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원래 딘은 초자연적 존재를 대단히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은 차라리 점잖다. 맹렬히 증오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아버지 존이 그랬던 것처럼 딘 또한 그런 쓸데없는 것이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이해 못했다. 서점에 들려서는 가죽 정장본의 성경책을 팡팡 두드리며「창세기 몇장 몇절에《하느님이 딸기맛 우유와 카카오버터를 만들다 말고 초자연적인 걸 덤으로 만드셨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는 거냐. 없잖아. 그러니까 이것들은 순전히 제멋대로야. 없애버릴 이유가 충분하지」라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등산로를 한가롭게 뛰어다니던 유령을 잡아 족친 적도 있다. 얼마나 강경하게 사냥에 임했으면 조깅화를 벗어던지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려 하던 유령이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산탄총을 들고 거침없이 따라가던 딘은 더도 말고 사이코패스 살인자였다.
「쉰 소리! 난 죽어 마땅한 것들을 죽인 것뿐이야.」
샘이 나중에 그 사실을 지적했을 때 딘은 동생이 안드로메다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쳐다봤다.
그랬던 딘이... 자신의 바지를 잡은「비정상적 존재」를 용납했다는 건 서쪽에서 해가 떠오를만한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뭐, 얼굴 표정만 보자면 지구 끝까지 날려버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건 분명하다. 허나 분노한 빨간머리 앤이 길버트 그레이프의 머리 정수리로 석판을 휘둘러댄 것처럼 굴어선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것또한 사실이었다. 딘은 영특하게도 그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감정 수위를 조절했다.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이면서 - 그래봤자 붙잡힌 바지를 빼내려는 것이 목적임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 질문을 던져보았다.
『네가 새미니?』
《...》
『이곳에 혼자 있는 거야?』
딘과 샘이 자리에 있다는 건 어렴풋이 인식은 해도 질문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히 졸린 것도 같고, 아니면 약에 취한 것도 같다. 생기를 잃은 채 뿌옇게 흐려진 눈은 딘을 그대로 지나쳐 훨씬 더 먼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구릉을 넘고, 사막을 지나, 마침내 깊은 바다를 건넜다. 아이의 눈에서 얼어붙은 파도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굉장히 멀리서 들려오는 구원 요청... 한 없이 멀리 퍼져나가 끝끝내 침묵에 가까워진 비명이었다.
소름이 돋으려 했다. 혹시라도 지옥의 가장자리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연옥의 심장부를?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붓으로 묘사한, 우스꽝스런 짐승과 벌레로 가득찬 세상? 아마도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샘이 황급히 딘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젠 어쩔거야, 딘. 우린 저 아이의 손을 잡아 끌어당길 수 없다고.』
『침착해, 샘.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새미는 오로지 이 안에서만 존재하는 아이야.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은 자연적으로 녹아 없어지기 마련 아니겠냐. 그러니까 얼음통을 뜨거운 햇볕 아래로 끄집어내기만 하면 얼씨구나 만세 - 라는 거다.』
『답답하긴! 뭔 재주로 얼음통을 냉장고에서 꺼낼 건데.』
『넌 바보냐? 냉장고 문을 열면 되지.』
길게 심호흡한 딘이 제일 먼저 결심한 일은 벽에 그려진 헥사그램 문장을 망가뜨리는 거였다.
형제들 사이로 의미심장한 눈짓이 교환되었다.
샘은 어쩐지 그를 말리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러든 말든 소매를 사용해서 끝부분을 지웠다.
『후욱!』
체중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발이 둥실 들린다는 감각이었다. 아니, 그보단 몸통이 짓이겨졌다고 할까. 누군가 들어다 구석으로 던졌다. 뭐가 잘못된 건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갈비뼈로 불이 붙었다. 세게 눌린 가슴이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 같다. 총천연색으로 별이 반짝이면서 통증에 대한 자연적인 신체적 반응으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300kg의 돌무더기에 산채로 깔린 느낌이다. 압박감으로 숨 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떨리는 손으로 벽면을 더듬거리며 몸의 자세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강력 접착제로 고정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노력 끝에 겨우 할 수 있었던 건 콧잔등이 짓눌리기 전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게 전부였다.
『도대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미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그를 멀뚱 올려다 보았다.
『젠장. 네 짓이냐?!』
딘은 화가 치밀었고,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빙긋 웃었다.
『눈 꽉 감아, 딘!』
측면으로 한 걸음 이동한 샘이 정확하게 소녀의 머리를 노리고 암연탄을 쏘려 했다. 아마도 그것이 샘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인 듯했다.
『자, 잠깐, 잠깐! 부탁할테니 좁은 곳에서 막무가내 발포라는 건 하지 말아줘~!!』
그래봤자 원래 그의 동생은 환장할 지경으로 어른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인석아! 파편에 나까지 맞는단 말이다아~!!』
버럭 고함을 질러대는 것과 동시였다. 귓청이 날아가는 뻥 소리와 같이 하여 깨어진 소금 조각이 고정된 나무 판자 위로 콩알 크기의 구멍을 여럿 만들었다. 판자만 건드렸던가. 재수 나쁘게 옆으로 튕겨오른 몇 개의 작은 알갱이가 딘이 입고 있는 구제 청바지를 뚫었다.
살갗이 헤어지는 독특한 고통에 이마를 찌푸리며 진저리를 쳤다.
『으악! 내 다리!』
의도를 했든 하진 않았든, 아군을 쏘는 건 반칙이다. 딘은 그 사실을 단단히 훈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샘이 그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팔꿈치와 어깨를 바닥에 부딪치고 그대로 벌렁 드러누운 딘을 향해 호통을 쳤다.
『제기랄, 딘! 잘도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응?! 이게 냉장고를 연 거냐?!』
『이게 어디서 신경질이야! 조금만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난 고자가 되었을 거야! 내 고환에 구멍을 뚫어놓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어쩌긴. 셈통이다 노래를 불렀지.』
빗맞긴 했어도 - 여차하면 감정에 휘둘리는 샘의 사격 솜씨는 조만간 교정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 암염탄의 효과로 새미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등짝을 짜부라지게 눌러대던 손길도 잠시나마 거두어졌다. 나비 표본 액자가 되어 못질까지 당했던 딘은 벽에 기댄 채로 잠시 불편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느긋하게 숨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샘이 불안한 표정으로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어둠속에서 도사리고 있을 새미를 찾았다. 딘도 손전등을 고쳐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긴장한 탓인지 목덜미를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뻣뻣해졌다. 등은 장작불처럼 뜨거운데 손바닥은 차가웠다. 머리속이 잔뜩 엉켰다. 지하실 어딘가로 그려져 있을 문양을 찾아 아까처럼 망가뜨리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코끝을 살짝 스쳤다.
「우리들 일은 이런게 문제라니까. A 다음으로 B가 온다는 식의 사전적 지식은 하등의 소용이 없지. G가 될 것인가, 아님 N이 될 것인가는 그때마다 다르니까.」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샘이라 짐작되는 어른의 실루엣을 근심에 가득차 쳐다보았다.
주술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파괴되면 될수록 아이가 폭주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딘은 자신이 먼젓번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했다.
자신의 호흡소리가 증기 기관차를 닮았다고 한탄하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엄마는... 내가 미운 거야? 왜 그래. 왜 나에게 그러는 건데.》
셔츠자락을 누군가 또 잡아당겼다. 숨을 멈춘 채 손전등을 아래로 내렸다. 아니, 내리기도 전에 미움을 가득 담은 강력한 펀치가 얼굴 정 중앙을 가격했다.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정신이 멍해졌다. 윗입술이 얼얼했다.
《그거 알아? 나도 엄마가 미워...》
연옥을 빼닮은 어둠 한 가운데서 하얀 손이 떠올랐다. 작다. 그리고 창백하다. 그런 것이 딘의 목을 덮었다. 안쪽으로 딘을 끌어당기며 아이는 쉰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누가... 엄마냐! 최소한 삼촌이나, 아저씨라고 불... 컥!』
딘은 자신의 목을 틀어죄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바둥거려 보았다. 그치만 질질 끌려가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그들은 너를 송장 나무 위로 매달아 버릴 거야~♬」라는 다소 불순한 가사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질까보냐. 상체를 비틀어 억지로 자세를 바꾼 뒤에 신발 바닥으로 벽을 찍어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실 그건 그다지 희망을 걸어봄직한 동작은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당겨지는 힘에 의해 목과 몸통이 말 그대로 절단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신발이 붉게 칠해진 선을 우연히 가로질렀다는 것이고, 어린이용 크레용으로 그린 것이 분명한 선이 그 즉시 뭉개졌다는 점이었다.
방금 두 번째의 문장을 망가뜨렸다.
딘은 자신이 곧 반대편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을 짐작했다. 그것도 대단히 거칠게.
《엄마는 나를 미워해.》
시야 하나 가득으로 둥실 떠오른 아이는 대단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나를 싫어해... 내가 싫다고 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내가 그렇게 나쁜 아이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찡그린 표정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 점이 불쾌했다.
『새미.』
《난 엄마를 죽이고 싶지 않아. 난 엄마를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아.》
『새미.』
《그러니까 날 무서워하지 말아줘. 날 싫어하지 말아줘... 잘못했어, 잘못했어! 엄마, 엄마...》
『엉뚱한 녀석일세. 잘 알지도 못하는데 싫고 좋고 할 겨를이 어딨어.』
《싫어해! 무지 싫어해! 나는 느낄 수 있었어. 엄마는 생각했어.「젠장, 새미. 네가 저지른 걸 봐. 네가 뭘 했는지를 보라고」그리고 말했어.「넌 정말이지 골칫덩이야, 새미」고개를 흔들며 말했잖아. 나는 다 들었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 그리고 엄마는「너 때문에 너무 힘들어. 이 많은 벽돌을 봐. 이러다 골병 들겠어」라고 했어. 내 탓이라고 했어. 내 잘못이라고, 그래서 내가 밉다고...》
『자, 잠깐, 베이비! 다 듣고 있었다고? 설마, 지붕 무너진 그 집에서? 그 얘기야? 아이고 맙소사... 이제 이게 다 뭔 소동인지 알겠다. 미안, 새미. 죄다 내가 불평하며 중얼거렸 법한 내용인 건 맞는데 말이지... 가만히 듣고 있자니 골칫덩이라고 한 건 아무래도 너 말고 다른 새미인 것 같아. 내가 밉다고 생각한 건 네가 아니라 임팔라 지붕으로 총알 구멍을 뚫어놓은 멍청한 새미야. 곰 덩치인 주제에 손이 엄청 많이 가는 내 동생이지. 네가 아냐. 틀려. 잘못 알았어.』
《추워... 날 미워하지 마, 엄마...》
『으아아~!! 사람 말 좀 들엇! 게다가 난 네 엄마가 아냐! 남자의 몸으로 젖을 물려가며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딱 한 번으로 족하단 말이얏!』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화가 나서 주먹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댔다.
『멋대로 오해나 하고 말이야!』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몸을 붙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고 싶었다.
『나는 미워하지 않아. 새미가 날 다치게 한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을 거야. 설령 새미 때문에 내가 죽게된다고 해도 난 원망하지 않아. 나는 그 사실을 알아. 뭐, 가끔씩 참을 수 없도록 짜증이 심하게 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훨씬, 새미를 좋아하니까 괜찮아.』
새미가 임팔라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날엔 이야기가 살짝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건 별도로 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오해라고. 내가 새미를 무지 싫어할 리가 없잖아.』
아이가 흠칫하며 잡았던 손을 놓았다.
이때다 하고 또 다른 새미가 딘의 어깨를 와락 끌어당겼다.
목덜미로 불어닥치는 샘의 뜨거운 호흡에 미칠 것 같은 불안이 녹아 있음을 알았다.
어쩐지 딘은 뒤집어져라 껄껄 웃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움받을까 걱정하지 말아.
이마에 쓸데없는 주름살만 늘어.
엄마는 언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법이야.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치잇 하는 부싯돌 소리와 함께 어둠이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새미? 내가 놀라운 비밀 하나를 말해줄까? 사실은 오늘이 네가 이곳에 있어야 할 마지막 밤이야. 너는 일곱 살이 되었단다. 사실은 아주 먼 옛날에 일곱 살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때. 축하는 언제고 해도 좋은 거니까 상관 없겠지. 그러니까 새미? 늦었지만 너의 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해. 원래대로라면 초를 불어서 꺼야 하지만 이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자. 이리 가까이 와서 후~ 하고 숨을 불어 이 불을 꺼보겠니?』
《엄...마?》
『무지 쉽단다. 후, 숨을 불어 이 불을 끄렴. 그리고 소원을 비는 거야. 음... 예를 들자면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라던가. 아님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라던가.』
《소원을 빌어요?》
『그래, 소원을 빌어보렴. 무슨 소원을 빌고 싶니? 새미.』
《날 혼자 이곳에 내버려두지 말아요.》
『오케이. 그럼 우리와 같이 당장 밖으로 나가자.』
후우, 하고 아이가 숨을 뱉었다.
생일 축하해, 새미.
딘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라이터가 꺼졌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