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희면 비가 내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읽고나면 기분이 언짢다. 말도 안되는 구성이라던가, 엉성한 줄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 설정이 불쾌한 것이다. 살인이라는 일탈행위가 기분 좋을 리 있냐 - 그렇지만 추리소설 독자들은 범인이 마침내 체포되었을 적에 느끼는 쾌감이 일종의 오르가즘을 닮았다는 걸 잊지 않는다. 나쁜 놈은 벌을 받고, 추악한 범죄의 희생자는 마침내 안식을 얻는다. 그런데 하가시노 게이고는 이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경우가 거의 다수인지라... 범인이 체포되는 마지막 장면이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는 <용의자 X의 헌신>이 그 대표격 - 책을 덮고나면 짜증이 치솟는 일이 잦다. 아울러 동네 소녀를 살해한 병신낯짝 아들의 범행을 감추기 위한 한 아버지의 발버둥을 그려낸 <붉은 손가락>은 아, 신경질 난다~!! 의 결정판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정원에 누워있는 소녀의 시체... 당신은 그것을 치워야 한다. 처음부터 스팀 확 뻗는다.


그런데 이야기 방향을 조금 엉뚱하게 틀어서.

사건은 여러 각도에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봐야 한다.

50대 성추행범 정신병자가 아이를 죽여 야산에 토막 암매장했다 - 결론을 지어놓고 수사하지 좀 마라. 헛다리 짚은 뒤에 누구 좋으라고 <살인의 추억> 영화를 만들 거냐. 제발 그러지 마라. 시신을 훼손하는게 정신병자의 짓이라는 건 억측이다. 운반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렇다는 건 계획과 실천이 가능한 머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얘기다. 정신병자는 충동에 의해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용의주도한 범죄는 저지르지 못한다. 다만 그런 끔찍한 짓을 인간이 저질렀다는 걸 믿기 힘들어하는 일반인들이 <미쳤으니까 그런 짓을 하지> 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뿐이다. 중학생 남자 아이가 아이를 죽여서, 그 아버지가 증거인멸을 위해 암매장을 했으면 어쩔거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제발 증거를 찾아! 우리에게 정의는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줘!

Posted by 미야

2008/03/14 09:40 2008/03/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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