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구상한 이야기의 3/2 지점까지 달렸습니다. 9월까지 잘 하면 버티겠는데요.
리스는 늘 그랬던 것처럼 POI 대상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 침입해 소유한 노트북 자료를 복사하고, 전화기에 도청 장치를 달고, 핸드폰을 복제하고, 미행을 하여 사진을 찍어댔다.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건 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
혼잣말까지 중얼거리며 핀치가 화를 내는 까닭은 노트북 계정의 암호가 깊게 고민할 것도 없이 생년월일이라는 점과, 사용하는 패스워드 전부가 REMON_187 이었다는 부분에서 기인한다. 일반인의 보안 의식이라는 건 이다지도 형편없단 말인가 - 사방이 뻥뻥 뚫려서 - 말도 안돼 - 일상생활에서 요구하는 개인 비밀번호를 하나로 통폐합하는 미친 경우가 세상에 어딨노 - 리스가 듣고 있다는 것도 잊고 핀치는 계속해서 혀를 찼다.
《E메일 암호도 REMON_187이네. 진짜지 이해할 수가 없어.》
핀치는 납득을 못 하는 눈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같은 암호를 반복하여 사용한다.
『당신은 영원히 이해 못할 겁니다. 어때요, 노트북 자료에서 나온 건 없습니까.』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건 없습니다.》
시드니는 거주자 수가 무려 1,91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 뉴욕에서「큰 그림에 찍힌 작은 점 하나」와 같은 존재였다. 가까이에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도 기억에 남지 않으리라. 독신, 뚜렷한 직장 없음, 미비한 경제력, 그 미비한 경제력에 걸맞는 소액의 신용카드 청구서, 제때 세탁하지 못해 냄새 나는 옷들, 평범한 외모, 싸구려 커튼, 조립식 가구, 협탁에 놓여진 부모님 사진...
이때 핀치가 낼름 끼어들었다.
《평균치 이하의 보안 감각이라는 것도 추가해주세요.》
리스는 고용주가 느끼는 개인적인 불만에 굳이 대꾸할 가치를 못 느꼈다.
것보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당신의 기계가 또 더위를 먹은 건 아닙니까?』
약 3초 정도 불편한 침묵을 지키던 고용주가 마침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기계는 더위를 먹은 적이 절.대. 없습니다, 미스터 리스.》
물론 그렇겠지요, 속으로 생각하며 망원렌즈를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시드니는 근처 스포츠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이용 요금을 계산하거나, 고객들의 보관함 열쇠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업무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고, 야망이라는 건 눈꼽만치도 없는 직종인 만큼 급여도 적었다. 가끔 동료를 대신하여 청소를 도왔고, 귀찮다 싶을 잔심부름을 불만 없이 처리했다. 사장은 그 보답으로 볼링장 무료 이용권을 그녀에게 주기도 했는데 시드니는 이를 매우 기뻐했다.
음.......... 그러니까 리스는 기계가 그녀의 번호를 주목한 까닭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혹시 볼링장 주인이 그녀에게 못된 흑심을 품은 건 아닐까요.》
『핀치, 당신은 지금 세 쌍둥이의 아버지인 할로 버피씨를 모욕했어요.』
《추측해봤을 뿐입니다... 음.》
무안했던지 핀치는 답지 않게 우물거렸다.
이번에도 리스는 일부러 대꾸하거나 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제시카가 떠올랐다.
늘 환하게 웃던 그녀.
상냥하고, 재치가 넘쳤고, 사랑스러웠다.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년에 17만 5천달러를 버는 괜찮은 남자와 결혼했다.
제시카는... 썩 괜찮아 보였다.
그런 그녀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건 하다못해 부모들도 몰랐다.
〈기다리라고 부탁하면 기다릴게, 존. 기다리라고 말만 하면 그렇게 할게.〉
약혼자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제시카가 애원했다.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여자들은 늘 말이 많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남들 모르게 꽁꽁 숨겨둔다.
아무도 알아낼 수 없는 장소에, 깊은 무덤과도 같은 그곳에, 눈물의 짠 맛을 감춰두었다.
시드니도 그럴 것인가.
샤워실의 위치를 묻는 손님을 향해 그녀는 환히 웃어보였다.
여차하면 손찌검을 하는 버릇을 가졌던 남편과 같이 살면서 제시카 또한 저렇게 겉으로는 환하게 웃었으리라.
〈가르쳐줘.〉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요, 미스터 리스. 혹시 그녀가 뚱뚱합니까?》
『뭐라고요.』
기계가 더위를 먹은게 아니라면 핀치가 더위를 먹은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딴 생각을 하다 이야기를 잘못 들은 것이리라. 그래서 이거겠거니 싶은 대답을 했다.
『남자 친구라 생각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습니다, 핀치.』
《아니오. 저는 시드니 앰버가 과체중이냐고 질문했습니다.》
『네?』
영문을 몰랐으나 일단은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녀는... 음. 통통한 체격입니다. 155파운드(70kg)가 좀 넘을 듯한데요.』
《어쩐지. 젊은 여성임에도 자신을 찍은 사진을 주변에서 치워버린 점이 신경이 씌였어요. 셀프로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안 보였거든요. 그리고 시드니는 다이어트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통신판매를 이용해서 다이어트 보조제도 많이 구입했어요.》
『그치만 다이어트는 불법이 아닌데요. 다이어트 보조제 구입 또한 불법이 아니고요.』
《물론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왜 신경을 쓰는 거죠?』
《실은 제가 안 좋은 걸 하나 찾았어요.》
『그녀가 불법 약물을 구입했나요?』
《아뇨. 의사로부터 받은 처방전입니다. 시드니는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어요. 다시 말해 그녀는「토하는」버릇을 가지고 있군요.》
『토해요?』
핀치는 리스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했다.
《리스씨, 그녀를 관찰하는 동안 시드니가 식사를 하던가요?》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