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룹 횽님과 언뜻 비슷한 길이가 되었어라. 이제 이걸 워쩐다.
어릴 적부터 여자 분위기를 내지 못하게끔 길러졌다. 한복으로 갈아입고 사촌들과 찍은 오래된 흑백사진 속의 나는 놀랍게도 복건을 하고 있다. (<- 이도령 패션)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은 일본 남자애로 보일 지경이다. (<- 반바지 정장)
당연히 머리를 기르는 것도 금지.
이발소에 다녀왔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짧게 자른 적이 많았다.
어쨌든 딸네미가 화장하는 것조차 질색하던 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안 계시고.
늙으신 어머니는 딸의 머리카락 길이에 대해 푸념하기엔 기력이 딸리시고.
본인은 미용실 가는게 귀찮아 맨날 방바닥을 데굴렁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어레?> 소리가 나오게 된 거다.
부끄럽지만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이 정도 길이가 된 것은 처음이다.
모든게 다 생소하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 가방끈에 머리카락이 끼어 아프다. 가방을 어깨에 멜 수가 없어.
- 옷이나 지갑, 가방에 달린 지퍼에 여차하면 머리가 걸린다. 브래지어 끈에도 걸린다.
- 엉키면 죽음. 브러쉬에 들러붙은 걸 칼로 몽땅 도려낸 적도 있음.
- 샴푸 값에 린스 값, 너무나 비싸서.
- 끈으로 안 묶여, 핀으로 고정이 되질 않아. 여름은 덥겠구나.
-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려고 했더니 마담 언니가 가격을 더블로 불러.
- 방안이 온통 머리카락 천지. 하나만 떨어져도 끝장. 그런데 청소는 하질 않거든.
- 화장실도 온통 머리카락 천지. 덕분에 가족들이 날 죽이려고 하고.
- 물 안내려가는 배수구 청소 해봤어? 난 해봤어.
- 출근 준비가 점점 오래 걸려.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 것만 20분이야.
- 자다 말고 한밤중에 거울 보고 악 고함 지르기.
- 이게 가장 문제인데 이제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거.
미용실 가기 귀찮아... 밥 먹기도 귀찮은데.
그런데 머리를 길게 하면 더 귀찮은 것도 같고... 뭐가 더 귀찮은 걸까.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