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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1 [기타] 미싱헌팅 7 by 미야

[기타] 미싱헌팅 7

말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동작은 달라 엉덩이로 슬그머니 내린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렸다.
옳거니. 다음에 던질 공은 가운데 직구.
행여나 내가 보지를 못 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반복해서 엄지와 중지를 접었다 폈다.
『네, 네. 갑니다, 가요. 재촉 안 하셔도 갑니다.』

신호를 받자마자 나는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마침 근방으로 이거다 싶은 신축 공사장을 미리 봐둔 것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읏샤!」하고 기합을 넣었다. 벽돌을 쌓고 미장일을 하는 인부들 셋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망치를 든 목수 하나가 밧줄을 들고 지붕으로 올라갈 채비를 끝마쳤다. 모래를 뒤엎던 인부는 삽질이 영 힘들었던지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그렇다면 받침 기둥으로 쓰이고 있는 통나무 하나를 쓰러뜨려보자. 큰 소리가 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벌어질 소동이 굉장할 거다.

검지손가락을 가만히 들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샥.
밧줄이 끊어졌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요점은 사람만 안 죽으면 된다는 거다.

『뭐지? 뭐지?!』
폭발음에 가까운 굉음에 메로우 형제들이 펄쩍 뛰었다.
『가자!』
동시에 리나와 가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달음박질해 나가기 시작했다.

좋다. 그럼 나도 슬슬 자리를 바꿔보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마을회관 지붕에서 으슥한 골목길 속으로 재빨리 공간 이동했다.
목격자가 없는 걸 앞뒤로 확인하고.
잠시 벽쪽으로 붙어 숨을 죽였다.
장총을 든 메로우 형제들이 버팔로 황소라도 때려잡는다는 기백으로 뛰어갔다.
저 사내들은 그냥 보내시고.
리나와 가우리가 머리털을 휘날리며 뒤따라 달려오는게 보였다.
『헤이!』
그제서야 쭉 빠진 다리를 슬그머니 골목길 밖으로 내밀어 신호했다.

『지금 히치하이킹 하냐. 거기서 못 생긴 다리를 내밀긴 왜 내밀어!』
『혹시라도 못 보시고 그냥 지나칠까 염려되어... 그래도 털도 없는데 한 번 봐주심이...』
『됐어!』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며 대놓고 면박부터 주었다. 그리고는 길게 말하는 것도 짜증난다며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짝 갈겼다.
내 상판에 파리 붙었습니까. 찰싹 후려치다니오, 아픕니다.
『작전대로 간다. 준비는?』
『제르가디스씨를 당장 데려오겠습니다.』
『실수 없도록 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다 네 책임인줄 알아.』
『하여간 무조건 다 내 탓이야... 치잇.』
『잔소리 말고 빨랑 움직엿!』

때맞춰 또다시 쿵 하고 굉음이 들렸다. 소리만 들린 것이 아니라 땅도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리나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걸 가우리가 양 어깨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어디서 고래가 널뛰기를 하는가 싶어 가우리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래는 무슨. 여긴 바다도 아닌데요, 뭐.』
그걸 어물쩍 넘기며 리나의 어깨에 놓인 가우리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원래 기둥이라는 건 하나가 망가지면 그 나머지도 따라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두 명이서 무거운 책장을 들고 가다 한 사람이 얌체처럼 팔을 빼버리면 남은 한 사람의 무릎은 당연히 꺾이는 법이다. 무게의 발란스가 깨지면 한쪽으로 힘이 집중되고, 그 힘이 집중된 부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피로 파괴가 발생한다. 내가 부순 건 기껏해야 기둥 하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받침 기둥에 연속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이른바 도미노 효과다. 그리하여 모든 기둥이 작살나면 몇 분 뒤에는 고정되지 않은 상판부가 아래층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된다.
나는 자신있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였다.

『야! 제로스!』
『어머머? 그렇게 노려보시면 싫어요.』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간 강아지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리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3분이면 제법 긴 시간입니다, 리나님. 라면이 끓는 시간이라고요. 이 얼마나 깁니까. 언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잖아요. 작업 인부들은 모두 무사히 도망칠 겁니다. 리나님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게 인부들이 부랴부랴 도망치고 나면 그 뒤를 우리가 알아서 접수하면 된다.
두 마리의 렛셔 데몬을 왼편과 오른편에 세우고 제르가디스가 등장한다.
손바닥을 마주 부비며 웃었다. 뒤로 오색의 특수효과 장치를 터뜨리지 않아도 이미 완벽한 연출이다. 까마귀의 깃털을 단 검정의 망토와 가시나무 잎사귀까지 들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솟구치는 먼지구름 속으로 둥실 떠오른 그는 아마도 대단히 사악하고 위험한 정령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으윽!』
정정하겠다. 이건 대마왕의 대왕이다. 뿔 달린 대마왕 아버지다. 가뜩이나 파란 피부의 그가 오늘따라 더욱 새파랗게 보였다. 리나와 가우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치며「사람 살려!」를 외쳤다. 덧붙여「레죠다! 레죠가 빙의했다!」라며 울부짖었다.
『우와악! 저 녀석, 웃으면서 진짜로 화내고 있잖아!』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만 성불하시오, 레죠오~!! 성불하라니까아~!!』
그녀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애원했다.

이럴 적엔 말로만 들었던 적법사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리나의 말로는「웃으면서 지.랄.하.던」자가 바로 레죠였단다. 빙긋 웃으면서 화냈다고 하니 그거 참 특이하다. 그것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게 만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미소였다고 한다.

『괜찮아요, 리나님. 그렇게 겁을 집어먹지 않아도 됩니다. 쉽게 덤벼들진 못할테니까.』
『그치만「외눈뜨기 샤랩톤 행성 거주민에게 푸른 별 지구를 20% 떨이로 넘겨주겠노라 약속한 악마님」께선 턱을 한껏 위로 치켜올리고 있는 걸. 저 살기로 봐선 여차하면 다 죽이고도 남겠다, 야.』
『음... 척 봐선 그렇긴 하군요.』

인정은 하고 봤다. 남들이 보면 꽤나 시건방진 포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목에 채워둔 특수 망토 때문에라도 고개를 전혀 숙일 수 없는 상황이다. 뒷덜미를 빳빳하게 잡아당기도록 고안된 망토엔 특수한 풀이 발려져 있다. 일명 순간 접착제라고 하는 놈이다. 머리카락과 망토깃이 철썩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행여나 머리를 좌우로라도 흔들어댔다간 머리카락이 왕창 빠지게 되어 있다. 대머리가 되고 싶다는 욕구에 활활 불타고 있다면야 시도해봐도 괜찮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눈물이 쏙 우러나오는 통증부터 어떻게 해봐야 한다.
『나는 그가 대머리가 되고 싶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팔과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던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투명한 피아노 선을 몇 가닥으로 꼬아 칭칭 묶어두었다. 그는 부끄럼쟁이다. 남의 눈에 띄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과장된 연출엔 질겁을 한다. 하여 여차하면 도망갈 거라는 걸 눈치 챈 나는 제르가디스를 포박해서 렛셔 데몬들 손에 그 줄을 쥐어주었다. 불손한 기미가 보이면 그 즉시 당겨라 - 재수가 없으면 팔이 쑹덩 빠지겠지만 - 라는 명령도 미리 내려두었다.
하여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천 오백 번 외우려던 리나에게 눈짓했다.
『안심하세요.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렇게 안심시킨 뒤, 두 손을 깍지꼈다.

그럼 우리 모두 다 같이 급조된 마왕님께서 무어라 하는지 진지한 태도로 들어보도록 하십시다.
『당장 풀어줘! 풀어달란 말이다! 이 불량 생리대 같은 자식아!』
순간 모두가「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를 낮추고 은탄환을 쏠 준비를 하던 션 메로우가 번개같이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러니까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거 맞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형?』
『글세다.』
디크는 잘 모르겠다며 떨떠름한 얼굴을 가로저었다.

이런 이런. 다 된 밥에 누런 콧물 떨어진다.
나는 재빨리 끼어들어 교통 정리에 들어갔다.
『번역하겠습니다. 마왕은「너희들 어리석은 인간에게 멸망을 내리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지 않았어? 분명 불량 콘돔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에? 콘돔이 왜 나옵니까. 불량 생리대였습니다.』
『그럼 역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니네. 뭐가 어리석은 인간에게 멸망을 내린다는 거야!』
『모르시는 말씀! 저쪽 세계에선 멸망을 내린다는 표현을「불량 생리대」라고 합니다.』
『확실해?』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션 메로우 씨.』
강력하게 밀고 나가면서 시치미를 잡아뗐다.
『리나님에게 여쭈어 보시지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리나가 외쳤다.
『사실이다!』

이때다 싶었다. 틈을 봐서 호주머니에서 제법 커다란 솜 덩어리를 꺼내 눈치껏 공간이동 시켰다.
자기 대사도 제대로 읊지 못하는 배우는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차라리 그 입 다물라.
『저어, 그거 어디서 나온 솜?』
『이거요? 800년간 바지를 빨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리나의 안색이 변했다.
제르가디스의 안색도 새파래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구토증을 일으키고 있는 제르가디스보다는 메로우 형제들의 작업 도구가 신경쓰인다. 동생인 션은 벌써부터 자세를 낮추고 공격할 태세다. 대단하신 형님도 동생을 따라 상체를 구부렸다. 그러면서 끄집어 낸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우와, 손도끼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별별 인간을 다 봤다만 도끼로 마왕을 잡겠다는 인간은 처음이다.

『너는 도끼로 마왕을 잡냐?!』
심상치 않게 디크를 쳐다보는 날 알아차렸다. 리나가 빠르게 끼어들며 대들었다.
『상식 밖이잖아!』
『왜 이래? 베이비. 이건 튼튼하고 좋은 거라고. 자고로 마물을 죽이려면 목을 자르는게 최고지.』
그러면서 디크는 입을 벌리고 선 리나 앞에서 번득이는 흉기를 자랑했다.

Posted by 미야

2006/11/21 16:04 2006/11/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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