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나는 송자침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곤선삭으로 단단히 묶었다지만 전자발찌 끊고 도주하는 일도 부지기수인데 언제든지 끊어버릴 가능성이 있었고, 나라는 존재는 무려 일흔 명을 죽게 만든 원흉이었다. 자루에 넣어 보관했다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 앞에서 풀어 보여줬는데 갑자기 내가 이성을 잃고 막 날뛰어봐라.
불발탄이라고 리어카에 싣고 고물상으로 가져가면 엿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송자침은 내 몸을 태워 불안의 근원을 없애버린 뒤, 상자에 재를 담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거가 될 수 있다며 효성진을 설득하려 했다.
“금종주 금광선도 귀장군 온녕을 재로 만들어 뿌렸네. 흉시는 없애야 해. 왜 그렇게 주저하나. 혹시 재를 가져가면 사람들이 자네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그건 아니고...”
“그럼 어서 태워버리자고. 자네는 포산산인의 제자이고, 세간에선 풍모가 맑고 수행의 경지가 높다며 자네더러 명월청풍이라고 칭송하고 있잖아. 그런 자네의 말을 의심할 자는 없어. 흉시를 직접 증거라고 가져가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저것은 상씨 집안의 원수이니 가주 상평 대신 처단했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진 않을 거야. 오히려 효성진 자네의 명성을 또 한 번 드높일 기회일세.”
효성진은 그깟 명성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그저 정의를 실현하고 싶을 뿐이야, 자침.”
“흉시를 재로 만드는 일도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네.”
“하지만 내 패검 상화가 저 아일 베어버리길 주저했네.”
송자침이 김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또 뭐라고. 그게 어때서. 상화는 포산산인이 내려주신 검이니 이렇게 말하면 큰 실례지만... 음, 그 검은 좀. 크흠! 변덕스럽잖아.”
“이보게 자침! 지금 뭐라고? 지금 스승님이 내려주신 내 패검더러 변덕스럽다고 했어?”
“솔직히 그렇잖아. 상화 성격이 이상한 건 사실이라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생각 안 나? 상화가 멋대로 검집에서 빠져나와 내가 쓰고 있던 모자를 둘로 쪼개버렸어. 아끼던 거였는데.”
“뒤에서 갑자기 팔을 잡아당기니까 그렇지.”
“그럼 어떡해. 불러도 대답 없이 휙 가버리니까 급해서 그런 건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후딱 결정하고 후딱 해치워 버리자며 송자침이 자루를 털어 시체를 꺼냈다.
“......”
그리고 바깥으로 드러난 내 얼굴을 보곤 목구멍이 턱 막힌 듯했다.
버럭 고함을 지른 건 한참 뒤였다.
“이래선 내가 악당이 되어버리잖아! 작아! 너무 작아! 생선 말린 것도 아니면서 이게 뭐야! 이 비쩍 골아 말라비틀어진 건 뭐냐고!”
“생선이라니! 실례입니다!”
“사실을 언급했을 뿐이다. 죽었을 때 몇 살이었냐.”
“아마 열여섯... 정도 되었을까요? 세어본 적은 없지만.”
“알겠다. 이 녀석 숫자를 모르는구나. 열둘 다음은 열셋이다.”
왜 항상 사람들은 내 나이를 열셋이라고 멋대로 정해버리는 건지.
어쨌거나 자루 속에서 상상하던 것과 달리 송자침은 왜소한 체구에 어깨가 좁았다. 키도 작은 편이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자. 그러니까 나란히 섰을 적에 효성진 보다는 작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선골의 몸이라 소산 사람들보다 손가락 한 마디는 더 컸다.
그래봤자 손가락 한 마디 차이다. 나는 발끈했다.
“작은데 보태어준 거 있으세요?! 주먹밥 하나라도 주신 적 있으시냐고요!”
“주먹밥을 준 적은 없지만 내가 틀린 말한 건 아니잖아. 백설관 우리 막내 사제가 열 셋인데 너랑 비교해도 이만큼이나 키가 떠 크다고.”
“저도 고기랑 밥 많이 먹었으면 컸어요!”
“아유, 알았다. 귀 따가우니 그만 소리 질러. 배고파 죽었으면 기운이 없어 조용했을 텐데 억울하게 죽었다고 목소리도 크네.”
톡 쏘아붙이는 어조는 여전히 쌀쌀맞았지만 표정은 어쩐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이 자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쩔쩔 매는 친구를 보던 효성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침... 얼른 태워 가루로 만들자며.”
“어.”
“그런데 왜 아이 머리에 시체자루를 도로 뒤집어씌우는 건가.”
“생각해보니 마냥 급한 일은 아닌 듯하여.”
“아닌 척하긴. 자네도 양심에 가책을 느낀 거지?”
“절대 아니네. 다만 일에는 뭐든지 순서가 있지 않은가. 밥을 먹은 뒤에 차를 마시고, 세안을 한 뒤에 머리를 묶는 법이지. 설양을 잡고 난 뒤에 이걸 태워도 순서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꾸물꾸물 변명하던 송자침이 애먼 자루 매듭을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늘어나는 외상장부를 보며 서안 가장자리를 툭툭 치던 채소가게 송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행동을 가리켜 번민의 회랑에 꿇어앉아 목탁을 두드린다 말하곤 했다.
두 사람은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걸렸는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괜찮아도 정체가 시체이니 객잔으로 가져갈 수 없다, 듣자하니 물도 마셨다던데 이젠 주먹밥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 식의 쓸데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다 내가 자루 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음을 깨닫고 아예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생에 무협지를 읽어본 적이 없어도 그게 전음이라는 건 눈치로 알았다. 낮은 저주파로 웅웅거리기만 할 뿐, 사람의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신기하게 효성진의 전음 주파수는 낮았고, 송자침의 전음 주파수는 높았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얘기를 어떻게 진행한 건지 그들은 날 산속 깊은 곳에 숨겨두기로 결정했다.
“설양을 잡기 전까지 널 이곳에 두려고 한다.”
그렇게 말한 송자침은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양심이 있음 그래야지. 풀과 나무밖에 없는 깊은 산 한 가운데 나 혼자 있으라고 하면 양심에 찌르는 듯한 가책을 느껴야지! 그것도 양손을 곤선삭으로 묶어둔 채로!
아저씨! 진심이야? 곰 나와! 이런 숲이면 곰 나온다고!
나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진심이에요?!”
방치 플레이라니! 방치 플레이라니!!
효성진 도장이 검집을 높게 들었다. 그러자 푸른빛을 내며 패검 상화가 빠른 속도로 튀어 올랐다.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에 진법을 그려놓을 거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화가 번개처럼 날았다. 주인의 의도는 잘 알고 있다며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휙휙 움직였다. 빛을 반사하는 모양새가 내 눈에는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진다는 느낌이었다. 보고 있자니 눈이 시려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다른 의미로 해석한 효성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를 제외하곤 밖에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바위를 긁고, 땅을 헤집고, 나무를 동강내더니 할 일을 모두 마쳤다며 상화가 효성진에게로 돌아왔다.
“결(結).”
여덟 개의 빛의 기둥이 솟구쳤고, 아주 잠깐 동안 영력으로 채워진 패턴이 공중에 떠올랐다.
문양이 사라지기 직전, 효성진 도장이 큰 소매를 펄럭이며 팔과 손가락으로 몇 가지 동작을 덧붙였다.
이해는 안 갔지만 비범한 재주였다.
“금방 다시 오마. 설양도 곧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가만히 있거라.”
그러면서 자신이 급조한 결계의 대략적인 크기를 설명해주고 어느 이상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차분한 어조로 경고를 했다.
나는 당황했다.
가만히 있으라니?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독방에 가둬두면 사람이 얼마 만에 맛이 가는지 이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 장난해요?!”
내 장례는? 내 장례는~!!! 재로 만들 거라며. 불에 태워 재로 만들 거라며!
막판에는 화가 치밀어 마구 고함을 질렀다.
“나쁜 사람들 같으니! 십 리도 못 가서 사타구니에 무좀 걸려라!”
절망하여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늘도 역시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YOU DIED’ 메시지를 보고 재시작 버튼을 눌렀더니 응답까지 앞으로 남은시간 24만6천5백일, 지금 이게 내 상태다.
효성진 도장이 만들었다는 결계의 크기는 학교 운동장 넓이 정도 되었다.
산중턱이다 보니 경사가 있어 짐작이 어려웠어도 아무튼 고압전선 불꽃이 튀는 곳을 따라 둥글게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질질 끌며 걸어왔던 길을 반복하여 걷자 한쪽이 눌린 타원형의 원이 그려졌다. 공중에서 보면 한 입 베어 문 찐빵의 형태일 거였다.
진법의 구성은 완벽한 원이나 사각형을 그리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했다.
돌을 던져 밖으로 던졌을 적에 그것은 별 영향 없이 결계 밖으로 넘어갔다.
대신 턱을 앞으로 내밀며 통과하고자 하자 전자레인지에 실수로 알루미늄 포장호일 넣고 돌렸을 때처럼 불꽃이 튀면서 반발하는 힘으로 날 안쪽으로 밀었다.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겠다.
불꽃이 닿은 부분은 피부가 검게 타고 벗겨졌다. 쓰라리고 톡톡 쏘는 통증이 가라앉자 뜨뜻하게 열이 오르며 흉터가 생겼다. 시일이 지나자 흉터의 색이 엷게 변했다. 열감이 가라앉는 건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밖으로 나가보려는 시도는 이후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동물은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새가 여럿 날아가 그럴 것이다 추측했다.
사람은 이후 구경을 못 했다.
Posted by 미야