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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5

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릉노조,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밤새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 일단 한 번 붙여봐. 악귀는 악귀로 물리치는 법! 잡귀가 이릉노조를 보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장대에 홍보 깃발을 달고 크게 외치는 장사꾼의 호객행위에 사레가 들렸다.
이름만 불러도 쳐들어와 흉악을 저지르고 간다며. 그래서 감히 이름도 못 부른다며.
볼드모트는 의외로 싼 값이었다. 한 장에 세 푼밖에 하지 않았다. 술 한 병보다 못한 값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자 장사꾼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스스로 흥이 돋아 이번엔 붉은 물감으로 그린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못 미더우면 이것도 같이 가져가시오. 악귀징벌 부적 한 장에 다섯 푼!”
이럴 수가. 이릉노조 초상보다 부적이 더 비싸다. 볼드모트가 분노하여 어둠을 먹는 자들 표식을 마구 난사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후회하지 말자! 답녕령 고개에 주시가 매우 많소이다. 왼손에는 이릉노조! 오른손에는 악귀징벌! 양손을 가득 채우면 여행길이 강녕하네~!!”

허리를 숙여 초상화를 구경하던 짐꾼이 속으로 저울질을 하더니 사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물건이 마음에 차지 않은 건지는 나도 모른다.
손님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 장사꾼이 재빨리 가격 흥정을 제안하려 했다.
하지만 짐꾼은 노련하게 자신을 잡으려던 팔을 피했다.
“아니 왜?! 이게 어째서 마음에 안 든다는 게야?”
그건 댁이 초상화를 너무 못 그려서 그런 거지.

턱을 괴고 멀찍이 떨어져 돌아가는 모양새를 구경하던 나는 장사꾼의 뒤떨어지는 예술 감각에 혀를 내둘렀다. 눈과 입을 그렸다고 초상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던가. 볼드모트에겐 코가 없었지만 이릉노조에겐 있었겠지. 그런데 저 장사꾼은 콧구멍이랍시고 먹을 찍어 둥글게 점 두 개만 묘사했을 뿐이다.
검은 피부와 송곳니, 힘줄이 툭 튀어나온 인물도 코가 없으니 흉악하다는 인상 이전에 웃겨 보였다.

“왜 웃는 거야, 비렁뱅이 주제에 재수 없게.”
날 알아차린 장사꾼이 침을 탁 뱉었다.
그래도 발로 차거나 욕을 퍼붓지는 않았다. 콘셉트가 ‘도사’라서 어린 거지를 핍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장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리띠에 옥패장식을 걸고 학우선을 모방한 부채를 들었으니 점잖게 손짓으로만 저리 가라고 표현했다.

그런다고 내가 시키는대로 할 사람이 아니지.
“이릉노조가 진짜 이렇게 생겼어요?”
“왜 달라붙어! 살 거 아니면 가라, 얘야. 물건 살 돈도 없으면서 귀찮게 하는 거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이릉노조가 진짜 세요? 악귀가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날 만큼 세요? 그런데 왜 부적보다 값이 싸요? 만약 제게 다섯 푼이 있다면 이릉노조 초상 두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아님 부적 한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장사꾼은 그쪽으로 머리가 비상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딴 고민을 왜 해! 전부 다 자기 안전을 위해서인데 기왕 돈을 쓸 거, 다섯 푼에 두 푼을 더해서 이릉노조 초상화 한 장에 부적 한 장을 사야지! 한 푼 깎아준다. 사!“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을 사람이었다. 세일즈의 귀재였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초상화와 부적을 한 장씩 구입했다.
이것으로 얻은 노잣돈이 전부 동났지만 잘 하면 이릉노조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겠다 싶자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다.”
가짜 도사는 태세를 바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챙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릉노조가 이렇게 생겼어요?”
“그럼! 아주 무섭게 생겼지. 입과 귀에서 연기가 나오고 키가 무려 아홉 척이란다. 이 도사님이 직접 이릉에 내려간 적이 있어 이릉노조 위무선에 대해 아주 잘 알지.”
이릉은 지명 이름이었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적을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했다.
“부적 만드는 것도 거기서 배운 거예요?”
“용케 아네. 맞아! 거기서 배웠어. 그 부적을 부정한 것들의 이마에 딱! 붙이면 불이 저절로 붙는단다.”
마음에 드는 설명이었다. 냉큼 부적을 이마에 딱 소리가 나게끔 붙였다.
메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여. 불량품이여? 나는 흉시인데 불 안 붙는데?
“아니, 아니. 네 이마에 붙이는 게 아니라 주시에게 붙이는 거라니까. 얘가 참 아둔하네.”
가짜 도사가 혀를 차며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주려 했다.

“가짜 부적이잖습니까.”
지학의 나이에 이른 소년이 참다 참다 참견하는 거라며 인상을 쓰고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도 눈이 동그래지고, 가짜 도사의 눈도 동그래졌다.
가짜 도사의 말문이 막힐 법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식이 있어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신선의 기운을 풍기며 이목구비가 준수했다. 무엇보다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된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게 날을 세운 진검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림에 불과한 걸 부적이라고 팔면 안 됩니다.”
소년이 강하게 나오며 내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냈다.
“흉내조차 내지 않았군요. 이건 아무런 효능이 없어요.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이런 걸 쓰려 한다면 그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아, 뭐, 어쩌면, 그... 그런가요?”
장사꾼이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다.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세요. 그리고 그 부적은 더 이상 팔지 마시고요.”
“예, 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공자님.”
“경고하는 겁니다.”
풀이 꺾인 가짜 도사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팔던 물건을 챙겨 달아났다.

엄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기세를 누그러뜨리더니 나에게 돌려받은 일곱 푼을 쥐어주었다.
손이 참 따뜻했다.
“도령도 앞으로 속지 않도록 조심해요.”
“고...맙습니다?”
상대방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일단 흰옷 자체가 싫었다. 배추 가게에서 나에게 당과를 사줬던 이름 모를 선사도, 효성진도,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친절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엄청 이상했나 보다. 소년이 고개를 숙여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동전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입술을 끌어당겨 가식적으로나마 웃었다.
설마, 내가 흉시라는 거 알아본 거야? 그, 그렇다면 참 감사하네요!

“사추. 이제 출발할 거야. 거기서 뭐 해?”
“별 거 아니야, 경의.”
“무슨 일 있어?”
“아냐. 다 끝났어. 터무니없는 가짜 부적을 파는 사람이 보여서.”
소년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자기네 무리로 돌아갔다.

상인들이 목소리를 낮춰 숙덕거렸다.
‘고소 남씨다.’ ‘고소 남씨가 야렵을 왔다.’ ‘함광군은 안 보이는데.’ ‘어린 소년들이 대단하군!’
한 귀로 흘리면서 골목길로 들어가 몸을 낮췄다.

효성진이 친우 송자침과 함께 설양이 저지른 악마 같은 짓을 고발하였을 적에 현문 세가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고소 남씨는 자기네 식으로 알아본다며 뒤로 빠졌다.
운몽 강씨는 혈기가 왕성하여 ‘엿 드세요!’ 라고 했다.
난릉 금씨는 과장된 헛소문이라고 치부했고, 청하 섭씨는 물불을 안 가리고 ‘죽여라!’ 일갈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꼬부랑 낙서를 한참동안 끄적거리던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현문 세가라는 거, 신선이라는 거, 그야말로 쓸데없었다.
‘그나마 청하 섭씨가 우리 편이긴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과거형이다.
왜냐하면 당시 청하 섭씨의 종주였다던 자가 매우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적봉존 섭명결은 생전에 민심을 잘 살피고 무(武)에 맹진하여 ‘바르고 곧은 사나이’ 이미지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런 사내가 갑자기 패도를 꺼내 허공에 휘두르며 주화입마에 빠져선, 말리려던 동생까지 상처를 입히고는 칠백으로 피를 쏟고 급사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지만 섭씨 일가가 젊어서 요절하는 건 집안 내력이라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이른 새벽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모양새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에겐 그놈의 교통사고가 빨간 마티즈 느낌이라서...’
손바닥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땅바닥에 그린 낙서를 지웠다.

청하 섭씨는 이후 쇠락기에 접어들어 지금은 4대 현문 세가로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구색만 맞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몸을 의탁한 수행자 숫자도 적어 지금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적봉존이 여태껏 살아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내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천하에 의지하고 믿을 구석 하나 없다는 얘기다.

“아, 찾았다. 요놈! 요놈! 내 돈!”
고소 남씨 소년에게 쫄아 도망갔던 가짜 도사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이릉노조의 초상화와 부적을 팔았던 값이 아쉬워 멀리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던 모양이다. 고소 남씨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날 찾으러 다녔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아이고 형님, 나는 웃으며 일곱 푼 동전을 쥔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어차피 부적은 장난감 같은 거였고, 그에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았다.

Posted by 미야

2021/11/16 13:16 2021/11/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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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4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일단 옷과 신발을 구입했다.
상인이 지저분한 내 모습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얕잡아보고 터무니없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
그런데 내 속 알맹이가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거덩요. 목을 감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보여주며 귀신을 잡으러 온 수사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떠벌리자 어색하게 웃으며 가격을 도로 깎아줬다.
상인은 소란만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수사들이 어검하여 날아가더니 산이 무너지고.’
무슨 노래 제목 같은 이야기가 이미 마을을 한 바퀴 돌았기에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상태로 예민하게 몸을 사렸다.
얼마 뒤, 검을 소지한 수사들이 트럭 크기의 곰 사체를 가져와 가죽손질을 의뢰하자 숙덕거림은 배가 되었다.
‘며칠 전 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들렸잖아요? 그때 거기서 잡은 괴물 곰이래요.’
‘깊은 계곡에서 도를 닦던 곰이었는데 산신이 되고자 욕심을 부려 태산의 법기를 훔쳐 달아났다네요.’
‘그런데 진법을 깔고 수행을 계속해도 진척이 없자 사술에 빠져 사람을 잡아먹어 법력을 높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난릉 금씨가 몰려가서 진법을 부수고 곰을 죽였대요.’
‘난릉 금씨가 아니라 운몽 강씨라던데?’
‘금씨나 강씨나. 수진계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하지. 아무튼 저 곰을 깔개로 만들 거라네요. 짐승의 몸으로 분수를 모르고 법기를 훔치고 사람을 먹었으니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그 몸을 밟아 벌을 주겠다는 의도래요.’
‘그나저나 가끔 도사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무리를 지어 저 산으로 올라가는 이유가 있었던 거네? 우리에겐 귀한 약초를 캐러 가는 거라고 했으면서. 실은 잃어버린 신선의 법기를 되찾으려고 한 거군.’
‘그런데 난 저 산꼭대기로 사람 먹는 곰이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숲에 들어가 몰래 숯을 굽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적은 있잖아.’

먼발치에서나마 수레에 실려 작업장으로 떠나기 전의 곰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이 전부 나와 법석을 떨며 구경을 하였기에 앞에서 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몸을 밟는 벌을 주겠다니.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자고로 거짓말이 도는 건 더 큰 거짓말을 숨기기 위함이다.
수사들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짜고 치는 판을 벌렸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거대한 악이 처단되었고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좋다며 만세를 불렀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벽계를 빠져나와 약양으로 향했다.
약양은 멀었다. 그리고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중간에 행상을 만나 수레를 빌려 타지 않았더라면 매우 고생했을 거다.
“제법 먼 곳까지 가는 거네. 무슨 볼일인데?”
나는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작은아버지가 장가를 간다고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독촉하는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곧 갚겠다고 답장이 왔다. 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었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내어 작은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하였다... 듣고 있던 수레 몰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그러면서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마를 찌푸리더니 잠시 후에 하는 말, 어쩌면 작은아버지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작은아버지 말씀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양에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어.”
“듣기로는 상씨라고 큰 세가가 있다고 했는데요.”
“옛날에는 있었지. 하지만 언젯적 이야긴데, 그게.”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
내가 알던 약양은 큰 마을이었다. 진짜로 거지 꼬라지에 아무것도 없던 소산과 비교하면 거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장터엔 파는 물건도 많았고, 군것질이나 장난감을 파는 노점도 있었으며, 마을 겉모양도 번지르르하여 기와를 얹은 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뉘앙스는 완전 쫄딱 망한 동네 취급이다.
잠깐만. 숨을 고르고 잘 생각해보자. 뉴욕 마천루를 구경해본 사람의 눈엔 10층짜리 건물이 코딱지로 보이는 법이다. 수레 다섯을 끌고 가는 행상이면 약양을 두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는 곳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 이런 행상이 소산에 오면 판자촌이라고 할 거야.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진 나를 향해 수레 몰이꾼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돈은 형제 사이에도 함부로 빌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서로 의만 상하지.”

이어 그는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시냐 물었다.
기침을 많이 하신다 둘러댔더니 이것저것 폐에 좋은 약초 이름을 언급하며 가격까지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 아이고, 우리 아들과 똑같이 열세 살인데 불쌍해서 어쩌노.”
어디 가서 스물하나라고 말을 하면 큰일 나겠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완전 망했어!!’
천신만고 끝에 약양에 도착하니 오히려 갈 길이 구만리였다.
상씨가 망했다. 쫄딱 망했다.
오래전에 버려진 저택은 폐가 이전에 귀신이 나오는 흉가가 되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혔고 부적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낮인데도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 주변으로 키 큰 잡초가 무성했다.

“뭐? 상씨 집에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간식으로 먹기 좋은 전병을 팔던 장사꾼이 내 질문을 듣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이거 반응 안 좋다. 전병 값을 계산하면서 쭈물쭈물 예의 거짓말을 다시 반복했다.
먼 친척 형님이 장가를 간다며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상씨네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중이니 곧 갚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답장이 왔다. 형님도 만날 겸 막상 약양에 도착을 해보니...
“속았군.”
다 듣지 않고 전병가게 주인이 말꼬리를 잘랐다.
“상씨 가주 상평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네 친척이라는 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야. 나 참, 풍비박산 난 집안에서 종살이를 한다고 둘러대다니. 돼먹지 않은 사람일세.”
“예? 죽어요?”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송자침의 말로는 저택에서 벌어진 흉사를 접하고 충격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고 했다. 젊은 가주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일어나지 못한 건가.

“큰 소리 내지 말고 들으렴. 살해당했어.”
“네??”
“좋은 일도 아니니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살해당했어.”
“살해를 당하다니. 무슨 일인데요. 왜요?”
“얘가 진짜! 쉿! 목소리를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름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그 자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저승에서 돌아올 거야.”
누구여 그건. 볼드모트여?!
전병 가게 주인이 개미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릉노조 몰라? 이릉노조라니까. 상씨를 멸문시킨 자가 이릉노조 위무선이거든. 지금도 이릉노조라고 하면 현문 세가 사람들이 분하고 화가 치밀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잖아. 불야천에서 무려 3천 수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이릉노조 위무선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귀신으로 나타나 상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고. 그러니 어디 가서 상씨 집안에서 종노릇 하던 사람을 찾는다며 함부로 휘젓고 다니지 말아. 경을 칠 테니. 전병도 사줬고, 네 신세가 하도 불쌍한 거 같아서 큰 맘 먹고 알려주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상씨 집안에 여귀사신을 몰아넣고 공격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 건 설양이잖아요.”
“설양이 누군데.”
“실화냐! 이거 진짜 망했네?!”
아무래도 설양이 만든 음호부를 찾아 이를 증거로 약양 상씨에게 일어난 비극을 증언하겠다던 효성진의 계획은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전부 틀어진 게 분명했다.

귓동냥으로 몇 가지 얻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5년 동안 상씨는 피해복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가주 상평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버린 저택을 제대로 처분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간 듯하다.
이게 왜 추측이냐면 이사를 간 곳이 어디라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다.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는 말도 있고, 곧 돌아올 작정이라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무튼 상평이 집안에서 벌어진 흉사에 큰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던 건 사실이라서 병을 치료할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효성진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이게 왜 설양의 짓이 아니라 이릉노조의 짓으로 뒤바뀐 건데?!’

이릉노조가 사술로 상평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기에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육신과 혼백이 전부 찢겨져 죽었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거나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상평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남은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릉노조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미리 작당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설양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효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쏙 빠지고 없어.’
당연히 나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참변의 날, 상씨와는 상관 없는 피해자로 발견되었던 한 시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품속에서 너덜거려 곧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의 서찰을 꺼냈다.
한자를 잘 모르기에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효성진은 나를 진법에 가둔 뒤, 도술로 새를 부려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보낸 서찰은 내용이 길었고, 중간 것은 간결했으며, 마지막 것은 비명처럼 짧았다.
‘함부로 이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어.’
글자를 읽으면 약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서를 잡을 지도 모른다.
다만 효성진이 나에게 알린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그 전에 글자를 먼저 배워야 했다.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끝.

Posted by 미야

2021/11/15 13:26 2021/11/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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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3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귀를 닫았는데도 바람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았는데도 밝은 햇살에 시린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탈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고된 철야 작업이 끝나 생체리듬이 무너진 상태에서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끓이며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는 기분이 들었다. 김치가 없다고 투덜거리며 둘로 쪼갠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 면이 다 익기를 기다리면서...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생각하는 거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막연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곳에 올 적에 시체자루에 넣어져 효성진 도장 손에 운반되어왔으니 사방이 낯설어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이나 마찬가지이고, 진법 안에 갇혀 - 비유하자면 5년간 감옥에 갇혀 썩고 있다 방금 출소한 셈이니 갈 곳을 몰라 두 다리가 얼어붙을 만했다.
그랬다. 나는 지금 급한 마음과 달리 엉거주춤 서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그때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거다.”
아까부터 계속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는데요, 속으로 대꾸하며 상대를 향해 몸을 틀었다.
짙은 자색으로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염 없이 턱과 뺨이 맨질거렸고, 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묶어 올렸다.
표정이 방금 사람이라도 죽이고 온 것 같아서 - 실제로는 곰을 죽인 거였지만 - 여하간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어 그럭저럭 준수한 외모가 완전히 빛을 잃었다.
‘곰도 죽였는데 너 같은 건 그냥 한 줌이지.’ 식의 눈빛을 하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는데 잔털을 다듬은 눈썹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냐고.

나를 분석하듯 쳐다보던 사내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작고 왜소한 체구, 어깨 길이밖에 오지 않는 쥐 파먹은 머리, 속의도 없이 얇은 중의 한 장만 달랑 걸친 더러운 외견, 그런 주제에 걸맞지 않게 수행자들이나 쓸 수 있는 곤선삭을 들고 있고, 목덜미에 제법 깊어 보이는 상처가 있다. 인정한다. 나라도 수상하다 여겼다.

“수행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들고 있는 곤선삭은 훔친 건가.”
그의 음성이 매우 낮게 가라앉았다.
“괴이하군. 민가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으로 미로진까지 설치되어 있었는데 너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이쪽에서 납득할만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베어버릴 기세다.
곰의 목을 꿰뚫었던 검을 오른손에 쥐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잘 생각하고 혀를 놀려야 할 것이다. 너는 누구냐.”
사내는 성격이 조급했다. 그가 검을 고쳐 쥐자 아홉 장 꽃잎매듭 장식술이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해졌다.

나는 채소가게 송씨의 조언을 떠올렸다.
신분이 높아 보이는 사람과 마주치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신분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화를 내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고,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나리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빌어라.
배꼽으로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나리 한 번만 잘못했습니다.”
빠르게 내뱉고 보니 어색하다. 고개를 갸웃거린 뒤, 바로 잡았다.
“소인이 용서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콩글리쉬로 말하는 느낌인데. 워째 더 이상해졌다.

“외숙부, 잠깐만요!”
저만치 앞에서 금릉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녀석은 죽기는커녕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잠시 표정이 복잡해지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며 떼쟁이 어린아이로 변해 울그락불그락 화를 내던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왜 왔느냐! 내가 안전한 곳에서 얌전히 목을 닦고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니!”
“목을 닦을 수건을 안 주셨잖아요. 그게 제 잘못이에요?”
“금릉!”
“알았어요, 알았어. 목 닦는다고요. 하지만 그 전에 제 말을 먼저 들어보세요. 저건 그냥 바보예요!”
그러니까 때려봤자 이쪽이 손해라며 말렸다.
“저 멍청한 얼굴을 보라니까요? 자기가 뭘 말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잖아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나이도 제대로 셀 줄 몰라 저한테 자기가 스물하나라고 하더라고요.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요. 수상한 게 아니라 머리가 잘못된 놈이라고요.”

외조카가 말리자 살기등등하던 사내의 기세가 약간 누그러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누가 누굴 때린다고.”
그러면서 엉뚱한 방향을 보며 흠흠 헛기침했다.
보아하니 말보다 주먹이 빠른 양반이면서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였다.
와, 나 하마터면 맞을 뻔했네? 그것도 무공을 배운 사람에게 털리게 맞을 뻔했네??

“종주님, 잠시 와보시지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마찬가지로 자색 옷을 입은 수사 무리가 다가와 두 손을 마주 모은 자세로 일반례를 올렸다.
높은 분이 눈짓하자 두 명이 따로 움직여 날 붙잡았다.
내가 빼빼 마른 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한 건지 세게 붙잡지는 않았다. 그저 어깨만 잡았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시신의 상태가 신선하다는 얘기다.
종주는 계속하라는 의미로 턱을 끄떡거렸다. 이에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자가 침착한 말투로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두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입니다. 검을 지녔으되 경지가 높아 보이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품에서 부적과 방울, 효능이 의심스러운 잡기들이 잔뜩 나왔습니다. 이곳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에 끌려 근처까지 올라왔다가 미로진에서 길을 잃고 환각을 보는 중 자기네들끼리 다툼이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수행자가 아니면 그럴 수도 있지. 귀신을 봤다며 날뛰다 서로를 베어 죽인 모양이군. 하찮기는!”
“저어, 종주님... 그 죽은 사람들 중 저 소년의 부친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제야 아차 싶었던지 높으신 분께서 입안 살을 오목하게 물어 깨물었다.
“아니면 짐을 들게 할 목적으로 데려온 머슴이었을 수도 있고요.”
쥐가 뜯어 먹은 내 머리 모양을 보고 수사가 얼른 하던 말을 바꿨다.
이곳 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길러 끈으로 묶거나 관을 써서 모양을 꾸몄으므로 돌칼로 멋대로 잘라내어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온 내 머리 모양이 제법 충격적인 듯했다.
제 핏줄의 머리를 저리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리 없으니 하인이랍시고 험하게 부려진 아이가 아니겠냐는 것이 수사의 의견이었다.

“어른이 전부 죽자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섣부른 추측은 삼가라.”
말은 그렇게 해도 결론은 이미 그렇게 도달한 눈치다.
수사들은 쯧쯧 혀를 차며 ‘운몽에서는 그 누구도 하인을 저렇게 다루지 않는다’ 수군거렸다.
엄청 말랐다, 옷이 더럽다, 머리를 죄인처럼 꾸몄다, 다 떨어진 신발을 신었다, 바보라더라, 말도 들려왔다.

“시끄럽다! 운몽의 수사들이 쟁알쟁알 계집처럼 말이 많구나. 시신 수습이나 해! 여긴 음기가 가득하니 시변하지 않도록 조처하라. 거기 둘은 다른 무리가 더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산이 무너져내린 곳으로 가야겠다.”
“예, 종주! 그런데 이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갈 곳이 있는지 물어봐서 없다고 하면 연화오로 데려가. 있다고 하면 노잣돈을 충분히 주고 목의 상처를 치료해준 뒤에 보내줘. 금릉~!! 네 이놈. 또 어딜 가려는 게냐. 여기서 또 사고를 치면 네 다리를 분지르겠다! 그만 촐랑거리고 따라와! 네가 데려왔다는 하인들을 찾아야 할 거 아니냐! 금씨 수사 이것들은 널 내버려 두고 죄다 어디로 튄 거야! 내 돌아가면 금 종주에게 단단히 한마디 해야겠다. 널 호위하라고 붙여준 수사들 중 제대로 된 놈은 하나도 없고 전부 쓰레기밖에 없었다고!”

금릉은 내가 서 있는 곳을 한 번 쳐다보곤 얼굴색을 바꿔 얼른 외숙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아이를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줄까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참변을 당한 무리에서 저 혼자 살아남은 하인은 풀 죽은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는 편이 어울렸다. 금릉이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가끔씩 이쪽을 쳐다본다는 걸 알았어도 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시를 받은 수사가 약초와 붕대를 가져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받았다.
갈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약양으로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수사는 원하는 대로 하라며 무게가 묵직한 작은 주머니를 나에게 쥐어 주었다. 돈인 모양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잘 숨겨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그러고도 영 못 미더웠던지 날 가까운 마을 초입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간 고생이 엄청 심했던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가지 그러니. 운몽에선 하인이라고 굶기지 않는다. 밥은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만,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알겠다. 네 좋을대로 하렴.”
그는 길게 설득하진 않았다.

멀리서 펑 소리를 내며 신호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노란색이었고, 모란무늬였다.
“하여간 난릉 금씨들은 거북이를 조상으로 모시는 건지 느려 터졌어.”
날 데리고 가던 수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졸졸 물이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양해를 구한 뒤 정성스럽게 세안을 했다.
거기서부터 조금 더 가자 길 옆에 큼직한 돌이 세워져 있었다.
돌 표면에 지명일 것 같은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수사에게 저걸 어떻게 읽느냐 물어보았다.
수사는 ‘벽계(廦界)’ 라고 읽는다 알려주고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라 했다.
감사의 뜻으로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운몽 강씨의 수사를 배웅했다.

Posted by 미야

2021/11/14 20:38 2021/11/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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