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어머니는 마음 어딘가가 부서진 사람이라서 배 앓아 낳은 자식에게도 그다지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뺨을 쓰다듬거나,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어린 제이크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또래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 포옹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이마와 뺨에 키스를 받는 거에 놀랐다.
비교할 대상이 생기고 나서야 아이는 자신의 불행함을 깨달았다.
사랑받지 못함에 절망하고 베갯잇을 눈물로 적혔을 적에 그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특별한 아이입니다. 머리가 좋아요. 하지만 반항적이죠. 아주 끔찍하게 반항적입니다.」
「사내아이잖아요. 다들 그럴 걸요.」
「말썽꾸러기라도 동갑내기 여자애의 뺨을 주먹으로 치는 건 흔치 않죠, 어머님.」
교사는 소년에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딱지를 붙여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려「싹수 노람」스티커가 100미터 밖에서도 번쩍거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 동갑내기 여자애가 고슴도치를 연상케 하는 소년의 머리모양이 우습게 생겼다며 강제로 가위질을 했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간 채였다.
「너는 왜 나가서 놀지를 않니. 뭐가 문제냐, 얘야.」
「날 그냥 내버려 둬요.」
아이는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도서관에서 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 네가 읽고 싶은 책이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에 대한 거라는 거지? 어디 보자. 그럼 제2차 포에니 전쟁에 대해 알아야 하겠구나. 그런데 역사는 어디까지 배웠니?」
「장군이 아니고 그냥 한니발이오.」
「장군이 아니라고?」
「제가 원하는 건 역사책이 아니고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책이에요.」
사서는 당연히 기겁을 했다. 열 한 살짜리 애가 식인 살인범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다니.
두꺼운 안경을 쓴 여자는 눈을 부릅뜨고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흐음, 그 잘난 미세스 모이어즈도 이젠 실업자가 되었겠군.』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1시간가량 전속력으로 밟아야 하는 곳이다. 어렸을 적엔 무리를 해서라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꼭 들리곤 했다. 뉴욕 시립 도서관이었던 이곳은 제이크의 비밀 아지트였다. 지금은 예산을 이유로 폐관되어 쇠사슬로 입구가 봉인되어 있다. 어른들이 하는 일들은 죄다 이런 식이다.
시험 삼아 쇠사슬을 앞뒤로 잡아당겨 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슬은 제법 튼튼했고 자물쇠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종류였다. 게다가 안쪽엔 두툼한 철문까지 만들어 달았다. 녹의 유무와 관리 상태로 보아 최근에 붙여놓은 것으로 여겨졌다.
쳇, 소리를 내며 구석으로 침을 뱉었다.
어쨌든 해가 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소년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직장 일이 고된 어머니도 아들이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면 이후부턴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일찍 잠자리에 든 것처럼 꾸미고 밖으로 빠져나와도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미리 기름칠을 해둔 현관문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계획대로다. 신발을 손에 들고, 약간의 식료품과 물, 손전등, 무릎담요가 든 가방을 메고는 탈출을 감행, 밤에는 낮과는 달리 기온이 더 내려가니까 모자나 장갑도 챙겨둬야 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가 가볍다.
최근에는 문을 닫은 도서관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세상에 유령 따위가 어디에 있다고.」
인기척이 없음에도 가느다란 불빛이 종종 창밖으로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은 야간 공사의 불빛이 밖으로 보이는 거지. 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야. 공사 안내판 같은 건 어디에고 없었어. 그러니까 갈 곳이 없는 노숙자가 꼬여든 거야.」
노숙자는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 지하철 내부에도 있다. 햇빛이라고는 요만큼도 들지 않는 곳에서 시궁창 쥐와 같이 어둠 속을 살아간다. 그러니 그들이 홀딱 망해버린 도서관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들어갈 구멍이 있다면 기어코 들어갔을 것이다.
「구멍, 구멍, 구멍... 어디에 있는 거지.」
제이크는 다섯 바퀴 째 건물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낮에 자물쇠를 잘라낼 수 있는 톱을 사려고 공구를 파는 철물점에 들렸다.
생각보다 가격이 좀 쎘다.
것보다 주인이 물건을 안 팔았다.
「네 아버지와 같이 오거라.」
「심부름을 왔다니까요.」
「보호자와 같이 오라니까. 몇 살이지? 열 살? 열 두 살?」
「짜증나네. 제가 그걸로 강아지 뒷다리라도 썰 것 같아요?!」
「보.호.자. 이걸로 대화는 끝이다.」
집에는 공구상자가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톱이니 망치니 하는 것들과는 담 쌓았다.
「망할 자물쇠.」
벽을 타고 2층까지 기어 올라가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볼까 생각도 해봤다. 제이크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몸은 민첩하다. 그러나 대리석으로 치장된 미끄러운 외벽을 타고 3미터 가량을 수직으로 올라갈 능력은 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감마선에 오염된 독거미에게 물렸다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나 초능력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여섯 바퀴 째 돌았다.
제이크는 다시 출입구를 막은 자물쇠와 쇠사슬을 노려보았다.
영화에서 보면 머리핀이나 클립을 가지고 자물쇠를 열던데.
되던 안 되던 에라 모르겠다 심정이 되어 클립으로 자물쇠 구멍을 쑤셔봤다. 한 5분 정도 그래봤다.
『역시 드라마와는 다르구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야겠다. 클립으로 열쇠 여는 법. 자물쇠 따는 법.
짜증을 내며 클립을 내동댕이쳤다.
그와 동시에 소년은 이리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흠칫해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만 돌렸다.
검은 얼굴에 눈만 반짝인다. 제법 크다. 소년의 몸집과 비교하면 저쪽이 더 클 것도 같... 아니, 아니. 이런 도시에 이리가 있는 건 반칙 아니야? 게다가 광견병에 걸린게 분명하다.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린다. 뛰어서 도망가? 무리다. 두 다리로 달리는 건 네 다리로 달리는 것보다 속도가 느리다. 그럼 어쩐다.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무기로 써먹을 종류는 손전등이 유일하다. 아울러 손전등으로 이리의 머리를 때리기 전에 뼈까지 물어뜯길 확률이 더 높다.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되는구나.』
짐승 뒤편으로 인영이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는다.
제이크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손전등을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혹시 길을 잃었니?』
불빛을 비춰보았다.
양복을 입은 커다란 키의 남자가 눈이 부신지 인상을 찡그렸다.
『상관하지 마요.』
남자는 큭, 하고 웃었다. 이쪽은 무서워 죽을 지경인데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재밌다 생각하는 눈치다.
『상관을 안 할 수가 없겠는데. 방금 전에 네가 자물쇠를 만지는 걸 봤단다. 그리고 이곳은 출입 금지 지역이거든.』
오, 봤다고? 그러셨어? 소년은 즉석에서 거짓말을 지어냈다.
『누가 이곳으로 들어가는 걸 본 것 같아서요. 그래서 확인하려고요.』
『누가 들어갔다고.』
『어쩌면요. 확실하진 않아요. 제 착각일 수도 있죠.』
『그래서 1시간 넘게 건물 주위를 계속 살피고 있었던 건가?』
대꾸하지 않고 손전등을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짐승이 왕왕 울부짖었다. 남자가 외국말로 무어라 하자 곧 그치긴 했지만 - 모자가 바람에 날려갈 정도로 달음박질 중이던 제이크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 * 미국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고등학생들처럼 도서관을 일반 독서실 대용으로 사용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든 말든 도서관이라면 정기적으로 방문했을 이용자들이 있었을텐데 그냥 빈 건물로 언제까지나 내비둬 - 게다가 밤중에 불빛이 새어나와 - 왜 그런 거지 궁금해할 사람이 분명 생길 겁니다. 비밀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라고 하기엔 너무 눈에 틔어요. 뭐, 뉴욕에는 배트맨식 동굴이 없엉 - 네엥.
몰래 침입한 노숙자가 핀치와 마주치고 서로를 향해 놀라 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장면도 있을 법하죠.
거꾸로 핀치가 기절하거나. (웃음) 인공호흡 리스라던가. (폭소) 그리고 우리의 좐 리스는 인공호흡이라고 하면서 포동포동한 사장님의 뱃살을 조물거리겠지. 제길, 부럽다.
어쨌거나 엘리멘트리 자막이 안 나오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