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의「스톱워치 신드롬」이라는 걸 인터넷으로 검색하셔도 그런 건 자료로 안 나와요.


언제나처럼 TV를 켜고 환해진 화면을 응시했다.
『얼레.』
그러다 리모컨을 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살색은 살색인데 털투성이 살색이다.

신체 건강한 남자 둘이서 으샤으샤를 하는 건 어디까지나 딘의 취향이 아니다. C컵의 풍만한 가슴, 군살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잘록한 허리, 그리고 빨갛게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아니라면 흥미가 돋질 않는다.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고 발기한 좇을 보여줘봤자 시큰둥한 콧소리만 나올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서 맨날 보는 걸 가지고 좋다, 싫다 감상을 늘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큼, 하고 목에 힘을 준 뒤에 모텔에서 제공한 채널 편성표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닳은 인쇄물로 올라간 제목은「로즈비키 쇼」이다. 비키는 빨강 머리의, 데뷔한지 5년이 흘러 어느새 삭아버린, 젖통 성형을 무려 다섯 번이나 한, 레즈비언 포르노 스타다. 딘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나긋나긋한 언니들끼리 고양이처럼 서로의 몸을 비벼대고 있어야 정상일 터,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눈에 밟히는 건 알통이 불딱불딱한 형님들이시다.

이것들이 미친나.
오늘날의 미국에선 성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때 왜 지랄 같은 호모들이 큰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았을까를 궁금해 하는게 또 미국인이다.
『재수 없어.』
뾰족한 여자 젖꼭지 나와라, 여자 젖꼭지... 손님들에게 제공된 유료 성인 채널은 모두 세 개다. 하나가 꽝이라면 다른 두 개가 있다. 서부의 총잡이처럼 리모컨을 들어 빨간색으로 점등되는 부분을 조준했다.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5분이 흘렀다.
『...』
화면은 아까와 변함이 없어 여전히 털투성이 살색.

『형, 이거 게이 포르노인데.』
『응?』
『엄청 싫어하지 않았어? 이런 거... 저어, 딘?』
리모콘을 가슴에 꼭 쥔 채 숨을 죽이고 있던 딘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에 반응,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딱 절반만 돌아왔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눈빛은 계속해서 멍했고 피부는 젖은 신문지처럼 창백하다. 상한 음식을 잘못 집어먹고 당장에라도 토할 듯한 기세다.

『딘?』
피카츄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아동들이 집단 발작을 일으켰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아, 틀렸다. 피카츄가 아니라 포켓 몬스터다. 그리고 뉴스에서 봤던게 아니고 스텐포드 재학 시절에 기숙사 동기생이 작성하던 레포트에서였다. 1997년 12월 16일,《전뇌전사 폴리곤》에피소드에서 약 3초 가량 강렬한 빛이 화면을 뒤덮었고, 이를 즐겁게 보고 있던 어린아이들이 어지럼증과 두통, 현기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런 큰 소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카츄는 1999년에 타임즈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등극했을 정도로 미국에서조차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당연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충분히 우려할만한」이란 수식어를 헬륨 풍선에 매달아두고 싫어하는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피카츄를 사달라고 졸라댔고, 인형과 비디오 게임기가 시장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그것들은 메이드 인 제팬이거나 차이나, 내지는 홍콩...
『이야기가 어디로 튀는 거냐.』
『그걸 나한테 따지기 전에 일단 앉지 그래.』
샘은 달지도, 짜지도 않은 밋밋한 목소리로 훈계했다.

다시 5분이 흘렀다.
계속해서 살색. 덧붙여 약간의 털.

형제들은 자신들의 침대에 각각 걸터앉은 채로 화면을 주시했다.
기쁜 부활절을 맞이하여 교황 성하께옵서 친히 미사를 집전하고 계시다. 희망과 화해, 치유의 메시지를 경청하는 시골뜨기 사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내려놓았다. 우리 사회에 각종 문제와 불안과 고통이 존재하는 만큼, 믿는 자들의 형제의 사랑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 네, 사랑이고 말고요. 딘은 이제 병든 닭처럼도 보이고 있다.

『콜라 마실래?』
뜨끔한 딘은 동생의 권유가 세상에서 제일 불건전한 거라도 되는 양 한참을 쳐다보았다.
옆면으로 빛을 받아 곱절로 투명해진 딘을 향해 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무설탕인데.』
말이 나왔으니까 그렇지 다이어트 콜라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오히려 TV 화면에 나오고 있는 장면이 불량함의 집결체다. 악마다. 사탄이다.

머리를 짧게 자른 사내가 파트너의 하얀 허벅지를 위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거기에 얼굴을 박고 - 혀를 길게 내밀어 항문을 핥작이고는 - 침이 흥건히 묻은 입구를 검지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러 압박했다. 츄웁츄웁 소리를 내며 음란하게 빨아들였다. 다시 핥고,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혀로 간질였다. 자극을 받아 피부가 붉게 물들어갔다. 안쪽으로 살이 꿈틀대고 움직였다. 그 반응에 어쩐지 기쁜 듯한 표정으로 사내가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두 마디가 사라졌다.
터져나오는 교성.

저것은 어디까지나 애정 행위가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코앞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바보들이 바빌로니아 음녀의 금화가 짤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명과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그만큼 속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를 애무하는 손길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조심스러워서「나는 이 사람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얇은 피부가 오르락내리락 움직일적마다 감정이 북받쳐오른다. 가슴을 문지르는 투박한 손은 영원에 대고 맹세하는 동작을 많이 닮았다.
딘의 눈이 휘둥그래 떠졌다.
짧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고개를 숙여 상대에게 키스했다.
온몸을 떨며 그의 키스를 반갑게 받아들이는 남자는 누구처럼 곱슬머리였다.

『왜. 부러워?』
난리법썩의 장면을 같이 봤음에도 샘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저거 해보고 싶어?』
거스름 돈은 필요 없다는 식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하게 해줄게.』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그렇게 위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님 내가 해줄까?』
이건 알렉산드로 볼타의 본명이 스쯔므르스쯜린 카라즈나카우쉬키 어쩌고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이가 없다.
참을 수가 없어져 딘은 얇은 면 재질의 겉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호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은 채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가며 어둠에 젖은 도로를 천천히 걸어갔다. 어차피 행선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이제 곧 여름 (* 드라마와는 별개로 배경은 2007년입니다) - 머지 않아 곧 닥칠 찌는 듯한 더위를 벌써부터 반색하며 날벌레들이 울부짖었다. 그것들은 불켜진 건물 유리창을 향해 나이 든 노파처럼 부들부들 떨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카미카제식으로 돌진하곤 했다.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살겠다는 의지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행위였다. 머리가 깨져 죽은 벌레들의 사체가 가로등 주변으로 낙엽처럼 널렸다. 딘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강하고 텁텁한 바람이 불어와 그것들을 주차된 차량 아래로 아무렇게나 쓸어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바닥에 붙박힌 몇 마리의 벌레 껍질이 발에 밟혔다. 느낌은 바싹 구워진 땅콩 껍질 같았다.
이제 그들은 두 블록을 걸었다.

『더워.』
목이 마르다고 생각했는데 튀어나온 말은 약간 엉뚱했다. 하긴, 더우니까 목이 마른 것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딘은 입고 있는 셔츠의 목깃을 헐렁하게 잡아당겼다.
『비는 안 오려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눈을 길가 가로등에 똑바로 고정시켰다.
어느새 걷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돌진, 돌진, 돌진... 제어할 수 없는 에너지. 카미카제.

샘은 여태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보폭을 일정하게 하고 얌전히 따라오는 것이 전부이다.
덕분에 약간은 소름끼쳤다. 야근을 끝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아가씨들을 노리는 치한처럼, 아니면 도깨비처럼 - 그렇다면 겁에 질려 핸드백을 움켜쥔 여자는 누구라는 건가 - 착실하게 딘의 그림자를 밟았다. 이게 만약 영화였다면 스산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뒤편을 부지런히 힐끔대는 여자의 눈동자가 크게 클로즈업 되었을 거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좌우를 두리번 거리지도 않는다. 오로지 눈앞의 표적에게만 집중한다. 짐승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이미 그 시선으로 여자를 발가벗겼다. 단추를 푸는 그런게 아니라 찢어발기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역시 그건가.「누가 나 좀 살려주세요~!!」라는 비명?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고 냅다 맨발로 달려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주먹으로 눈두덩이를 눌렀다.

『샘.』
『응.』
『부탁할게. 그만둬.』
샘은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딘.』
그리고 천하의 딘 윈체스터를 충분히 겁 먹게 만들고도 남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직은.』

그럼 나중에는 뭔 짓을 저지르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잖아!
온몸의 살과 뼈가 제멋대로 튕겨올랐다. 발목이 아스팔트 밑으로 파묻혀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샘은 경직되어 있는 형을 천천히 지나쳐 한창 성업중인 주점으로 눈길을 주었다. 때맞춰 조잡한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문이 열리면서 적당히 술에 취한 남녀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튀어나왔다. 감자와 조개가 같이 조리되는 맛있는 냄새가 그 틈새로 풍겨나왔다.
텅 비어버린 휴지통 같은 얼굴을 한 샘이 서로에게 반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 연인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엉뚱하게도 배가 고프다는 투로 코를 킁킁거렸다.

Posted by 미야

2008/05/12 15:51 2008/05/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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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펜펜 2008/05/12 18:12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소설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침 올라왔길래 냉큼 달려들었어요. 역시 형제 둘이 나오면 그저 마냥 좋네요. 뜬금없이 튀어나왔지만,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2. 로렐라이 2008/05/12 18:15 # M/D Reply Permalink

    아이고 세상에나!
    덩실덩실덩실덩실 풍악을 울려라 얼쑤 ㅠㅠ 그렇게나 기다리던 미야님의 스톱워치 신드롬이 올라오니 밀려오는 기쁨의 홍수속에서 그저 행복해하고 있어요!
    곧 터질것만 같은 열기와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채로 으스스하게 뭔가를 노리는듯한 샘의 모습을 보니 제 가슴이 다 서늘해지네요orz 푸왁 터져나오는 분노보다도 이렇게 행동하는 샘의 모습이 곱절 무섭구요. 슈내 315에서 형이 곧 지옥간다는 생각때문에 좀비로 만들 생각까지 했던 샘의 모습이 언뜻 겹치면서 왠지 안타까워요orz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궁금합니다! 잘 보고 다음편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게효! (아아 스톱워치 신드롬 제목 보고 씨익 미소짓다 밑에 이어지는 미야님의 짧은 코멘 보고 큰 웃음 터졌네요 푸하핳 ) 감사합니다!

  3. 레인 2008/05/13 15:29 # M/D Reply Permalink

    흐억.. 요즘 형제 소설을 찾고있다가 이렇게 미야님 사이트를 알게되어서
    참으로 기쁘네요(응?) ㅠ.ㅠ
    정말 훈훈한 픽 잘보고 갑니다. ㅡ,.ㅡ(아놔 코피!)
    그리고 다음편을 목말라하고 있어요

  4. vishu 2008/05/14 21:12 # M/D Reply Permalink

    정말 샘딘?그렇다면 그저 감사드릴뿐..ㅡㅜ
    미야님 글 정말 잘 보고있어요.
    딘샘을 절대 피하던 제가 감사히 볼 정도로..
    그런데 미야님 '스톱워치 신드롬'이 안되면 'stopwatch syndrome'은요??(퍽)

  5. 미야 2008/05/14 21:16 # M/D Reply Permalink

    어... 왜 샘딘이라고 생각을...? ^^;;

  6. 비밀방문자 2008/08/27 23:59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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