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대단히 좋은, 괴짜 작가였다고 한다. (난들 아나)
뒷편 해설편을 보니 2004년에 사고 - 술에 취해 계단에서 실족 - 로 타계했다는데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람이 마음에 들어" 싶으면 이것저것 시리즈로 책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초반부터 맥이 탁 풀려버렸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편집이다. 그리고 끝.
이러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맛을 보고 신나게 휘둘러대던 젓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초반에 한 소년이 폐가에 들어가 기이한 인체모형을 만났다, 라는 부분과, 맺는 부분으로 나오는 "더 이야기해줘" 졸라대는 부분은 언급하지 말자. 인체모형이 들려주는 여러 인체기관에 얽힌 이야기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어떤 머리에서 이런 상상이 가능하단 말이야? 작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하여간 그놈의 술이 웬수다. 휘청거리다 계단을 굴러 죽어버렸다니.

수록된 단편 중 "뼈 먹는 가락" 은 정말 골 때린다. 저속한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그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오쿠보는 묘지도 팔고, 비석도 팔고, 사기성 부적도 팔고 (꼭 그렇지 않다), 하여간 초월한 인간이다.
얼마나 초월했던지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자살한 노인의 유령이 부엌 식탁에 나왔음에도 "이봐, 할아범. 내려가. 사람이 밥을 먹는 식탁 위에 흙발로 서 있는 건 대체 무슨 심산이야. 나이 먹고 예의도 모르나." 쏘아붙인다. 노인의 유령은 야단을 먹곤 꾸물거리는 동작으로 식탁을 내려온다.
여기까지도 헉 소리 나오는데 그 결말은 더 헉 소리 나온다.
아홉 개의 비석이 돌풍에 날아올라 오쿠보의 집을 덥친다. 오쿠보는 그 자리에서 즉사.
멋진 신 세계다.

아무튼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쌍수 들고 할렐루야를 외칠 듯하다.
개그가 적절하게 가미된, 삼류 같으면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속 진진한 분위기가 1시즌의 슈퍼내츄럴을 보는 듯해서 감회가 남달랐다.

Posted by 미야

2009/03/21 21:23 2009/03/2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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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핀 2009/07/06 01:31 # M/D Reply Permalink

    흐음, 1시즌의 슈퍼내추럴이라니 ㅡ
    이제 마악 입문한 제가 몸담고 있는 시즌이로군요.

    마지막 그 문장으로 읽고 싶어지는 책이 되었네요.
    아. 처음뵙겠습니다. 엘핀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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