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원고의 일부인지 모르겠습니다. 제르가디스가 “마법의 힘으로 사람이 순간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를 순찰대원에게 설명하는 장면이네요. 이거 뭐지? ※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에... 또... 그 내용이...』
반복된 훈련으로 대단한 마법사 앞에서도 번데기 주름을 잡을 수 있었다. 고위 관리직의 귀족도 오랏줄로 포박한 적이 있는 몸이다. 범죄는 물럿거라.
허나 아무리 잘났어도 생소한 분야 앞에선 죽을 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가 시어머니 저녁상을 준비하는 며느리의 기분이다. 간장종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설탕은 또 어디 숨었나. 국그릇과 밥사발은 왜 안 보이나. 손바닥에서 땀은 나는데 밥상에 올려진 건 허연 김치가 전부다. 살려달라. 비참함을 하나 가득 담아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방은 성의를 갖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자신의 부족한 머리로는 그 내용을 반의 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제 이해가 좀 가는가, 선생.』
『솔직하게 말하리다. “아마도 그런 것 같소” 라곤 양심상 말 못 하겠소.』
『간단히 말하자면 모르겠다는 거군.』
그나마 상대의 인내심이 보통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충분히 짜증이 나고도 남았을 터인데 이름이 제르가디스라고 한 이 소년은 지금까지 목소리 톤에 변화가 없었다. 몰라? 하는 수 없지. 그럼 다시 설명한다. 침착한 태도로 아까 했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려 했다.
맥기는 머리를 긁어댔다. 저쪽은 아니어도 슬슬 이쪽이 돌아버릴 지경이다.
『제발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자! 이 접혀진 종이를 사람이라 가정하고...』
급조된 퍼포먼스의 보조로 예의 금발의 검사가 동원되었다.
가우리는 제르가디스가 시키는대로 네 번 접혀진 종이의 한쪽을 손으로 잡았다. 그 반대쪽 종이는 제르가디스가 단단히 붙들었다. 설명은 계속되었다.
『가우리? 종이를 잡은 손에서 힘을 빼.』
『응.』
『이 상태에서 내가 종이를 잡아당기면...』
가우리가 힘을 빼고 있었기 때문에 종이는 제르가디스 손으로 무사히 옮겨갔다.
『원래는 이래야 한다는 거야.』
소년은「사람」역할을 해준 종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코앞에서 흔들어댔다.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요.』
맥기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되물었다. 그래, 난 바보다. 상상력 짧다. 손가락으로 가우리와 제르가디스를 번갈아 가리켰다.
『종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갔소. 그런데 뭐요. 뭐가 잘못이라는 거요.』
『아직까지는 잘못이 아니지. 실제로는 일이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게 바로 문제라고. 자, 이번에도 이 종이를 사람이라 상상을 해. 그리고 눈여겨 잘 보라구. 가우리? 이번엔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어. 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투로 잡고 있으라고.』
『알았음.』
『종이는...』
이번엔 달랐다. 제르가디스가 종이의 한쪽 끄트머리를 힘주어 잡아당기자 종이는 부욱-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이런 식으로 동강이가 나는 거다.』
팔짱을 끼고 찢어진 종이를 노려봤다. 종이가 사람이고, 그 종이가 찢어졌다는 건 이해했다.
그런데 말이지. 도대체 누가, 무엇이, 어떤 (무식한) 힘이 종이를 - 사람을 - 지금처럼 잡아당기고 놓는다는 건가.
『일단은 미지의 힘이라고 해두지, 선생.』
제르가디스는 반토박으로 찢어진 종이를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이것으로 다섯 번째다.
슬슬 이해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제르가디스는 조심스레 상대의 반응을 떠보았다.
직업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만 충실한 맥기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엔 영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죽을 힘을 다해야만 했다. 한참만에야 맥기는 사람을 김밥처럼 둘둘 싼 멍석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망할 멍석을 천둥번개의 신이 서로 이리 주시오, 마시오, 잡아당기는 것이다.
『멍석이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면... 카펫이오?』
소년은 실소했다. 멍석이나 카펫이나.
『영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법을 설명하는 건 진짜 어렵군.』
설명하려다 날 밤 지새겠다. 혼잣말 도중에 제르가디스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여하간 이것이 지금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의 실체다. 사람이 죽은 원인이지.』
『잠깐만 기다리시오. 궁금한게 하나 있소.』
『질문해봐.』
『일단은 “미지의 힘” 이라고 표현한 건... 댁들도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는 거요?』
『유감스럽지만 그 말이 정답.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우리에겐 없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찬 수수께끼의 퍼즐이다. 위대한 현자들도 약간의 그림을 놓고 나머지 모양을 대충 상상할 뿐이다. 조각은 작았고, 전체의 모양은 지나치게 크다. 따라서 완성된 그 모양이 코끼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정작은 기린이었다, 식의 일들은 빈번히 발생했다. 이러한 류의 착각은 분명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원망하려면 작은 눈과, 왜소한 머리를 창조한 조물주를 원망해야 한다. 보이지 않음에, 그리고 알 수 없음에... 어차피 인간은 방대한 우주 앞에 고개를 떨구게끔 되어 있다.
『그럼 다시 설명해볼까. 이 종이를 사람이라 가정하고...』
지치지도 않나 보다. 제르가디스는 여섯 번째로 종이를 접으려 했다.
으악 소리를 내며 그걸 재빨리 가우리가 만류했다. 제발 그만 좀 하십시다. 가우리는 손바닥으로 입가를 막고 (약간의 토기를 느꼈던 것 같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