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저는 시카고에 바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체력이 모자라 국내 여행도 제대로 못해본 사람입니다. 이게 아니다 싶어도 가뿐히 넘겨주는 센스~ ※


고통은 늘 가까이에 있어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분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마니암은 뱀파이어도 고통을 아느냐고 코웃음을 쳤지만 그 길이가 무려 30cm에 이르는 송곳으로 등과 어깨를 사정없이 찔러대면서 그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옳지 않았다. 그녀는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지르던 날들과 참기 힘든 갈증, 발목에 채워진 족쇄, 마른 나뭇가지를 닮은 노인의 피부와 창백한 박하 냄새를 기억했다.
- 그대는 사탄의 시민이며, 불온한 오류다. 회개하라!
그는 두 여자의 시체를 뜯어먹고 피를 마셨던 이탈리아의 빈센트 베르치니가 그녀의 사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마찬가지로 1878년에는 에우세비우스가 여자 여섯 명을 도륙하고 피에 탐닉하자 그 책임이 전부 그녀에게 있다는 투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십자가로 밤새 두둘겨 패기도 했다. 정확히 심장이 있는 부위를 촛대로 찌르고 참회를 강요한 적도 있었다. 망할 놈의 성직자는 강간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1897년, 교황 레오 13세는 성서공회에서 발행한 모든 성경을 금지시켰다. 같은 해 교황청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대자선 바자회를 축복했지만 우습게도 5분이 채 못되어 바자회는 저주받은 불바다가 되었다. 유럽의 왕족과 150여명에 이르는 상류층 인사들이 한순간에 화마에 당했다. 사실상의 종속 맹약이나 다른 없던 대 뱀파이어 협정을 주도했던 아나그노리시스 주교는 재가 되었다. 사절단 임원이었던 로마의 잡종견 그마니암도 끔찍한 화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심판. 하느님의 섭리.
게지나는 부드러운 어둠에 몸을 맏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는 태고적 목소리로 시편 143편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었다.
-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다 멸하소서
원한을 품은 오리진의 목소리는 땅을 진동시켰고 마침내 상황은 역전되었다. 새디스트였던 그마니암은 숨이 붙어있는 채 구더기에 살을 뜯겨먹히는 바알세붑의 형벌을 받았고, 1899년 봄엔 결국 죽어 선별된 묘지에 묻혔다.

게지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무사히 달아났다. 기적적으로 딸을 되찾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긋지긋한 유럽을 떠나자고 마음을 먹었다. 미국과 스페인이 한참 전쟁을 치루는 중이라서 밀항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은 배에 올랐다. 빈털터리였으나 행복했고, 식구가 온전히 모였다. 그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새 삶을 찾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1904년엔 엡실링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상점을 열고 훔쳐낸 출생신고서로 사람처럼 살았다. 세금도 내봤다. 어머니는 햇빛 가리개와 모자로 무장하고 은행에 가는게 신기한 경험이라고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사는게 재밌다고도 했다. 고통은 잠시 그녀의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럭저럭 행복했다. 인간들처럼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조촐한 유희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곧 시들해졌지만 1915년에 가게를 정식으로 처분하고 나서도 어머니는 암시장에 뛰어들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사람들은 단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는 깐깐한 그녀더러 잔혹한 흡혈귀라고 불렀는데 그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뼛속까지 뱀파이어였으니까!

막내 루더가 떠돌이 집시처럼 굴던 카밀과 눈이 맞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에브는 카밀의 신분이 낮다고 흉을 봤다. 카밀은 술을 잘 마셨고 언행이 남부의 흑인 계집종 같았다. 유럽의 귀족들과 종종 사귀던 에브의 눈엔 카밀은 종잡을 수 없는 쌍 것이었다. 그치만 섹시했다.
형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영 미더워하자 루더는 카밀을 데리고 달아났다. 이후로 소식이 없다가 1975년이 되어서야 어머니 날에 축하 카드를 보내왔는데 우체국 소인이 루이지애나였다. 에브는 그 다음 날로 기차를 타고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즈로 날아가 우물쭈물해 하는 루더의 귀를 때렸다. 형제는 이후로 다시는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다.
「그 녀석, 시커먼 흑인들 사이에서 재즈를 연주하고 있더군.」에브는 씩씩대며 말했다.
게지나는 사람들 틈새에 당당히 섞여 암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웃었다.
아버지 역시「나는 재즈가 좋아」라고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키 세프의 색소폰 연주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젱킨스에게 살해당했다. 1979년의 일이다.
시신은 수습도 못했다. 젱킨스 일족이 임의로 들판에 눕혀두고 불태웠기 때문이다.
젱킨스는 순전히 망자를 모욕하기 위해 아버지를 발가벗겼다. 성기를 잘랐다는 말도 들렸다.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아담이 그 권리를 상속받은 땅에선 뱀파이어는 머리를 누일 장소를 찾을 수 없다 - 그때부터 고통은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그들 가족에게로 다시금 돌아왔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보복으로 젱킨스의 누이동생 둘을 죽였다.
꼭지가 돈 젱킨스는 히틀러마저 어찌해보지 못한 어머니를 붙잡아 대들보에 매달았다.
에브는 젱킨스의 사촌 다섯을 붙잡아 옷을 벗기고 성기를 잘랐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젱킨스는 허벅지에《DOOM》이라는 네 개의 문자를 새겼고, 에브를 십 년에 걸쳐 따라다녔다.
안달이 난 뱀퍼들을 그럭저럭 잘 따돌리는 것처럼 보이던 에브도 결국 1996년에 목이 잘렸다.
가족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게지나는 울먹이며 다시금 시편 143편의 말씀을 암송했다.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다 멸하소서, 멸하소서, 멸하소서!
어째서일까. 인간도 가축의 피와 살을 먹는다. 돼지와 소, 그리고 양을 죽인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도 인간을 먹고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이 오로지 아담에게만 이르렀다면... 그 나머지 생명들은 살육당하고 멸망당해야 한다는 건가! 그것이 신의 섭리던가. 틀리다! 그럴 리 없다. 세상은 이름다웠고, 반대로 인간은 추악했다. 혐오스러웠다. 그들에게 발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궁창이 갈라졌다는 그마니암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인간들의 창세기는 왜곡되었다. 낙원 에덴은 모든 생물과 정령들에게 공평한 삶을 약속했을 것이다.

여자는 갑자기 분노에 휩싸여 주먹을 쥔 손을 높게 들었다.
『너희는 날 죽일 권리가 없어! 그 누구도 나와 내 가족을 해칠 권리는 없었다고!』
딘의 멱살을 움켜쥐고 똑바로 그 눈을 쳐다봤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독이다. 그녀가 삼킨 건 무엇보다도 쓴 포도주였다.
죽은 자의 피.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피. 저승의 냄새가 나는 음료.
여자는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무례하고 이기적인 인간아! 신을 멸시하고 악마의 재주에 신나게 놀아난 인간아! 그릇된 방법으로 파멸당할 영혼을 가까스로 보전한 주제에... 주제에! 내 말이 맞지?! 악마와 계약하고 머잖아 지옥으로 떨어질 놈아! 너야말로 악의 씨앗이고, 불온한 오류가 아니더냐!』
『되게 시끄럽네. 입 닥쳐, 잡년아!』
같이 데굴렁 쓰러지면서 딘은 무릎으로 게지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환각 상태에서 외쳤다.
『누가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거야. 뒈지기 전에 우리집에서 당장 나갓!』

소금 결계는 대단히 강력하지만 무적인 건 아니다. 아버지 존은 제법 많은 종류의 악령들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꾀가 있는 것들은 돌이나 나뭇가지를 반복하여 던져 단단한 소금 결정들을 흩뜨려버리곤 했다. 심지어 개과 동물을 닮은 파탈룹스 같은 녀석들은 뜨거운 커피를 식히는 것처럼 숨을 후후 불어대기까지 했다. 그렇게 결계가 깨지면 마물은 안으로 쉽게 침범해 들어올 수 있었고, 이는 곧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의미했다. 다수의 마물들은 인간을 먹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에겐 금기라는게 없었다. 본능에 충실했고,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힘 없는 어린이들은 차려진 밥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딘은 얼굴에 묻은 거추장스런 피를 닦아냈다. 목숨은 그리 아깝지 않았다. 허나 침실에 누웠을 코흘리개 동생을 생각했자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냥 당할까보냐! 내가 네년 혼구멍을 내줄테다!』
그리고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우리 아빠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세상에서 제일 강해! 암염탄으로 귀신을 잡는다고! 아빠가 이 일을 알면 널 가만 안둘 거야. 죽일 거라고!』
그 강하다던 존이 이미 고인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딘은 자신이 존의 자랑스런 에이스라는 것만 기억했다. 게지나는 계속해서 토혈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딘은 두손으로 그녀의 양쪽 어깨를 단단히 움켜쥐고 힘을 가했다. 꿈틀대던 팔꿈치가 방향을 잃은 나머지 그의 턱을 강타했고, 그 즉시 눈앞에서 태양계의 도표가 춤을 추며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아니, 사실 그놈의 망할 도표는 진작부터 딘의 코앞에서 뱅글뱅글 돌며 난리 굿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딘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초현실적인 침입자를 붙잡고 늘어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노력은 하고 있었으나 그가 벌 수 있는 실제적인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고, 체중으로 게지나를 깔아뭉겠다. 그것이 최선이었고, 한계에 임박하자 아랫배를 잡아당겨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동생아~!! 달아나! 명령이다! 힘껏 달아나!』

샘은 딘이 소리를 질러대는 걸 들었다. 그러나 그의 명령대로 할 수는 없었다. 기침이 터져나왔고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듬더듬 바닥을 매만지며 앞으로 전진했다. 죽을 똥을 싸도 같이 싸자고 다짐했다. 이 상황에서 혼자 나 몰라라 달아날 거라면 법학 공부를 때려치고 헌터 생활에 발을 담구지도 않았다.
『딘! 어딨어!』
눈이 무용지물이 되면 다른 감각을 동원하라고 배웠다. 샘은 새카만 방안에서 숨박꼭질을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냄새와 기척, 그리고 육감이라는 걸 사용해 계속해서 예배당 안을 흩었다. 그러다 쾅 소리를 내고 종아리로 나무 의자를 걷어찼다. 욕지기가 나왔다. 이번에는 장애물을 피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허리를 구부렸다. 아니다. 서로의 옷을 잡아당기며 밀어대는 소리가 멀어졌다. 그럼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샘!』
얼굴이 파랗게 변한 리가 샘의 어깨를 붙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터뜨렸고, 숨이 막혀 죽기 전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콜록! 아직 딘이 저 안에 있어요!』
『나랑 같이 나가자. 불이 더 번졌어! 더 이상 머뭇거리면 죽어!』
『알아요. 하지만 혼자서는 갈 수 없어요!』
리의 손이 샘의 가슴에 닿았다.
『알아! 그치만 넌 그래야만 해.』
『뭐요?!』
『나는 지금 당장 여기서 널 데리고 나갈 거야, 샘 윈체스터. 네 형은 나에게 네 보호를 의뢰했고, 나는 그 일을 승낙했어. 둘 중에 하나만 살릴 수 있다면 딘이 아니라 널 살리겠다고 사전에 약속했다.』
『뭐요?!』
『어린애처럼 굴지마! 지금이 퇴장할 시간이라는 거다! 멍청아!』

샘은 이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싫어! 딘은 어쩌고~!!』
리는 딱딱한 표정이 되어 뒷걸음질 치려는 샘을 단단히 잡았다.
『미안하다. 네 형의 일은 유감이다.』
『아냐! 이런게 아냐!』
『이 자식! 나로 하여금 네 갈비뼈를 부수게 만들지 마.』
『이러지 말아! 난 갈 거야! 형에게 갈 거야! 그리고 일러바칠테야! 두고 봐! 딘! 딘!』
『제기랄... 샘 윈체스터! 그래도 여자인데 나에게 이런 중노동을 시키다니!』
칼날처럼 예리한 어둠이 그의 시야를 스쳐갔다. 샘은 숨통이 꽉 막히는 감각에 숨을 훅 들이켰고, 거짓말처럼 그의 두 다리가 번쩍 들렸다. 리는 이런 것쯤이야 문제 없다며 레스토랑용 대형 냉장고를 머리에 이고 가는 공룡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반쯤 감겨진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방울이 목덜미에 닿아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망할. 기분이 찝찝하다.
리는 짜증이 치솟았고, 단돈 100달러에 이런 부탁을 당부한 딘이 조금은 지나쳤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Posted by 미야

2007/10/07 23:54 2007/10/07 23:54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59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지니 2007/10/08 02:10 # M/D Reply Permalink

    자기전에 잠시 왔는데..ㅎㅎ 글이 올라왔네요..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오늘도 엄청 감동받고 돌아갑니다~

  2. 고고 2007/10/08 09:41 # M/D Reply Permalink

    대체 딘은 샘을 왜 저리 코찔찔이로 만들어버리는지....이제 정신 차렸군요. 다시 돌아왔어. 우리아빠 운운한건 역시.....조금 제정신이 아닌 듯 하지만요. 뱀파이어 일대기도 멋지고 잘 읽고 갑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442 : 1443 : 1444 : 1445 : 1446 : 1447 : 1448 : 1449 : 1450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1298
Today:
1143
Yesterday:
1861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