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나는 일종의 분노조절 장애 상태에 빠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세상을 원망하고, 업무태만에 빠진 저승사자들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리고, 미친놈 설양을 저주하고, 내 신세를 한탄했다.
효성진과 송자침 두 양반들에게도 화를 냈다. 그들은 날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됐다.
물론 주먹으로 바위를 치며 신경질을 부린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이성이 돌아오자 대학물 먹은 기억과 즐겨 시청하던 유튜브 동영상을 떠올려... 말이 안 되잖아. 정신쇠약 초기인지 자아가 붕괴했다는 느낌이다. 고개를 흔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손목에 감긴 곤선삭을 끊어버리는 일이 제일 시급했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아무래도 행동에 제약이 컸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돌을 골라 발바닥 사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보았느냐, 이것은 톱이다. 밧줄 감긴 손목을 가져가 같은 방향으로 반복하여 움직였다.
문제는 사흘을 문질러도 보풀조차 안 일어났다는 거다. 재질이 무엇인지 곤선삭은 진짜 강철 같았다.
누가 이기나 보자 오기가 생겼다. 어차피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다. 일주일간 더 정성을 들여 문질렀다.
그러고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친 내구력이잖아!”
궁리 끝에 범죄 드라마에서 보았던 방법을 고려했다.
수갑을 차고 도망치던 특수요원이 엄지손가락을 희생했던 걸 기억하고 발바닥 사이에 낀 돌에 대고 곤선삭이 아닌 손가락을 문질렀다.
이쪽은 내구도가 형편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이 끊어졌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이쯤하여 내 몸의 상태가 일반적인 언데드와 많이 다르다는 걸 인지했다.
통증은 둘째고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뼈와 살이 떨어져 나갔을 시의 출혈량은 아니었으나 종이에 피부를 베었을 때처럼 소량의 피가 났다. 그리고 피의 색은 정맥혈처럼 검붉었다.
‘내 기억으로는 주시 고것들의 콧잔등을 주먹으로 갈겼을 적에 코피를 흘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고통을 못 참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그 생각을 했다.
아픔 끝자락으로는 정체불명의 열감이 올라왔다. 큰 턱을 가진 개미가 다친 부위를 에워싸고 갈작갈작 쏠아대는 것 같았다. 혐오스럽고 싫은 감각이었다.
소매를 잘게 찢어 붕대처럼 손에 감고서 나무 기둥에 이마를 쿵쿵 박아댔다. 그 덕에 산기슭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야생동물들이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쳤다. 모습이 고라니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미친 짓이 끝나자 나에게는 자유로운 두 손과 빈 시체자루, 그리고 곤선삭이라는 초보자 아이템이 주어졌다.
“그래봤자 불을 피우는데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잖아.”
해가 떨어지면 숲은 놀라울 정도로 온기를 잃고 식어갔다.
시변한 몸뚱이가 체온 저하로 죽을 일은 없겠지만, 추위는 매우 고달팠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산짐승을 쫓는 일이었다.
아직은 상위 포식자가 진법 가까이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들도 나름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밤이 되면 짐승의 노란 눈이 이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가끔씩 멧돼지처럼 지능이 낮은 것들이 몰려와 주둥이로 흙을 파며 염탐을 시도하는 일도 있었다.
떼를 지어 몰려든 그것들과 눈을 마주칠 적마다 모닥불 생각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언젠가 제대로 붙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전에 불을 피워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야. 톰 행크스도 캐스트 어웨이에서 불 피운다고 죽을 똥을 쌌잖아.”
주워 모은 솔방울과 잎사귀들은 수분을 빨아먹어 축축했다. 불이 붙을 상태가 아니었다. 나뭇가지를 문질러 마찰열로 불을 피우는 건 이 상태에선 불가능했다.
궁리 끝에 부싯돌을 떠올리고 이번에는 양손에 돌을 쥐었다.
막상 돌을 양손에 쥐고 보니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부싯돌은 부시와 돌의 합성어다. 철기시대부터 쓰인 이 인류의 오랜 도구는 돌과 철편이 한 세트다. 쇠붙이를 때려야 산화 반응으로 미세한 불똥이 피어오르는 거지, 돌에 돌을 더해봤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딱딱 소리를 내어 돌을 부딪치다 짜증이 치솟아 죄다 던져버렸다.
지금 내 수준은 석기시대라서 철기시대 도구는 언감생신이었다.
“괜찮아! 파이팅!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야!”
잘 타게 생긴 나뭇가지를 모아 젠가 블럭처럼 쌓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에 두어 건조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흘째 되던 날에 그간 내 노력을 엿 먹이며 비가 쏟아졌다.
염라대왕에게 쌍욕을 날리고 시작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내가 제일 먼저 염두에 두었어야 했던 건 비를 가려줄 지붕이었다.
무엇 하나 쉽지가 않았다. 원시적 형태의 가림막을 만들려고 해도 망치라던가 도끼 같은 기본 도구가 필요했다. 수중엔 다 없는 종류였다.
“돌칼부터 만들자.”
그래서 효성진 도장이 오랜만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적에 나는 적당한 모양새를 갖춘 돌을 주워와 그 표면을 갈아 날을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걸람아.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효성진 도장은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물건의 정체가 돌칼이라는 걸 못 알아봤다.
결코 내 손재주가 못난 탓이 아니다. 날카로운 패검을 들고 다니는 자가 돌로 만든 칼이 뭔지 알겠어?
하던 작업을 잠시 뒤로하고 나는 그에게 적당한 바위를 골라 아무렇게나 앉으라고 시늉했다.
어쩐지 집주인이 기별도 하지 않고 찾아온 손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모양새였지만... 넘어가자. 다행히 신선님도 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나는 신선이 아니다. 신선은 내 스승님 같은 분이지. 속세를 떠나 산속에 살고, 선도를 닦고 도통하여 불노불사의 경지에 오르셨으니 신선이지. 하지만 나는 이미 산 아래로 내려와 인계와 얽혔으니 신선이 될 수 없단다.”
쓰게 웃으며 그가 바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그의 안색은 나빴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면 간에 문제가 생겼거나.
피곤에 찌든 사람 특유의 누렁내가 맡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가 날 이 산속에 처박은 본인이라는 것도 잊고 몸은 괜찮냐고 근심하며 물었다.
송자침과 둘이서 설양을 잡으러 갔다는 걸 아는데 얼굴이 죽상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도장은 내 질문에 이렇다 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소매를 뒤져 조릿대 잎사귀로 포장한 주먹밥 두덩이를 꺼내 내게 건냈다. 송자침에게 키 작은데 주먹밥 하나라도 보태어준 적 있느냐 쏘아붙였던 걸 기억해둔 눈치였다.
눈에서 하트를 뿅뿅 날리며 조릿대 포장을 풀었다. 멸치볶음과 장아찌가 내용물로 든 주먹밥은 꼼꼼한 포장 탓에 여전히 부드럽고 약간의 온기까지 남아 있었다. 한입 베어 물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건 죽고 나서 처음이었다.
“곤선삭을 풀었구나.”
“덕분에 고생 좀 했죠.”
붕대를 푼 지 이미 오래였고, 잘린 엄지손가락도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흉터는 남았지만 효성진은 내가 곤선삭을 풀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건 모를 것이다.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내다 말고 엄지손가락을 구부려봤다. 잘리기 전과 비교해도 큰 변화가 없다.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결코 이것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설양은 금방 잡았다.”
주먹밥 한 덩이를 다 해치우고 나머지로 손을 가져갈 즈음에 효성진 도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설양을 잡았다니.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도장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설양은 무려 마을 세 곳을 돌아다니며 무전취식과 기물파손을 반복했다고 한다. 고주망태가 되어 집기를 부수고, 이를 항의하면 폭행을 저지르고 다녀 굳이 위치를 묻는 연통을 돌릴 필요가 없게 소재 파악이 쉬웠다고 한다.
송자침과 효성진 도장이 작정하고 팔을 걷어붙였을 적에 설양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로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
몇 합 겨루지도 않고 제압에 성공한 송자침은 ‘뭐 이딴 녀석이 다 있어!’ 화를 냈다.
이들의 눈에 설양은 그냥 구제불능의 난봉꾼이었다. 사마외도를 익혀 사악한 술법으로 한 집안을 몰살시킨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도 잡혀온 설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증거 있어? 생사람 잡고 시비 거는 거 아냐?’
술을 마시고 돈을 내지 않았다는 건 인정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탁자를 부수고 직원을 때린 것 같다고도 말했다. 최근 언짢은 일이 있어 주량을 자제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그렇다고 내게 주살(呪殺)의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너무하지. 차라리 내가 기산 온씨의 생존자이고, 현문 세가를 대적해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고 주장을 하지 그러슈. 약양의 상씨? 기억에 없는데... 내가 몰살시켰다고?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얼마나 대단하신 분들이기에 증거도 없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학살자로 몰아세우는 거야? 물어나 봅시다. 댁들 어느 가문 분들이우?’
능글능글 웃으며 내뱉는 설양의 말에 송자침이 위액을 토했다고 한다.
효성진은 고아였고, 송자침은 평범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봤자 출신이 비루하니 거짓으로 범인을 꾸며내려 한다는 주장에 송자침은 이런 모욕은 없다며 펄펄 뛰었다.
분통 터지게도 설양의 그런 주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갔다고 한다.
상씨 세가의 참변 소식을 듣고 모인 현문 세가의 높으신 분들도 증거가 있느냐 묻기 시작했다.
‘증거는 있다.’
알 카포네처럼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고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도중에 뒤집혔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다. 내가 머리에서 뽑아내어 버린 은침이 그 증거였다.
효성진이 은침을 설양에게 보여주었을 적에 그의 표정이 돌변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게 궁지에 몰린 쥐새끼의 표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설양은 기쁜 듯이 웃었고, 녹색의 눈을 반짝였고, 즐거움이 끓어 넘치는 것 같았다고 효성진이 말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묻는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고,
‘너, 봤구나? 내 귀여운 장난감을. 그건 내 거야!’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고 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