이라고 불리우던 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고, 얇게 늘어진 내 몸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나풀나풀 흔들렸다.
“돌아와, 걸람.”
날 부르는 목소리는 매우 거만했고, 단호했다.
“당장 안 돌아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목이 움츠러들었다.
얼마나 살기등등하던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다리뼈를 분지르겠다는 어조였다.
“술법이 잘못된 건 아닌데 왜 이리 돌아오는 속도가 늦지? 내가 모르는 실수라도 있었던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님 이릉노조의 글에 빠진 내용이 있었던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머리카락과 뺨을 만졌다.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 지금 누가 날 만졌다는 걸 인지한 거야? 죽었는데?
차가운 손이 피부 결을 따라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차가운 건 상대가 아니라 내 쪽이라 해야 맞았다. 체온을 잃은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을 거고, 죽음으로 인해 가닥가닥 끊어진 신경회로로 방금 전 재가동 불이 들어오면서 온기의 주인을 착각했다.
“아걸... 내 말 들려? 깨어난 거 맞지?”
설양이 여자 꼬시는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아래턱으로 내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두 눈이 번쩍 뜨였을 적에 제일 먼저 시야를 장악한 것은 수천 장에 이르는 부적이었다.
구멍을 제외하고 –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의 칠백을 제외하고 부적이 얼기설기 달라붙은 상태였다.
기겁을 하고 상체를 일으키자 약한 장력으로 목과 가슴에 붙어있던 종이부적이 바닥으로 우수수 흘러내렸다.
아니 이거 진짜 뭐냐고. 비주얼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잖아.
바닥에는 피로 그린 것이 분명한 진법이 제법 큰 크기로 그려져 있었고, – 저게 제발 사람 피는 아니길 빌었다 - 내가 누운 자리에만 마른 지푸라기가 이불모양으로 깔려 있었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얼마 되지 않은 초로 밝힌 주변은 컴컴하고 습했다.
동굴인가, 아님 지하실?
흙벽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풀풀 피어올랐다. 연무에선 언짢을 정도의 악취도 났다. 습도 높은 장마철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였다. 무언가 상했고, 썩어가는 중이었다.
벌벌 떨며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오랜 노동으로 거칠어진 걸람의 손이었다. 다만 핏기가 없어 분칠을 바른 것처럼 피부가 뽀얀 빛깔이었다. 움직임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주먹을 쥐고자 하자 쥐어졌고, 도로 펴자 펴졌다.
문제는 다행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거다.
“맙소사. 이게 뭐야.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는데 눈은 메말라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멋대로 죽여 놓더니 이젠 맘대로 되살려놓고... 이러는 법이 어디에 있어.”
몸에 붙은 부적들이 살을 파먹는 구더기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진저리치며 손에 잡히는 부적 전부를 계속해서 잡아 뜯었다. 뜯어서 던지고, 구겨서 던졌다. 검에 찔려 숨이 끊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잠깐 눈 감고 떴을 뿐인데 언데드가 되었다.
“열흘이나 깨어나지 않았어.”
“네?”
“열흘이나 깨어나지 않았다고. 진짜지 더 늦어지면 날 우습게 여기는 거라 생각하고 벌을 주려 했지.”
설양은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미리 준비한 것으로 여겨지는 작은 소반을 가져왔다.
소반 위에는 무려 금박을 정교하게 입히고 모란무늬가 음각된 술잔 두 개와 붉은 천으로 입구를 막은 술병이 올라가 있었다.
저런 비싼 술잔은 어디서 가져왔대?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물건이 나왔다. 아니지, 지금 그게 문제냐.
인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성년자야!
하지만 목구멍이 솜으로 틀어 막혀 외침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 귀신도 기가 막히면 말문이 막히는 거였다.
이쪽에서 끙끙거리는 것도 모르고 술상을 내려놓은 설양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 세계에선 미성년자 음주에 관대한 탓에 포장을 벗기고 술을 따르는 자세가 매우 능숙했다.
“명령이야. 이리 와서 앉아.”
나는 거부의 의사를 밝히며 도리질했다.
“주인의 명령이다. 이리 와서 앉아.”
“누가 주인이라는 거야. 너는 내 주인이 아니야.”
그간 기분 좋아보이던 설양의 얼굴색이 내 반말투에 약간 거칠어졌다.
마음 같아선 술상을 뒤엎고 행패를 부리고 싶은 것 같았지만 애써 숨을 고르는 눈치였다.
설양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까딱까딱 흔들었다.
“한 번은 봐주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까. 딱 한 번만 봐주는 거야. 그러니 잘 들어, 아걸. 죽은 너를 이릉노조의 술법으로 내가 되살렸어. 내가 주인이고 너는 내 인형이야. 이릉노조가 온녕을 귀장군으로 만든 것처럼 내가 널 만들었어.”
“이릉노조? 귀장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넌 내 인형이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누구더러 인형이래. 내가 왜 네 말대로 해야 하는데.”
“아걸! 닥치고 네 주인에게 복종해! 여기 와서 앉아! 명령이야!”
어디선가 딸랑 소리를 내고 방울이 울렸다.
그러자 손오공이 긴고아로 머리가 조여졌을 적에 어째서 근두운에서 떨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그건 두통이라 부를 종류가 아니었다. 펜치를 사용해 잘게 부순 두개골을 야무지게 뽑아내는 아픔과 같이하여 대규모 지옥 합창단이 ‘복종해, 복종해, 복종해, 복종해.’ 노래를 불협화음으로 불렀다. 게다가 접속곡 가락은 엇박자로 꼬이기까지 하여 ‘해복종, 해복종, 해복종.’ 이러며 존재할 리 없는 가사로 바뀌기까지 했다.
오금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바닥에 머리부터 처박은 모양새로 고꾸라졌다.
콰직, 이러고 두꺼운 나무토막이 분질러지는 소리가 났는데 부디 목뼈가 부러진 건 아니길 바랐다.
“아걸, 너는 이제부터 내 귀장군이야.”
설양이 화가 잔뜩 나 씨근덕대며 말했다.
저기요? 저더러 장군이라고 하면 부끄러운데요. 키가 8척이기를 해요, 관우처럼 수염이 났기를 해요. 나더러 장군이라고 하면 다들 애기 장군이냐며 비웃기부터 할텐데.
“누가 뭐래도 넌 내 귀장군이야.”
벌레처럼 꿈틀꿈틀 기고 있는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설양이 재차 강조했다.
“내 거야. 내 거라고.”
설양이 내 뒷덜미를 잡고 술잔이 있는 소반 앞으로 끌고 가려 했다.
아 좀~!! 여전히 긴고아가 내 머리를 빈틈없이 조여 대고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반항했다.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다음날 아침 6에 서울로 출근했던 경기도 거주 직장인의 근성을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두통? 그런 건 편의점에서 컨디션 하나 빨면 가라앉아!
두 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지푸라기를 움켜쥐곤 설양의 다리를 뻥 걷어찼다.
그래! 염라대왕이 소원성취 하라고 날 지상으로 다시 불러들였구먼. 설양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거였어. 아이고 시원하다, 아이고 고소하다.
“복종해!”
설양이 두 팔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그것도 다른 사내와 정분이 나 도망간 마누라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매우 찰지게 뜯었다.
우습게도 두피가 뜯겨나갈 것 같아 아파 미치는 줄 알았다. 되살아난 시체인데 통증이 웬 말이냐.
나는 놓으라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그를 밀었다.
한 움큼이나 뜯겨져나간 남의 머리카락을 손에 쥔 채 밀려난 설양이 어이없어 했다.
“뭐야...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음호부로 되살렸는데 어째서...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술식이 잘못되었어? 뭐야. 이럴 리가 없는데. 이릉노조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음호부라서 실패한 거야?”
그런 거 난 몰라. 이릉노조이고 철도노조이고 닥치라고 해.
어딘지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설양의 얼굴을 향해 스트레이트 펀치 한 방을 날린 뒤,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