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미싱헌팅 8

자랑만 했던가. 도끼자루에 침 바르곤 곧장 던졌다.

『으앗?!』
가우리와 리나의 눈이 동시에 휘둥글 벌어졌다. 그깟 도끼, 골렘과의 튼튼한 합성 피부와 견주어보면 물렁뼈나 마찬가지일지언정 역동적 디테일로 하늘을 날아가면 아무래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마음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다. 참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깨고, 시퍼런 불똥을 일으키는 손도끼다. 그래서 가우리는 목을 움추렸고 리나는 눈에 불을 켜고 마력을 끌어모았다. 입도 제대로 안 벌리고 주문을 고속 영창,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날아가는 도끼를 조준했다. 저 흉측한 것이 피를 보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는 듯했다. 하여간 이 여자는 자기 식구 일엔 눈이 거꾸로 뒤집힌다.

하는 수 없어 지팡이로 안다리를 걸어 재빨리 리나의 무릎을 꺽었다.
『으헉!』
『조금은 냉정해지세요, 리나님.』
멋지게 넘어져 땅바닥에 두 손을 짚은 그녀는 야단치는 나의 말에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떴다.
그것은 벌겋고, 혼란스럽고, 어두웠다. 그리고 깊었다. 대단히 많은 의미를 함축한 눈빛이었다. 평소처럼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삿대질을 하지는 않았어도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시겠지. 당신의 감정, 그것은 마족인 나에겐 대단히 달콤하다.

『나는 냉정해.』
『냉정하우?』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해.』
『그럼 온도 스위치를 한 단계 더 내리시지요.』

순간 꽈당 소리가 났다. 굉장한 기세로 날아가던 도끼는 제르가디스가 아닌 왼편에 위치한 렛셔 데몬의 머리를 똑바로 쳤다. 그렇다면 찍혔느냐, 꼭 그렇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치명상임이 분명해도 우리들 마족에겐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데미지다.
뒤로 젖혀졌던 고개를 똑바로 하고 렛셔 데몬이 몸을 바로세웠다.
눈치가 삼단이다. 리나가 고함을 지르며 모두에게 경고했다.
『틀렸어! 모두 엎드려!』
안면 한 가운데로 도끼날이 박힌 채 렛셔 데몬이 크게 입을 벌렸다. 짐승이 표효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단단한 벽돌을 한순간에 끈적거리는 오트밀 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쳤다.
중급의 화이어볼의 위력이었다. 메로우 가의 형제들은 기겁을 해가며 넘어진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에고, 맙소사.』
특히나 션의 표정이 볼만했다. 땡그랗게 벌어진게 꼭 테디베어의 단추구멍 눈 같았다.
『저거 봤어? 형. 머리에 도끼가 박히고도 저럴 수 있는 거야?』
『있는가 보지.』
사냥 경험이 더 많은 디크 쪽은 실패한 공격 같은 건 진작에 털어내고는 다음 포지션으로 움직일 채비를 끝마쳤다. 온몸을 바쳐 오른쪽으로 두 바퀴 데굴렁, 절반은 녹아 문드러진 벽돌 더미를 방패삼아 바깥으로 눈만 빼꼼 내밀었다.
왼손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를 꽉 쥐고 있다.
폭탄인가.
그렇담 안 던졌음 좋겠다.

『도끼 다음엔 폭탄...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아, 정말.』
리나는 쓰게 불평하며 디크를 향해 작은 조약돌을 던졌다.
발치에 돌이 굴러오자 디크가「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리나는 부지런히 손칼로 목을 치는 동작을 수 차례 했다. 그러니까「여기서 폭탄 던지기만 해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는 의미다.

『그럼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자고?』
『나는 마법사야, 디크 메로우. 사제 폭탄을 써먹기 전에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것도 들어봐.』
『전문가라... 맞다, 그랬지. 라이팅, 슬리핑, 비키니 언더웨어.』
『이봐! 지금 날 비웃는 거야?』
『비웃긴. 한심해서 웃어준 거다.』
『그게 그거잖아!』

분에 겨워 리나가 벌떡 일어섰다.
순간 렛셔 데몬이 내뿜은 뜨거운 불이 간발의 차이로 리나의 머리통 바로 위를 통과했다.
나는 켁 소리를 내고 리나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이 여자의 작은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는 건 아직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릴렉스! 온도를 내리세요, 온도를. 머리를 차게 하라고요.』
『알았다. 네 말대로 겁 나게 차게 할게. 차게 하면 될 거 아냐. 그러니까 나간다. 데모나 크리스탈!』

불에 얼음을 더하는 건 난 반대다. 불의 속성을 가진 마법과 물의 속성을 가진 두 종류의 마법이 일시에 소멸한다는 점에선 딱히 반대할 꺼리는 없다만, 요컨대 상쇄 효과로 인한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싫어진다. 펄펄 끓는 화덕에 물을 부어보자. 순간적으로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올라 화상 입기 딱이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더 부어보면? 후끈거리는 화덕 뚜껑이 스프링처럼 튕겨오르며 당신의 코를 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화덕 옆에 매달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제르가디스에겐 청천벽력이었을 거다. 유황불을 토하는 렛셔 데몬의 아구에 얼음 덩어리를 던졌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뻔하다. 제일 먼저 마법으로 만든 얼음 조각이 터졌고, 뒤를 이어 불 덩어리가 휘었고, 얼굴에 박힌 손도끼가 갈가리 조각났고, 그 다음으론 사방으로 정체불명의 곤죽이 섞인 파편이 휘날리는 일만 남았다.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썩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눈앞에서 터져도 이보단 훨씬 낫다.
『@*#&@(@)~!!』
목구멍에 찬 솜덩이를 아직 삼키지 못한 제르가디스는 허망하게 눈만 부릅떴다.

『아자! 멈추지 않고 재차 간다, 아이시클 플레어!』
수증기에 얼음 알갱이가 어지럽게 뒤섞여 완전히 뒤범벅이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뿌옇게 변해갔다.
흐응. 연막이라는 건가. 이건 나쁘지 않다.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럼 가짜 연극의 하이라이트로 들어가보자.
육체는 이쪽에 있어도 목소리는 저쪽에 두는 일 따위는 나에겐 껌이나 마찬가지다.
공중에 뜬 확성기(?)에 대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역시나 리나 인버스! 인간 계집 치고는 실력이 뛰어나군!》
션과 디크 형제가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풍부하게 울리는 위협적인 마왕의 목소리!
음, 내가 들어도 제법 운치가 있단 말이야. 내일 모레 미르가지아씨에게도 한 번 써먹어 봐야지.
나는 리나에게 서둘러 눈짓하며 마른 붕어처럼 한층 더 신나게 입을 뻥긋거렸다.
《그치만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나에겐 어림 없다. 으하하하~!》
리나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저런 웃기지도 않는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좔좔 읊어댈 수 있다.
『어림 없긴! 그대의 악행, 여기까지다! 하늘이 부르고 땅이 부른다!』
가우리는 좀 느리게 알아차린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반문하며 어리둥절해 했다.
『부르긴 뭐가 불러?』
『하여간 부른다!』
제르가디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아멜리아표 정의의 용사 만만세 포즈를 취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하늘을 대신하여 그대를 처단하겠다!』
그리고 다시 쭉 뻗었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각오는 사실 안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그냥 내 여자가 되어라~♡》
『뭐얏?!』
아차, 실수. 역시 명령조로 말하는 것보단 부탁하는 자세로 나가야...
《아니, 되어주세요.》
기회는 이때다 싶어 한 번 말해봤는데 리나는 가차없이 몸을 돌려 팔꿈치로 내 뺨을 가격했다.
『어디서 딴죽이야!』

메로우 형제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엉뚱한 추파를 던진 건 앞쪽에 있는 시퍼런 귀신인데 실제로 맞은 건 뒤쪽에 있는 신관이다?
나는 울상지었다.
『어우야. 리나님, 이러단 들켜요.』
『그러니가 누가 엉뚱한 소리를 주절거리래? 자,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하다! 간닷!』

그녀는「전군 앞으로 진격~!」을 외치는 장군님이 되어 빠른 속력으로 뛰어나갔다.
『협공한다!』
이 말인 즉, 메로우 형제들도 공격에 가담하라는 것이다.
디크의 눈빛이 변했다. 션은 시야가 가리워져 잘 보이지도 않는데 총을 꺼내들고 조준 자세에 들어갔다. 그러다 괴물이 아닌 자기 형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동생쪽은 뒤에서 형을 보조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동안 디크는 리나와 거의 막상막하의 속도로 제르가디스가 있는 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른손에는 기다란 파이프, 왼손에는 쇠붙이로 만들어진 둥근 공을 들었다.
하나는 폭탄이 맞고... 어쩌면 둘 다 폭탄이다.
디크가 둥그런 공에 불을 붙였다. 칙,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독특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리나는 대단히 불안해하는 제르가디스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자, 그럼... 오늘이 키메라 군의 제삿날이 되는 건가요?
다음에 계속.

Posted by 미야

2006/11/25 10:35 2006/11/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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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케 2012/11/04 15:46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떠도는 슬레이어즈 팬입니다. 초면에 실례인줄 압니다만...
    왜 다음편이 없는건가요!! 다음편을 보여주세요!!<

    개그 팬픽을 굉장히 재밌게 잘 쓰시네요^^ 이렇게 유쾌한 마음으로 재밌게 읽은 팬픽은 미야님 팬픽이 처음이여요!
    근데 정말 다음편 없는건가요?(글썽글썽)

    1. 미야 2012/11/04 19:43 # M/D Permalink

      원글 작성 날짜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후 몇 년간 글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슬레이어즈와 슈퍼내츄럴 쪽의 작업 노트나 메모, 콘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

  2. 치케 2012/11/05 06:25 # M/D Reply Permalink

    아아 그거 아쉽군요.. 예상은 했었습니다만 콘티나 메모도 없군요(끄덕)
    초면에 실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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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서랍장을 열고 오랜만에 타로카드를 꺼내봤습니다.
거의 2년만인 것 같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어라 하는지 아십니까.

당신과 (그는) 이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래 참았으며, 인내하였고, 그렇기에 마음이 아프고, 무어라 할 말이 없군요.

아쿠는?! 우게에에~!! 떠나버렸어?

어떤 분들은 카드에 인격을 부여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걸 보면 물건처럼 대할 수가 없어요.
같은 카드인데 말투가 다르고, 성격도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남자였는데... 지금은... 지금은... 이상해. 암만 봐도 여자 같어...;;

그래도 직설화법은 여전하더군요.
오늘은 주말이니 로또 복권을 사면 어떨까요~ 물어봤습니다.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죠? 복권이 나쁜 건 아니잖수.
그런데 더덕- 하고 죽음의 카드를 내놓는 겁니다. 덧붙여 절제의 카드까지.
그려. 짜증나니까 말도 붙이지 말고 걍 정신 차리라는 거지?
어쨌거나 당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내는게 중요할 것 같어. 그치?

5.6cm 시트린(황수정) 球를 인터넷으로 하나 주문했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지출이었음.
이미 가지고 있는 라피스라즐리 球는 꼭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 같아서 황홀하지만 대신 오래 쥐고 있다보면 그렇게 작은게 제법 무거워지거든요. 보다 가벼운,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달과 같은 구슬을 꼭 가지고 싶었어요. 옥션에는 화성의 느낌을 가진 붉은 파워스톤이 올라왔는데 너무 비싸서...;; 게다가 좀 싫은 느낌이랄까. 뭐,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파워스톤을 원하는 법이잖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달이었습니다. 얼른 손에 쥐어보고 싶네요.

Posted by 미야

2006/11/25 08:54 2006/11/2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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