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Summertime 03

※ 글쓰기를 그만 둔 것이 6개월도 더 지난 옛날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내용을 몽창 다 까먹었지요. 여전히 인생은 수라장이지만 이불 뒤집어쓰고 고민해봤자 달라지지는 않더군요. 저는 직장에서 쫓겨나 다른 사무실로 옮겨갔고, 오빠의 결혼 일정도 결국 가난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황달이 아저씨나 재커라이어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사는 일 자체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걸 깨닫는 작금입니다.


임팔라를 처음 소개해줬을 적에 기쁨에 들떠 반짝반짝 빛나던 메리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자기야! 이거 정말 근사하다!」
사실 메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보다 덜 점잖았고, 여자애가 사용하면 안 되는 비속어가 섞여 있었다. 아마「졸라 끝내준다」였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턱시도가 늘 옷장에 걸려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닌 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빌어먹게 좋아 죽겠다는 점에선 존도 마찬가지였다.

땅으로 내려온 아름다운 천사가 두 팔을 벌려 전 인류를 포용하지 않았어도 두 사람이 느낀 흥분감은 운석이 달과 정면 충돌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했다. 불꽃이 튀었고, 눈부신 섬광 탓에 사고력이 마비되어 살짝 맛이 갔다. 그래서 청춘남녀는 과속딱지의 존재를 까마득히 망각한 채 도로로 뛰어나갔고, 약물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빛을 번득였다.

존은 한껏 으스대며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때마침 흘러나온 노래는 폴 앙카의「다이아나」.
당신만이 내 마음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또한 당신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유일한 사람.
메리는 손을 뻗어 존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핸들을 쥐고 있던 팔을 내려 메리와 손깍지를 꼈다.
오, 부디 다이아나. 내 곁을 떠나지 마세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존은 고개를 돌려 메리와 깊게 키스했다.
앞쪽으로부터 달려오는 차량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 10분 이상을 중앙선을 침범한 채 곡예운전을 하는 중이었고, 혹자들이「젊은 것들이 죽으려 환장했다」라 표현하는 어리석은 짓들의 본보기나 다름없었다.
밤은 깊어갔다. 자동차의 엔진은 더더욱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입은 옷을 벗는데 뒷자석 공간이 충분한가를 두고 같잖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67년도식 시보레 임팔라는 해군에서 금방 제대한 상등병이 타고 다니기엔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일단 너무 무게가 많이 나가 파워 스티어링과 파워 브레이크 없이는 제대로 제동을 걸기 어렵다. 문짝이 너무 커서 옆에 다른 차가 주차해 있을 때는 문을 여는 일이 난감하다. 앞좌석 등받이가 주저앉을 염려가 컸고, 가속기 페달의 결함 유발 가능성이 있었다. 앞 유리창의 와이퍼는 긴 홈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곳으로 먼지나 낙엽이 쌓여 움직임을 나쁘게 만들었다. 겨울이 되어 눈보라가 치면 사정은 더욱 나빠져 순식간에 물기가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비가 오면 트렁크로 물이 새는 일도 있다. 이쯤만 해도 충분히 속상한데 오래된 모델이라 - 누가 뭐래도 중고품 - 하자가 있는 곳을 고치는 일도 쉽지 않다.
당해는 봤나. 카센터에서 직원이 묘한 웃음기를 띄운 채 스패너를 빙빙 돌린다.
지금은 생산되지도 않는 부품인데 저더러 어쩌라굽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세심하게 돌보지 않는다면 불원간 주인에게 있어 골칫덩이가 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시보레 임팔라는 그런 자동차였다.

그리고 다시 오늘.
세월이 지나 이제는 해군에서 금방 제대한 상등병이 아니게 된 윈체스터는 슬그머니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자식 놈들을 곁눈질했다.
압박감이 대단한 꾸러미 틈새로 작은 체구의 샘이 짓눌려 있다. 그런 샘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장남인 딘은 자기 머리 위로 가방도 올려 놓았... 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과장이고, 아무튼 소년의 팔뚝으로는 추스르지 못할 커다란 꾸러미를 전력을 다해 끌어안고 있었다. 쥐고 있는 것을 실수로 놓치면 비극적인 눈사태가 발생해 동생이 압사당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다. 덕분에 딘의 안색은 샘보다 곱절로 창백했고 허리는 팔순의 노인네처럼 구부정했다.

이쯤해서 케일럽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박자를 맞춰 존에게 노크했다.
「트럭이 최곱니다. 트럭이 최고. 그거 아세요? 데이비스 말콤 자식은 담요는 물론이고 커다란 난로까지 자동차에 싣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눈보라 치는 알라스카에 가도 얼어 죽을 일은 없을 거라며 자기 하마를 닮은 자기 엉덩이를 막 탁탁 치면서 지랄맞게 으스대고 그럽디다. 뭐, 존의 자동차가 나쁘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말구요... 전 그냥 미니밴으로 갈아탈 생각은 없는지 궁금할 뿐이예요. 그러니까 왜 있잖수, 상등병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자동차 카달로그 한 번 보지 않을라우?」
쉽게 말해 야반도주를 하기엔 임팔라는 썩 좋은 자동차가 아니라는 말씀.
인정하는 바다. 고집을 꺾고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같은 종류를 골랐다면 장남의 뺨이 가방에 짓눌리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 가슴이 답답해진 존은 손을 목덜미 쪽으로 올려 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창문을 열까요? 아버지.』
하여간 눈치 하나는 귀신 사촌이다.
존의 사소한 동작을 몸짓을 알아차린 딘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운 것도 같네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창문을 연다는 건 무모한 모험에 가깝다. 지붕 위를 뚫고 달아날 것처럼 생긴 짐더미가 열린 창문을 통해 이때다 하고 탈출을 시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그래서 샘은 자신의 형을 구제불능의 멍청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을 열겠다고? 차라리 뛰어내려랏.

『똑바로 앉거라, 샘.』
하극상은 용서할 수 없다. 존은 표정을 딱딱하게 만들며 차남이 앉은 방향을 힐끔거렸다.
『한숨 쉬지 말고.』
아버지의 지적에 샘은 흠칫하며 몸을 사렸다. 눈빛은 한층 더 반항적으로 변했다.
엉망으로 찡그린 표정에서 고스란히 읽혀진다.
저는 맘대로 한숨도 쉬지 못 하나요. 이런 것에도 허락을 구해야 하냐고요, 아버지?
동시에 죄책감이라는 것이 샘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네 살 위의 형을 바보 취급했다. 그래선 안 되는 거다. 딘이 그에게 바친 헌신을 생각해서라도 - 똥 싼 기저귀를 찬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친 사람이 누구던가 - 거기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러지 말라 경고했다.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쁜 아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창문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그런 동생의 반응을 오해한 딘이 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렇게 한숨 쉴 거 없어, 새미. 어디를 가든 우린 분명 재미있을 거야. 앞으로 가게 될 곳이 시퍼런 깡촌이라고 해도 나쁠 거 하나 없다고.』
『...』
『그거 아니? 어쩌면 우린 달걀을 요금 대신 받는 극장을 찾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렇게 뾰로통한 표정따윈 짓지 말아.』
만사가 긍정적인 딘은 즐거운 소리를 냈다. 헤헤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이 형이 농담 따먹기 잡지에서 봤는데 말이지. 시베리아의 한 마을에선 현금이 없는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입장료 15센트 말고 암탉이 금방 낳은 따끈따끈한 계란을 받았다는 거야. 아무렴! 여러 달 전부터 월급을 못 받은 사람들도 샤론 스톤이 나오는「원초적 본능」은 봐야 쓰지 않겄냐?』
여전히 고개를 창문 밖으로 고정시킨 채다. 그래도 딘은 동생이 눈을 아래서 위로 치켜뜨고 있음을 읽어냈다. 분명 입도 튀어나왔겠지. 콧잔등에 주름도 생겼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얽힌 손가락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봤자 우리에겐 암탉이 없다고, 딘. 그리고 형은 닭을 키울 줄도 모르잖아.』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서 병아리부터 품겠다고?』
설령 키우겠다고 해도 존이 허락하지 않을 거다. 존은 아이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에 반대했다. 닭이 과연 애완동물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건 둘째다. 샘은 말도 안 된다며 조소했다.
『형은 기름에 튀긴 닭만 좋아하잖아. 살아있는 닭은 형에겐 무리야.』
딘은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안 된다며 피식거렸다.
『인석아, 정 안 된다면 임기웅변을 써먹어야지. 달걀이 없음 빈병을 대신 들고 가면 되잖니.』
『빈병을 들고 가도 마찬가지야, 딘. 우린 지금 신선한 달걀을 요금으로 받아주는 극장이 있는 시베리아로 가고 있는게 아니니까.』
활짝 미소를 터뜨린 딘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샘! 바로 그거야. 네 말이 맞아. 우린 시베리아로 가는게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발랄한 스머프 노래를 부르자. 딘은 귀로는 들리지 않는 투명한 음악에 맞춰 상체를 흔들었다 - 라기 보단 어깨를 찍어 누르는 폴로백팩에 반기를 들기 위함이었지만, 아무튼 겉으로 보자면 꽤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샌디에이고? 라스베가스? 어디에라도 오케이. 어쩌면 멕시코로 내려갈 수도 있지.』
그렇죠, 아버지 - 하고 딘이 한 박자 골랐다.

동생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남의 필사적인 노력도 모르고 여기에 초 치는 아버지.
『멕시코로는 가지 않을 거다, 딘.』
저 밑바닥으로부터 끌어 모은 안간힘이 삽시간에 와해되는 것도 모르고 존은 뻣뻣하게 대꾸했다.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국경을 넘을 수는 없어.』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했을 뿐인데 이건 너무 진지하시다. 딘은 크게 당황했다.
『어, 그러니까... 음.』
『여권 위조는 쉽지 않다. 시간도 많이 들고.』
『무, 물론 그렇죠.』
유통기한이 지나 찐덕해진 쿠키처럼 변한 딘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아버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가볍게 한 말이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 하고 장남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죄송해요 - 라고도 했다.
이내 딘은 입을 다물었고, 쥐고 있던 동생의 손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렇게 3시간가량을 더 달렸던 것 같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필요했다.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구석진 곳으로 자동차를 세운 존은 수퍼마켓이 아닌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향해 잰 걸음을 했다. 장거리 전화를 하고도 남을 정도의 넉넉한 동전을 손에 꼭 쥐고 말이다. 전화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수첩을 열 필요는 없었다. 곁눈질로 아이들이 탄 자동차를 예의 주시하던 그는 때묻은 버튼을 힘주어 꾹꾹 눌렀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신호 대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찰칵 소리와 함께 수화기 저편에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나타났다. 행색이 꾀죄죄한 여행객에게 립 서비스로 맥주 주문하겠느냐 물어보는 식당 종업원 같은 분위기다.
『트리니티?』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입니다. 이따 다시 걸어주십시...」
존은 짧게 심호흡했다. 헌터이면서도 헌터가 아닌 이 여편네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데 도사였다.
『납니다. 존이오.』
「뭔 존? 리틀 존, 아님 빅 존?」
『존 윈체스터요.』
「쳇... 알어. 그냥 장난친 거야. 그래서?」
『물어볼 것이 있소. 도슨 어빙이란 자에 대해서요.』
그러자 수화기 저편에서 여자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9/11/01 20:21 2009/11/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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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마리에 2009/11/04 21:59 # M/D Reply Permalink

    우앗, 반가운 서머타임이네요!! (그런데 어느새 지금은 초겨울 ^^:)
    미야님이 쓰시는 윈체스터 삼부자는 참 맘에 들어요. ^^*

    * 미야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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