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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했다고 말해 - 리오우

젠슨은 나에게 반했거덩요 - 의 무한반복으로 괴로워진 요즘 (참고로 햄볶는다고 읽으셔야 합니다), 이게 어쩐지 귀에 익다 싶어서 고민했다가 허탈하게 웃었다지요.

반했다고 말해. 이 한 문장으로 낚시질을 당했던 책, 다카무라 카오루의「리오우」입니다.

그 정체는 청춘 소설일까요? 권총도 나오고, 갱도 나오고, CIA도 나오고, 남남 커플링(?)도 나오고...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취향이 아니어서 하권은 아예 읽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했다고 말해 - 이 부분 만큼은 참 좋아합니다.



후앙 요우파나 챠오 원리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의 손가락은 노동과는 인연이 없는 하얀색이었다. 이것은 대체 어떤 사람의 손일까 생각하면서 카즈아키는 몇 번이나 마주앉아 있는 남자 쪽을 살폈고, 이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된 경위를 나름대로 더듬어 보기도 했지만 정작 중요한 상대방은 장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무신경한 태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된장국을 위장에 흘려넣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손가에 놓여져 있는 진짜 브라우닝 같은 권총 한 자루도 그렇게 식탁에 놓여져 있으니 장난감 같아서 당연한 듯이 그 권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듯한 남자와 함께 카즈아키의 눈속에서 점점 실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하고 카즈아키는 물어보았다.

남자는 얼굴을 들고 숟가락을 쥔 손을 멈춘 순간 일변하여 요염한 웃음을 띠며 "반했어?" 라고 나왔다.

누구냐고 물으니 갱이라고 하고, 이름을 물으니 반했냐고 나온다. 거의 제트코스터 같은 이 어법은 도대체 타고난 것일까, 계산한 것일까 의아해하면서 카즈아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름을 물었을 뿐이야."

"재미없는 대답이군. 반했으니까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해. 그러면 가르쳐주지."

"당신의 말에는 현기증이 나."

"피차일반이야. 국립대학 학생과 이 내가 만날 만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었다니 상상도 못했어."

"대학은 그만뒀어. 그러니까 내가 학생이었다는 건 잊어줬으면 해."

"그럼 내가 나이트게이트에 있었던 것도 잊어줘."

"이름 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반했다고 말해."



멋지지 않습니까. 이름을 물으면 그 대답은「반했다고 말해」인 거예요.

자아, 이걸 한 번 응용해봅시다.

- 난 괜찮으니 우리 집에다 그냥 짐 풀지 그래요?

- 그러지 말고 나에게 반했다고 말해.

젠슨이 제러드를 많이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제러드도 젠슨에게 반한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 입으로는「젠슨이 날 좋아해요! 신난다~!!」라고 주장하지만 이게 묘하게 반어법 같거덩요.

Posted by 미야

2008/10/02 11:50 2008/10/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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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냐 2008/10/02 14:18 # M/D Reply Permalink

    핫하하~ 제러드도 젠슨을 많이 좋아하겠지요 ^^
    둘은 누가 뭐래도 몇년씩이나 같이 촬영을 한 절친한 친구고,
    극중에서 목숨을 버릴만큼 서로를 아끼는 형제관계잖아요.
    그리고 젠슨역시 모두가 호감을 가질만큼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이니깐요 ^^

  2. 미야 2008/10/02 15:16 # M/D Reply Permalink

    많이 좋아하니까 <나 자러가야 해> 라고 젠슨이 말하면 쿨하게 - 눈물을 질질 짜면서 - 닌텐도를 하는 거겠지요. 크하하! 둘이 잘 어울려서 참 좋아요.

  3. 안전제일 2008/10/03 12:27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해석에 무릎을 탁치며! 오오오!!!(요새 이런 고전적 문체에 열광중이라..^^;;)

    그런거였군요 제러드는!!!!


    써먹어봐야겠어요.'반했다고 말해~'으하하하-
    (나름 첫 댓글인데...인사부터...'안녕하세요^^;;글 잘읽고 있어요!!'수줍수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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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읽어도 괜찮은「무서운」소설이라고 해서 질렀습니다. 웁스, 그런데 제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선 또 품절이군요. 하는 수 없이 알라딘을 이용해줬습니다. 하루만에 재빨리 날아와줘서 기뻤습니다만, 포장을 뜯는 순간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작군요.......... 요즘 책값, 확실히 거품입니다.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지금은 9,000원이라는 정가를 노려보고 있는 중입니다.

책의 내용은 취향에 따라 평판이 많이 갈릴 듯합니다. 과연 무서웠던가? 제 기준으로는 많이 미흡.

그리고 여성의 입장에서 본 주인공 남자가 너무 아닙니다. 다섯 살 딸이 이상한 그림을 막 그려대면「과연 내 딸은 정상인가」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치아키(딸)가 상상하는 세계는 독특하다 - 이건 아니죠! 어린애가 검정색이나 빨간색 색연필로 도화지를 범버꾸를 만들어 놓으면 누구든지 비상등을 켜기 마련입니다. 한가롭게「인간 얼굴을 한 사마귀의 흰 구더기」「토마토 얼굴을 한 노인」「눈 없는 고양이」따위의 제목을 붙이고 있으니 이게 과연 제정신을 가진 아버지 맞나 싶더군요. 게다가 젊고 미인인 출판사 담당에게 청혼하는 건 홀애비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편의 때문으로밖엔 안 보이거덩요? 이거 무지 나쁜 놈입니다. 으스스한 내용과는 별개로 주인공이 많이 싫어진다는 점에서 소설의 재미를 뭉텅 깎아먹습니다.


그래도 참 그렇고 그런 것이...
너무나 흔한 괴담인데도 일부 장면에선 머리카락이 쭈삣 섭니다. 허허허.


요즘에는 식탁에서도 아예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시퍼런 얼굴과 함께 밥을 먹는다. 식탁은 가족이 모이는 장소이다. 그러니 당연히 시퍼런 얼굴의「엄마」가 있어야만 한다. 치아키는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치아키, 이 얼굴이 엄마야.』

미리 준비한 미사코의 사진을 치아키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셋이 우에노 동물원에 갔을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그래, 엄마.』 치아키는 군말 없이 인정했다.

『이 사람은 누구?』

이번에는 미사코의 개인 전시회 때 전시회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직 갓난아기인 치아키를 안고 있는 미사코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띄고 있다.

『엄마잖아.』

『그럼 이 시퍼런 얼굴은 누굴까?』

『엄마.』

『치아키, 어떻게 엄마가 둘이나 돼?』

치아키는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사진과 저 시퍼런 얼굴이 똑같이 엄마는 아니잖아?』

『그치만 엄만 걸.』

이대로 가다간 대화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치아키, 그 얼굴은 엄마가 아냐. 귀신이지.』

치아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잘 들어. 그건 귀신이야. 치아키가 아주, 너무, 무척 싫어하는, 무서운 귀신.』

『그치만...』

『엄마라면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치아키 앞에 나오지 않아. 그렇지?』

『치아키 앞에 엄마 없어.』

치아키는 무섭다는 표정이다. 그 눈동자에 타쿠로가 들어있지 않다.

『어디 있는데?』

『아빠 어깨에 올라탔어.』

Posted by 미야

2008/09/25 19:14 2008/09/2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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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냐 2008/09/26 00:48 # M/D Reply Permalink

    어흥~ 저도 동생이 이거 잼있을것 같다고 해서 샀눈데...
    아직 안 읽었다능...(블로그한뒤부터) 읽지는 않고,,사기만...
    점점 쌓이는 책들은 높아져만 가고 ;ㅁ;

  2. 미야 2008/09/26 09:24 # M/D Reply Permalink

    거 무시라 법칙이라고 그러던데요, 구입하고 일정 기간 (그게 사흘인지, 일주일인지, 아님 한 달인지 모르겠음) 동안 읽지 않은 책은 끝까지 읽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어쩌고랑 테메레르 3, 4권, 밀레니엄 등등이 그래서 쌓이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재밌는 거 없나 맨날 인터넷 서점 클릭하고요... 지인들을 닥달해서 <괜찮은 거 빨리 추천하지 않음 쪽쪽 빨아먹을테다 (뭘?)> 협박하고 있고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질러야하나 고민 중이예욤. 그런데 김전일 싫어염. 음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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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선 품절이어서 지대로 짜증이 났지라.
리브로에서 결국 어렵게 구했습니다. 네엥,<십각관의 살인>입니다.

암흑관의 입 떡 벌어지던 부피에 먼저 압도당한 탓인지 이건 왜 이리 얄팍한가 슬펐습니다. 하지만 월초에다 명절 전 증후군이 덮쳐 현실은 녹록지 않더군요. 책을 펼쳐서 덮기까지 이 정도 부피라면 보통 1시간이면 땡인데 꼬박 나흘 걸렸습니다.

후반부의 한 문장에서 더헛 소리가 날 거라는 말은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충격적인 건 아니었고... 당시에는 꽤나 센세이션 했겠거니 짐작만 해봤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무려 1987년도에 씌여졌으니까요.

어쨌거나 트릭이 강한 추리소설은 제 취향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했고... 저놈을 죽여야겠다 마음이 들면 옥상에서 그냥 확 떠민 뒤에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는게 제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마술이니 기술이니 동원해봤자 골치만 아파요.

<전일아, 너는 이제 외딴 섬이나 고립된 별장따윈 가지 마라> 로 모든 걸 축약하고 마무리.
아,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당연히 이 책엔 김전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 한줄 덧붙임.
요즘 체력이 바닥이라서요. 계속 잠수타고 있습니다.

Posted by 미야

2008/09/08 18:30 2008/09/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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