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20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곰이 앞발을 휘둘렀을 뿐인데 광풍이 불었다.
나무 위에 올라간 나조차 솟구친 먼지로 눈이 따끔거렸으니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엉거주춤 서있던 수사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화살을 다시 재장전하고 활시위를 잡아당길 준비를 마쳤던 어린 소년도 풍압에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굴렀다. 힘을 잃고 따라 빨려가는 화살들이 여기선 꼭 이쑤시개처럼 보였다.

완전 미쳤다. 턱을 힘껏 벌려 포효하는 짐승은 어쩐지 곰이 아닌 다른 생명체 같았다. 플루토늄으로 오염된 땅에서 태어나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거대한 악의였다.

“도련님이 위험하다. 빨리 신, 신호탄을 쏴!”
수사 한 명이 허리 근처를 뒤적거렸다. 신호탄을 찾는 눈치인데 감정이 격해진 탓에 손을 떨어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해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걸 놓칠 곰이 아니었다. 거대한 체구를 움직여 수사의 몸통을 앞발로 찍어 눌렀다.
모양새가 좋지 않은 죽음이었다. 흉부가 납작하게 찌그러진 수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신호탄을 올리라니까!”
“제길, 다리가 풀렸어!”
“그러니까 여기에 오지 말자고 내가 누누이 말했... 허억!”
곰이 웃는 걸 본 적 있는가. 순식간에 사람을 죽인 곰은 진심으로 재밌어 했다.

“정신 차려! 그러고도 너희들이 현문 세가의 수행자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가 보기와 다르게 참 독했다. 어느 새 몸을 추스른 소년이 나무에 어깨를 기댄 자세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솜씨가 출중하여 이번에도 화살은 곰의 몸을 맞췄다.
억울한 부분이라면 아직 나이가 어려 힘이 약했다는 점이랄까, 화살은 단단한 곰의 피부를 약간만 뚫었을 뿐이었다. 깊게 박히지도 않은 화살은 곰이 몸을 털자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끝이었다. 결말을 예상한 나는 진심으로 속이 상했다. 이런 식으로 죽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다. 아직은 부모 아래서 어리광을 피워도 괜찮을 나이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일부러 위험한 곳까지 와서... 곰이 두 다리로 걸었다. 이족보행 종족도 아니면서 거짓말처럼 속도가 매우 빨랐다. 성큼 걸음으로 소년에게로 접근한 괴수는 주둥이를 벌려 넋이 완전히 나간 아이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했다.
“야, 이 개 자식아! 어린애는 건드리는 거 아니야!”
내뱉고 보니 저건 개가 아니라 곰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뭐, 괜찮겠지. 뜻만 통하면 - 중얼거리며 근처에 있던 바위를 들어 냅다 던졌다.
왕년에 배추 250근을 혼자 들어 운반하던 나다. 힘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에 바위는 빙글빙글 돌며 곰의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깨진 것이 곰의 머리가 아니라 바위라는 점은 심히 유감스러웠지만 - 그래도 명중이었다.

돌에 맞은 곰의 눈이 벌겋게 변했다.
이 거리에서 고작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등골이 오싹했다.
녀석은 분노로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듯했다. 발광하여 발을 굴렀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깨진 바위조각에 뽑힌 사람의 팔, 그리고 불운한 소년의 몸뚱이가 대포처럼 날아들었다.

‘씨발, 결계...!!’
날아오는 물체가 뿌리 채 뽑힌 나무라면 괜찮다. 결계는 오직 사람에게만 반응한다.
그래서 진법 위를 통과하는 물체가 사람이면 문제가 엄청 심각해진다.
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제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벼락이 계속 같은 자리로 반복하여 내리꽂히는 기분이었고,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콰르르 우르르 땅이 울렸다. 발아래 떨림이 꼭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산중턱이 그대로 쓸려나간 것 같았다. 뭔가가 무너졌고, 다시 치솟았다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주저앉았다.
‘씨발, 이래선 반물질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잖아!’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이미 기절한지 오래여서 팔이 축 늘어진 소년의 몸이 허공에서 둥실 떠올랐다. 그러더니 나침반 바늘처럼 몸이 저절로 회전했다.
동시에 손목에 찬 팔찌에서 자색의 불꽃이 솟구쳤고, 이내 소년을 에워싸고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눈치껏 보아하니 주인을 보호하는 진귀한 아티팩트인 모양이었다.
불꽃은 소년의 육신을 통째로 튀기려 드는 결계의 힘에 맞서 맹렬하게 저항했다.
팽팽한 대결이었다. 먹느냐, 먹히느냐, 막상막하의 대결은 위력적인 폭풍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폭풍에 휩쓸린 주변 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터졌다.

고개를 계속 들고 있다간 내 머리도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쪼그리고 앉았던 자세를 바꿔 아예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렸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토네이도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음 소들과 같이 오즈의 나라로 빨려갈 뿐이다.
뭔가가 코앞에서 와지끈 부서졌고, 간발의 차이로 머리 꼭대기 한 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의 정체는 금이 가고 깨진 팔찌의 구슬이었다.

소란이 멎어 사위가 고요해지자 시야에 대자로 누운 소년의 몸이 가득 찼다.
마침내 결계를 깨고 진법 안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왔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아님 슬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 뒤로 미루기로 했다.
퍼득 깨달음이 왔다. 지금 이 순간의 고요는 단지 폭풍의 눈 속에 들어와서 그런 거지 아직 태풍은 지나가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허공으로 여덟 개의 기둥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순서대로 나타난 그것은 구름을 뚫을 기세였다.
문제는 일곱 개는 튼튼했고, 하나는 깨지고 절반이 부러진 상태였다는 거다.
좋지 않았다. 수직으로 선 기둥 꼭대기로 빛나는 거대 문양이 떠올랐다. 동시에 건물 외곽 철근이 구부러지다 못해 뚝뚝 끊기는 굉음이 들렸고, 문양이 거대한 쟁반처럼 기둥 위에 올라갔다.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다음은 규모가 남다른 쟁반 노래방의 재현이었다.

기절한 소년을 등에 업었다. 초보자 아이템으로 주어졌던 곤선삭을 꺼내 나와 아이의 허리를 같이 동여맸다.
시간이 촉박했다. 기둥이 온전하지 않으니 문양은 곧 균형을 잃고 아래로 곤두박질할 것이고,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걸 공평하게 깔아뭉갤 터였다. 그 전에 파괴 범위에서 무조건 탈출해야 했다.
“효성진 이 미친 양반이 자폭 장치를 숨겨놨어!”
도를 숭상하는 인간이 결계를 억지로 깨고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면 진법이 붕괴되어 침입자를 공격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보통의 붕괴가 아니다. 일종의 폭파공법을 사용해서 엄청난 무게를 가진 철판을 사람들 머리위로 수직낙하 시킨다고 상상해보자. 댁이 무슨 알 카에다냐고!
하여간 이 세계 사람들이 가진 선악의 가치관은 현대의 기억을 가진 내 입장에선 따라가기가 벅찼다.
재판과정 없이 은원을 갚는 일이 일상이라 그런지 사람 헤치는 일에 손속이 매웠다.

“으으...”
“아파도 지금은 일단 참아!”
등 뒤 업힌 어린애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영험한 아티팩트가 지켜줬다고 해도 몇 년에 걸쳐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와 정면충돌을 했으니 찰과상만 입고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이런 경우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정석이긴 하다.
목이나 허리처럼 안 좋은 부위로 금이 간 경우 몸을 흔들면 신경이 어긋나 영구히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119가 출동할 것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납작 쥐치포 결말뿐인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정신없이 뛰었다.
그 와중에도 나중에 이 아이의 부모로부터 고발을 당하겠구나 싶었다.
제법 부자이고, 제법 잘 나가는 집안일 거 같은데 이거 어쩌냐.

“엄마.”
아이가 엄마를 찾았다.
“아빠.”
아빠도 찾았다.
“외숙부.”
부르는 순서가 많이 이상하다. 엄마랑 아빠 다음엔 형이나 누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니야?

바로 그때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불길하고 기이한 소리가 천지를 찢었다.
큰 바람에 휩쓸려 튕겨져 나가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수직낙하 한 진법이 지표면과 충돌했다. 대략 반경 200간 정도의 땅이 트랙터로 뒤엎은 모양새로 일제히 주저앉았다.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대륙 크기의 손바닥으로 큰 거북 등짝을 후려갈긴 모양새였다. 오싹할 정도의 파괴력이어서 나무는 물론이고 새와 짐승들까지 전부 형태를 잃었다.
“여기가 무슨 퉁구스카냐......”
뜨겁게 타오르지만 않았을 뿐이지 이 참상은 대형 운석이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킨 퉁구스카 그 자체였다.

‘때마침 결계 가장자리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말 그대로 가루가 될 뻔했네. 효성진 이 인간... 선 넘었잖아! 만나기만 해봐.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따질 테야. 그리고 주먹으로 날려줄 테다.’

아이와 같이 곤선삭으로 묶여 있다는 걸 잊고 자리에서 엉금엉금 일어났다.
운이 좋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이 정도면 곧 아물 것이다. 팔과 다리도 잘 붙어 있었다.
아, 방금 만진 팔은 내 것이 아니었다만. 상관없겠지. 아이의 팔도 제자리에 든든하게 잘 붙어 있었다.
어쩐지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푸흐흣 이러고 실성한 듯 웃었다.
기쁜 것이 아니라 미칠 것 같은데 사람은 웃을 수가 있는 거였나, 그러고 보니 미친 곰에게 발목을 물어 뜯겼을 때도 이렇게 웃었던 것 같다.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웃어버리자 생각했던 게 얼핏 기억이 난다.
아니면 이런 게 인생 처세술인 건지도.
라면 다 끓여놓고 상 엎었을 적에도, 계약종료 통보서 받았을 적에도,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웃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누나가 말했다.

“아, 환장하겠네~”
배를 잡고 웃으며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충격으로 날아오른 흙먼지가 검은 방사능 비처럼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10 13:20 2021/11/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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